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공포에 패배하는 일생을 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자기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가혹하게 가르칠 것이다. “나는 이제 못하겠다.” 루마타가 되뇌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정신이 나가서 똑같은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더 있다간 결국 여기에 온 목적도 잊을 것이다…… 쉬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51,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다른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거야…… 게다가 전능한 인간들이 우리를 돕고 있어.”
신이 되기는 어렵다 p.25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 님과 @ifrain 님이 소개해주신 청결과 쓰레기 관련 책 잘 저장해두었습니다. 읽어보면 재미있을듯요. 엄청난 성적 매력을 풍기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악취 때문에 주인공이 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죠), 재밌게 읽고 봤던 <향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향수에 대해 대략 검색해봤더니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도망가다가 발각된 이유가 그녀가 늘 쓰던 향수 때문이었다는 썰이 있다는 것도 알았네요. 향수에 대한 간단한 역사를 링크해둡니다. https://youtu.be/qZqkHvfsVRA?si=WSrmcY5bctJcJV9H 그리고 벌써 공기가 습해지기 시작하니까 빨래를 잘 못 말렸을 때 나는 쉰내라고 하죠, 그 냄새에 대한 생각이 나네요. 장마철 지나면서 길거리 다니다보면 그 쉰내를 풍기며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요. 특히 지하철이나 카페같이 밀폐된 구역에 들어가면 더 나죠. 빨래를 세탁 후 건조기에 돌리면 이 문제가 없어지는데 건조기는 비싸서 집에 없는 경우가 많죠(옷감이 상한다거나 환경을 생각해서 사용을 거부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럴 때는 가격이 저렴한 제습기를 사서 빨래건조대 옆에 작동해놓으면 냄새가 나지 않게 됩니다(제습 시 발생하는 열 때문에 더위가 더 심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일인가구가 많아서 그런지 본인의 옷에서 쉰내가 난다는 사실을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더 안타깝죠. 이런 건은 친구라도 함부로 이야기해주기 어렵잖아요, 만만한 가족이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을 듯 한데 같이 안 사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서 그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향수』는 냄새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정작 자신은 아무런 냄새도 가지지 못한, 한 악마적 천재의 기이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18세기 프랑스, 악취나는 생선 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천재적인 후각의 소유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 난생 처음 파리를 방문한 날, 그르누이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린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를 만나 향수 제조 방법을 배워나간다. 파리를 떠나 향수의 낙원이라 불리는 프랑스 남동부의 그라스에서 본격적으로 향수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그르누이. 한편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모두 잘린 채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의문의 살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이 맡기 싫어하는 냄새는 두 가지 유형이죠. 사람의 체취나 음식물쓰레기 등 생물이나 그 부산물에서 나는 악취가 있고 인공적인 냄새(매연, 도로공사 아스팔트, 강한 향수 등)가 있죠. 얼마 전 가족하고 외식을 하는데 개방된 식당이었고 좀 떨어진 바깥에서 도로공사 때문이었는지 아스팔트 냄새가 넘어오더라고요. 저는 별 생각 없이 잘 먹었는데 어머니는 그 냄새에 속이 안 좋으시다고 식사를 별로 못하셨고요. 어머니는 저랑 반대로 인공적인 물질들이 내는 냄새를 굉장히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새 옷 냄새, 페인트 등등) 생각해 보면 전 출퇴근을 하면서 공사장이나 차도를 지나다 매연이나 인공적인 냄새를 맡는 게 일상이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중학생 때 본드 냄새와 석유 냄새 같은 것이 좋다고 했던 아이가 있었어요. 성적도 좋았고 생활 수준도 높은 편이었던 친구라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마약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본드 흡입이라면 불량 청소년의 이미지를 더해줄 수 있었죠. 냄새에 대한 선호도도 매우 주관적일 뿐더러 한 사람의 뇌에 새겨진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본드 얘기하시니 저도 학생 때가 생각나네요. 제가 학생일 때는 이미 본드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에 퍼져있어서 그런지 불량 학생들도 본드 냄새는 안 맡더라고요. 다만 본드보다 더 교묘한 형태로 돌아다니던 풍선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모르지만 본드와 거의 비슷한 형태의 액체를 빨대 끝에 바르고 반대편에서 후~ 불면 마치 비누방울처럼 둥그런 막이 만들어지는데 다만 터지지 않는 게 차이였죠. 근데 화학약품 덩어리라 이것도 특유의 아주 요상하면서도 코에 맴도는 냄새가 있었죠. 학생들이 본드에 중독되는 것을 보고 돈 냄새를 맡은 어른들이 만든 장난감이었겠죠. 당시에 저는 용돈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지는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만든 풍선막을 한 두개 부탁해서 얻으면 조물락조물락 가지고 놀곤 했어요. 사실상 장난감으로 둔갑한 본드의 연장선이나, 그 속임수에 다들 넘어간 건지 가지고 노는 저희도 별 생각이 없었고 학교에서도 딱히 단속이 없었고요. 만일 누군가는 빨대를 반대로 흡입했다면... 이 장난감에는 환각, 정서불안, 기억상실을 유발하는 시콜로핵산/에틸알콜 등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1993년부터 경찰에서 본드 풍선 장난감도 단속을 했다고 하네요. 최근에 다시 이 장난감이 부활했는데 현재는 유해물질이 들어있지 않고 과일향이 난다는 홍보와 함께 판매되고 있답니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2363348
라오다오가 태어난 해는 접는 도시가 완공된 지 2년째였다. 그는 다른 지역에 가본 적이 없었고,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3년 동안 대학 입시에 도전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쓰레기 처리공이 되었다. 매일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일한다. 쓰레기 처리장의 동료들과 똑같다. 신속하고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쓰레기를 처리한다. 제1공간과 제2공간에서 온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아닌 것으로 분류해 재처리 용광로에 집어넣는다. 그는 매일 쓰레기 운반로에서 시냇물처럼 흘러나오는 잔여물을 앞에 두고, 플라스틱 그릇에 들러붙은 먹다 남은 채소 이파리를 떼어내고, 깨진 술병을 끄집어내고, 피 묻은 생리대 뒤쪽에 오염되지 않은 얇은 솜의 막을 분리한다. 그런 다음 재활용 가능한 것을 녹색 줄무늬가 있는 원통에 던져 넣는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일한다. 속도를 생명과 바꾸고, 수량을 매미 날개처럼 얇은 상여금 봉투와 바꾼다.
고독 깊은 곳 pp.24~25,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고독 깊은 곳묘보설림 5권. 하오징팡은 2016년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 중편소설 부문을 수상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고독 깊은 곳>은 하오징팡의 작품 색채를 잘 보여주는 소설집이자 그녀가 SF 작가로서 점차 무르익어가는 지점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책이다.
제3공간에는 2000만 명의 쓰레기 처리공이 있다. 그들은 밤의 주인이다. 나머지 3000만 명은 옷이나 음식, 연료, 보험 등을 팔아 생계를 잇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쓰레기 처리공이야말로 제3공간을 번영하게 하는 기둥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를 느릿느릿 걸어갈 때마다 라이다오는 머리 위에 음식물 찌꺼기로 만들어진 무지개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은 쓰레기 처리공으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클럽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디제이나 댄서로 일할 기회를 잡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옷가게 종업원도 괜찮은 선택지다. 손으로 옷감만 만지면 된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썩은 쓰레기를 뒤지며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외모에 더 신경을 쓴다. 라오다오는 자신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지만, 제2공간에 갔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고독 깊은 곳 p.25,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하루 전 새벽에 그 일이 일어났다. 그는 쪽지 한 장을 쥐고 쓰레기 운반로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쪽지에 적힌 주소대로 쪽지를 쓴 사람을 찾았다. 제2공간과 제3공간의 거리는 멀지 않다. 그 두 공간은 대지의 같은 면에 이지만, 같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전환이 일어날 때, 한 공간의 빌딩이 접혀서 땅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공간의 빌딩이 땅속에 차차 솟아올라 앞서 접혀 들어간 공간의 건물 꼭대기를 지면 삼아 밟고 선다. 딱 하나 차이점이라면 건물의 밀도다. 그는 쓰레기 운반로에 숨어 하룻밤을 꼬박 기다렸다. 그는 처음으로 제2공간에 갔지만 긴장하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몸에서 나는 썩은 내였다.
고독 깊은 곳 pp.25~26,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2015년 류츠신이 <삼체三體>로 휴고상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그 이듬해인 2016년 하오징팡이 <접는 도시北京折叠>로 최우수 중편소설상을 받았어요. <고독 깊은 곳>은 하오징팡이 발표한 중단편소설을 묶어낸 소설집입니다. <접는 도시>는 도시를 접어서 공간을 절약하는 설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제1공간, 제2공간, 제3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공간의 구분은 사회의 계급을 은유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각 공간마다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달라집니다. 제3공간에서 쓰레기 처리공으로 살아가는 라오다오가 제1공간과 제2공간을 드나들면서 요청받은 일을 처리해준 덕에 제3공간에서 벌었던 수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돈을 받게 됩니다. 라오다오가 제2공간에 갔을 때 ‘유일한 걱정은 몸에서 나는 썩은 내였다’ 라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제2공간에 가자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이었어요. ‘라오다오는 이렇게 큰 욕실에서 처음 목욕을 해보았다. 최대한 오래 씻어 몸에 배인 냄새를 많이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욕조가 더러워질까 걱정되어 몸을 박박 씻지도 못했다.’ 라는 대목도 있어요.
<접는 도시>는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독 깊은 곳>은 아니고 다른 소설집에서 본 것 같지만요.
저도 당시에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목만 보고는 이게 진짜 SF라고? 했는데... 삼체 보고도, 역시 중국은 무협의 나라답게 스케일이 남다르다며 감탄하며 읽었고요.
중간에 제2공간과 제3공간이 바뀌는 대목에서 영화 <인셉션>의 장면 일부도 생각나고 또 한편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신동경시'라는 도시 풍경도 떠오르네요. 에반게리온에서는 외부의 위협 때문에 도시가 공격받을 것 같으면 건물들이 지하로 들어가거나 또는 외벽을 강철판과 콘크리트로 뒤덮어 요새가 되는 묘사가 나오거든요. 가상의 SF설정이지만 <고독 깊은 곳>은 지역에 따라 생활수준이 전혀 다른 중국의 현재를 문학으로 녹여낸 것 같군요. 중국 도시와 농촌은 완전히 다른 세계임에도 '중국'이라는 국경에 묶여있죠. 공간의 구분이 곧 생활환경의 구분이 되고, 그것이 자연스레 인간의 사고와 계층까지도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만나고, 그 후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적 삶으로 돌아간다. 소도시와 소기업에서는 아마도 화이트칼라와 임금노동자 사이에 지위의 경계선이 매우 선명하게 그어져 있을 것이다. 대도시 권역에서는 화이트칼라가 임금노동자와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도시의 물리적 배치, 직업에 따른 이동 경로 분리에 따라 사람들은 곧잘 서로 다른 지인 집단 속으로 제한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6~37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현대사회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계급을 분석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저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어권 사회학자로서 평생 독립적ㆍ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았다.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학과 사회운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과제를 탐구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얼마 전에 사회과학 분야로 <화이트칼라>를 읽었는데요. 화이트칼라가 어떻게 생겨났고, 각 주요 화이트칼라 직업의 특성이 무엇이며, 화이트칼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감과 불안정이 무엇인지 사회/역사/경제/정치를 오가며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아주 짧게 지나가지만 저자는 도시라는 환경 자체, 즉 대도시의 기능에 따른 구획화와 공간의 분리가 근본적으로 현대인을 고립시킨다고 말합니다. 어디에는 공기관이 있고, 어디에는 상업지구가 있으며, 주거단지는 저기 있고 하는 식이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비슷한 직무와 직군의 사람들끼리만 그것도 '업무적으로만' 표면적으로 교류하고 다시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사업 이상의 인격적인 교류(사랑, 우정, 친절 등)를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이 어느 정도 요구되는데 근본적으로 대도시는 기능에 의해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그러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거죠. 우리의 현실세계는 그래도 사회적 계층이 도시 내에 뒤섞여 있지만, <접는 도시>처럼 아예 계층에 따라 도시 자체가 나뉘어 버린다면 사실상 국가나 지역의 의미도 없어질테고 서로가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할 접점마저 사라질 것 같네요.
식물의 논리는 접힘이 아니라 펼침이다 돤즈펑 저는 다른 사례 하나를 덧붙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도 디자이너인데, 가령 포스터나 모델을 만들 때 아무리 디테일을 많이 넣어도 그것이 완성되면 그 순간 이미 죽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까 샹 선생님이 정원의 정리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정리란 단순히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정원을 이어가려면 더 많은 요소를 안에 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류 선생님이 말한 인공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물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큰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바닥을 깨끗이 유지하려면 매일 닦아야 하지만, 이런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길을 걸어도 어떻게 바닥이 늘 깨끗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식물 자체의 성장은 ‘유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눈에 보이게 된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며, 특히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샹바오 이어서 저도 덧붙이겠습니다. 사실 사람의 요소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즈펑 선생님이 든 인공물의 예처럼 누군가는 바닥을 닦지만 우리는 이걸 보지 못합니다. 사람의 노동은 매우 중요하며, 전체 수도, 전기, 하수도 시스템의 작동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이런 중요한 인공물의 기능을 오늘날 흔히 쓰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접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히면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존재와 노동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설계가 잘된 건물일수록 접힘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지저분한 것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게 자연스러우며 깨끗한 듯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화원은 이 접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펼침’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등나무와 대나무처럼 계속 자라고 펼쳐집니다. 펼쳐지는 과정에서 꽃의 힘이 매일 바닥을 청소하는 노동만큼 강하진 않을 수 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접힘은 사람의 노동 흔적을 없애고 결과만 보이게 하며, 노동 과정은 숨겨집니다. 반면 화원을 만들면 자신이 펼쳐가는 과정을 볼 수 있죠. 꽃은 내일 바로 피지 않을 수도 있고, 반드시 피는 것도 아니며,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과정 자체는 존재합니다. 사람의 주의력은 접힌 상태와 펼쳐진 상태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 - 그 시작에 대한 탐구 pp.234~235, 샹뱌오 지음, 박우 옮김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 - 그 시작에 대한 탐구샹뱌오가 다섯 명의 전문가와 나눈 대화를 통해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드는 방법을 묻는다. 관계 끊기와 자기 소외의 시대에, 생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사고를 길어 올리며 삶과 세계의 접촉면을 다시 넓혀가는 사회학적 시도를 전한다.
중국인 인류학자 샹바오의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그 시작에 대한 탐구>라는 책에 하오징팡의 <접는 도시>에서 보여주는 문제의식의 일면을 반영하는 대목이 있네요.
'접힘'과 '펼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인공물과 자연의 차이를 설명하는 아이디어가 좋네요. 우주적 원리에 맞서며 엔트로피를 낮추려는 인공물의 정리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엔트로피가 커지면서도 보기 좋은 자연 정원의 대비가 공감됩니다.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그 시작에 대한 탐구> 책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책들이 있습니다.
"바닥을 깨끗이 유지하려면 매일 닦아야 하지만, 이런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길을 걸어도 어떻게 바닥이 늘 깨끗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죠." 참 그렇네요.. 전 학생 때 살던 곳 바로 앞이 유흥가였는데요. 학교를 가든, 놀러 가려고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으로 가든, 중심가로 가든 꼭 유흥가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밤에도 시끄러운 건 둘째 치고 개인적으로 가장 싫었던 게 냄새랑 오물이었어요. 아침에 등교할 때 지나가면 꼭 도보나 차도 어딘가에 반드시 토사물이 있었죠. 그런데 끝나고 돌아와 있으면, 아니면 다음날이면 토사물은 싹 사라져 있었습니다. 학생 때 어렴풋이 그걸 누가 어떻게 치울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환경미화원 외에도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출근했을 때 치우는 분들도 있었겠죠. 현재 출퇴근하는 곳은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지하철에서 내릴 때 하수도 냄새가 골목 여기저기에서 납니다. 여름이 되면 더 심해지고요. 평소에는 하수도나 배관을 거의 신경 쓸 일이 없죠. 다 지하에 묻혀 있고 아스팔트에 가려져서 안보이니까요. 존재에 대한 의식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악취가 올라오는 딱 그 순간이 하수관의 존재를 알게 되는 때죠. 도시는 우리가 돌아다니고 겉으로 보는 것 이상의 전체적인 체계인데, 우리는 아주 극히 일부의 장면을 그것도 일부의 시간대에서만 바라보고 있죠.
저는 <화이트 칼라>를 제가 특히 관심있는 부분만 골라서 읽었는데도 쉽게 읽혀지지 않더라고요. 저에겐 조금 어려운 책이었는데 @은화 님께서는 끝까지 잘 읽으셨네요. <접는 도시>에서 경제력이 취약한 층이 일자리마저 잃지 않게 하고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받지 않게 하려고 밤에만 활동하게 하고 쓰레기 처리같은 산업을 맡겼다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더 확산되면 일자리 감소라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올것이라 더 민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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