[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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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례인들이 지키고자 한 신념이 있고, 그것은 몇 줄 짜리 짧은 지침으로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코로나19 사망자의 유족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을 테다. 그런 이들과 입관식을 같이 해준 장례지도사는 고인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끈이었다. 두어 평 남짓 안치실에서 장례지도사들은 고인과 함께 격리된 대상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연결망이기도 했다. 모두가 죽은 자를 숫자로 대하고 있을 때, 그 숫자를 돈으로 치환하는 것도 장례업 종사자겠지만 그 숫자를 인간으로 전환하는 것도 결국 장례인이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37, 희정 지음
이전까지 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있어서는 안 되기에 없었다. 존재가 드러날 때 정책이 마련되고,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하다. 이때 국가 단위 조사가 실시된다. 그러니 근대 국가가 생긴 이후 사람들의 투쟁은 국가가 통계화하는 '숫자'에 들어가는 존재가 되기 위한 싸움이라고 할만하다. 숫자에 속하지 않으면 삶도 죽음도 보장받을 수 없다. 죽지 않기 위한 모든 싸움이 숫자와 연결되었다. 그것은 성원권 획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동시에 '숫자'로 머물지 않기 위한 분투가 이어졌다. 노숙인의 삶이 숫자로만 머물지 않게, 시설 장애인의 삶이 숫자로 갇히지 않게, 죽음이 '사망자 통계'로만 남아서는 안 되기에. 사는 건 투쟁이라더니 죽는 일도 그러했다. 죽음마저도 숫자 싸움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38, 희정 지음
실은, 이것은 위에서 말한 '카프네' 소설에서도 그렇고 이전에 읽은 BL 요리만화 '어제 뭐 먹었어?'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는 성소수자 커플들 간의 법적 가족 관계의 효력을 갖게 할 만한 대안으로 '파트너십 조례' 및 '양자 결연'의 방식이 채택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비슷한 제도가 없는 건가요?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양자 입양의 제도를 이용해야하는 현실도 씁쓸하지만;;;
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2025년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의 《카프네》가 출간되었다. 일본 전역의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낸 이 작품은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활의 힘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어제 뭐 먹었어? 242DK의 집, 중년 남자 둘, 식비 월 4만 엔(점심 식비 별도). 이 만화는 카케이 시로(변호사)와 야부키 켄지(미용사)의 '식생활'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번 24권의 메뉴는 채소볶음나물 비빔밥, 군만두, 양갈비소테, 흰살생선 세비체, 닭다리살 토마토스끼야끼, 드롭 초코칩쿠키 등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휩싸인 현대인들이 인류가 지녀온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존중을 채워 놓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을 도처에서 보고있다. 나 역시 장례식에 다녀오면 소금이 아닌 소독제를 뿌리는 사람이지만,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를 걱정한다. 395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 내가 사는 한국에서는 21세기 초부터 죽음이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었다. 406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423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나는 염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의를 입지 않을 테다. 직장을 원한다. 나무관도 쓰고 싶지 않다. 태워질 거라면 종이관이면 좋겠다. 빈소는 하루만. 빈소 제단엔 생화가 놓이지 않길 바란다(꽃을 뿌리에서 분리할 이유가 없다). 조문객에게 육식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일회용품 식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음식 자체를 제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운 다기에 차나 와인을 대접하고 싶지만, 설거지는 누가 하나? 고민이 든다. 425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협동조합 채비의 장례를 알게 되어서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채배만의 특별한 프로그램 추모식이 공간 채비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채비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야겠어요.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자신이 설명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엄과 무관한 일이다. 478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마거릿 미드가 문명이 시작된 최초의 증거로 '치유의 대퇴부' 꼽는다는 것, 돌봄이 문명의 원형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됩니다.
내 장례를 치뤄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않고 장례를 치뤄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혼자가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의 장례에 간다. 529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복지 개념을 새롭게 알게 되어 고마웠고.. 보편적 복지, 기본 소득 등등을 꺼내기만 해도 색깔부터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근조근 끝까지 다정하게 설득할 수 있을까 ..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562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사람으로 사는 고생을 아는 사이다. 그러니 연민한다. 돌봄과 유대는 어디서든 이뤄지고 있다. 불온하고도 다양하게. 563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어떻게 해야 나도 후회가 없을까. 지금 호세한테 최선을 다하자. 그래야 후회가 안될 것 같다. 집에 들어가 인사하는 것부터 산책하고 놀아주는 것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아요. 호세 덕분에 이 아이와의 시간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하루하루가 후회되지 않게 만들어야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최선을 다하는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거 같아요. 588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저한테 연대는 나의 안팎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저는 혼자 오래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을 찾아갔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놀라웠던 게, 번듯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나의 약한 부분을 드러냈는데도 제가 계속 수용되고 연결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가 받았던 차별이나 배제가 단지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599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무연고에서 퀴어, 반려인의 애도까지 함께 이야기 나눌 거리가 무척 많다는 것을 느끼는 밤입니다.
화자가 섞이는 것은 상엿소리의 특징이다. 소리꾼은 고인의 심정이 되어 가사를 읊기도 하고, 고인을 떠나보내는 상주나 사별자의 입장이 되어 노래하기도 한다. 화자가 섞이는 와중에 나의 시집살이 설움이 고인이 가는 길의 설움과 섞인다. 연도에선 상여 배가 솔섬에 닿으면 사람들이 관에 묶인 노뿌줄(연도에서는 설배 끈을 노뿌줄이라 불렀다)을 잡아당긴다. 관이 뭍으로 가야 하는 순간, 이때는 상여꾼과 문상객이 따로 없다. 모두가 줄을 잡아당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를 비롯해 생애주기에 따른 의례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가 그 시대의 통치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식은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것은 없어진다. 호흡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제까지 눈 맞추던 이가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된다. 이유가 없다. 때론 기별도 없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세계의 불가해함에 직면한다.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내일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산 사람들은 반동을 겪듯 변하지 않는 존재를 부여잡으려 한다. 그리하여 장례는 관례와 약속, 각종 규칙으로 채워진 의례가 된다. 불가해함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절차가 엄격하고 틀은 확고하다. 모든 행위에 의미가 부여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별의별 일이 닥친다. 상여 행렬 순서 같은 것은 무의미해진다. 죄인이건 효자건, 상주가 지팡이만 짚고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얽히고설켜 장지에 도착한다. 확실한 것이 없는 불가해한 세상에서 죽은 자를 장례 치르려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지키려는 의례의 절차는 엄격해도, 그마저 뜻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그래도 고인은 새로운 집을 찾았고, 사람들은 땡볕에 타고 설움이 오르고 술에 익어 불콰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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