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당신은 번개를 다룰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번개를 줄 수 없소." "그 대답도 벌써 스무 번째입니다." 아라타가 말했다. "이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요." "시도는 해 보시지요." "번개로 뭘 할 생각이오?" "금을 휘감은 개자식들을 지져 버릴 겁니다. 진드기 잡듯이.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저주받을 종족을 12대손까지 멸할 겁니다. 이 땅에서 그들의 성을 밀어 버릴 겁니다. 그들의 군대와 그들을 지키고 지지하는 이들을 다 태워 버릴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번개는 좋은 일에만 쓰일 테니까요. 이 땅에 자유인이 된 노예만 남고 평화가 찾아오거든 당신의 번개를 돌려드리고 다시는 그걸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7~30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루마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잃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다시 말해, 선이 지배하는 우리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아라타보다 한없이 강하고 악이 지배하는 아라타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보다 한없이 약하다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돈 레바에 대하여 : 옮긴이의 말까지 읽으면 새삼스럽지도 않겠지만(어쩌면 읽으면서 직감했을 수도 있겠지요), 돈 레바의 모티브는 라브렌티 베리야라고 합니다. 스탈린 밑에서 NKVD를 지휘했던, 몹시 악명 높은 인물이죠. 초안에는 아예 애너그램인 '돈 레비야'가 이름이었다니 알만합니다. 결말까지 다 보고 나니 여러모로 라브렌티 베리야가 떠오르는 인물이긴 했습니다. 그 자신이 카리스마 등 정치적 자산을 갖춘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1인자가 사망한 후 급격히 몰락했던 점에서요. 그 밖에 유사하다고 생각한 인물이 있다면 십상시의 난 당시 하진과 원소를 필두로 한 청류파입니다. 그들은 환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외부 군벌을 끌어들였는데, 십상시의 숙청까지는 성공했지만 외부 세력이었던 애먼 동탁이 중앙의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 밖에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 초기, 그를 과소평가했던 기성 정치인들과도 비슷하네요. 당시 독일의 보수 엘리트들은 히틀러를 통제 가능한 대중 선동가 쯤으로 만만히 여기고 그와 협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파란을 조국에 불러일으키고 말았으니까요. 이념도 애국심도 정치적 비전도 없었지만, 권력 감각만큼은 뛰어난 기회주의자. 그에게는 확실히 어느 정도 유능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유능함은 권력 유지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 활용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위해 국왕과 국가도 평소대로 배신했다가 오히려 더 큰 권력에 종속당하는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책 읽는 내내 돈 레바란 인물은 대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끝까지 읽은 바로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그는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카리스마형 파시스트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비전도, 이념도 없지만 멍청한 건 아니었어요. 유능한 소인배죠. 자신만만하게 모든 것을 도구로 활용한 끝에, 그 자신도 도구로 전락해버린.
247p에 "회색이 승리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검은 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라는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검은색보다 회색이 더 두려운 이유는 결국 회색이 검은색을 불러오는 전조이기 때문이겠죠. 어느새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점점 짙어지다가 결국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그는 자신이 옳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옳기 때문에 그는 아라타 앞에서 작아졌다. 아라타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 루마타보다 나은 인물이다. 루마타 자신을 비롯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행성에 와서 무력한 동정심에 가득 차 이곳 상황이 무서운 속도로 과열되는 현상을, 무정한 가설들의 의미 없는 가치와 이곳에선 생소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관찰하는 자들보다 낫다. 루마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잃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30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너는 아직 너 자신만이 패배할 운명이라며 위안을 삼지. 너는 네가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 아직 모른다. 너는 네 병사들 밖에만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너는 어쩌면 기사단을 무찌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농민봉기의 흐름이 너를 아르카나르의 왕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는 귀족들의 성을 밀어 버리고 남작들을 해협에 던져 죽일 것이다. 봉기한 민중은 너에게 온갖 명예를 안겨 줄 것이다. 위대한 해방자에게 그러하듯. 그리고 너는 선하고 지혜롭겠지. 네 왕국에서 유일하게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러다가 너는 전우들에게 땅을 나눠 주기 시작하고. 그런데 농노가 없으면 땅이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럼 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가 제명에 죽으면 다행이고, 어제의 신뢰하던 병사들 중에 새로운 백작과 남작이 나타나는 걸 보지 못하면 다행이다. 이미 그런 역사가 있었다, 나의 명예로운 아라타. 지구에서도, 네 행성에서도.'
신이 되기는 어렵다 310-31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성들에서 피로 얼룩진 역사의 시대에 태어났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들, 증오할 줄 모르고 잔인함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 희생양들. 의미 없는 희생양들. 저술가 구르나 갈릴레이에 비하면 훨씬 쓸모없는 사람들. 왜냐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투사도 못 되거든. 투사가 되려면 증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신들은 정확히 그걸 못 하거든. 지금 우리처럼……
신이 되기는 어렵다 323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 길은 이방성이었잖아.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 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 그러고서 묶여 있는 해골과 마주친 거야.
신이 되기는 어렵다 33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행동하지 않는 시민들에 답답함을 느끼는 루마타를 보면서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소설을 쓰던 당시 상황이 담긴 것은 아닐까? 예측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8장 마지막의 부다흐와의 대화가 이 책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형제 작가가 보여준 상상의 세계는 재밌으셨나요? 어느새 모임도 일주일도 채 안남았네요. 마지막 주차의 내용은 작품의 감상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 이번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이나 느낀 점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2) 10장과 에필로그 사이의 일들은 파시카의 입을 빌려 묘사되지만 대부분은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으로는 아르카나르와 안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나요? 3) 에필로그에서 파시카가 말한 일방통행 표지판과 해골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왜 신이 되기는 어려운가? 궁금증을 갖고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다흐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을 인류를 구원하기란 어렵다는 것이 주제인가? 짐작해 보았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간 듯 옛 시점에서 현대의 사람으로서 참견을 참기 어렵다는 것과 그 참견으로 인한 변화 또한 미미하거나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잠드는 가스로 도시를 잠재우고 돈레바에게 잡혀가 위험에 처했던 안톤을 몰래 구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르카나르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됩니다. 3)이방성 길에서 일방통행을 거슬러 올라간 안톤에게 경고의 의미로 해골이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행성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느끼기엔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효과로도 느껴져 시간을 거슬러 가지 말거나 거슬러 갔다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또는 경고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1) 감상 @borori 님도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297-300쪽에 장황하게 서술된 루마타와 부다흐의 대화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역사를 쌓아오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 않습니까. 한정된 자원과 부의 분배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기본소득 보장 등을 고안해내고 시행도 해보았지만 단점이 없는 방안은 없었고 지금도 해결을 못해 전지구적으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죠.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도 모자라 머리털 색깔로도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처한 삶의 환경에 의해 몸에 배버린 체취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가 나뉘어짐을 소설을 읽어가면서 다른 자료들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부다흐가 이렇게 저렇게 신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해도 루마타는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그래서 안 된다며 사실상 해법이 없다고 털어놓죠. 제가 신이라도 좌절에 빠질 것 같아요. 이상적인 인류라는 존재를 과연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요. 2) 결말 부분 여자친구가 죽는 모습을 본 루마타가 격분해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신의 본분을 잊고 관련자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결말을 상상했습니다. 지구에서 온 동료들이 뒤늦게 잠자는 가스를 이용해서 뒤처리를 하긴 했지만 루마타는 이미 선을 넘은 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신화에는 홍수로 타락한 온 세상을 쓸어버리는 신도 있었고 번개로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신 등 중립 자세를 지키지 못한 신의 사례는 너무도 많이 있었습니다. 루마타가 그런 신이 되었다는 상상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3) 일방통행 표지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2)번과 연계해보자면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게되는 루마타의 행동을 예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일방통행> 표지판 근처에서 타이어 자국을 보고 파시카는 표지판 너머에서 온 것이라고 했어요. 반면 안톤은 차가 이쪽에서 표지판 너머로 간 것이라고 반박했죠. 서로 일방통행의 방향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합니다. 이방성길이란 '한 방향으로만 가야 하는 길이지'(p.28)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길은 시간의 흐름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일반적으로 시간을 강물에 비유하며 한쪽 방향으로 흐른다고 인식하니까요. 흔히 엎질러진 물을 다시 컵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가는 과정) 시간은 거슬러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이방성길은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방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성질을 말한다'(p.28)라는 설명도 있어요. 인간은 역사를,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는 존재이죠. 지나간 과오를 되돌아보면서 '그때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안톤이 일방통행 너머로 간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간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안톤이 '나는 상식이 없으니까 표지판 너머로 갈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하죠. <일방통행> 표지판의 방향을 제대로 모른다면 <일방통행> 표지판 너머는 인간이 지나온 과거가 아닌 다른 방향의 과거일 수도 있고요.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p.331) 라고 파시카가 말하기도 했어요. 안톤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역행한 것이라면.. 열역학 제2법칙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네요. <일방통행> 표지판 뒤에서 안톤이 본 것은 폭파된 다리와 해골인데요. 폭파된 다리는 시간의 반대방향인 과거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과거에 개입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밥심 님이 얘기하신 1)번 부분을 지금 읽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느꼈어요. 역시 @borori 님 말씀처럼 뒷부분으로 가니 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건 천 파섹이나 떨어진 행성에 어떻게 지구와 거의 유사한 중세문명이 존재하는가 였습니다. 형제 작가는 이전 작품에서도 그렇고 이런 SF의 설정을 배경으로만 넌지시 제공할 뿐 깊이 파고들지는 않죠. 대신 그 안에서 선택하고 고민하는 인물들에 더 집중합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어쩌면 지구에서 유토피아 또는 이상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사 실험을 하는 게 아닌가 상상했는데요. 책 300p의 루마타의 독백에서 아주 잠깐 지구의 이전 역사 또는 가까운 과거에 대한 설명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래, 그건 우리도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면 감응,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재도덕화, 석 대의 적도 위성에서 시도하는 정신 교란……’ 작품 곳곳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는 걸 보면 지구는 공산주의가 아직 존재하거나, 또는 지배적인 이념이 된 미래사회이며 한 때 사람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세뇌하려던 사회였나 봅니다. 정황상 그런 시행 착오를 거쳐 통제나 감시사회는 벗어난 모양새이나 결국 이쪽도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다 실패한 느낌도 들고요. 어떤 인위적 통제 없이 지구의 역사를 반복하되 인간에게 실수가 왜 일어나는지, 지구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는 이상적 사회가 가능한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지구의 인간들은 이미 과거의 역사라는 답안지를 들고 있습니다. 다른 행성에 또 다른 아담과 이브를, 인간의 씨앗을 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답을 알고 있으니 역사의 실수를 미리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아르카나르와 돈 레바, 성기사단은 지구인들의 희망과 기대를 비웃듯 악을 퍼뜨립니다.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지구인의 오만함 또는 착각이었을 지도요. 어쩌면 지구인들은 또 다른 지구를 어딘가에 만들어버림으로써 인간 세상의 고통을 배로 늘려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로 진출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지켜볼 기술이 있으며, 이로 인해 신이 된 줄 알았으나 결국 여전히 신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르카나르와 지구 모두에서 반복되는 걸 지도요. “뭔가 연관이 있는 것처럼…… 그 길은 이방성이었잖아.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 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 그러고서 묶여 있는 해골과 마주친 거야.” 그런 면에서 보면 파시카의 말은 지구인들의 역사 실험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우주의 순리대로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야 하는 역사를 다른 행성에서 역행 하려는 건 오만함이며, 설령 역사를 되돌리더라도 거기서 보게 되는 건 아르카나르의 폭정과 전쟁과 시체더미와도 같은 해골 뿐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2,3) 루마타가 키라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돈 레바와 성기사단을 모두 죽이거나 또는 제거하던 상황을 상상했어요. 이 마지막 장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게 루마타는 그 많은 학자와 식자들을 보살피고 구출하는데 성공했음에도 정작 자신이 가장 아끼던 존재는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루마타가 탄압 받는 민중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형제처럼 여기는 대목이 있었죠. 그들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기에 감정적으로 연대하며, 곧 자신에 대한 압제로 동일시 하고 정의감을 불태웁니다. 재밌는 점은 이들 식자, 학자, 민중들과 루마타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는 겁니다. 루마타는 이들을 신처럼 보살피고 어루만지지만 정작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루마타의 존재도 모릅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의 존재를 상대는 알지 못하며, 사랑을 주는 대상도 인지하지 못하는 짝사랑이죠. 오히려 짝사랑이기 때문에 루마타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들을 구해낸 걸까요. 그런데 키라는 다릅니다. 키라는 루마타의 자세한 정체까지는 모르지만 그의 사적인 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또 그와 사랑을 나눈 유일한 아르카나르의 인간입니다. 루마타로부터 사랑을 받기만 한 게 아니라 루마타에게 사랑을 주기도 했죠. 그리고 루마타가 그냥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직감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즉 키라는 루마타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모로 각별한 대상입니다. 사랑 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에게 이토록 가장 근접한 존재가 없으니까요. 키라는 신과 함께 걷고, 신과 양방향의 대화를 나누며, 신의 장막 뒤에 가려진 그림자와 실루엣을 추측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간이었던 거죠. 그런데 루마타는 가장 가까웠던 키라만은 구하지 못합니다. 동구권 소설이지만 러시아 또한 기독교 문명임을 생각해 보면 키라의 위치와 상황에서 예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키라의 죽음은 루마타에게 단지 연인의 죽음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르카나르에 대한 인내 그리고 이해를 위한 마지막 시도가 부정 당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루마타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잔인한 배신일 겁니다. 자신은 그토록 오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관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아르카나르는 자애로운 신을 거부하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계속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키라가 죽는 구도 자체도 흥미로운데요. 프롤로그에서 안톤은 파시카를 석궁으로 쏘는 내기에서 결국 일부러 빗맞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는 생명을 거두기 두려워 하는 인간이죠. 그런데 수도사의 화살들은 어떤 거리낌 없이 키라를 관통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루마타는 생각은 많으나 결정적 순간에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머뭇거림 때문에 일을 그르친 거기도 합니다. 자애롭고 인류애가 많으며 선하지만 정작 그 선함 때문에 악에게 계속 마음고생하고 유린을 당했죠. 루마타가 레바와 성기사단을 죽인 건 어쩌면 악이 던진 최후의 도발에 넘어가 패배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끝끝내 신의 자비와 관용을 지키지 못하고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는 인간으로 지상에 추락하는 모습이었거든요. 루마타 개인으로 놓고 보면 파시카가 에필로그에서 말한 '해골을 보고 온 안톤'은 결국 선을 넘어 역행해버린 안톤을 말하는 걸 수도 있겠고요. 여기서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아라타입니다. 아라타는 루마타와 여러 면에서 거울에 비춘듯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아라타는 사고로 추하게 변해버렸지만 루마타는 고상하고 말끔하죠. 아라타는 신분이 비천하지만 루마타는 귀족입니다. 아라타는 자신을 짓밟은 세상을 모두 불태울 분노와 증오를 담고 있고 또 실행하는 행동형 인간이지만 루마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라타는 악은 철저히 제거하고 그 동조자들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가혹한 정의라면 루마타는 인간을 악이 아닌, 부족한 인간으로 보려는 관용하는 정의입니다. 그러나 둘 모두 아르카나르에 선이 도래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위치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죠. 과연 아르카나르에서는 뭐가 맞는 길이었을까요? 아라타처럼 불의와 악에는 똑같이 그에 상응하는 잔인성과 폭력과 피로 맞대응해야만 선善이 살아남고 승리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루마타처럼 보다 높은 도덕적 위치에서 관용하고 악을 이해하려는 것이 선善일까요?
저는 말씀하신 루마타의 '머뭇거림'에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한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가 떠올랐어요. AI와 다른 점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김애란 작가가 '망설임' 이라고 답했습니다.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미덕일 수 있고 개성일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발빠른 판단보다 밀도 높은 가치관의 고민이 인류에게는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요. 비록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 손석희 : AI가 사람하고 다른 점이 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애란 : 우선 내가 작가로서 글쓰기에 근육이란 게 늘었다면 그게 언제지? ‘한 문장 한 문장 어렵게 이을 때 전전긍긍과 자문자답 그 과정에서 늘었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근데 AI 경우에는 그 과정을 단축해주는 걸로 유명한데 전 그냥 제 분야에 한해서 말씀드리자면, 요새 지금 전쟁이 한창 중이잖아요? AI가 쓴 전쟁·난민 문학과 인간이 쓴 게 같을까? 소설이나 문학이 그저 콘텐츠이기만 하다면 우리가 책 맨 앞으로 돌아가서 저자의 얼굴을 한참 보거나 약력을 보는 일이 있을까? 우리가 왜 윤동주나 이육사의 글을 보고 감동하지? 라는 질문으로 충분할 것 같구요. 좀 고민되는 일이 있어서 (AI에게) 고민을 나눈 적이 있는데요. 인간한테는 있고 AI한테는 없는 게 하나 있었어요. ‘망설임’이었는데요. 손석희 : 사람한테는 망설임이 있고 AI에게는 없더라. 김애란 : 예.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어.. 짐작하고 헤아리는 그 찰나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그 주저하며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어느 때는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결례가 안된다면 앵커님이 전에 뉴스 진행을 하셨을 때 예도 들고 싶어요. 손석희 : 제가 했던 뉴스? 김애란 : 예. 몇몇 꼭지가 있으셨는데 감정적으로 흔들리시는 모습을 제가 두 번 봤습니다. 두 개 다 누군가의 부고와 관련된 일이었구요. 자칫 보면 방송사고라고 할 수 있을 만한 20초 정도의 침묵이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손석희: 노회찬 전 의원이요? 김애란: 그게 자칫 보면 그.. 사고처럼 보일 수 있는데 어떤 진실과 인간이 서 있는 모습을 우리가 다 봤다고 생각을 하구요. 그대 역시 망설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AI가 물론 진행했다면 보도 원칙에 따라 그 속도와 효율에 따라 전달했겠지만 어떤 동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실감? 혹은 함께 하고 있다는 실감을 어.. 굉장히 강렬하게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미덕일 수 있고 개성일 수 있다.’ 생각을 하게 됐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GVyMqldFQU4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선과 악의 상대성 그리고 가변성 같습니다. 루마타가 부다흐를 데려와 처음 나누는 대화에서 부다흐는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 있음을 말하죠. 또한 아라타와 루마타의 대비를 통해 누구의 방식이 아르카나르에 필요한 방법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처음에는 회색대원들의 패악질이 눈에 띄지만 그들 뒤에는 무능하고 환락에 젖은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뒤에는 이 모든 걸 조종하는 더 짙은 회색의 돈 레바가 있고요. 그러나 그 돈 레바마저 뒤덮을 검은색의 수도사와 성기사단을 보며 루마타도, 독자도 점점 거대해지고 막을 길 없어 보이는 악의 팽창을 피부로 느낍니다. 사악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뒤에 더 악한 세력이 도미노처럼 계속 이어집니다. 회색과 검은색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그라데이션처럼 섞여있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과 악의 가치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신분과 계급제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부다흐는 그것이 신이 만든 안정된 구조라며 찬양하죠. 뛰어난 부다흐도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형성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천 파섹보다도 더 먼 천 년의 시간의 벽이 놓여 있기 때문이죠. 이 벽은 루마타 같은 존재가 아무리 밖에서 대신 부수고 허물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통과하고, 천천히 하나씩 장애물을 넘어야만 합니다. 마치 어른이 사회로 나가 겪는 희로애락과 고충을 아무리 아이에게 설명해도 이해시키는 데 한계가 있는 것과 같죠. 아이가 때론 넘어져도 보고, 싸우고 상처입으며 자라야 하듯 슬프게도 아르카나르에는 돈 레바와 아라타 같은 인간이 모두 필요한 걸지도요. 폭력은 나쁘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자신의 권리와 고귀함을 위해 무력으로 악과 부조리에 맞대응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죠. 돈 루마타가 선이 지배적인 자신의 지구 같은 곳에서는 아라타가 한없이 약하고 부정한 인간이겠지만, 이 곳 아르카나르에서는 강하고 선한 존재일 것이라고 독백한 이유는 그래서일 겁니다. '선은 그 시대에 필요한 형태가 존재한다.' 랄까요... 절대적인 듯한 선과 악도 영원하지 않다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선악을 초월하여 오직 두 가지 마음가짐 중 하나만을 가져야 할 겁니다. 부족한 인간들이 뒤엉켜 겪는 고통과 번뇌를 오직 지켜보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거나, 또는 완전히 감정적으로 무정한 존재로서 냉정한 관찰자로 남는 것이죠. 설령 절대적인 신이 개입하여 역사를 바로잡더라도 인간은 자신들이 가진 한계로 인해 신의 개입을 오해하고 곡해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할 테니까요.
1) 이 작품은 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보통 신이라고 하면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긴 하지만 인간은 신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져왔고 원망을 하기도 했죠. 신은 왜 악한 사람들을 벌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게 놔두고 착한 사람들은 고생스럽게 살게 내버려두는 건가요? 같은 질문이 그 예입니다. 지구에서의 안톤과 아르카나르에서의 루마타 모두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 단지 상대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지구에서의 안톤과 그 친구들이 아르카나르의 사람들보다 좀 더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서 선한 본성으로 그들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악함에서 선함의 단계를 0(惡100, 善0)에서- 100(善100, 惡0)으로 표현하자면 선함이 100에 가까워질 수록 신에 가깝다고 설정해봅니다. 지구의 안톤도 선함100 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별도 신과 인간을 말해준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기독교에서 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왔다는 것도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고요. 2)키라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안톤은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그 아르카나르를 여러 번 다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어요. 뭐 아르카나르에서는 꽤 길고 험난한(무거운) 시간일지라도 지구에서 안톤과 안카, 파시카 같은 이들에게는 유희처럼 상대적으로 짧고 가벼운 시간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안톤의 손에 묻은 것이 피가 아니라 땅딸기 즙이라는 것도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유희로 전환시키는 표현처럼 보였어요. 결국 신들도 유희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그들을 인간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안톤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아. 이제 말을 거의 안 해.'(p.330) 이 부분도 안톤이 신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3) 안톤과 친구들이 신이라면 일방통행을 표지판을 넘어갔을 때 제약을 받는 일이 없었어야 할텐데. 파시카나 안카는 사실 '상식'을 언급하면서 일방통행 표지판을 넘어가면 안되는 것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죠. 사실 끊어진 다리와 해골을 봤다라고만 되어 있긴 하지만.. 안톤은 여러 번 그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갈 때마다 석연치 않은 결과를 얻었을 수 있고요. 다리는 끊어졌지만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 과거로 더 깊숙이 가려는 시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의 관점에서는 인간 세계를 아무리 잘 컨트롤한다고 한들 문제가 보이기 마련이겠죠. 해골을 통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세계는 시간을 되돌려 신이 아무리 개입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암시를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씩 진전이 이루어지더라도 신immortal의 관점에는 해골mortal일 뿐이라는 뜻 같기도 하고요. 안톤이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이 따랐을 테죠.
땅딸기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네요. 저는 마지막 장면의 딸기즙이 지워지지 않는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에필로그는 일부러 모든 장면과 대화를 다 애매하게 묘사하거나 넘기고 있죠. 루마타와 아르카나르에 대해 독자가 어떤 관점과 판단을 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형제 작가들이 의도한 것 같습니다.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천천히 읽어요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추리로 양념 친 러브스토리 연작집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이토록 다양한 책들의 향연, 오늘 당신이 고를 이야기는?
[김영사/책증정]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기[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김영사/책증정]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우리의 노동 일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한국 희곡 낭독이 이렇게 재밌다니!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