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읽은지가 40년이 넘어서 브루노가 그 책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네요. ㅎㅎ
데모크리토스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에 주요 인물로 나옵니다.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 개념을 만든 사람이죠.
‘사후에 내가 남지 않는다면 공포 속에 살 필요가 없다. 신들이 나에게 어떤 짓을 할지, 어떤 고통이나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원자 이론은 데모크리토스의 마음을 어찌나 가볍게 만들었는지 그는 ‘웃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우주적 불안에서 자유로워진 데모크리토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의 결점을 슬퍼하는 대신 키득키득 웃어넘길 수 있었다.(19쪽)’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밥심
밥심
마침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의 수명 연장 프로젝트를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준비중이라는 기사가 떴네요. 칼 세이건이 미국에서 코스모스를 발간한 때가 1980년이어서 보이저 이야기를 책에서 한 것 같은데(기억은 안 납니다), 내년이면 발사 50주년이 되는 보이저는 여전히 항해중으로 수명 연장 프로젝트가 잘 되어 2035년경에 지구와 태양 거리의 200배까지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고 합니다. 보이저 화이팅!

향팔
“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은 대단히 방대했으며, 인간 지식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온전하게 전해지는 저작은 단 한 권도 없다. 반면 플라톤은 역시 방대하지만 데모크리토스보다 더 방대하다고는 할 수 없는 저작을 남겼는데, 모든 작품이 한 권도 빠짐없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오히려 작자가 의심스러운 저작까지 끼어들어 원래보다 더 많은 작품이 전해질 정도다.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의 저작이 이토록 다른 대접을 받은 것은 단지 우연의 소치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옛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이를테면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의 모든 저작을 불태워버리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플라톤이 어쩌면 은근히 그 같은 의도를 품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속내가 겉으로 표현되었건 되지 않았건, 몇 세기의 세월이 흐른 뒤에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은 서기 3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 후로는 기독교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저작들에 대한 박해(6, 7, 8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가 유물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이 작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가혹하게 자행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기독교 교회는 반대로 관념론의 창시자[플라톤]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웠다. 심지어 그로부터 기독교 신학 체계의 상당 부분을 차용했다. ”
『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신화의 베일에 가려진 고대 그리스 문명의 핵심을 되살려낸 고대 그리스사의 고전.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 문명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 즉 그리스 문명을 기획한 고대 그리스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하여 그들이 문명을 일구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이 더욱 생동감 넘치게 그려진다. '문명의 전범'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집약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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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쿠사누스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사상인 태양중심설을 관념적으로 선취했다면,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사상을 배우고 이를 의식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브루노는 사변적인 방식으로 코페르니쿠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며, 그의 생각은 후일 과학적 연구에 의해 참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리와 가까운 주변의 우주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별들의 체계라는 것은 알았지만 태양계 너머에는 항성들로 가득 찬 천체가 마치 고정된 반구형 지붕처럼 자리 잡고 있다 생각했다. 이 문제에 더욱 천착한 브루노는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우주를 측량할 길 없이 무한한 것으로 표상했으며, 무수히 많은 태양과 별과 세계체계로 가득 찬 이 우주는 한계도 중심점도 없이 지속적으로 운동한다고 생각했다.
[…] 브루노가 신과 세계의 관계를 서술하는 방식은─창조의 영원성이라는 사상을 제외하고는─기독교와 합치될 수 없다. 그는 신이 세계를─마부가 마차를 몰 듯─바깥에서 지배한다는 견해를 반박한다. 신은 세계의 위나 바깥에 있지 않고 그 안에 있다. 생명을 불어넣는 원리로서의 신은 세계 전체와 그 모든 부분들 안에서 작용한다. "우리는 불변불멸의 자연법칙에서, 이 법칙에 따르는 심정의 경건한 느낌 속에서 신을 구한다." ─ 이 구절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도덕 법칙'이라는 칸트의 명제와 아주 가까이 있다! ─ "우리는 태양의 광채에서, 우리의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태어나는 사물들의 아름다움에서, 그리고 신적 본질의 참된 잔영, 즉 천상의 광대한 가장자리에서 빛을 내며 살고 느끼고 생각하는 별들의 모습, 지선이자 지고한 존재이고 모두이자 하나인 존재를 찬미하는 무수한 별들의 모습에서 신을 구한다."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이런 입장을 '범신론Pantheismus'이라 한다. ”
『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세계 철학사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고민과 시대적 변화에 대해 숙고하는 사람들에게 철학사에 나타난 지혜와 식견을 통해 도움을 준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한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개념을 나열하지 않고, 철학적 주제를 역사적 조망과 사회적 맥락에 결부시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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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화
인격이 있는 것처럼 표현을 하고, 말하고, 지켜보는 신으로서의 관념을 생각해보면 후대에 데모크리토스 사상을 배격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향팔
저는 1장을 읽으면서 1970년대 캄보디아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킬링필드 대학살… 단지 안경을 쓰고 있거나 손바닥이 부드럽다는 이유로 잡아가서 죽였다고 하 지요.

은화
"당신들은 사람이잖소! 그들을 죽이시오. 죽여!" 하지만 그의 말은 군중이 "불에 태워라! 활활 태워 버려……!" 하고 외치는 소리에 가려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6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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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최근 근위대에는 명예로운 싸움에 쓰는 검은 단 하나고 거리의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검을 하나 더 들고 다닌다는 뜨내기들이 생겨났다. 돈 레바의 보살핌 때문에 성스러운 아르카나르에 쓰레기 같은 놈들이 너무 많아졌다면서.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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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옅어지듯 단련된 정신이 약해지고 우리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끊임없이 정신을 재무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유감일 뿐이다. '이를 악물고 기억해라. 너는 가면을 쓴 신이다. 그들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은 죄가 없다. 그러므로 너는 인내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 지구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던, 우리 영혼 속 휴머니즘의 우물이 무서운 속도로 말라 가고 있다. 성 미카여, 우리는 그곳, 지구에서는 진정 휴머니스트였다. 휴머니즘은 우리 본성의 뼈대였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정의와 사랑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갑자기 두려워지면서 사실 우리는 인류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를, 같은 지구인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2~7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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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어요." 소년이 웅얼거렸다. "씻다니, 제가 지체 높은 나리도 아니잖습니까?"
"내가 미생물이 뭔지 설명해 줬지?" 루마타가 물었다. 소년은 초록색 바지를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휘둘렀다.
"간밤에 세 번 기도했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어리석은 녀석."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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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다들 사람처럼 사는데 우리만 신기한 짓을 해요. 이런 건 듣고 보도 못했습니다. 대야 두 개로 씻으시다니. 변소에는 웬 항아리를 갖다 놓으시고…… 매일 깨끗한 수건을 쓰고…… 그런데 정작 기도는 안 하고 맨몸으로 검을 들고 날뛰시다니요……"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8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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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1주차까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프롤로그부터 2장까지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말씀해 주세요.
2) 62~66p에 걸쳐 안톤(돈 루마타)과 바실리예비치(돈 콘도르)는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문명의 개입 여부에 대해 토론을 합니다. 바실리예비치는 정의감을 참지 못해 중립적 태도를 버리고 행성의 역사에 개입한 연구원들을 단거리 주자라고 말하고요. 여러분은 누구의 입장에 더 공감을 하시나요? 또는 더 옳다고 생각하셨나요?

사다새
1. 첫째는 1장에서 키운과 헤어지고 아쉬워하는 안톤의 모습이었습니다. 귀족 기사의 가면을 쓴 채 무수한 '가짜 인간'과 대화를 하는 데 이골이 난 안톤은 '진짜 인간'과의 대화를 갈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굉장히 외로운 처지죠.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돈 레바에 의해 한창 배척당하는 지식인 부류가 많다는 것이죠. 그게 그의 고독감을 더하는 느낌입니다.
둘째는 앞선 대화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것입니다만, 중세적인 아르카나르의 사람들을 보고 '저게 사람인가? 난 사실 인간이 아니라 지구인을 좋아하는 거였나?'하고 환멸을 느끼는 안톤의 독백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그가 심적으로 몰려있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2장에서 언급한 대로 현지 방식대로 다소 지저분하게 사는 건... 결국엔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사람에 대한 환멸과 갈증은 적응하기 정말 어렵거든요.
셋째는 2부에 이르기까지 벌써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두 번이나 인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두 인용 모두 '사느냐, 죽느냐'와 관련된 문구였어요. 현재 안톤이 역사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햄릿'과 비슷한 처지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시를 누가 쓴 거냐는 현대인의 물음에 "내가 썼다"고 대답한 것도, 안톤이 햄릿과 같은 상황임을 긍정한다고 볼 수 있고요.
2. '역사 연구'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안톤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안톤은 아르카나르의 인간들에게 경멸을 느끼고 있지만, 저는 그럼에도 안톤이 이 아르카나르인들 역시 같은 '인간'으로 인식은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안톤이 그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건 "인간이라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같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환멸도 느낄 리가 없거든요.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는 행성의 역사에 개입한 연구원들을 중립적이지 못한 단거리 주자라고 비꼬았지만, 저는 그 단거리 달리기가 일종의 인류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감과 연민은 대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 자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알렉산드르는 아르카나르 현지인들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무언가 더 열등하고 덜떨어진 실험체, 동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겠죠. 단지 오랜 연구로 무뎌진 걸 수도 있겠지만, 연구 윤리에 연구의 객관성과 정직성 만큼이나 도덕적 책임 역시 따르는 걸 생각하면 저는 이게 연구를 위해서도 완전히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은화
1) 매 페이지마다 강렬한 내용들이 많지만 그래서인지 소소하게 기억에 남는 건 루마타의 소년 하인과 씻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었어요.(p.80) 우리 입장에서야 청결함이 질병을 막고 건강을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라 목욕과 속옷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소년은 그걸 전부 이상한 행위로 보죠. 별 것 아닌 작은 아침 준비시간임에도 이 사소한 대목에서 안톤과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천 년'이나 시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직관적으로 와 닿게 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깨끗한 물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물로 몸을 씻는데 쓴다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낭비로 보였을 수도 있겠고요. 어차피 또 흙과 밭에서 일하다 보면 땀을 흘리고 더러워질텐데 겨우 등목과 세수를 위해 물을 버린다고 생각했겠죠.

은화
2) 둘 사이에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저는 돈 콘도르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왠지 콘도르가 '후배'라는 말을 하는 데서 이 몇 마디 단어에 어떤 동정이나 공감이 느껴졌고요. 책의 절반 정도 읽었는데 아직까지 바실리예비치에 대한 설명이 더 없지만 그도 루마타와 똑같은 길을 걸어봤던 실무자였을 것 같습니다. 이런 규모와 성격의 일을 고려해 볼 때 바실리예비치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학자 타입이나 관리자 역할만 하는 사람을 앉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돈 콘도르도 산전수전을 겪어본 후에, 자신 같은 사람 한 두 명의 노력 만으로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라는 체념 또는 현실과 타협을 했을 겁니다.
행성의 역사에 개입할 경우 어디서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는 영역인지 정의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또한 안톤의 감정은 같은 인간에 대한 동정의 감정이 크다고 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지만 이 행성의 원주민들은 인간과 같거나 거의 닮은 존재인 것 같은데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독자도, 안톤도 더 몰입하게 되죠. 인간이 거쳐온 역사의 굴곡을 알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만큼은 그런 고생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원하는 거고요. 마치 부모가 자기 자식은 본인과 같은 직업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자신이 겪은 고생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모습과 비슷할 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그들을 위한 개입'이고 어디까지가 '스스로의 감정적 부채를 덜기 위한 개입'인지 나누기 어렵다는 점이죠. 콘도르는 그 지점을 단거리 주자라는 말로 지적했고요.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떠오르는 말이 있는데요. "철도가 깔리기 위해서는 철도가 깔릴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한다." 역사가 바뀌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지점까지 이르기 위한 사회의 에너지가 응축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기억합니다. 단거리 주자들의 개입은 어쩌면 그런 변화를 위한 압력과 에너지를 미리 김빠지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ifrain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개입하려 할 때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본인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부모가 아이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심하는 것을 넘어 아이의 길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려 하는 것이 아이를 망치는 길이 되는 것을 봅니다.

borori
전 읽다보니 중세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는 잔혹함에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반박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쓰여진 시기는 1960년 공산주의 초반이라고 하지만 이미 어느정도 느끼고 있던게 아닐지.. 짐작해봤습니다.

은화
책에서 공산주의가 언급되어서 그런데 제정 러시아에서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저랬을까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꼭 어느 측정 시대나 국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좀 더 경험해 본 지식인 계층이 활동하던 변화의 시대면 어디나 통용될 듯 합니다.

ifrain
우리는 현재 2026년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주관에 따르면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

ifrain
“ 지구에서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정신감정을 통과한, 모든 것에 준비된 학생이었다. 우리의 정신력은 강인했다. 우리는 폭행과 처형 현장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있다. 인내심도 대단하다. 구제할 길 없는 천치들이 날뛰어도 참아 줄 수 있다. 우리는 까다롭지 않다. 여기서 으레 그러듯, 개한테 먹이를 덜어 줬던 그릇을 닦는답시고 더러운 천 쪼가리로 대충 문대서 줘도 잘 쓸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한 연기자다. 꿈에서도 지구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우리는 연구실과 실험실의 고요 속에서, 혹은 먼지 날리는 발굴 현장에서 혹은 치열한 논쟁의 장에서 도출한 봉건주의 기초 이론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들고 있다……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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