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루마타에 비해 훨씬 과감하고 또는 극단적인 아라타의 면을 잘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세상은 선과 악, 흑과 백만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하는데 아라타에게 이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나의 편 아니면 적 뿐이죠. 악을 철저히 부수지 않으면 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루마타는 그렇기에 아라타에게 번개와 헬기를 빌려주지 못하며, 설령 아라타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극단성과 철두철미한 가혹함이 나중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독백하죠.
루마타는 병적인 이원론이 야기한 기묘함을 감지했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옳기 때문에 그는 아라타 앞에서 작아졌다. 아라타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 루마타보다 나은 인물이다. ... 루마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잃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다시 말해, 선이 지배하는 우리의 세계에서 우리는 아라타보다 한없이 강하고 악이 지배하는 아라타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보다 한없이 약하다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원래 있던 곳으로, 하늘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가진 번개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1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너는 네가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 아직 모른다. 너는 네 병사들 밖에만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너는 어쩌면 기사단을 무찌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농민봉기의 흐름이 너를 아르카나르의 왕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p.310~31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우리 세계에 절반만 친구인 경우는 없습니다. 절반이 친구란 얘기는 언제나 절반은 적이라는 뜻이니.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1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들, 증오할 줄 모르고 잔인함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 희생양들. 의미 없는 희생양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2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1)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이제 더이상 신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지구인 보다 진보된 '초월자'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합니다. 지구와 상관없이요. 그런 면을 이 책에서 살짝 엿본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요. ^^ 신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엿본 거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2) @은화 님은 루마타가 기사단을 멸망시켜 버린다는 상상을 하셨다고 했지만, 전 허무주의 쪽으로 빠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키라를 잃은 깊은 상처만을 안고 돌아왔다는 게 제피셜입니다. 어차피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다 멸망해 버리는 게 인간이기에(아르카나르에 있는 족속도 인간과 비슷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복수할 가치조차 못 느끼는 거죠. 저도 아라타의 존재가 흥미로웠는데, 계속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거지?'란 대목에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방통행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겠지만 돌아갈 수 없음, 해골은 필멸을 의미하는 거 같고요. 이번 작품은 2/3까지 길잃은 어린양 같은 심정으로 읽다가 뒷부분에 갑자기 몰려드는 재미에 푹 빠져 읽었습니다! 역시 은화님 픽은 최고입니다 따따봉 👍
저 역시 어릴 때는 부모님을 따라서, 학생 때는 친구들 따라서 교회를 나갔어요. 종교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있어서 나갔다 보니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네요. 중간 중간 나갔다 안나갔다 반복이었지만 전체 기간으로는 꽤 오래 다니면서 이런저런 부활동도 했고요. 세상이나 우주, 자연이 형성되고 운용되는 이치를 보면 가끔은 @꽃의요정님 말대로 꼭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더라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나 원리가 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아라타가 안톤도 모르게 그의 방을 들락날락 하는 장면은 아마도 쉽게 유혹당하고,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의 가치관을 말하는 것 같더군요. 루마타도 종종 돈 레바를 비롯해 악인들을 처형하고 제거하고 싶은 유혹을 계속 느껴왔죠. 그리고 아라타는 반란이라는 가장 강력한 저항의 방식으로 악에 대항하고 있고요. 머리로는 관용과 자비심을 갖고 아르카나르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감정의 충동을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의 상징 같습니다. 언제든 소리소문 없이 들어온 아라타처럼, 신념도 흔들리기 쉬우니까요.
와우! 아라타를 그런 방면으로 생각하다니 놀랐습니다. 안톤의 내면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만남에 있어 안톤의 내면을 대변하기도 하는 인물들이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P4KSXq5V7E&t=3s <신이 되기는 어렵다> 영화 전체영상 링크입니다. 자막은 영어 외에는 나머지 언어는 자동번역만 있네요. 중간중간 잠깐 봤지만.. 시각적으로 '역겹다'는 말이 정말 절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흙탕물, 구덩이, 진흙, 오물, 비와 누린내, 습기, 검댕, 때와 땀내, 쇠와 피의 비린내가 느껴지네요. 그래도 소설을 읽을 때의 아르카나르를 저는 머릿속에서 나름 돌과 자갈이 깔린 도시로 상상했는데 영화에는 어디를 가든 진흙과 물이 한가득이네요. 소설보다도 더 음울한 배경입니다.
저 올려주신 링크 클릭하고...1900년대 영화인가 했어요. ㅎㅎ 정말 1500년대 오물 가득한 프랑스 거리 같은 느낌이네요;;;
책의 후반에 어슐러 르 귄 작가의 추천사에 써있는 것처럼 소련 시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책 표지가 많이 보이지는 않네요.
책을 읽을 때 제가 떠올린 돈 루마타의 모습은 여섯번째 표지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러시아판 표지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다양한 책 표지들을 찾아주셔서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112178169/Hard-to-Be-a-God 러시아의 아티스트 Anna Kronik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과 감상을 스케치로 그려냈습니다. 그저 단순히 SF나 판타지 작품으로서가 아닌 선과 악, 권력과 도덕,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작가들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음 모임은 형제 작가의 <저주받은 도시>를 읽을 예정입니다. 전체 812쪽, 책 본문만 해도 약 760여쪽이 넘는 벽돌책인데요. 저도 벽돌책은 정말 오랜만인지라 다음 회차는 2부에 나누어서 진행할까 해요. 개인 일정도 있고 병렬독서 중인 책들도 있어서 어느 정도 주변 정리를 하고 집중해서 읽을 생각이라 그믐 모임은 아마 2,3주 뒤에 열 것 같습니다.
두껍기도 하거니와 형제들이 쓴 가장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소개와 함께 카프카 작품 세계와도 관련이 있는 듯 하여 기대 반 두려움 반입니다. ㅎㅎ @은화 님 <신이 되기는 어렵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책 시리즈 커버가 매우 마음에 들어요. 게다가 벽돌책이네요! 은화 님과 읽었던 책은 인테리어적으로도 훌륭해 소장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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