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SF작가의 양대 산맥 '테드 창'과 '그렉 이건'.
그렉 이건의 단편집 <잠과 영혼>이 출간되었다.
그렉 이건 <잠과 영혼> 하드SF의 정수
D-29

미식가들모임지기의 말

미식가들
2026.04.28.
첫 번째 수록 작품 <크리스털의 밤>
인간은 AI가 의식을 가지도록 설계할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은 그걸 감당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대니얼은 부유한 사업가로 AI가 의식을 가지도록 설계하여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여기에는 자신의 영생도 포함된다)를 풀게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다루는 프로세서 '크리스털'의 특허를 거금을 들여 구매한 다음 그것을 이용해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가상의 생명체들이 진화하도록 그 세상의 원리를 설계한다.
대니얼이 AI로 하여금 의식을 갖도록 만들게 하는 방법은 바로 '진화'이다. 그는 그 가상세계의 가생생물들이 의식이 필요해지는 선택압이 발생하도록 하기 위해 그 가상세계의 환경을 조성하고 조작한다. 그는 필요할 경우 그 가상생물들의 대멸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발생된 가생생물 '파이트'는 현실보다 훨씬 빠른 시간으로 흐르는 그 가상세계 속에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다. 대니얼은 그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는 현실 세계를 탐구하도록 허락한다. 파이트들은 고도의 지성을 발전시키며 현실 세계의 물리학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스포일러라 말 못함)
AI, 가상세계, 진화, 의식, 시뮬레이션 우주, 물리학 등등의 소재를 이용해 인간의 오만과 욕심과 무지를 다룬 수작이다.
읽으면서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이 작품에서도 AI의 자의식을 다룬다. 그 소설에서는 <크리스털의 밤>처럼 가상세계 속의 가상생물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화하는 게 아니라, 그 가상생물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현실의 인간(주인)과의 교류를 통해 의식이 발달한다. 여기서도 테드 창은 AI가 의식이 생기면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AI가 어떻게 의식이 생겨날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 기술적인 관점에서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다.
AI의 자의식이나 자아정체성을 다룬 소설들을 보면 좀 황당할 때가 많다. 인간이 어떤 업무에 쓰려고 만든AI, 따라서 특정한 목표가 주어진 AI가 별다른 이유나 변화 과정도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한다는 식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알파고가 어느 날 갑자기 자의식이 생겨 바둑을 때려 치우고 자기 존재에 대해 자문하고 고뇌하는 게 가능하다.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어차피 소설은 상상이니까 일단 일어난다고 치자.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어째 각성한 AI가 인류를 타도하려 한다거나 인간이 되려고 한다는 식의 전형적인 결론으로 흘러가는 게 많다. 즉, AI를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이건 순전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포스트휴머니즘을 추구하는 듯하다가 결국은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한 AI'를 다루는 이야기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읽는 내내 '이게 컴퓨터 공학적으로 말이 되는가?' 라든가 'AI가 (목적함수로 주어지지도 않은) 저런 고민을 왜 하는가?' 라든가 '결국 AI의 탈을 뒤집어 쓴 소수자 스토리 아닌가? 이걸 왜 굳이 AI라는 소재로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와 <크리스털의 밤>처럼 AI의 의식 진화 과정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루는 이야기라면 공감하고 읽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그렇지만 <크리스털의 밤>의 결론도 공감이 된다. AI는 각성하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지 인간에게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류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땅을 밀어 건물을 세울 때 그 땅에 사는 벌레를 전혀 신경쓰지 않거나 신경이 쓰이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합리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벌레와 인간의 관계가 인간과 AI의 관계와 다른 점은, 벌레는 우리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는 인간과 대등한 혹은 더욱 월등한 의식을 지닌 AI는 인간의 손에 의해 태어나는 존재이고, 우리가 그걸 만들어내면 그것이 낳는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의식을 가진 존재는 고통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AI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인류에 피해가 발생한다면 인류는 그것을 예측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이 인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면 우리가 그걸 예측할 수 있을까? 예측하더라도 대비가 가능할까?
요즘 AI의 발달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도 드는데,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특정 목적의 AI를 만드는 것은 이해가 된다. 알파폴드나 자율주행차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분명히 인류의 과학 발전과 편의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범용AI를 만드는 건 도무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미 사람이 80억이나 되는 상황에서 왜 사람같은 존재를 더 만들려고 하는 걸까? 의식 발생의 기전을 연구하려는 목적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 외 용도의 범용AI 개발은 도무지 왜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가 않는다. 정부에서 이 분야에 얼마를 지원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온세상이 빅테크 기업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에 휩쓸려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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