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어요." 소년이 웅얼거렸다. "씻다니, 제가 지체 높은 나리도 아니잖습니까?" "내가 미생물이 뭔지 설명해 줬지?" 루마타가 물었다. 소년은 초록색 바지를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휘둘렀다. "간밤에 세 번 기도했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어리석은 녀석."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다들 사람처럼 사는데 우리만 신기한 짓을 해요. 이런 건 듣고 보도 못했습니다. 대야 두 개로 씻으시다니. 변소에는 웬 항아리를 갖다 놓으시고…… 매일 깨끗한 수건을 쓰고…… 그런데 정작 기도는 안 하고 맨몸으로 검을 들고 날뛰시다니요……"
신이 되기는 어렵다 p.8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1주차까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프롤로그부터 2장까지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말씀해 주세요. 2) 62~66p에 걸쳐 안톤(돈 루마타)과 바실리예비치(돈 콘도르)는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문명의 개입 여부에 대해 토론을 합니다. 바실리예비치는 정의감을 참지 못해 중립적 태도를 버리고 행성의 역사에 개입한 연구원들을 단거리 주자라고 말하고요. 여러분은 누구의 입장에 더 공감을 하시나요? 또는 더 옳다고 생각하셨나요?
1. 첫째는 1장에서 키운과 헤어지고 아쉬워하는 안톤의 모습이었습니다. 귀족 기사의 가면을 쓴 채 무수한 '가짜 인간'과 대화를 하는 데 이골이 난 안톤은 '진짜 인간'과의 대화를 갈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굉장히 외로운 처지죠.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돈 레바에 의해 한창 배척당하는 지식인 부류가 많다는 것이죠. 그게 그의 고독감을 더하는 느낌입니다. 둘째는 앞선 대화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것입니다만, 중세적인 아르카나르의 사람들을 보고 '저게 사람인가? 난 사실 인간이 아니라 지구인을 좋아하는 거였나?'하고 환멸을 느끼는 안톤의 독백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그가 심적으로 몰려있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2장에서 언급한 대로 현지 방식대로 다소 지저분하게 사는 건... 결국엔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사람에 대한 환멸과 갈증은 적응하기 정말 어렵거든요. 셋째는 2부에 이르기까지 벌써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두 번이나 인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두 인용 모두 '사느냐, 죽느냐'와 관련된 문구였어요. 현재 안톤이 역사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햄릿'과 비슷한 처지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시를 누가 쓴 거냐는 현대인의 물음에 "내가 썼다"고 대답한 것도, 안톤이 햄릿과 같은 상황임을 긍정한다고 볼 수 있고요. 2. '역사 연구'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안톤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안톤은 아르카나르의 인간들에게 경멸을 느끼고 있지만, 저는 그럼에도 안톤이 이 아르카나르인들 역시 같은 '인간'으로 인식은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안톤이 그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건 "인간이라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같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환멸도 느낄 리가 없거든요.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는 행성의 역사에 개입한 연구원들을 중립적이지 못한 단거리 주자라고 비꼬았지만, 저는 그 단거리 달리기가 일종의 인류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감과 연민은 대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 자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알렉산드르는 아르카나르 현지인들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무언가 더 열등하고 덜떨어진 실험체, 동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겠죠. 단지 오랜 연구로 무뎌진 걸 수도 있겠지만, 연구 윤리에 연구의 객관성과 정직성 만큼이나 도덕적 책임 역시 따르는 걸 생각하면 저는 이게 연구를 위해서도 완전히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매 페이지마다 강렬한 내용들이 많지만 그래서인지 소소하게 기억에 남는 건 루마타의 소년 하인과 씻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었어요.(p.80) 우리 입장에서야 청결함이 질병을 막고 건강을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라 목욕과 속옷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소년은 그걸 전부 이상한 행위로 보죠. 별 것 아닌 작은 아침 준비시간임에도 이 사소한 대목에서 안톤과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천 년'이나 시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직관적으로 와 닿게 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깨끗한 물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물로 몸을 씻는데 쓴다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낭비로 보였을 수도 있겠고요. 어차피 또 흙과 밭에서 일하다 보면 땀을 흘리고 더러워질텐데 겨우 등목과 세수를 위해 물을 버린다고 생각했겠죠.
2) 둘 사이에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저는 돈 콘도르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왠지 콘도르가 '후배'라는 말을 하는 데서 이 몇 마디 단어에 어떤 동정이나 공감이 느껴졌고요. 책의 절반 정도 읽었는데 아직까지 바실리예비치에 대한 설명이 더 없지만 그도 루마타와 똑같은 길을 걸어봤던 실무자였을 것 같습니다. 이런 규모와 성격의 일을 고려해 볼 때 바실리예비치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학자 타입이나 관리자 역할만 하는 사람을 앉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돈 콘도르도 산전수전을 겪어본 후에, 자신 같은 사람 한 두 명의 노력 만으로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라는 체념 또는 현실과 타협을 했을 겁니다. 행성의 역사에 개입할 경우 어디서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는 영역인지 정의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또한 안톤의 감정은 같은 인간에 대한 동정의 감정이 크다고 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지만 이 행성의 원주민들은 인간과 같거나 거의 닮은 존재인 것 같은데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독자도, 안톤도 더 몰입하게 되죠. 인간이 거쳐온 역사의 굴곡을 알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만큼은 그런 고생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원하는 거고요. 마치 부모가 자기 자식은 본인과 같은 직업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자신이 겪은 고생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모습과 비슷할 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그들을 위한 개입'이고 어디까지가 '스스로의 감정적 부채를 덜기 위한 개입'인지 나누기 어렵다는 점이죠. 콘도르는 그 지점을 단거리 주자라는 말로 지적했고요.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떠오르는 말이 있는데요. "철도가 깔리기 위해서는 철도가 깔릴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한다." 역사가 바뀌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지점까지 이르기 위한 사회의 에너지가 응축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기억합니다. 단거리 주자들의 개입은 어쩌면 그런 변화를 위한 압력과 에너지를 미리 김빠지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개입하려 할 때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본인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부모가 아이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심하는 것을 넘어 아이의 길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려 하는 것이 아이를 망치는 길이 되는 것을 봅니다.
전 읽다보니 중세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는 잔혹함에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반박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쓰여진 시기는 1960년 공산주의 초반이라고 하지만 이미 어느정도 느끼고 있던게 아닐지.. 짐작해봤습니다.
책에서 공산주의가 언급되어서 그런데 제정 러시아에서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저랬을까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꼭 어느 측정 시대나 국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좀 더 경험해 본 지식인 계층이 활동하던 변화의 시대면 어디나 통용될 듯 합니다.
우리는 현재 2026년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주관에 따르면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
지구에서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정신감정을 통과한, 모든 것에 준비된 학생이었다. 우리의 정신력은 강인했다. 우리는 폭행과 처형 현장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있다. 인내심도 대단하다. 구제할 길 없는 천치들이 날뛰어도 참아 줄 수 있다. 우리는 까다롭지 않다. 여기서 으레 그러듯, 개한테 먹이를 덜어 줬던 그릇을 닦는답시고 더러운 천 쪼가리로 대충 문대서 줘도 잘 쓸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한 연기자다. 꿈에서도 지구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우리는 연구실과 실험실의 고요 속에서, 혹은 먼지 날리는 발굴 현장에서 혹은 치열한 논쟁의 장에서 도출한 봉건주의 기초 이론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들고 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를 악물고 기억해라. 너는 가면을 쓴 신이다. 그들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은 죄가 없다. 그러므로 너는 인내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 지구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던, 우리 영혼 속 휴머니즘의 우물이 무서운 속도로 말라 가고 있다. 성미카여, 우리는 그곳, 지구에서는 진정 휴머니스트였다. 휴머니즘은 우리 본성의 뼈대였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경외와 사랑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갑자기 두려워지면서 사실 우리는 인류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를, 같은 지구인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7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새로운 국가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아주 간단하고 단 세 가지뿐입니다. 법의 무결함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법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모두에 의한, 모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신이 되기는 어렵다 p.9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는 신원 확인을 위해 볕이 드는 곳에 줄지어 뉘어 둔, 수병 상의를 입은 부푼 시체들을 힐끗 봤고 지저분한 공터를 우회하여 항구 변두리의 악취 나는 뒷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용했다. 불결한 건물들의 문 앞에는 헐벗은 여자들이 졸고 있었고 갈림길에는 한 병사가 깨진 면상을 처박고 주머니는 다 내놓고서 엎어져 있었으며 창백한 밤의 형상을 한 수상한 자들이 벽을 따라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 그러나 루마타는 모퉁이를 돌면서 우연히 뒤를 돌아봤다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열다섯 개의 머리들이, 남자와 여자, 덥수룩하고 또 벗어진 머리가 일순간 문과 창 그리고 문 틈새로 숨어 버리는 걸 목격했다. 순간 이 음울한 장소에 서린 수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뭔가 좋지 않은, 탐욕스러운 관심이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9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지금 든 생각이네만, 아르카나르왕의 노고 덕에 한 달 후면 제대로 된 애서가를 한 명도 못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런데 나는 종주국에 대학을 세워야 하거든. 흑사병에 걸렸을 때 살아나게 되면 그렇게 하겠노라 맹세했었단 말이네. 그러니 애서가들을 죽일 일이 있으면 돈 레바보다 나에게 먼저 알려 주게. 어쩌면 내가 대학 설립에 필요한 이들을 몇 명 빼돌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0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비쌀 겁니다." 와가가 달콤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귀한 것은 팔리지 않는 법이 없으니까요." "명예가 더 값지네." 루마타는 거만하게 말한 후 나갔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10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색깔 이야기가 나오니 전 빨강 머리에 대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3장에 가면 주인공 루마타가 좋아하는 여인 키라가 등장하는데, 요런 대목이 나옵니다. '혼사는 빨강 머리라는 이유로 늦어지고 있었다. 아르카나르 사람들이 빨강 머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으며 수줍음을 탔다.(11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이 작품 <신이 되기는 어렵다> 말고 전에 읽었던 <노변의 피크닉>에서도 주인공을 빨강 머리로 내세웠습니다. 스토커 레드릭 슈하트의 머리카락 색이 빨강인데, 이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음을 알 수 있었죠. 빨강 머리하면 <빨강머리 앤>이 생각나는데 전 읽어보진 않아서 그 작품에서는 빨강 머리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검색해보니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빨강 머리와 붉은 얼굴의 사람은 위험하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빨강 머리를 내세운데는 다 문화적 이유가 있었던 거네요. 이게 러시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빨강 머리를 ginger라고 낮잡아 부른다고 합니다. 빨강 머리 비율이 그리 높지는 않은데 러시아 볼가강 유역의 우드무르트 공화국은 그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첨부한 그림은 러시와 유럽의 빨강 머리 비율을 지도에 표기한 것인데, 러시아의 우드무르트 공화국과 영연방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빨강 머리 비율이 1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빨강머리 앤>의 시대적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반~20세기 초)인데 당시 대영제국의 확장기였고 독특한 엄숙주의 문화가 번성했어요. 여성의 머리카락 색상도 우아함과 정숙함을 상징하는 짙은 갈색이나 흑발에서 금발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열광했던 독특한 색이 오번Auburn 이라고 합니다. 붉은 빛이 도는 신비로운 갈색이고요. 당시 기피되었던 색은 흐릿한 밝은 갈색이나 붉은 생강색Ginger이었어요. 같은 붉은 색인데도 톤 변화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지요. <빨간머리 앤>의 앤이 처음 초록지붕의 집에 왔을 때 머리색은 붉은 갈색이었요.. 천적이었던(하지만 나중에 결혼함) 길버트가 ‘홍당무’라고 놀리기까지 했죠. 머리카락 색상에 컴플렉스가 있던 앤은 집에 들른 잡상인으로부터 염색약을 구입했고 혼자 염색을 했는데 그만 초록색이 되어버렸죠. 앤을 입양한 마릴라가 앤의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라줍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짧은 커트머리로 학교에 다니지요. 앤이 나중에 성장해서 퀸 학원에 입학할 무렵 머리카락 색이 오번Auburn으로 바뀝니다. <빨간머리 앤>에서는 앤의 머리 색 변화가 앤의 성장을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였던 셈이죠.
빅토리아 시대에 빨간 머리를 싫어했던 데에는 종교적 미신, 인종적 편견과 낙인 효과 등이 얽혀 있었기 때문인데요. 종교적으로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의 머리가 빨간색이었다는 미신이 퍼져 있었어요. 그래서 빨간 머리는 배신과 도덕적 결함의 상징이 되었어요. 중세 이후에 빨간 머리는 마녀의 징표로 의심받기도 했고요. 또.. 빅토리아 시대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공격적이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통제되지 않는 거친 본능’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빨간머리 앤은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 아이였죠. 또 당시는 병약한 천사같은 이미지를 선호했는데 빨간 머리는 오히려 앤의 주근깨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지도에서처럼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은 유전적으로 빨간 머리 비율이 높아요. 잉글랜드 중산층의 시선에서 아일랜드인을 가난하고 폭력적인 하층민으로 여겨졌어요. 또 19세기 캐나다와 미국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고요. 당시 주류 사회(앵글로색슨계WASP 중심)는 아일랜드계(켈트계)를 가난하고 거칠다며 심하게 차별했고요. 따라서 빨간머리에는 이런 사회적 차별의 시선이 있는 것이지요.
다른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스 부부도 셸리 부부의 과거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터였다. 메리는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 부모 밑에 태어났다.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페미니스트 작가였고, 여러 권의 책과 연애 스캔들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메리를 낳다가 죽었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1756~1836)은 유명 작가이자 철학자였다. 아버지는 많은 급진적 사상을 옹호했는데 그중에는 사유재산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었다. 유명 작가들이 자주 어린 메리를 보러오곤 했다. 메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였는데, 어머니처럼 선명한 붉은 머리칼과 뚫어질 듯 쳐다보는 두 눈에는 또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똑똑함과 상상력이 담겨 있었다.
인간 본성의 법칙 pp.417~418 ,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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