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새로운 국가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아주 간단하고 단 세 가지뿐입니다. 법의 무결함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법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모두에 의한, 모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9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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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 그는 신원 확인을 위해 볕이 드는 곳에 줄지어 뉘어 둔, 수병 상의를 입은 부푼 시체들을 힐끗 봤고 지저분한 공터를 우회하여 항구 변두리의 악취 나는 뒷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용했다. 불결한 건물들의 문 앞에는 헐벗은 여자들이 졸고 있었고 갈림길에는 한 병사가 깨진 면상을 처박고 주머니는 다 내놓고서 엎어져 있었으며 창백한 밤의 형상을 한 수상한 자들이 벽을 따라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
그러나 루마타는 모퉁이를 돌면서 우연히 뒤를 돌아봤다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열다섯 개의 머리들이, 남자와 여자, 덥수룩하고 또 벗어진 머리가 일순간 문과 창 그리고 문 틈새로 숨어 버리는 걸 목격했다. 순간 이 음울한 장소에 서린 수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뭔가 좋지 않은, 탐욕스러운 관심이었다.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9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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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 지금 든 생각이네만, 아르카나르왕의 노고 덕에 한 달 후면 제대로 된 애서가를 한 명도 못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런데 나는 종주국에 대학을 세워야 하거든. 흑사병에 걸렸을 때 살아나게 되면 그렇게 하겠노라 맹세했었단 말이네. 그러니 애서가들을 죽일 일이 있으면 돈 레바보다 나에게 먼저 알려 주게. 어쩌면 내가 대학 설립에 필요한 이들을 몇 명 빼돌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0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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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새
"비쌀 겁니다." 와가가 달콤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귀한 것은 팔리지 않는 법이 없으니까요."
"명예가 더 값지네." 루마타는 거만하게 말한 후 나갔 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10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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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색깔 이야기가 나오니 전 빨강 머리에 대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3장에 가면 주인공 루마타가 좋아하는 여인 키라가 등장하는데, 요런 대목이 나옵니다.
'혼사는 빨강 머리라는 이유로 늦어지고 있었다. 아르카나르 사람들이 빨강 머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으며 수줍음을 탔다.(11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이 작품 <신이 되기는 어렵다> 말고 전에 읽었던 <노변의 피크닉>에서도 주인공을 빨강 머리로 내세웠습니다. 스토커 레드릭 슈하트의 머리카락 색이 빨강인데, 이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음을 알 수 있었죠. 빨강 머리하면 <빨강머리 앤>이 생각나는데 전 읽어보진 않아서 그 작품에서는 빨강 머리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검색해보니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빨강 머리와 붉은 얼굴의 사람은 위험하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빨강 머리를 내세운데는 다 문화적 이유가 있었던 거네요. 이게 러시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빨강 머리를 ginger라고 낮잡아 부른다고 합니다. 빨강 머리 비율이 그리 높지는 않은데 러시아 볼가강 유역의 우드무르트 공화국은 그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첨부한 그림은 러시와 유럽의 빨강 머리 비율을 지도에 표기한 것인데, 러시아의 우드무르트 공화국과 영연방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빨강 머리 비율이 1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ifrain
<빨강머리 앤>의 시대적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반~20세기 초)인데 당시 대영제국의 확장기였고 독특한 엄숙주의 문화가 번성했어요. 여성의 머리카락 색상도 우아함과 정숙함을 상징하는 짙은 갈색이나 흑발에서 금발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열광했던 독특한 색이 오번Auburn 이라고 합니다. 붉은 빛이 도는 신비로운 갈색이고요. 당시 기피되었던 색은 흐릿한 밝은 갈색이나 붉은 생강색Ginger이었어요.
같은 붉은 색인데도 톤 변화 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지요. <빨간머리 앤>의 앤이 처음 초록지붕의 집에 왔을 때 머리색은 붉은 갈색이었요.. 천적이었던(하지만 나중에 결혼함) 길버트가 ‘홍당무’라고 놀리기까지 했죠. 머리카락 색상에 컴플렉스가 있던 앤은 집에 들른 잡상인으로부터 염색약을 구입했고 혼자 염색을 했는데 그만 초록색이 되어버렸죠. 앤을 입양한 마릴라가 앤의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라줍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짧은 커트머리로 학교에 다니지요. 앤이 나중에 성장해서 퀸 학원에 입학할 무렵 머리카락 색이 오번Auburn으로 바뀝니다. <빨간머리 앤>에서는 앤의 머리 색 변화가 앤의 성장을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였던 셈이죠.
ifrain
빅토리아 시대에 빨간 머리를 싫어했던 데에는 종교적 미신, 인종적 편견과 낙인 효과 등이 얽혀 있었기 때문인데요. 종교적으로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의 머리가 빨간색이었다는 미신이 퍼져 있었어요. 그래서 빨간 머리는 배신과 도덕적 결함의 상징이 되었어요. 중세 이후에 빨간 머리는 마녀의 징표로 의심받기도 했고요. 또.. 빅토리아 시대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공격적이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통제되지 않는 거친 본능’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빨간머리 앤은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 아이였죠. 또 당시는 병약한 천사같은 이미지를 선호했는데 빨간 머리는 오히려 앤의 주근깨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지도에서처럼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은 유전적으로 빨간 머리 비율이 높아요. 잉글랜드 중산층의 시선에서 아일랜드인을 가난하고 폭력적인 하층민으로 여겨졌어요. 또 19세기 캐나다와 미국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고요. 당시 주류 사회(앵글로색슨계WASP 중심)는 아일랜드계(켈트계)를 가난하고 거칠다며 심하게 차별했고요. 따라서 빨간머리에는 이런 사회적 차별의 시선이 있는 것이지요.
ifrain
“ 다른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스 부부도 셸리 부부의 과거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터였다. 메리는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 부모 밑에 태어났다.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페미니스트 작가였고, 여러 권의 책과 연애 스캔들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메리를 낳다가 죽었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1756~1836)은 유명 작가이자 철학자였다. 아버지는 많은 급진적 사상을 옹호했는데 그중에는 사유재산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었다. 유명 작가들이 자주 어린 메리를 보러오곤 했다. 메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였는데, 어머니처럼 선명한 붉은 머리칼과 뚫어질 듯 쳐다보는 두 눈에는 또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똑똑함과 상상력이 담겨 있었다. ”
『인간 본성의 법칙』 pp.417~418 ,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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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여기서 메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셸리(Mary Shelly, 1797~1851)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y, 1792~1822)였고요.
찾아보니 메리 셸리의 어머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잉글랜드계 아버지와 켈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그리고 붉은 머리 유전자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두운 갈색Brunette으로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은화
https://en.wikipedia.org/wiki/Red_hair
붉은 머리에 대해 찾아봤는데 색의 범주가 굉장히 넓었군요. 붉은 머리는 인간의 머리카락 색 중에서는 가장 희귀한 색에 속한다고 합니다. 서구권에서는 영상 매체에서 붉은 머리의 주연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아일랜드나 켈트계에 대한 차별인 '진저 혐오' 또는 '진저 가리기'의 논란이 있다죠.
밥심
소설과 비소설은 독서의 방식이 다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요.
비소설은 일정을 짜놓고 진도에 따라 쪼개가며 읽는 것이 좋은 측면이 있는데, 소설은 그런 방식으로 읽으면 리듬을 잃는다고 할까요, 그런 면이 있어서 재밌게 읽힐 때 그냥 쭉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도 그래서 이미 완독을 했고, 일정을 따라 가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분을 재독하는 방식으로 독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결말 부분을 읽고 나면 만약 자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ㅎㅎ
은화
저 같은 경우는 모임 책은 두 번을 읽는데요.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 자체에 몰입해서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생각해 볼 내 용이나 감상 정리를 위해 일정에 맞춰 다시 읽습니다. 이번 책도 흡입력이 굉장한데 집중해서 읽다 보니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을 덮어놓고 읽게 될 정도로 재미있네요.
은화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신은 무정하고 비인격적일 수밖에 없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결국 루마타의 시선도, 독자의 시선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은화
아메바로군, 루마타가 생각했다. 게걸스럽게 먹고 번식이나 하는 아메바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8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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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문제는 이런 괴물들의 심리가 완전히 캄캄한 숲과 같다는 데 있다. 성 미카여! 괴물들의 심리는 비휴머노이드 문명의 심리보다 훨씬 파악하기 어렵다. 그들이 한 모든 행동은 설명할 수 있으나, 그들이 할 행동을 예상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 그는 고양이을 아주 좋아하는 듯 하다. 그의 은신처에는 고양이들이 무리로 있고 돌보는 사람까지 붙여 놓았으며 돈까지 지불한다고 한다. 그렇게 인색한 와가가. 한 번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0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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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늘 그렇지만 인간의 양면성은 참 알기 어렵네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또 반대로 사람을 혐오하기도 하니까요. 무자비하지만 동물을 좋아했거나, 이웃이나 가까운 이들에게는 친절했던 독재자들의 일화도 떠오르고요.
은화
연구소 정보원으로서의 그는 무시했겠지만, 에스토르의 귀족 돈 루마타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순간 자제력을 잃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0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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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어쨌든 나는 인간이고, 따라서 내게도 동물적 기질이 있다…… 신경이 곤두선 것뿐이다. 최근 며칠 동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긴장이 쌓여서……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그림자가 드리우는 느낌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의 그림자인지, 어디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비가역적으로 점점 더 드리우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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