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겠소. 인간들이 무엇보다도 노동과 지식을 사랑하도록 하는 거요. 노동과 지식이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도록!" '그래, 그건 우리도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면 감응,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재도덕화. 석 대의 적도 위성에서 시도하는 정신 교란……'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루마타가 말했다. "하지만 인류에게서 역사를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요? 한 인류를 다른 인류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한 인류를 땅에서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류를 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신이 되기는 어렵다 299-300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나는 돈 레바를 죽일 거야.' '어째서?' '그는 내 형제들을 죽이고 있어.' '그는 자기가 뭘 하는지 몰라.' '그는 미래를 죽이고 있어.' '그는 잘못이 없어. 시대의 산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가 스스로 죄인이라는 걸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그가 모른다는 사실이 뭐가 중요해? 내가, 이 내가 그가 죄인임을 아는데.'
신이 되기는 어렵다 21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책을 들고 외출을 하러 나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계단을 오르다가 어느 새 다 읽었네요. 와. 어떤 의미에선 정말... 동구권 문학스러운 결말이었습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싶어서 다시 한 번 재독을 해볼까봐요.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떠한 비애마저 느껴졌습니다. 흥미로운 책이었어요. 본 독서모임에 참여하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맙소사. 저희를 땅에서 제거하고 더 완전한 인류를 창조하시지요…… 아니면 저희를 내버려 두고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게 더 좋겠나이다." "나는 동정심 때문에" 루마타가 천천히 말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때 그는 키라의 눈빛을 봤다. 키라는 공포와 희망이 담긴 눈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네요. 어제 출근하며 지하철에서 읽는데 뜬금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책을 덮었습니다. 이제 10장과 에필로그만을 남기고 있는데 한 편으로는 읽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읽어야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벌써 일정의 마지막 주가 되었네요. 읽기 버거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책입니다. 일정상 오늘부터는 결말까지 포함되는 관계로 중간중간 모임에서 언급될 수 있기에 들어오실 때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코멘트를 안하고, 아니 못하고 있는게 200쪽 넘게 읽었지만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 때문인데요. 루마타가 결벽증(이게 정상이지만)에 높은 신분, 이상한 왕과 돈들...에 관한 내용밖에 읽히지 않아서요. 첫부분은 두번이나 읽었지만...잘 모르겠어요. 제 문해력이 이 정도일줄이야 ㅎㅎ 어쨌든 끝까지 다 읽어 보고, 다시 한번 훑어 보려고요.
저도 읽으면서 무슨 내용인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아?? 정말 헷갈렸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전체가 그려지는 소설 인 것 같습니다.
오! 희망을 주셔서 감사해요~꼭 끝까지 읽을게요 ^^
그는 전문 반란가였고, 신의 자비로 복수하는 자였다. 중세에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때로는 역사적 진화가 저런 강꼬치고기들을 탄생시켜 사회라는 심연에 풀어놓는다. 바닥의 플랑크톤을 먹어 치우는 살진 붕어들이 졸지 않도록…… 아라타는 루마타가 이곳에서 증오도, 가여움도 느끼지 않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피와 악취 속에서 5년을 산 지구인 루마타는 열에 들뜬 꿈속에서 스스로를 자주 아라타 같은 인물로 보았다. 이 세계의 악이란 악은 모두 겪은, 그 대가로 살인자들을 죽일 수 있고 형리를 고문할 수 있고 배신자들을 배신할 수 있는 고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인물로 말이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여느 때와 같습니다. 나는 성기사단을 압니다. 1년이 채 못 되어 아르카나르 사람들은 도끼를 들고 문틈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싸울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대로 죽이지 않고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이도록 이끌어야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아니요. 그 얘기를 할 겁니다. 나는 당신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기도한 적 없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내게 왔단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그저 심심풀이였던 겁니까?"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당신은 번개를 다룰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번개를 줄 수 없소." "그 대답도 벌써 스무 번째입니다." 아라타가 말했다. "이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요." "시도는 해 보시지요." "번개로 뭘 할 생각이오?" "금을 휘감은 개자식들을 지져 버릴 겁니다. 진드기 잡듯이.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저주받을 종족을 12대손까지 멸할 겁니다. 이 땅에서 그들의 성을 밀어 버릴 겁니다. 그들의 군대와 그들을 지키고 지지하는 이들을 다 태워 버릴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번개는 좋은 일에만 쓰일 테니까요. 이 땅에 자유인이 된 노예만 남고 평화가 찾아오거든 당신의 번개를 돌려드리고 다시는 그걸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7~30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루마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잃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다시 말해, 선이 지배하는 우리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아라타보다 한없이 강하고 악이 지배하는 아라타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보다 한없이 약하다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돈 레바에 대하여 : 옮긴이의 말까지 읽으면 새삼스럽지도 않겠지만(어쩌면 읽으면서 직감했을 수도 있겠지요), 돈 레바의 모티브는 라브렌티 베리야라고 합니다. 스탈린 밑에서 NKVD를 지휘했던, 몹시 악명 높은 인물이죠. 초안에는 아예 애너그램인 '돈 레비야'가 이름이었다니 알만합니다. 결말까지 다 보고 나니 여러모로 라브렌티 베리야가 떠오르는 인물이긴 했습니다. 그 자신이 카리스마 등 정치적 자산을 갖춘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1인자가 사망한 후 급격히 몰락했던 점에서요. 그 밖에 유사하다고 생각한 인물이 있다면 십상시의 난 당시 하진과 원소를 필두로 한 청류파입니다. 그들은 환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외부 군벌을 끌어들였는데, 십상시의 숙청까지는 성공했지만 외부 세력이었던 애먼 동탁이 중앙의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 밖에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 초기, 그를 과소평가했던 기성 정치인들과도 비슷하네요. 당시 독일의 보수 엘리트들은 히틀러를 통제 가능한 대중 선동가 쯤으로 만만히 여기고 그와 협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파란을 조국에 불러일으키고 말았으니까요. 이념도 애국심도 정치적 비전도 없었지만, 권력 감각만큼은 뛰어난 기회주의자. 그에게는 확실히 어느 정도 유능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유능함은 권력 유지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 활용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위해 국왕과 국가도 평소대로 배신했다가 오히려 더 큰 권력에 종속당하는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책 읽는 내내 돈 레바란 인물은 대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끝까지 읽은 바로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그는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카리스마형 파시스트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비전도, 이념도 없지만 멍청한 건 아니었어요. 유능한 소인배죠. 자신만만하게 모든 것을 도구로 활용한 끝에, 그 자신도 도구로 전락해버린.
247p에 "회색이 승리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검은 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라는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검은색보다 회색이 더 두려운 이유는 결국 회색이 검은색을 불러오는 전조이기 때문이겠죠. 어느새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점점 짙어지다가 결국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그는 자신이 옳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옳기 때문에 그는 아라타 앞에서 작아졌다. 아라타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 루마타보다 나은 인물이다. 루마타 자신을 비롯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행성에 와서 무력한 동정심에 가득 차 이곳 상황이 무서운 속도로 과열되는 현상을, 무정한 가설들의 의미 없는 가치와 이곳에선 생소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관찰하는 자들보다 낫다. 루마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잃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신이 되기는 어렵다 30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너는 아직 너 자신만이 패배할 운명이라며 위안을 삼지. 너는 네가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 아직 모른다. 너는 네 병사들 밖에만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너는 어쩌면 기사단을 무찌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농민봉기의 흐름이 너를 아르카나르의 왕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는 귀족들의 성을 밀어 버리고 남작들을 해협에 던져 죽일 것이다. 봉기한 민중은 너에게 온갖 명예를 안겨 줄 것이다. 위대한 해방자에게 그러하듯. 그리고 너는 선하고 지혜롭겠지. 네 왕국에서 유일하게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러다가 너는 전우들에게 땅을 나눠 주기 시작하고. 그런데 농노가 없으면 땅이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럼 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가 제명에 죽으면 다행이고, 어제의 신뢰하던 병사들 중에 새로운 백작과 남작이 나타나는 걸 보지 못하면 다행이다. 이미 그런 역사가 있었다, 나의 명예로운 아라타. 지구에서도, 네 행성에서도.'
신이 되기는 어렵다 310-31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성들에서 피로 얼룩진 역사의 시대에 태어났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들, 증오할 줄 모르고 잔인함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 희생양들. 의미 없는 희생양들. 저술가 구르나 갈릴레이에 비하면 훨씬 쓸모없는 사람들. 왜냐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투사도 못 되거든. 투사가 되려면 증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신들은 정확히 그걸 못 하거든. 지금 우리처럼……
신이 되기는 어렵다 323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 길은 이방성이었잖아.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 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 그러고서 묶여 있는 해골과 마주친 거야.
신이 되기는 어렵다 33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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