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액체는 구체 위에서 제 형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체의 형상을 한 세계에는 메탄의 바다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양은 분명 존재하지 않습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수천 명의 항해자와 여행자들이 환각에 빠진 것입니까?"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로프베이엘을 쏘아보았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대양을 부정하는 자여?" "답할 말이 없습니다." 로프베이엘은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02,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게 세계일세, 그루크! 먼지투성이 책 따위는 아주 잠시만 잊어보게나. 토굴에 틀어박힌 학자들이, 대양을 건너기는커녕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산맥 너머는 보지도 못한 이들이 아주 오래전에 쓴 것 아닌가. 이 형상, 오로지 이 형상만이, 지금까지 기록된 모든 사실과 일치하는 것이라네. 접시 형태를 어떤 식으로 꾸며보아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어느 쪽 형상을 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야겠나?"
생명창조자의 율법 p.196,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내게 남은 시간 전부를 사용해 설명한다 해도 그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루크. 단 하나의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 교육이 그대의 신념을 만들었지만, 내 신념은 가능한 모든 질문을 던진 다음에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니까. 비판적 검토를 견뎌내지 못하고, 반대의 말은 단 한마디도 던질 수 없는 신념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나?"
생명창조자의 율법 p.199,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러나 그들 옆에 서서 얼어붙은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티르그는 용의 하인들의 존재 자체도 거의 잊어버린 상태였다. 하늘 너머에서 이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처음으로 목격한 상태였으니까. 세계는 구체였다. 그리고 그 너머, 그로서는 측량할 방도를 모를 정도로 드넓은 공간에, 어떻게 세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무수한 세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55,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아르카나르의 왕궁은 제국에서 가장 깨어 있는 곳에 속했다. 궁에는 학자들이 드나들었다. 물론 대부분이 허풍선이였지만, 개중엔 어쨌든 행성이 구체임을 밝혀낸 바기르 키센스키 같은 학자도 있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6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바기르 키센스키는 국가적 범죄에 버금가는 광기를 품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루마타의 엄청난 노력으로 풀려나 종주국으로 보내졌다. 그의 천문관측소는 불탔고 살아남은 제자들은 도망쳐 숨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17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아이들을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는 루마타에게 열 살짜리 왕자는 이 야만스러운 나라에 사는 모든 계층 인간들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으로 보였다. 어떤 계층이든 상관없이, 바로 이런 푸른 눈을 가진 평범한 소년들 속에서 야만과 무지와 굴욕이 자라난다. 하지만 아이일 때에는 그 더러운 것의 흔적이나 기질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루마타는 때때로 생각했다. 이 행성에서 열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0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운명의 장난으로 이들 중 누군가가 주인으로 태어나거나 주인이 되더라도 이들은 주어진 자유로 뭘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노예가 되려고 애쓸 것이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들 모두가 똑같았더라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인간이었다. 이성의 불꽃을 품고 있는 인간이었다. 아주 멀리 있지만, 도래하고야 말 미래의 불씨가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이들 민중 속에서 발하고 타올랐다.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타올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군홧발에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들을 원하지 않고 세상 모든 이가 이들 반대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경멸 섞인 반쪽짜리 동정심만 기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회색성은 잔인함 면에서는 인류를 중세로 돌려놓는 마지막 전투에 나서고 패배할 것이며 그 실재적인 힘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5장의 왕의 만찬에서 나오던 럼케이크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성탄절을 기념하기 위해 무화과와 견과류, 꿀, 증류주를 넣은 무화과 푸딩(Figgy pudding)을 먹곤 했답니다. 무화과 열매를 와인에 넣고 끓이고 이걸 밀가루 반죽에 섞어 구워내는 방식인데요. 이것이 시간이 지나 럼을 만드는 캐리비안 제도의 나라들에서 럼케이크로 파생되었습니다. 럼케이크는 말린 과육을 체리향 브랜디나 럼주에 넣어 몇 달 동안 절입니다. 반죽은 설탕과 물을 넣고 카라멜 색깔이 날 때까지 끓인 뒤 과일절임을 넣어 모양을 잡고 구우면 럼케이크가 완성됩니다. 럼주를 직접 넣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럼케이크는 많이 먹으면 취할 수 있다고 하네요. 굉장히 수분이 많은 케이크인가 봅니다. 돈 타메오는 자신의 일화를 굉장히 유머스럽게 묘사했지만 아마도 돈 레바가 만찬장에서 벌인 이 '장난'은 자신의 잠재적인 정적이나 경쟁자를 찾아내려는 일종의 속임수 같네요.
무화과를 좋아합니다. 말린 것보다는 생과일을요. 여름에 전라도 영암에서 나오는 무화과를 사먹곤하죠. 곧 시즌이 다가오네요. ㅎㅎ 크리스마스 케이크로는 독일의 슈톨렌이나 이탈리아의 파네토네를 재미삼아 사서 먹곤 합니다. 럼케이크는 우리에겐 생소한 캐러비언 제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라 그런지 먹어보기는 커녕 처음 들어보네요. 맛있겠어요!
나의 형제들이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며, 우리는 당신들과 피로 이어져 있다. 불현듯 그는 자신이 손바닥 위 이성의 반딧불이들을 수호하는 신이 아니라 형제를 돕는 형제, 아버지를 구하는 아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말이 없구나?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렇지?’ ‘모르겠어.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지. 한 사람 그리고 그다음 사람을. 미래를 거부하면 모두 죽여야 할지도.’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네가 혁명의 전략을 구축할 필요는 없어. 너는 그냥 죽여 버리고 싶은 것뿐이잖아.’ ‘그래. 그러고 싶어.’ ‘그런데 죽일 줄은 알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1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오늘 7장을 읽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지네요. 다음 장을 읽기가 두렵기는 처음입니다. 원래는 8장까지 읽으려고 했으나 좀 쉬어가야 겠네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군요.
루마타는 때때로 생각했다. 이 행성에서 열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20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20만 명이다! 이들과 지구에서 온 방문자들 사이에는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 이들은 비관적이었고 탐욕스러웠으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히 환상적으로 이기적이었다. 정신적으로는 이들 대부분이 노예였다. 믿음의 노예, 자기 같은 사람들의 노예, 하잘것없는 욕정의 노예, 탐욕의 노예. 운명의 장난으로 이들 중 누군가가 주인으로 태어나거나 주인이 되더라도 이들은 주어진 자유로 뭘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노예가 되려고 애쓸 것이다. 부의 노예, 부자연스러운 낭비의 노예, 방탕한 친구들의 노예, 자기 노예의 노예. 이들 중 대다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이들은 너무나 비관적이었으며 너무나 무지했다. 이들의 노예성은 비관과 무지에 기인했다. 그리고 비관과 무지는 다시, 또다시 노예의 기질을 낳았다. 이들 모두가 똑같았더라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인간이었다. 이성의 불꽃을 품고 있는 인간이었다. 아주 멀리 있지만, 도래하고야 말 미래의 불씨가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이들 민중 속에서 발하고 타올랐다.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타올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군홧발에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들을 원하지 않고 세상 모든 이가 이들 반대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경멸 섞인 반쪽짜리 동정심만 기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210-21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말이 없구나?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렇지?’ ‘모르겠어.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지. 한 사람 그리고 그다음 사람을. 미래를 거부하면 모두 죽여야 할지도.’ ‘그런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어. 독살을 하고 사제 폭탄을 던졌지. 하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어.’ ‘아니, 바뀌었어. 혁명의 전략은 그렇게 구축되는 거야.’ ‘네가 혁명의 전략을 구축할 필요는 없어. 너는 그냥 죽여 버리고 싶은 것뿐이잖아.’ ‘그래. 그러고 싶어.’ […] 루마타는 손바닥으로 축축한 이마를 감쌌다.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국엔 화약을 만들어 내는 거겠지……
신이 되기는 어렵다 214-215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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