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조 온 미래

D-29
예술은 우열을 가리는 게 불가능하다. 아마 그래서 예술인 것이다.
물론 문학은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둑과 다르긴 하다.
이글은 바둑은 AI에 무릎을 꿇었지만 과연 소설도 그럴 입장인데 빠져나갈 구멍이 있나, 하는 글 같다. 그걸 모색하는 글 같다.
사진 기술로 인해 미술이 변질됐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AI가 문학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바둑과 달리 주어진 틀에서가 아니라 그 틀을 알 수 없이 계속 깊이 생각해서 인간 문학을 다시 창조할 것이다.
결국 바둑이 AI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 바둑은 승부를 내야 하는 게임이다. 바둑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부터도 전보다 더 인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AI와 게임이 이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학처럼 승부가 안 나는 예술 같은 것만 살아남는다.
어느 정도 팔리는 책이나 영화는 무난한 것이 대부분이다. 좀 이상한 것은 잘 안 팔린다. 남에게 추천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 그걸 잘 안 얘기한다. 그냥 혼자 몰래 본다. 입소문이 잘 안 나기 때문이다. 포르노 보는 것하고 같다. 인간은 다수에 끼려고하지 이상한 소수에 안 끼려고 한다. 일부 골수팬만 본다.
하도 뭐라 하니까 그렇지, 포르노도 알고 보면 예술적인 것도 많다. 똥도 예술로 치는데 인간과 가장 친밀한 성에 대한 것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예술가는 자꾸 본질로 접근하니까 현실인은 그게 낯설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실은 결국 그걸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의나 도덕 때문에 그들의 주장과 안맞는 것이다.
한국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가 뭔가 베드신에서 보여줄 듯 말 듯 끝내 안 보여줘 입맛 다시게 하고 여운, 아쉬움과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그렇다는 말이 있다.
이 나이에 혼지 사니까 가게도 옮긴다. 그게 유행이 있다. 전에 곱창볶음집 거들떠도 안 보다가 이젠 4일에 한 번은 간다. 전에 정육점에 자주 갔는데 지금은 안 간다. 이게 옮겨 다니며 내 내부에서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독자는 안다 글을 늘 꾸준히 쓰는 사람은 처음엔 쉽게 쓰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렵게 쓴다. 자긴 모른다. 그러나 전부터 전작주의(全作主義)를 고수한 독자는 안다. 어려워졌다고. 그게 자기 세계에 빠져 그런 것이다. 씨름을 하는 사람은 익숙한 용어가 일반인은 어려운 것이다. 씨름 선수는 아주 쉽지만, 거기에 물들면 남도 자기처럼 알겠거니 하고 어렵게 쓴다. 전문용어를 남발한다. 그게 자기도 모른다. 이러면서 작가는 깊이 들어가는 거지만 평론가가 아닌 일반 독자는 그의 글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씨름 용어만 써서 너무 어려워 일반독자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는 모른다. 독자는 안다.
육개장 진짜 못하는 아줌마한테 지겹게 맛없는 육개장만 직장 식당에서 먹어 육개장이 맛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 입에도 안 댔다가 맛있는 육개장을 접하고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그게 완전히 돌아선 건 아니다. 이래서 안 좋은 트라우마는 쉽게 안 바뀌는 것 같다.
여자는 자기가 최고 여자가 여자를 소개해 준다고 하면 거의 100% 자기보다 안 예쁜 여자를 소개해 준다. 이건 철칙이다. 그러다가 남자가 정말 맘에 드는 여자와 앉아 있으면 그 자리를 자꾸 그 여자는 피하려고 한다. 자기보다 예쁘기 때문이다. 대개의 여자는 자기보다 잘난 여자를 분명 존재하는데도 인정 안 하려고 하고 그걸 안 보려고 해서 아예 피한다. 자기 자리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안 예쁜 여자는 대신 그 여자 때문에 자기 위상이 더 올라가는 것이고. 아주 안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인기 있을 것 같은 여자를, 여자는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래 자기가 맘에 들어 하는 남자에게 그 여자를 얼씬도 못 하게 눈에 불을 켜고 방해한다. 대개는 섹시한 여자다. 알고 보면 섹시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별로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싫증을 잘 안 낸다. 그 관계가 오래가는 편이다. 물론 싫어하는 성격이 들통나면 헤어지는 수도 있지만. 섹시함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그 관계를 지속하는 비결이다.
꺼림직하다/께름직하다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어 느낌이 썩 편안하지 못하다’의 뜻으로 둘 다 맞춤법에 맞는 표현이고, ‘꺼림칙하다’와 ‘께름칙하다’도 맞는 표현이다. 그는 쉰내가 나는 듯한 김밥을 먹기가 꺼림직했다. 그는 야근을 하는 동료들을 두고 먼저 퇴근하기가 영 꺼림칙했다. 정재규는 아내의 서릿발 선 이 말이 영 께름직하게 달라붙어 활기를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영수에게 일을 맡긴 것이 어째 께름칙하고 마음이 안 놓인다.
핼쓱하다/핼쑥하다 ‘핼쓱하다’는 얼굴에 생기가 없이 창백하다, 핏기가 없고 파리하다는 말인 ‘핼쑥하다’를 잘못 쓴 말이다. ‘핼쑥하다’ 대신 몸이 야위어 보인다나 핏기가 없어 파르스름하다는 뜻의 ‘수척하다, 해쓱하다’를 써도 된다. “오늘따라 핼쑥해 보인다, 혹시 어디 아프니?” 지영이는 핼쑥한 얼굴에 가까스로 웃음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며칠 사이에 그녀의 얼굴이 몰라보게 마르고 수척해 있었다. 얼굴선이 가늘고 얼굴빛이 해쓱하면서 몸이 마른 그녀는 청순가련형으로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사기충전/사기충천 “비타민이야. 이거 먹고 사기충전해서 꼭 이기라고!” 이 문장은 잘못된 문장이다. 여기서 ‘사기충전’을 ‘사기충천’으로 바꿔야 제대로 된 문장이 된다. 사기충천은 한자어 ‘士氣衝天’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뜻으로 의욕 또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높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채운다는 뜻인 ‘충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적의 진지를 점령한 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계속 진군했다.
내가 보기에 다 떠나서 가장 잘 사는 방법은 자기 기질을 잘 살려 사는 것이다. 다른 건 현실에서 없다.
<지옥에 떨어집니다>를 보고 인상 깊은 드라마를 보면, 삼세번이라고 세 가지를 얻기를 좋아한다. 더 얻었을 수도 있고 단 하나만 얻었을 수도 있지만, 세 가지를 채우길 좋아한다. 그래야 적지도 없고 많지도 않고 딱 맞는 것 같다. 뭔가 세 개(Trident)가 균형 잡히게 서 있는 느낌이다. 아마 안정감을 얻겠다는 소산(所産)이리라. 일본 드라마 <지옥에 떨어집는다>에서도 역시 3가지를 얻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이고 주인공이 실제 산 것과는 별개로 난 이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느꼈을 뿐이다. 주인공 호소키의 마지막 남편이고 정계의 스승 야스오카가 주장하는 것도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그렇게 살았고 자기와 드라마 말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어차피 죽는 목숨 해보고 싶은 것이나 해보다 죽는 게 사실 낫다고 판단했는지, 술도 맘대로 먹고 담배도 맘대로 피우며 아주 희열 속에서 그대로 쓰러져 가장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걸 하며 저세상으로 간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서 주인공이 묻는 것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약간 흥분해서 설파(說破)한다. 그건 누구에게도 말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있었더라도 그건 그냥 앵무새처럼 뇌까린 것이고 지금은 그걸 진짜 받아들일 만한 인간 앞에서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BTS를 모르는, 트로트만 아는 한국 시골 노인 앞에서 BTS가 공연할 때, 이 둘이 과연 서로 좋아 흥분할까. 차라리 지구 반대편 멕시코 5만 팬이 서로 좋아 눈물을 흘릴 것이다. 작가들도 독자와의 대화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란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자가가 좋아하는 여자와 같이, 진짜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딸도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게 좋고, 자기도 마음 가는 대로 한다고 맘에 드는 여자와 술과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것이다. 자기가 배신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점철된 삶 가운데서도 이건 주인공이 잘한 것 중 하나 같다. 이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윤정희 배우가 시한부 인생에게 베푼 마지막 시혜 같은 것이다. 운명을 미리 알면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점쟁이가 뭐라고 하면 그것에 얽매여 살게 되어 있다. 물론 얽매여 산다고 해도 그것을 차라리 의식 안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운명이라는 틀을 생각 안 하고 살면 더 나은 삶이 될 것 같다. 전자는 어떤 강박 속에서 살고, 후자는 해방감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팔자, 기질대로 더 잘살 것 같다. 기질대로 살려고 했더니 점쟁이가 말한 게 생각나 그걸 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선생이 말하면 그대로 크는 것처럼. 그 말 때문에 엇나가게 사는 것이다. 뭔가 억눌린 삶 같다. 차라리 안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인간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그 말을 한 것 때문에 코끼리를 의식에서 버리지 못한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손가락을 보며 산다. 말의 취지가 그게 아닌데도 안 좋은 한 구절만 떼어내 의식하며 그걸 가슴에 묻고 산다. 다 떠나 그게 누구라도 내 인생을 감히 미리 안다, 하고 막 규정해 버려 아주 기분이 불유쾌한 것이다. 그런 것 외에, 하던 지랄도 멍석 깔면 안 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상하게 잘하던 것도 누가 지시하면 안 하는 꼬인 성격을 갖고 있다. 막 이제 공부하기 위해 방부터 치우려고 했지만 엄마가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방 꼴이 이게 뭐니, 돼지우리도 아니고! 그리고 그렇게 하루 종일 빈둥거리지만 말고 공부 좀 해라.”라고 하면 방도 안 치우고 공부도 계속 안 한다. 그 말에 할 마음이 싹 달아나 엄마 바람대로 안 해 엄마에게 고통을 주려는 심보다. 이렇게 인간은 어떤 것에 얽매지는 것을 싫어한다. 남의 말이 내 생각과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무당은 여기서 엄마다. 또 점쟁이가 하는 소릴 듣고 있으면 그냥 세상을 무난하게 살라는 소리다. 시류, 흐름에 따라 개성 발휘 없이 그저 그걸 잘 타서 출세하라는 말이다. 극히 세속적이고 어찌 보면 저속하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보면 경주 점집에서 만신이, 이름만 배우이고 떠돌며 사는 김상경은 볼 필요도 없다며 아예 점을 보려고도 않고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는 출세한 약혼자 점만 보면서 그 사람을 꼭 잡으라고 한다. 여기서 김상경은 아주 제대로 생활의 발견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 배우라는 예술가가 추구하던 생활의 모습을 현실에선 찾지 못한 것이다. 그게 사람을 옥죈다. 그리고 호소키도 점술가지만 자기는 점을 안 믿는다고 끝에 가서 말한다. 그저 그게 돈벌이가 되니까 그것으로 돈을 번 것뿐이다. 대살계 점이 나왔지만 결국은 조카를 양녀로 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84세, 수명을 다 누리다 간다. 점도 인간의 바람이 들어간 것인 게, 수명도 그저 자연에 따라 그리되는 그저 운이고, 자기 기질대로 살다가 가는 것 같다. 호소키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것대로 살 다 간 것뿐이다. 인간은 자연에 따라 운으로, 자기 기질대로 결국 사는 것 같다. 인간계에서의 출세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권선징악도 인과응보(因果應報)도 다 인간이 만든 것이고 자연계는 여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호소키가 작가 미노리가 쓴 글을 보고 우는데 그건 아마 자기의 처지가 글에 잘 드러나 그런 것 같다. 자기 마음이 글의 형태로, 그대로 겉으로 꺼내진 것이다. 다 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 나쁜 자기 얘기는 빼고 좋은 얘기만 쓰라고 한다. 작가는 글은, 그저 밥벌이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면서 있는 그대로 기록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은 실은 그 글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앞에서 버린 걸 작가가 간 다음에 다시 주워 모았기 때문이다. 남 앞에선 자기(도 알고 있는) 치부(恥部)를 인정 안 하면서도 자기의 생생한 인생 기록이기 때문에 안 소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도 자기 뜻을 안 굽히고 주인공도 안 굽힌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글과 자기가 살아온 이력(履歷)에 대한 싸움인데, 그걸 포기하면 자기에겐 이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영이 충돌하는 것도 의미의 충돌이고, 자기들만의 의미를 강하게 주장한 나머지 결국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각각 과연 뭘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까. 작가는 물론 솔직한 자기 글일 것이고 주인공은 글에서 빠진 것을 말한 것처럼 자기를 이렇게 이끈 힘이 안 느껴진다고 했으니 바로 자기를 ‘여기까지 이르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인간은 어떤 것에 의미를 두며 사는 것 같고 인간 삶은 참 다채롭다는 생각이다. 주인공이 순전히 남을 속이는 사기 기질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몰래 엄마 무덤을 찾아가 참회하는 것 같고 야쿠자지만 자기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홋타)과 찍은 사진을 거실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고 그의 임종을, 병시중을 정성껏 하며 그의 마지막을 지켰기 때문이다. 냉혈한(冷血漢)이면서도 한없이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게 인간인 것 같기도 하다. 양면성, 아니 다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될 것 같은데도 안 되고 안 그럴 것 같은데도 당장 내일 죽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고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없고 앞으로 그의 인생행로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지옥에 떨어집니다 ● 고통 속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며 조금 더 연명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얼마 안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그 순간에 웃음을 머금고 가는 게 나은가. ● 운명을 미리 알고 그 우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모르는 상태에서 한계 없이 사는 게 나은가. ● 결국 인간과 인생은 함부로 규정이 안 되고 그나마 덧없는 인생, 각자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며 사는 게 아닐까. 남는 게 그것뿐이라서.
난 이재명처럼 실용주의자이고 체 게바라처럼 리얼리스트이지만 이상주의자인 게 더 비중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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