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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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지 않는 시민들에 답답함을 느끼는 루마타를 보면서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소설을 쓰던 당시 상황이 담긴 것은 아닐까? 예측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8장 마지막의 부다흐와의 대화가 이 책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형제 작가가 보여준 상상의 세계는 재밌으셨나요? 어느새 모임도 일주일도 채 안남았네요. 마지막 주차의 내용은 작품의 감상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 이번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이나 느낀 점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2) 10장과 에필로그 사이의 일들은 파시카의 입을 빌려 묘사되지만 대부분은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으로는 아르카나르와 안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나요? 3) 에필로그에서 파시카가 말한 일방통행 표지판과 해골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왜 신이 되기는 어려운가? 궁금증을 갖고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다흐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을 인류를 구원하기란 어렵다는 것이 주제인가? 짐작해 보았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간 듯 옛 시점에서 현대의 사람으로서 참견을 참기 어렵다는 것과 그 참견으로 인한 변화 또한 미미하거나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잠드는 가스로 도시를 잠재우고 돈레바에게 잡혀가 위험에 처했던 안톤을 몰래 구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르카나르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됩니다. 3)이방성 길에서 일방통행을 거슬러 올라간 안톤에게 경고의 의미로 해골이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행성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느끼기엔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효과로도 느껴져 시간을 거슬러 가지 말거나 거슬러 갔다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또는 경고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1) 감상 @borori 님도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297-300쪽에 장황하게 서술된 루마타와 부다흐의 대화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역사를 쌓아오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 않습니까. 한정된 자원과 부의 분배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기본소득 보장 등을 고안해내고 시행도 해보았지만 단점이 없는 방안은 없었고 지금도 해결을 못해 전지구적으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죠.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도 모자라 머리털 색깔로도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처한 삶의 환경에 의해 몸에 배버린 체취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가 나뉘어짐을 소설을 읽어가면서 다른 자료들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부다흐가 이렇게 저렇게 신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해도 루마타는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그래서 안 된다며 사실상 해법이 없다고 털어놓죠. 제가 신이라도 좌절에 빠질 것 같아요. 이상적인 인류라는 존재를 과연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요. 2) 결말 부분 여자친구가 죽는 모습을 본 루마타가 격분해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신의 본분을 잊고 관련자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결말을 상상했습니다. 지구에서 온 동료들이 뒤늦게 잠자는 가스를 이용해서 뒤처리를 하긴 했지만 루마타는 이미 선을 넘은 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신화에는 홍수로 타락한 온 세상을 쓸어버리는 신도 있었고 번개로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신 등 중립 자세를 지키지 못한 신의 사례는 너무도 많이 있었습니다. 루마타가 그런 신이 되었다는 상상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3) 일방통행 표지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2)번과 연계해보자면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게되는 루마타의 행동을 예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일방통행> 표지판 근처에서 타이어 자국을 보고 파시카는 표지판 너머에서 온 것이라고 했어요. 반면 안톤은 차가 이쪽에서 표지판 너머로 간 것이라고 반박했죠. 서로 일방통행의 방향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합니다. 이방성길이란 '한 방향으로만 가야 하는 길이지'(p.28)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길은 시간의 흐름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일반적으로 시간을 강물에 비유하며 한쪽 방향으로 흐른다고 인식하니까요. 흔히 엎질러진 물을 다시 컵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가는 과정) 시간은 거슬러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이방성길은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방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성질을 말한다'(p.28)라는 설명도 있어요. 인간은 역사를,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는 존재이죠. 지나간 과오를 되돌아보면서 '그때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안톤이 일방통행 너머로 간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간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안톤이 '나는 상식이 없으니까 표지판 너머로 갈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하죠. <일방통행> 표지판의 방향을 제대로 모른다면 <일방통행> 표지판 너머는 인간이 지나온 과거가 아닌 다른 방향의 과거일 수도 있고요.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p.331) 라고 파시카가 말하기도 했어요. 안톤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역행한 것이라면.. 열역학 제2법칙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네요. <일방통행> 표지판 뒤에서 안톤이 본 것은 폭파된 다리와 해골인데요. 폭파된 다리는 시간의 반대방향인 과거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과거에 개입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밥심 님이 얘기하신 1)번 부분을 지금 읽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느꼈어요. 역시 @borori 님 말씀처럼 뒷부분으로 가니 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건 천 파섹이나 떨어진 행성에 어떻게 지구와 거의 유사한 중세문명이 존재하는가 였습니다. 형제 작가는 이전 작품에서도 그렇고 이런 SF의 설정을 배경으로만 넌지시 제공할 뿐 깊이 파고들지는 않죠. 대신 그 안에서 선택하고 고민하는 인물들에 더 집중합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어쩌면 지구에서 유토피아 또는 이상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사 실험을 하는 게 아닌가 상상했는데요. 책 300p의 루마타의 독백에서 아주 잠깐 지구의 이전 역사 또는 가까운 과거에 대한 설명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래, 그건 우리도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면 감응,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재도덕화, 석 대의 적도 위성에서 시도하는 정신 교란……’ 작품 곳곳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는 걸 보면 지구는 공산주의가 아직 존재하거나, 또는 지배적인 이념이 된 미래사회이며 한 때 사람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세뇌하려던 사회였나 봅니다. 정황상 그런 시행 착오를 거쳐 통제나 감시사회는 벗어난 모양새이나 결국 이쪽도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다 실패한 느낌도 들고요. 어떤 인위적 통제 없이 지구의 역사를 반복하되 인간에게 실수가 왜 일어나는지, 지구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는 이상적 사회가 가능한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지구의 인간들은 이미 과거의 역사라는 답안지를 들고 있습니다. 다른 행성에 또 다른 아담과 이브를, 인간의 씨앗을 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답을 알고 있으니 역사의 실수를 미리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아르카나르와 돈 레바, 성기사단은 지구인들의 희망과 기대를 비웃듯 악을 퍼뜨립니다.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지구인의 오만함 또는 착각이었을 지도요. 어쩌면 지구인들은 또 다른 지구를 어딘가에 만들어버림으로써 인간 세상의 고통을 배로 늘려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로 진출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지켜볼 기술이 있으며, 이로 인해 신이 된 줄 알았으나 결국 여전히 신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르카나르와 지구 모두에서 반복되는 걸 지도요. “뭔가 연관이 있는 것처럼…… 그 길은 이방성이었잖아. 역사처럼. 거슬러 가서는 안 돼. 그런데 안톤은 거슬러 갔어. 그러고서 묶여 있는 해골과 마주친 거야.” 그런 면에서 보면 파시카의 말은 지구인들의 역사 실험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우주의 순리대로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야 하는 역사를 다른 행성에서 역행 하려는 건 오만함이며, 설령 역사를 되돌리더라도 거기서 보게 되는 건 아르카나르의 폭정과 전쟁과 시체더미와도 같은 해골 뿐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2,3) 루마타가 키라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돈 레바와 성기사단을 모두 죽이거나 또는 제거하던 상황을 상상했어요. 이 마지막 장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게 루마타는 그 많은 학자와 식자들을 보살피고 구출하는데 성공했음에도 정작 자신이 가장 아끼던 존재는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루마타가 탄압 받는 민중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형제처럼 여기는 대목이 있었죠. 그들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기에 감정적으로 연대하며, 곧 자신에 대한 압제로 동일시 하고 정의감을 불태웁니다. 재밌는 점은 이들 식자, 학자, 민중들과 루마타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는 겁니다. 루마타는 이들을 신처럼 보살피고 어루만지지만 정작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루마타의 존재도 모릅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의 존재를 상대는 알지 못하며, 사랑을 주는 대상도 인지하지 못하는 짝사랑이죠. 오히려 짝사랑이기 때문에 루마타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들을 구해낸 걸까요. 그런데 키라는 다릅니다. 키라는 루마타의 자세한 정체까지는 모르지만 그의 사적인 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또 그와 사랑을 나눈 유일한 아르카나르의 인간입니다. 루마타로부터 사랑을 받기만 한 게 아니라 루마타에게 사랑을 주기도 했죠. 그리고 루마타가 그냥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직감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즉 키라는 루마타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모로 각별한 대상입니다. 사랑 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에게 이토록 가장 근접한 존재가 없으니까요. 키라는 신과 함께 걷고, 신과 양방향의 대화를 나누며, 신의 장막 뒤에 가려진 그림자와 실루엣을 추측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간이었던 거죠. 그런데 루마타는 가장 가까웠던 키라만은 구하지 못합니다. 동구권 소설이지만 러시아 또한 기독교 문명임을 생각해 보면 키라의 위치와 상황에서 예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키라의 죽음은 루마타에게 단지 연인의 죽음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르카나르에 대한 인내 그리고 이해를 위한 마지막 시도가 부정 당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루마타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잔인한 배신일 겁니다. 자신은 그토록 오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관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아르카나르는 자애로운 신을 거부하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계속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키라가 죽는 구도 자체도 흥미로운데요. 프롤로그에서 안톤은 파시카를 석궁으로 쏘는 내기에서 결국 일부러 빗맞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는 생명을 거두기 두려워 하는 인간이죠. 그런데 수도사의 화살들은 어떤 거리낌 없이 키라를 관통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루마타는 생각은 많으나 결정적 순간에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머뭇거림 때문에 일을 그르친 거기도 합니다. 자애롭고 인류애가 많으며 선하지만 정작 그 선함 때문에 악에게 계속 마음고생하고 유린을 당했죠. 루마타가 레바와 성기사단을 죽인 건 어쩌면 악이 던진 최후의 도발에 넘어가 패배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끝끝내 신의 자비와 관용을 지키지 못하고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는 인간으로 지상에 추락하는 모습이었거든요. 루마타 개인으로 놓고 보면 파시카가 에필로그에서 말한 '해골을 보고 온 안톤'은 결국 선을 넘어 역행해버린 안톤을 말하는 걸 수도 있겠고요. 여기서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아라타입니다. 아라타는 루마타와 여러 면에서 거울에 비춘듯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아라타는 사고로 추하게 변해버렸지만 루마타는 고상하고 말끔하죠. 아라타는 신분이 비천하지만 루마타는 귀족입니다. 아라타는 자신을 짓밟은 세상을 모두 불태울 분노와 증오를 담고 있고 또 실행하는 행동형 인간이지만 루마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라타는 악은 철저히 제거하고 그 동조자들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가혹한 정의라면 루마타는 인간을 악이 아닌, 부족한 인간으로 보려는 관용하는 정의입니다. 그러나 둘 모두 아르카나르에 선이 도래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위치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죠. 과연 아르카나르에서는 뭐가 맞는 길이었을까요? 아라타처럼 불의와 악에는 똑같이 그에 상응하는 잔인성과 폭력과 피로 맞대응해야만 선善이 살아남고 승리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루마타처럼 보다 높은 도덕적 위치에서 관용하고 악을 이해하려는 것이 선善일까요?
저는 말씀하신 루마타의 '머뭇거림'에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한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가 떠올랐어요. AI와 다른 점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김애란 작가가 '망설임' 이라고 답했습니다.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미덕일 수 있고 개성일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발빠른 판단보다 밀도 높은 가치관의 고민이 인류에게는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요. 비록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 손석희 : AI가 사람하고 다른 점이 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애란 : 우선 내가 작가로서 글쓰기에 근육이란 게 늘었다면 그게 언제지? ‘한 문장 한 문장 어렵게 이을 때 전전긍긍과 자문자답 그 과정에서 늘었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근데 AI 경우에는 그 과정을 단축해주는 걸로 유명한데 전 그냥 제 분야에 한해서 말씀드리자면, 요새 지금 전쟁이 한창 중이잖아요? AI가 쓴 전쟁·난민 문학과 인간이 쓴 게 같을까? 소설이나 문학이 그저 콘텐츠이기만 하다면 우리가 책 맨 앞으로 돌아가서 저자의 얼굴을 한참 보거나 약력을 보는 일이 있을까? 우리가 왜 윤동주나 이육사의 글을 보고 감동하지? 라는 질문으로 충분할 것 같구요. 좀 고민되는 일이 있어서 (AI에게) 고민을 나눈 적이 있는데요. 인간한테는 있고 AI한테는 없는 게 하나 있었어요. ‘망설임’이었는데요. 손석희 : 사람한테는 망설임이 있고 AI에게는 없더라. 김애란 : 예.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어.. 짐작하고 헤아리는 그 찰나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그 주저하며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어느 때는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결례가 안된다면 앵커님이 전에 뉴스 진행을 하셨을 때 예도 들고 싶어요. 손석희 : 제가 했던 뉴스? 김애란 : 예. 몇몇 꼭지가 있으셨는데 감정적으로 흔들리시는 모습을 제가 두 번 봤습니다. 두 개 다 누군가의 부고와 관련된 일이었구요. 자칫 보면 방송사고라고 할 수 있을 만한 20초 정도의 침묵이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손석희: 노회찬 전 의원이요? 김애란: 그게 자칫 보면 그.. 사고처럼 보일 수 있는데 어떤 진실과 인간이 서 있는 모습을 우리가 다 봤다고 생각을 하구요. 그대 역시 망설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AI가 물론 진행했다면 보도 원칙에 따라 그 속도와 효율에 따라 전달했겠지만 어떤 동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실감? 혹은 함께 하고 있다는 실감을 어.. 굉장히 강렬하게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미덕일 수 있고 개성일 수 있다.’ 생각을 하게 됐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GVyMqldFQU4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선과 악의 상대성 그리고 가변성 같습니다. 루마타가 부다흐를 데려와 처음 나누는 대화에서 부다흐는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 있음을 말하죠. 또한 아라타와 루마타의 대비를 통해 누구의 방식이 아르카나르에 필요한 방법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처음에는 회색대원들의 패악질이 눈에 띄지만 그들 뒤에는 무능하고 환락에 젖은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뒤에는 이 모든 걸 조종하는 더 짙은 회색의 돈 레바가 있고요. 그러나 그 돈 레바마저 뒤덮을 검은색의 수도사와 성기사단을 보며 루마타도, 독자도 점점 거대해지고 막을 길 없어 보이는 악의 팽창을 피부로 느낍니다. 사악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뒤에 더 악한 세력이 도미노처럼 계속 이어집니다. 회색과 검은색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그라데이션처럼 섞여있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과 악의 가치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신분과 계급제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부다흐는 그것이 신이 만든 안정된 구조라며 찬양하죠. 뛰어난 부다흐도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형성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천 파섹보다도 더 먼 천 년의 시간의 벽이 놓여 있기 때문이죠. 이 벽은 루마타 같은 존재가 아무리 밖에서 대신 부수고 허물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통과하고, 천천히 하나씩 장애물을 넘어야만 합니다. 마치 어른이 사회로 나가 겪는 희로애락과 고충을 아무리 아이에게 설명해도 이해시키는 데 한계가 있는 것과 같죠. 아이가 때론 넘어져도 보고, 싸우고 상처입으며 자라야 하듯 슬프게도 아르카나르에는 돈 레바와 아라타 같은 인간이 모두 필요한 걸지도요. 폭력은 나쁘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자신의 권리와 고귀함을 위해 무력으로 악과 부조리에 맞대응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죠. 돈 루마타가 선이 지배적인 자신의 지구 같은 곳에서는 아라타가 한없이 약하고 부정한 인간이겠지만, 이 곳 아르카나르에서는 강하고 선한 존재일 것이라고 독백한 이유는 그래서일 겁니다. '선은 그 시대에 필요한 형태가 존재한다.' 랄까요... 절대적인 듯한 선과 악도 영원하지 않다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선악을 초월하여 오직 두 가지 마음가짐 중 하나만을 가져야 할 겁니다. 부족한 인간들이 뒤엉켜 겪는 고통과 번뇌를 오직 지켜보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거나, 또는 완전히 감정적으로 무정한 존재로서 냉정한 관찰자로 남는 것이죠. 설령 절대적인 신이 개입하여 역사를 바로잡더라도 인간은 자신들이 가진 한계로 인해 신의 개입을 오해하고 곡해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할 테니까요.
1) 이 작품은 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보통 신이라고 하면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긴 하지만 인간은 신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져왔고 원망을 하기도 했죠. 신은 왜 악한 사람들을 벌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게 놔두고 착한 사람들은 고생스럽게 살게 내버려두는 건가요? 같은 질문이 그 예입니다. 지구에서의 안톤과 아르카나르에서의 루마타 모두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 단지 상대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지구에서의 안톤과 그 친구들이 아르카나르의 사람들보다 좀 더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서 선한 본성으로 그들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악함에서 선함의 단계를 0(惡100, 善0)에서- 100(善100, 惡0)으로 표현하자면 선함이 100에 가까워질 수록 신에 가깝다고 설정해봅니다. 지구의 안톤도 선함100 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별도 신과 인간을 말해준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기독교에서 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왔다는 것도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고요. 2)키라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안톤은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그 아르카나르를 여러 번 다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어요. 뭐 아르카나르에서는 꽤 길고 험난한(무거운) 시간일지라도 지구에서 안톤과 안카, 파시카 같은 이들에게는 유희처럼 상대적으로 짧고 가벼운 시간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안톤의 손에 묻은 것이 피가 아니라 땅딸기 즙이라는 것도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유희로 전환시키는 표현처럼 보였어요. 결국 신들도 유희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그들을 인간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안톤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아. 이제 말을 거의 안 해.'(p.330) 이 부분도 안톤이 신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3) 안톤과 친구들이 신이라면 일방통행을 표지판을 넘어갔을 때 제약을 받는 일이 없었어야 할텐데. 파시카나 안카는 사실 '상식'을 언급하면서 일방통행 표지판을 넘어가면 안되는 것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죠. 사실 끊어진 다리와 해골을 봤다라고만 되어 있긴 하지만.. 안톤은 여러 번 그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갈 때마다 석연치 않은 결과를 얻었을 수 있고요. 다리는 끊어졌지만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 과거로 더 깊숙이 가려는 시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의 관점에서는 인간 세계를 아무리 잘 컨트롤한다고 한들 문제가 보이기 마련이겠죠. 해골을 통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세계는 시간을 되돌려 신이 아무리 개입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암시를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씩 진전이 이루어지더라도 신immortal의 관점에는 해골mortal일 뿐이라는 뜻 같기도 하고요. 안톤이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이 따랐을 테죠.
땅딸기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네요. 저는 마지막 장면의 딸기즙이 지워지지 않는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에필로그는 일부러 모든 장면과 대화를 다 애매하게 묘사하거나 넘기고 있죠. 루마타와 아르카나르에 대해 독자가 어떤 관점과 판단을 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형제 작가들이 의도한 것 같습니다.
1) 재밌었습니다! 제목대로, '신'이라는 건 지극히 성립 불가능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책에서 의문을 제기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인간처럼 연민과 사랑을 갖고, 선을 지향하는 신이요. 그 이유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 안톤과 부다흐 박사가 문답을 교환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압자를 제거하면 다른 힘 있는 자들이 새로운 억압자가 될 것이고, 식량과 집과 옷을 줘도 강한 자들이 그것을 앗아갈 것이며, 모두에게 결핍 없는 풍족한 삶을 약속한들 사람은 게을러질 뿐이라고. '인간'은 '신'이 되기에는 피조물성이 강한 존재라서, 그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 내의 신 역시 동일한 피조물성을 공유하게 됩니다. 더 슬픈 것은, 그런 신이어야만 인간을 인간인 채로 살게 할 수 있고 인간에게 연민을 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이 소련 시절에 출간되었다는 것도 감안하면, '인간이 상상하는 선하고 전능한 신이 과연 성립 가능한 관념인가?'가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던지는 화두 같았습니다. 꾸준히 <햄릿>이 인용되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결말까지 보니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살인을 두고 고뇌하는 주인공(햄릿/안톤), 부조리한 주인공의 주변세계에서 몇 안되는 정서적 위안점이었으나 끝내 사망한 연인(오필리아/키라), 살인을 저지르고 파멸하는 주인공이란 결말까지요. 다만 햄릿은 결국 죽지만, 안톤은 파멸한 채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비극적입니다. 2)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은 키라가 사망한 후, 안톤이 성기사단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살해했다는 전개입니다. 다만 돈 레바의 생사는 여기에 큰 의미가 없으며,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모호하게 서술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키라는 단순히 안톤의 연인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아르카나르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증명이자, 희망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나 다름 없었죠.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다름 아닌 아르카나르 현지인들(성기사단)에 의해 배반당했습니다. 그렇기에 키라의 죽음은 연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희망과 믿음의 죽음이죠. 물론 안톤이 그저 키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빼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돈 레바를 진즉 살해해야 했다는 죄책감,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들었겠죠. '회색'까지 잠식해버린 검은색은 분명 아르카나르에 참혹한 비극을 불러올 게 뻔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뻔히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궁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대로 두었다간 이 별의 지배자가 될 자들이 머무는 곳. 수면 가스로 도시 전체를 잠재운 후 성에서 안톤을 찾았을 때, 몇몇은 잠들어 있었지만 몇몇은 쓰러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잠든 건 아닌데 쓰러져 있었다면 기절했거나 죽은 거겠죠. 다만 여기서 돈 레바의 죽음은 전술했듯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 레바가 안톤이 발견된 현장에 있었다지만, 생사 자체는 의도적일 정도로 모호하게 표현됐어요. 짐작가는 이유 중 하나는 성기사단의 쿠데타 이후 돈 레바가 주체에서 발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성기사단에게 넘어갔고, 안톤이 처치하지 않았어도 언젠간 정쟁에 밀려 제거될 운명이었죠. 둘째는 에필로그의 초점을 안톤에게 돌리기 위함입니다. 돈 레바가 안톤에게 살해당했음이 언급되는 순간, 이야기의 초점은 복수극으로 끝납니다. 그의 죽음에는 그만한 존재감이 생기죠. 하지만 돈 레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하게 남는다면, 이야기의 배턴은 안톤에게 넘어갑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는 불분명하나 적어도 그는 변했습니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르카나르와는 다른, 문명인임을 자부하던 그의 정체성은 파열됐습니다. 이야기 내내 안톤의 시선으로 서술되던 시점이 에필로그 와서 관찰자 시점으로 이동한 것도 이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에게도, 독자에게도, 어쩌면 그 자신도 자신을 설명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3) 일방통행 표지판은 역사의 흐름, 해골은 인간에게 내재된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일방적인 개념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물리 법칙에 따르면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까지는 가능해도,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본 소설에서 안톤을 비롯한 역사 연구자들은 과거의 지구가 아니라, 과거의 지구와 비슷한 문명 수준을 가진 외계 행성을 연구합니다. 마르크스 역사관은 역사의 발전이 보편적으로 특정 단계를 거친다고 보았으니, 이 이론에 따르면 꽤 괜찮은 대안이죠. 그 일방통행 길을 거슬러 마주한 해골은 2차 세계대전 기에 사망한 독일 병사의 유해로 서술되죠. 프롤로그에서도 상당히 불길한 복선처럼 느껴졌습니다. 해골은 평범한 이물질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살과 피 아래에 숨겨진 '골자'죠. 처음부터 인간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래 전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발견되었으니, 이는 미래 지구에서는 이미 역사적 잔재로 여겨지는 '무언가'를 상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파시즘(독일 병사의 해골이란 점에서, 나치독일의 '토텐코프(해골)' 사단이 떠오르기도 합니다.)이나 종교 극단주의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광의적으로는 인간 본연의 폭력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풍요롭고 이상적인 문명 덕에 잠들어 있지만, 야만적인 세계에 던져지면 언젠가 다시 살아 움직일.
이방성길의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뜻을 알고나니 일방통행의 의미가 좀 더 잘 전달되는 것 같아 공유합니나. 이방성(異方性, Anisotropy)은 물질의 성질(물리적, 기계적, 전기적 등)이 측정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말합니다. 모든 방향에서 성질이 동일한 '등방성(Isotropy)'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따라야 할 가치를 내려놓은 데서 오는 혐오스럽고 저급한 기쁨과 광기의 파도가 이미 그를 덮쳤다. 그는 아직 지구인이었고, 정보원이었고, 불과 철을 다루는 인류의 후예였다. 위대한 목적이란 기치 아래 자신을 희생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던 인류의 후예였다.그는 에스토르의 루마타가 될 수 없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162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글쎄, 어디 봅시다. 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소. <창조주여, 저는 당신의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사람들을 선하고 행복하게 만들 생각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걸 원해 주소서! 그걸 이루기란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충분한 빵과 고기와 포도주를 주소서. 그들에게 집과 옷을 주소서. 배고픔과 탐욕이 사라지게 해 주소서.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모든 것을 없애 주소서.>” “끝입니까?” 루마타가 물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소?“ 루마타가 고개를 저었다. ”신은 당신에게 이렇게 답할 겁니다. <그렇게 해도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희 세상에서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에게서 내가 준 것을 앗아 갈 테고, 약한 자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참할 것이다>“ ”신에게 약한 자들을 보호해 달라고 빌겠소. <잔혹한 통치자들을 계몽시켜 주소서.> 이렇게 말할 거요.“ ”잔혹함이 곧 힘입니다. 잔혹함을 없애면 통치자들이 힘을 잃겠지요. 그러면 또 다른 잔혹한 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거고요.“ 부다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잔혹한 자들을 벌하소서.” 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에게 잔혹하게 굴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사람은 약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주위에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을 때 강한 존재가 되지요. 강하고 잔혹한 자가 벌을 받게 되면 약한 자들 중에 강한 자들이 그 자리를 메꿀겁니다. 역시 잔혹한 자들이 말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을 벌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요. 전능한 신이시여. 그러면 그냥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받고, 당신이 그들에게 준 것을 서로 빼앗지 못하게 해 주소서.”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루마타가 한숨을 쉬었다. “노동하지 않아도 전부 공짜로 받을 수 있게 되면 사람은 노동을 잊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을 것이고, 내가 앞으로 평생 먹여 주고 입혀 줘야 하는 가축으로 변할 겁니다.” “인간들에게 한꺼번에 주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부다흐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조금씩, 순차적으로 주소서!” “순차적으로는 인간들 스스로도 필요한 걸 손에 넣을 겁니다.” 부다흐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군.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겠소. 왜인지 이전에는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소…. 우리가 모든 방면을 다 검토해 본 것 같군. 그런데,“ 그가 몸을 내밀었다.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겠소. 인간들이 무엇보다도 노동과 지식을 사랑하도록 하는 거요. 노동과 지식이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도록!“ ‘그래, 그건 우리도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면 감응,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재도덕화. 석 대의 적도 위성에서 시도하는 정신 교란…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루마타가 말했다. “하지만 인류에게서 역사를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요? 한 인류를 다른 인류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한 인류를 땅에서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류를 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부다흐는 이마를 찌푸리고는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루마타가 기다렸다. 창 너머 수레차가 우울하게 끽끽대며 지나갔다. 부다흐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맙소사. 저희를 땅에서 제거하고 더 완전한 인류를 창조하시지요… 아니면 저희를 내버려 두고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게 더 좋겠나이다.” “나는 동정심 때문에” 루마타가 천천히 말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 때 그는 키라의 눈빛을 봤다. 키라는 공포와 희망이 담긴 눈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297-300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문장 수집이라기엔 길지만 핵심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되어 3쪽에 걸친 내용 전부를 수집해둡니다.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라타가 불쑥 말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은 우리에게 해만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소. 적어도 우리는 아무도 해치지 않소." 루마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 해치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희망을 불어넣고 있지 않습니까……"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09~31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나한테요. 당신은 내 의지를 약하게 만듭니다, 돈 루마타. 예전에 나는 나 자신만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뒤에 당신의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전에는 싸울 때마다 마지막처럼 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결정적인 싸움을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리고 있더군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 싸움에 참여할 거니까…… 이곳을 떠나십시오, 돈 루마타. 원래 있던 곳으로, 하늘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가진 번개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아니면 당신의 그 철로 만든 새라도…… 그것도 안 된다면 당신이 직접 검을 뽑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신이 되기는 어렵다 09~31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우리 세계에 절반만 친구인 경우는 없습니다. 절반이 친구란 얘기는 언제나 절반은 적이라는 뜻이니."
신이 되기는 어렵다 p.31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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