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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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로든 간에 사람들이 생전장례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동네잔치가 되어도 좋고, 전시를 할 수도 있고, 그냥 소박하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서 SNS에 올릴지라도. 생전장례식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누구든 그런 경험은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92, 희정 지음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생전장례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93, 희정 지음
화자가 섞이는 것은 상엿소리의 특징이다. 소리꾼은 고인의 심정이 되어 가사를 읊기도 하고, 고인을 떠나보내는 상주나 사별자의 입장이 되어 노래하기도 한다. 화자가 섞이는 와중에 나의 시집살이 설움이 고인이 가는 길의 설움과 섞인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04, 희정 지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인 무덤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화강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단단한 벽과 바닥이 되어주었고, 유골함이 자리했던 광중은 아궁이 역할을 했다. 비석이 지천에 널려 있어 자재 걱정이 없었다. 다만 죄책감과 두려움이 따라올 뿐이었다. 비석의 이름을 페인트로 덧칠해 그 흔적을 지워보았지만, 그 이후 수십 년간 아미동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귀신과 도깨비불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5, 희정 지음
비유가 아니다. 2008년 삼성글로벌리서치(삼성경제연구소)는 그해 10대 히트 상품 중 8위로 '상조 서비스'를 뽑았다. 공중파와 케이블TV에 상조업체 광고가 허용된 지 4년 만이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8, 희정 지음
1990년대 서울 인구는 천만 명을 넘어서며 최고점을 찍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의 병원에서 죽고, 병원 지하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러한 지원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에 전국에 10개소도 되지 않던 장례식장이 1995년에는 321개소, 2000년에는 465개소, 2010년에는 815개소로 늘어났고 지금은 천여 개에 이른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9, 희정 지음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까진 아니어도 꾸준히 오랫동안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할 텐데, 장례업계 이직률은 몹시 높다. 통계가 있는 건 아니다. 통계 자체를 낼 수 없다. 입사자도 퇴사자도 없다. 상조업체에 직원으로 직접 고용되어 일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고 끊을 뿐이다. 상조업체에서 일하는 장례지도사 대부분이 특수고용직이다. 자택에서 대기하다가 순번에 따라 일이 들어오면 장례식장으로 가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불안정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25, 희정 지음
장례가 이토록 모를 것이 된 까닭에는 도시가 있었다. 모두 도시로 왔다. 도시의 병원에서 태어나 시설에서 늙다가(돌봄의 외주화) 병원에서 죽는다(임종의 의료화). 골방이나 다름없는 처치실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현대인의 죽음이다. 이후의 운명은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 맡겨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2, 희정 지음
흔히 생각하듯, 도시는 단순히 시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근대 이후 형성된 도시는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시장은 공간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세계의 작동 원리이고, 이곳에서는 인간마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2, 희정 지음
임신부들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노인들은 요양 시설 병실에 누워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몸에 절망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3, 희정 지음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ifrain님의 문장 수집: "임신부들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노인들은 요양 시설 병실에 누워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몸에 절망한다. "
내 것이었던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내 몸의 주체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낄 때 당혹스러움은 절망감으로 연결되는군요. 그런 순간 몸의 주인에게 말을 걸어주고 의사를 존중해주려는 배려가 그들에게 건낼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가장 아버지’와 재생산과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어머니’라는 환상과 그 실질적 수행이 자본주의 ‘시장’을 떠받들고 있다. 그 시장은 비정형 노동에 종사하는 딸과 아내를 만들어왔고,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오늘날의 ‘자녀 세대’를 낳았다. 우리는 그 ‘가족’에 갇혔고, 그리하여 지하에 자리한 안치실에는 연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가 홀로 썩어간다. 같은 건물 1층 빈소에서는 검정 상복 치마와 앞치마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육개장을 나르고, 완장을 찬 사람은 빈소 복도를 메운 화환 수를 헤아린다. 유골이 봉안당으로 옮겨갈 시엔 그 가족이 지급한 금액에 따라 가운뎃줄에서부터 가장자리 끝줄까지 봉안 위치가 정해진다. 무연고 유골이 있을 자리는 지하다. 이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지금의 ‘가족’이 있었다. 출산, 양육, 부양, 연명, 의료, 그리고 장례까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이 오직 (정상)가족 단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둔 사회는, 가족을 벗어나 구성원이 맺는 다양한 유대적 관계를 보려 하지 않는다. 무연고자가 증가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쪽방촌에 가면 어르신들이 장례를 꼭 치르고 싶어 하세요. 내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크시고요.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그게 낙인이 되니까요.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고 그 가족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풍토가 있으니까. 장례 조문 봉사 온 분들도 그런 말을 하세요. ‘잘 살았으면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겠지.’ 아니요.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거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실은 이전 <죽음을 인터뷰하다>와 이 책 <죽은 다음>에서 느낀 것은 죽기 전은 죽음을 맞아힐 사람들, 그리고 <죽은 다음>의 몫은 결국 죽은 후 남겨진 산 자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죽은 이후의 복잡한 절차를 돌아보면서 초반에 생각한 것은 우리는 왜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하는 세상에서 전통을 굳이 고수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이 마무리에서 그런 의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서 제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들을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지배층(조선총독부)의 애도 대상과 사회 구성원들의 애도 대상이 극히 상이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장은 '우리(공공의 결속)'를 찾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곤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51, 희정 지음
애도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확인하게 한다. 저들이 인정하지 않는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가 드러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51, 희정 지음
애도 불가능한 이들을 애도하고자 하는 마음의 분출은 시위와 다를 바 없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52, 희정 지음
대상의 부재는 최종적인 결별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책임의 시발점이라 하였던가. 나를 움직인 건 일말의 책임감이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54, 희정 지음
나의 일상과 안온이 흔들리는 일을 우리는 참사를 통해 경험한다. '나였을 수도'라는 말은 나를 둘러싼 세계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세계는 안전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삶의 불확실성은 '나'라는 개인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우리' 공동의 운명을 드러낸다. 우리는 살아내야 하기에, 우리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타자에 의존하고 의지하며, 서로를 돌보는 길로 걸어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356, 희정 지음
얼마전 데미안 허스트 전시를 보면서 그가 무작위와 우연에 맡깉 작품들과 거의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질서와 규칙에 집착하는 작품의 양극을 향해 치닫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이런 '절차'와 '전통'에 집착하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하고 통제 불가능한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이런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 통제에 저항하는 것 또한 그런 역설적 몸부림일 수도 있구요. 그 통제를 위한 몸부림이든 통제에 거스르는 역설적인 몸부림이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해봤는데..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바로 투쟁이고 그 투쟁의 고단함과 투쟁을 함께 하는 '우리'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움직이는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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