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5.
어린이날이자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그렉 이건의 <잠과 영혼>의 두 번쨰 수록작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읽었다.
이 단편은 공교롭게도 엄마가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이걸 읽고 싶었던 걸까? (^^)
주인공 아이샤는 아주 낮은 당첨 확률의 달나라 여행에 당첨돼 막 결혼한 남편과 달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는 과학자 칭이, 즈린, 마틴, 용이 기지에 머무르며 각자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아이샤와 남편 지아니는 그곳을 견학하며 신혼여행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된다. 과학자들은 여러 노력 끝에 지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 중 즈린, 마틴, 용이 하나뿐인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가 버린다.
이에 분노한 지아니가 발사하려는 우주선에 매달리다 화염에 휩싸여 죽게 된다.
칭이와 단 둘이 남은 아이샤는 기지의 자원으로 버티며 아이를 낳아 키운다. 그러다 마침내 달을 떠나 지구로 갈 계획을 세운다.
우주선이 없는데 어떻게 가려는 걸까? 그것은 바로 '모라벡 스카이훅'이라는 장치를 통해서다.
그렉 이건 <잠과 영혼> 하드SF의 정수
D-29

미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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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적도 궤도에 쏴 올린 '모라벡 스카이훅'은 달 지름의 무려 3분의 1에 달하는 거대한 회전 케이블이었는데, 월면에 대해 수직으로 회전하면서 달의 자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 주위를 돌고 있었다. 케이블 자체는 달의 자전과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데, 그 회전 속도는 진자처럼 월면 상공을 스치며 역전해 오는 케이블 말단의 통과 속도가 그 궤도 속도를 순간적으로 상쇄할 정도로 빨랐다. 알기 쉽게 말해서, 달의 적도를 따라 굴러다니는 거대한 바퀴의 바큇살 한 개의 움직임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그 가상 바퀴의 진로는 달 지면에서 수 킬로미터 상공에 있기 때문에, 월면에 있는 인간이 제아무리 높이 뛰어오르더라도 케이블에 맞아 머리통이 박살 날 우려는 없다. 머지않은 장래에 스카이훅은 우주선과 보급 물자를 갈고리에 걸어 원심력으로 화성까지 날려 보낼 예정이었다. 아직 스카이훅은 그 개념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해 주는 근사한 전시물에 불과하고, 그 모습 역시 지치지도 않고 재주를 넘는 대벌레를 연상시키지만 말이다. ”
『잠과 영혼』 72~73,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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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은 채로 우주복을 입고 월면차를 타고 달 반대쪽으로 가서 비계를 쌓은 뒤 스카이훅에 걸려 지구로 날려보내진다!!! 그리고 지구 궤도에 다다르고, 타원 궤도를 돌면서 지구에 착륙할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조금만 계산을 잘못하거나 타이밍이 안 맞거나 뭔가가 삐끗하면 우주 미아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혹은 지구의 땅 위로 불타는 혜성처럼 내리꽂히거나. 하지만 아이샤는 안정적으로 궤도를 돌면서 천천히 지상에 돌입할 수 있는 각도와 속도를 시뮬레이션한 뒤 그걸 실행에 옮긴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그 긴박감을 아이샤가 활용하는 우주 공학에 관한 묘사로 잘 보여주고 있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38만 킬로미터라고 알고 있다. 우주선으로 가도 하루만에 못 가는 거리이다. 스카이훅에 걸려서 날려보내졌다면 그 속도는 우주선보다 빠를까, 느릴까?
소설 속에서는 달을 떠나 지구에 착륙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된다.(며칠~몇십일) 그렇다면 그동안 아이샤는 아기를 안은 채로 버텨야 하는 것이다. 빨대로 액상 식품을 빨아 먹고 아기에게는 젖을 먹이고 그동안 배출되는 대소변은 계속해서 기저귀에 쌓이는 채로. 아무리 공기와 수분을 우주복이 유지시켜준다 해도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이샤는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리고 아기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소설은 아이샤와 아기가 지구 궤도에 안착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들이 지구에 무사히 착륙할지 못할지, 지구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통신이 끊기고 구조대도 오지 않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나는 물론 이들이 잘 착륙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사실 이 작품은 허블에서 2년간 반짝 발간하고 더 이상 발간하지 않는 <SF널>이라는 앤솔러지에서 먼저 본 작품이다.(제발 계속 발행해 주시길!!!) 그때는 스카이훅이라는 소재 자체가 신기하게 생각됐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아이샤의 모성애와 용기가 눈물겹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이샤는 아이가 없었다면 저런 모험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에서는 아이가 언제 어떤 이유로 생사를 넘나들게 될지 모르고, 설령 장수하게 되더라도 홀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렉 이건의 출간작을 읽는 건 <내가 행복한 이유>, <쿼런틴>, <대여금고> 이후 네 번째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읽을 수록 이래서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SF 작가들이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소재를 쓰기 때문이다.
그는 참신한 소재를 쓰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소재와 유기적으로 연관된 서사와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다. 적절한 심리 묘사는 물론이다. 소재에 관한 과학적, 기술적 묘사 또한 적정한 선에서 이루어진다. SF 작가들이 흔히 하는 실수-자세한 세계관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묘사를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최대한 말하기가 아닌, 보여주기 식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 제목을 인용해서 말하자면, 그는 바로 <내가 행복한 이유>이다.

미식가들
2026.05.11.
세 번째 수록작 <너 혼자서?>를 읽었다.
작가의 말에서 그렉 이건은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벌이나 개미와 사뭇 다른 인간에게 적용될 때 인간이 그에 어떻게 저항할지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야기는 소설 속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네 명의 일란성 쌍둥이 카이우스, 사일러스, 라이터스, 루퍼스 중 하나인 루퍼스가 연락을 끊고 사라진 라이너스를 찾아 그가 다니던 수영장과 그가 살던 아파트를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네 쌍둥이는 컬트에 미친 어른들과 부모에 의해 뉴럴 링크를 삽입당한 뒤, 세상을 정복할 집단 지능을 키우는 실험의 피실험자로 양육되었다. 그래서 쌍둥이들은 서로의 기억을 공유했는데, 실험 관계자들이 아동 학대로 잡혀간 뒤에도 링크를 제거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연대를 지켜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라이너스가 링크를 끊고 사라진 것이다.
카이우스, 사일러스, 루퍼스는 라이너스가 왜, 어디로 사라졌을지를 추적한다. 그 결과 밝혀진 것은 라이너스가 어느 거부와 '링크'되기로 결심하고 그의 후원을 받아 경영대학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추적 과정과 그 이후 라이너스와 재회하여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세 사람은 라이너스가 다른 형제들의 그림자로 살아왔고 그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들은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각자가 배운 학문이나 언어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약간의 이득을 보고 있었는데, 카이우스와 사이러스가 수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루퍼스가 그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아 수학 교사가 되고 나니, 루퍼스는 그들과 경쟁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
세 사람은 루퍼스가 그 거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루퍼스를 납치하려 하지만 루퍼스를 통해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부에 의해 저지 당하고 만다. 루퍼스는 형제들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인생이 맞는지, 그저 얼마 안 가 죽게 될 거부의 새로운 몸이 될 것인지는 본인 스스로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채로 이야기는 끝난다.
사람들의 뇌를 무수히 연결하면 마치 컴퓨터를 여러 대 연결한 것처럼 복잡한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쓰인 SF가 꽤 있는데, 저자는 거대한 유기체의 세포처럼 행동하는 개미나 벌과 달리 사람은 고도의 의식과 자아정체성을 가진 동물이기에 그런 식의 집단 지능을 발휘하기 힘들 거라고, 혹은 애로사항이 많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실은 나도 비슷한 소재로 몇 년 째 구상 중인 작품이 있어 이걸 읽고 '역시나 한 발 늦었군'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건 집단 지능과는 관련이 없고, 의식이 동기화되면 영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지만, 집단에 속한 개인이 집단정체성에 환멸을 느끼고 개인정체성을 추구하는 부분은 결이 비슷해 보인다.
아무튼 이 작품은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지, 따라서 왜 사람을 기계처럼 쓸 수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예전에 출간된 <내가 행복한 이유> 등에서 사람의 뇌가 기계처럼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걸 생각하면 저자가 사람을 얼마나 복잡다단한 존재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역시 SF는 '과학'소설이기 이전에 과학'소설'이므로 과학과 기술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미식가들
2026.05.20. <꿈 공장>
주인공 제임스는 컴퓨터공학과 대학생이다. 그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녹초가 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이 들어간 공유 하우스에서 하우스메이트들이 유튜브에 올리려는 목적으로 반려묘의 뇌에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이식해 반려묘의 행동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고 언짢은 마음을 느낀다.
그는그 일에 관해 친구 세라와 대화를 나누다 얻은 아이디어를 이용, 그 반려묘 포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해킹해 성능이 떨어지게 만든다. 그러던 중 그는 포포의 꿈을 보게 되고, 꿈속에서는 주인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포포의 행동이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제임스는 포포와 같은 반려묘들을 구하기 위해, 반려묘의 꿈을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배포한다. 반려묘들의 본성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이 어떤 것인지, 즉 진정으로 반려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주인들로 하여금 직접 목격하고 깨닫게 만들려는 것.
애플리케이션은 성공리에 팔려나간다. 유명한 가수가 그 애플리케이션을 칭찬한 덕분이다.
제임스는 꽤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그 애플리케이션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반려묘에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이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반려묘의 꿈을 보겠다는 이유로 그 장치를 이식하게 만든 것.
고양이를 구하려는 행위가 도리어 더 많은 고양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임스는 친구 세라와 함께 그 애플리케이션을 닮았지만 안 좋은 기능을 가진 불법 애플리케이션을 일부러 만들어서 다크웹에 퍼뜨린다.
그렉 이건의 단편집을 읽어 보면 항상 하드한 글만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조금 소프트한 글도 있다. 전에 나온 단편집에서도 제약 회사들의 임상 실험에 관한 문제를 다룬 단편이 있었다. 물론 두 작품 다 SF이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다루기 때문.
이 단편은 주인공 제임스와 친구 세라의 협력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돼 있고 글 전체의 분위기도 밝지만 다루는 주제는 전혀 가볍지 않다. 한 마디로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잔인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반려동물 영상을 올리면서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반려동물을 괴롭게 하는 모습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됐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조금 삐딱하게 보는 입장이다. 동물들이 싫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귀엽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선택된 동물만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동물은 멸종되는 이 현실을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동물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거라고는 볼 수 없다. 이 많은 인구 때문에 각종 환경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인간의 선택을 받은 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도 환경 문제는 발생한다. 엄청난 양의 사료 생산(농업은 굉장히 환경 파괴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사료 생산지의 확보를 위한 벌목, 그로 인한 탄소 배출과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 등등의 문제 말이다.
그 결과,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한 마디로, 반려견과 반려묘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 반면 늑대나 호랑이는 점점 줄고 있다는 거다. 이건 인간들의 사냥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식지의 감소도 한 몫 한다. 인간들이 도시 건설이나 농지 개간 등의 이유로 산천초목을 밀어버리기 때문.
이제 야생동물은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고(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동물원이 멸종 위기 동물의 보존 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나마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동물들은 인간이 일으킨 서식지 파괴와 기후 변화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다.
그 밖에도, 반려동물들이 물건처럼 만들어지고 팔려나가는 현실 또한 보고 있으면 맘이 좋지 않다. 야생동물을 잡아와서 집에 가두고 키우는 것도 문제다. 호랑이나 침팬지 같은 동물들... 사냥 본능이 있는 호랑이는 넓은 영역을 다스리고 살아야 하는데...침팬지는 무리 생활을 해야 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무리 짓는 본능이 있는 개를 한 마리만 키우면서 주인이 외출할 때 데리고 나가지 않고 집에 홀로 두는 것도 개를 괴롭게 하는 문제라고 본다.(실제로 우리 아래층 개는 그럴 경우 몇 시간이고 짖어댄다. 성대가 망가질까 봐 걱정스러울 정도다.) 개들 입장에서는 아파트에 갇혀 사는 것보다 넓은 들판에서 동료들과 맘껏 뛰어다니고 짖고 하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고로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순전히 인간의 욕심이라고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하긴 뭔들 안 그럴까. 애 낳는 것도 부모의 이기심 때문이지. 내가 당장 숨 쉬고 먹고 싸고 사는 것도 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말이다. 인간이 예술한다고 전기 쓰고 종이 쓰고 물감 쓰고 하는 것도 결국은 환경 파괴로 이어지고, 스포츠 한다고 땅 밀어서 축구장, 야구장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골프장과 아파트 단지의 조경을 유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얼마나 쓰는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
결국은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이고, 따라서 각자의 욕망을 어느 정도는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의 입장도 한번씩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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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크라이시스 액터스>
크라이시스 액터스 crisis actors 는 재난 현장의 파괴력을 과장하기 위해 피해자를 연기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기후위기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기 위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 주인공의 재난 경험을 다룬다. 그것을 보여주는 구조가 재미있는데, 주인공 칼이 시종일관 냉소적인 심리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칼을 보며 냉소하게 된다는 거다.
소설은 이혼남이자 실직남인 칼이 자기 아버지가 사 온 유사과학 제품을 비웃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장면만 보면 그가 굉장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는 기후위기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믿는 단체에 속해 있다. 그래서 단체의 명령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연료를 만드는 기계를 일부러 고장 내러 다닌다. 그 기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지구에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에 매혹당한 탓도 있다. 그러다 그는 큰 건을 하나 맡는데, 재난 현장에 가서 재난 피해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증거를 포착하는 것이다.
그는 사이클론이 예보된 어느 섬으로 가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그러면서 가짜 피해자들이 써먹을 수 있는 가짜 혈액 같은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다른 자원봉사자로부터 지청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거기서 겪은 것은 재난이 얼마나 끔찍한지이다. 그가 본 것은 모두 진짜 재난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단체의 수뇌부에 보고한다. 그곳에서 피해자를 연기하는 가짜 피해자(크라이시스 액터)는 보지 못 했다고. 그런데 여기서 웃긴 게, 그 수뇌부 사람의 답변이다. 자네가 거기 가서 감시를 하는 것을 그들이 눈치 채고 오지 않은 거라고.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게 딱 이런 건가 보다.
결국 칼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계속 같은 활동(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크라이시스 액터 찾기)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 온난화가 진짜냐 아니냐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다들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매년 역대 최고의 더위가 찾아오고 있으니... 이 이야기의 주인공 칼과 그의 동료들은 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나 더 더워져야 진실을 받아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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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 <미토콘드리아 이브>
이 작품은 20여 년 전에 이슈가 되었던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브라이언 사이키스의 <이브의 일곱 딸들>과 <아담의 저주>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 나와서 반가웠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우리 몸의 세포가 세포핵 내의 상염색체와 성염색체 외에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별도로 갖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이용하면 모계 혈통을 분석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우리 세포핵 내의 염색체는 부모에게서 반반 받지만 미토콘드리아는 100% 모계 유전이다. 난자와 정자의 수정으로 아기가 생기는데 난자에만 미토콘드리아가 있기 때문이다.(정자는 난자 속에 염색체만 전달하고 나머지 물질은 사라짐)
따라서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이 각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역추적하여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당시 브라이언 사이키스의 <이브의 일곱 딸들>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이용해서 모계 혈통을 추적해 올라가면 크게 일곱 계의 혈통으로 나뉘고 그 일곱 명이 모두 하나의 조상, 즉 이브로부터 분기되어 나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아담의 저주>는 남성이 가진 Y염색체를 이용해서 부계 혈통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다. 내 기억으로 Y염색체를 이용한 분석에서는 이브처럼 조상이 좁혀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에서 나왔던 흥미로운 이야기는 동유럽 남자들의 꽤 많은 수가 칭기츠칸의 후손이라는 점이었다. 한편으로 제목에 '저주'가 들어가는 이유는 Y 염색체가 세대를 거듭할 수록 점점 작아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거다.
원래 X 염색체와 Y 염색체는 오래 전에는 크기가 같았는데 어떤 이유로 Y염색체가 점점 그 속에 포함된 유전자를 잃고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래서 이러다 남자들이다 없어지고 여자들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스개소리 같은 약간의 걱정을 하기도 한다.
여하튼 두 책은 모계 혈통과 부계 혈통을 우리 세포의 염색체 분석을 이용해서 조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렉 이건의 단편 <미토콘드리아 이브>에서는 이 혈통 찾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작중 주인공인 폴의 표현에 의하면 '족보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발단은 <이브의 아이들>이라는 유전자 분석 회사가 100달러를 내면 유전자를 분석해서 조상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리학과 포닥인 폴은 여자친구 리나의 성화에 못 이겨 분석을 받는다. 리나는 모든 사람이 그 분석을 통해 우리가 모두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갈등과 싸움이 사라질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진 반인종주의자다. 반면 폴은 그러한 갈등이 혈연이나 인종과 관계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거라고 믿고 있지만 리나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 그런 생각을 겉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연구자금이 끊겨 실직 위기에 처한다. 그의 연구는 EPR 인데(서로 얽힌 두 입자가 멀리 떨어지더라도 얽힘 상태를 유지하여 한 입자의 상태가 측정되면 나머지 입자의 상태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현상) 리나는 그의 연구를 DNA 분자에 적용하자고 설득한다. 그 방법을 통해 지금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두 DNA 분자가 한때는 같은 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공동의 조상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폴은 리나에게 설득되어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본 <이브의 아이들>은 폴에게 거액의 연구 자금을 제공한다. 폴은 족보니 혈통 따위에 관심이 없지만 물리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리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어느 연구 그룹에서 Y염색체를 이용하여 부계 혈통을 추적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달리 모든 인류가 하나의 조상을 가진 게 아니라 국지적으로 각각 다른 조상을 가진다는, 즉 인종이라는 것이 단지 인간이 만든 개념이 아닌 정말로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암시하기에 해당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폴은 그 갈등에 휘말려 다치게 되지만, 그래서 연구를 다 때려치우고 싶고 심지어 리나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까지 잠깐 먹지만, 결국 다시 리나에게 설득되어 연구를 계속한다. 그리고 10여년의 연구 끝에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는 물론 세포핵 내의 상염색체까지 연구하여 인류의 족보의 결정판을 완성한다.
그 연구의 결론은 인류의 공통 조상은 없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했으며 굳이 공통 조상을 찾는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일까? 폴은 이 결과를 발표하며 이브 지지자들과 아담 지지자들 양쪽의 야유를 받으며 소설이 끝난다.
이 역시 그렉 이건의 냉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람이 어떤 사실에 대해 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 때문에 서로를 상처내고 공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것은 어떤 과학적인 사실을 밝힌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담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도 책의 제목과 내용 때문에 상당히 공격을 받은 걸로 안다. 도킨스는 단지 어떤 환경에 유리한 유전자가 살아남고 불리한 유전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단순한 사실, 진화가 개체나 집단 단위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로 이루어지며 진화의 주체가 유전자라는 사실을 말한 건데, 사람들은 저 책을 읽고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혹은 유전자가 우리를 그렇게 설계했다는 식의 곡해를 하곤 한다. 그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단순히 곡해만 하면 모르겠는데 어떤 과학적인 사실을 교묘히 포장해서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기까지 한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골상학자였던 프랜시스 골턴은 진화론을 이용해 우생학을 탄생시켰고, 히틀러 같은 사람은 그 이론을 받아들여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다. 반대로 인간이 고수하는 어떤 의미 때문에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게 지동설 아닐까? 다윈의 진화론도 처음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비난을 많이 받은 걸로 안다. 그 외에 지질학 쪽에서도 지구 역사가 몇 십 억년이나 된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 종교계의 공격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왜냐면 그들이 말하는 지구의 역사가 성경에 표현된 것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조선 말에 쇄국 정책 펼친 것도 비슷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기술을 상대가 갖고 있는 걸 보면서도 그저 문을 막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결국 이 소설도 <크라이시스 액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믿음이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린다는 것.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지 한번쯤 의심해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이브의 일곱 딸들이 책은 유전학을 통해 밝혀낸 인류의 족보다. 놀랍게도, 저자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불과 7명의 조상 여성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이름하여 '이브의 일곱 딸들'. 수천년 전의 족보를 밝혀낸 셈이다.

아담의 저주 - 남자 없는 미래<이브의 일곱 딸들>을 써서 학계와 대중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브라이언 사이키스의 책. 이 책에서 저자는 '남자는 유전적으로 수정된 여자일 뿐'이며 남자를 남자이게 하는 바로 그 Y염색체 때문에 남성의 쇠락은 운명지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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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2026.05.24. <암흑 정수>
그렉 이건의 이전 단편집인 <내가 행복한 이유>에 수록된 단편 <루미너스>의 후속작이다.
따라서 <루미너스>의 내용을 알아야 본작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수학에 약한 나는 사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강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전제하는 얘기는 이거다. 수학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작품에서는 '결점'이라 칭한다. 결점은 우리의 수학으로 증명함으로써 우리의 수학을 확대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수학 체계로 증명해서 우리의 수학을 축소시킬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결점'은 두 수학 체계 간의 경계라고 볼 수 있다.
<루미너스>에서는 주인공들이 처음으로 결점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느 기업이 악용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슈퍼 컴퓨터 <루미너스>를 이용해 결점을 차례차례 제거한다. 하지만 곧 결점이 우리의 수학을 침범해 오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이쪽과는 다른 수학 체계로 된 다른 우주에서 자신들의 수학이 파괴되는 것을 발견하고 반격을 가한 것.
수학은 우주를 이루는 원리이기 때문에 수학이 파괴된다는 것은 우주 자체가 파괴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어느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었음을 깨닫고 결점을 파괴하던 행위를 멈추고 양쪽 세계가 휴전을 하게 된다.
<암흑 정수>는 그 이야기의 후속작이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는 계속 연락을 유지하며 휴전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그와 함께 주인공 브루노는 <루미너스> 때의 동료들인 엘리슨과 위안과 함께 우리 세계의 기업이나 정부들이 '결점'에 대해 알지 못하게 그에 관한 정보를 지키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이 그것을 악용할 것을 두려워한 것.
그러던 어느 날, 브루노는 저쪽 세계에 공격이 가해졌다는 연락을 받고 원인을 찾다가 캠벨이라는 수학자가 연구를 하던 중에 의도치 않게 '결점'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이해가 안 된다. 다만 캠벨이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개념 중에 '암흑 정수'라는 게 있는데 그게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브루노는 비밀리에 캠벨의 연구를 방해하고, 곧 그걸 알아낸 캠벨이 찾아와 항의하자 '결점'에 대해 솔직하게 밝힌 뒤 캠벨을 자신이 속한 이 '비밀 결사대'에 끌어들인다. 이후 캠벨은 브루노의 동료가 되어, 자신의 연구를 확장해 저쪽 세계의 지도를 조금씩 작성한다.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의 정보를 가져가기만 하고 자기들 정보를 주지 않는 점에 이렇게 대응한 것.
이 부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한층 돋보이는데, 이쪽 우주와 저쪽 우주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 체계의 이질성 때문에 서로를 물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중첩돼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캠벨은 그 작업을 계속하고, 저쪽 세계에서 캠벨이 자신들을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려달라고 하지만 브루노는 우리 쪽에서도 무기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쪽 세계의 공격이 시작된다. 브루노와 동료들은 저쪽 세계의 강경파가 우리 쪽에서 가진 무기를 염두에 두고 우리 세계를 선공하는 것으로 판단한 뒤, 캠벨의 연구 결과를 이용한 무기를 저쪽 세계에 투척하는 식으로 보복을 감행한다.
그러자 얼마 뒤 저쪽 세계에서 휴전 협정을 제안해 오고, 브루노와 동료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 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인 결점, 즉 그간 유동적이었던 그것을 아예 한 자리에 고정을 시켜버리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을 저쪽 세계에서도 받아들이고, 브루노와 동료들은 두 세계의 경계를 고정시켜 어느 족에서도 경계 확장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자세한 수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몰라도 수학 체계가 우주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읽으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전쟁과 다른 것이, 보통의 전쟁에서는 시설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어도 자연 그 자체는 남아 있지만, 이 전쟁에서는 우리가 속한 세상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하나의 결점을 어느 쪽 세상에서 증명해 버리느냐에 따라 각자의 세상의 수학 체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각 세계의 물리 법칙도 달라진다.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리고 우리 자체도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소설로 표현한 셈이다. 예전에 막스 테그마크의 우주론에 관한 책을 사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그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행복한 이유“테드 창”의 숙명적 라이벌, “김초엽”의 가장 추천하는 작가, 그렉 이건의 중·단편집 『Axiomatic』(1995), 『Luminous』(1998), 『Oceanic』(2009)을 엮어서 묶은 이번 선집의 첫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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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2025.05.25. <방랑자의 궤도>
앞서 읽은 <암흑 정수>처럼 수학을 소재로 하는 SF이다.
이 작품에서는 '끌개', 영어로는 attractor 라고 하는 개념이 나온다.
끌개란 작품 첫 페이지의 각주에 의하면 '수학의 동역학계 및 카오스 이론에서 시스템의 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렴하게 되는 일련의 상태의 집합. 어떤 시스템의 특정 영역(인력권) 내의 모든 궤적은 결국 이 지점으로 이끌려 들어간다는 수학적 결정론의 핵심 개념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간단히 이해한 바로는 카오스 이론에서 다루는 복잡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하나의 상태로 수렴하는데 그 수렴하는 지점을 끌개라고 부르는 것 같다.
주인공(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못 봤거나)인 나는 여자친구인 마리아와 길을 방랑하며 살고 있다. 몇 년 전에 온 세상에 사상의 '끌개'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각 사상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는데 주인공과 마리아는 특정한 사상에 의지해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상은 일종의 밈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작품에 나온 말은 아니고, 내 생각)
현재 세상의 각 지역들은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를 믿으며 모여 살고, 그러다 보니 각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해져서 서로 싸움을 일으키는 일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또 그게 가능한 게, 사상이 다른 공동체 간의 교류는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나와 마리아를 비롯한 '방랑자'들이다. 이들은 비록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고 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한다 해도 각 공동체의 생활 기반이 되는 도시로 가기를 거부하고 각 도시의 영향력이 최소화되는 균형 지점, 즉 도시의 외곽을 골라서 매 순간 이동을 하며 산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유동적인 끌개 간의 간극 때문에 결국 어느 끌개의 영향을 받아서,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곳으로 끌려가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도시를 탈출하여 아무 끌개가 존재하지 않는 숲 같은 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도시를 탈출하는 경로를 찾지 못했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사는지는 명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방랑 중에 어느 여자의 연설을 듣고 마리아와 내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대강 짐작이 된다. 그들은 남들이 만든 사상과 종교에 물들고 싶지 않은 듯하다. 자신만의 주체적인 생각에 따라 살고 싶은 거다.
하지만 방랑자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그 여성은 방랑자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가 방랑자들 각자가 자신의 끌개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내놓는다. 다른 거대한 공동체의 끌개에 끌려가지 않는 균형 지점을 맴도는 것이 내가 그 끌개에 끌려가려 하지 않는 노력 덕분이 아니라 내가 나의 끌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를 탈출할 경로도 찾지 못하는 거라고...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여자의 의견에 반대한다. 내가 어떤 끌개에 의해, 말하자면 자의가 아닌 그런 개념에 의해 끌려다녔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 여성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상태로 계속해서 방랑을 재개하는 것으로 이 소설을 끝이 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것은 내가 어떤 끌개의 영향력에 가까이 가 있는가에 따라 시시때때로 생각이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그 묘사를 보면서 주인공의 생각이 정말로 주인공의 생각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주인공의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끌개의 영향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끌개'라는 수학적인 개념을 인간의 사상와 접목시켜 그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람의 생각이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사람은 결국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고,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가진 생각은 사실 알고 보면 어릴적 부터 주입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걸 의식해서 내가 내 생각을 바꿔가려고 노력한다 해도, 결국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래 전에 읽었고 얼마 전에 재독한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곳에서 <이기적 유전자> 읽기 모임을 하면서,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유전자의 설계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인지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묻는 것을 본 까닭이다. 그 의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일단 유전자는 스스로 뭔가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저 생존에 유리한 특성(그것이 본성이든 이성이든)을 발달시킬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며 그것이 유전자라는 정보 체계를 통해 전달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특성을 타고 난다 하더라도 커 가면서 교육과 자기 성찰 의해 그러한 특성을 바꿀 수 있는데, 또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각 개체의 의지에서 발현된 거라고는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태도 자체를 교육 받고 주위 환경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도 중요하지만 양육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글리'처럼 어릴 적부터 야생에서 자라거나 방치된 아이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완전히 야생화 되어 있어서, 뒤늦게 사회에 편입되고 교육을 받더라도 언어를 습득하거나 문명인처럼 살아가지 못한다. 도리어 그런 활동이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일찍 죽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또 든 생각은 사람의 사상, 종교 등을 밈으로 본다면 작품 속의 세상은 밈의 진화가 완성된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밈은 사람을 전달 체계로 삼아 끝없이 전달되고 변형되고 하면서 진화하는데, 작품처럼 '끌개'가 존재해서 각자의 밈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살고, 그 밈에 따라 살면서 다른 밈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과는 교류가 없다면 결국 각각의 밈은 그곳에서 정체된 채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랑자의 궤도>는 그런 세상에서 그 어느 밈에도 기대어 살지 않으려 하는 방랑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책은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끌어내려 진화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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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2026.05.26. <잠과 영혼>
단편집의 표제작이자 마지막 수록작인 <잠과 영혼>을 읽었다.
배경은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이다.
초반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응?' 하는 부분이 계속 있었다. 죽은 줄 알고 묻었는데 사실은 죽지 않아서 묘를 뚫고 나온 주인공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가 잠깐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 속 사람들은 그의 의식이 연속성이 없다며, 그가 죽기 전과 동일한 사람이 아니고, 심지어 악마가 그 몸에 들어앉은 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원래의 성경 구절과 다른 구절을 읊는 모습을 보면서까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주인공 제시가 이웃집 아이를 돌보는 장면에서 비로소 세계관을 이해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잠을 자지 않는다. 사고나 병으로 가끔 그런 일(정신을 잃거나 잠드는 일)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해되어, 그들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매장된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 내버려두면 다시 깨어났을 사람들을 전부 생매장했다는 것 아닌가?
이 세상에서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잠을 자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 때문에 동물들이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영혼과 의식은 탄생부터 천국까지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신을 잃거나 잠을 자는 순간 영혼이 빠져나가 그 몸은 그저 반사신경을 가진 기계로 인식된다.
제시는 이웃집 아이가 고열로 정신을 잃는 것을 보며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의사를 부른다. 자신의 여동생이 어린 시절에 아파서 정신을 잃었다가 매장된 것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묘에 묻혔다가 살아 돌아온, 실제로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그는 자신의 여동생도 혹시 그저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어린아이가 홀로 관속에서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생각하다 아픈 이웃집 아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를 부른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는데, 의사가 아이를 죽은 것으로 판명해 매장하라고 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제시 자신도 무덤에서 돌아온 자신이 진짜 아들임을 믿지 않는 부모, 혹은 믿는다고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나를 토막 내어 다시 묻거나 노예로 삼을 거라고 경고하는 그들의 말 때문에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시가 부른 의사는 사람이 의식을 잃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며 그것을 죽음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는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이웃집 아이는 병에서 회복하게 된다.
한편 제시는 고향을 떠난 뒤부터 대도시 뉴욕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었는데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죽은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악마라 비난하며 공격하는 바람에 집과 직장을 잃게 된다.
제시는 이웃집 아이를 돌봐준 의사 할로의 도움으로 뉴욕을 빠져 나가고, 할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본인의 경험을 강연하고 다니게 된다. 본인이 악마가 아님을 증명하고, 사람이 정신을 잃었을 때 영혼을 잃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제시와 할로는 모턴이라는 치과 의사를 만난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마취제를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두 사람의 강연 여행에 합류한다. 의식을 잃었다고 해서 영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면 수술할 때 그 마취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전국을 돌며 마취제로 사람들을 마취시켜 수술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입지를 확장해 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만, 보수적인 이들은 여전히 그렇지 못해, 그러한 마취 행위를 살인 행위로 간주하는 주가 생겨나기도 한다.
할로와 모턴의 공개 수술이 인기를 얻자 제시는 자신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뉴욕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자신을 지지해준 아내와 재회하려 한다. 하지만 노예 해방에 몸 담고 있는 동료 앤더슨이 마취제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해 와서 그러지 못한다. 앤더슨은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들을 마취시키는 방식으로 노예들을 구하고 노예 제도를 타파하려 한다. 보수주의자들인 농장주들이 마취를 경험한 뒤, 죽은 것으로 인정돼 재산을 친척들에게 상속해야만 하는 상황에 닥치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제시는 앤더슨의 계획이 영리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마취제를 구해준다. 그리고 앤더슨의 계획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아내 크리스틴에게 재회를 약속하고 그간 자신을 지지해 준 것을 감사하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작가의 글'을 보면 이 글은 사람의 기억을 복제한 로봇이나 AI 같은 것들을 사람들이 보면서 내비치는 미신적인 생각을 보면서 느낀 불쾌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쓰였다고 되어 있다. 그것은, 당연히 그런 로봇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갖고 있을 리 없지만, 애초에 사람한테 영혼이란 게 없다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본 작품에서도 의사 할로는 영혼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식 혹은 영혼은 그냥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어떤 '존재'가 아니다. 뇌가 없으면 의식도 없고, 영혼도 없는 거다. 만약 내가 영혼을 운운한다면 그건 그냥 의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지 정말로 사람의 몸을 들락거리는 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소설 속 사람들의 미신처럼 자아가 연속성을 유지해야 그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면, 현실의 우리는 매일 밤 리셋되어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다들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나? 결국 우리는 세포로 이루어진 존재, 각 세포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살아가는, 일종의 기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생명체도 하나의 기계라고 해서 존엄성이 없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유무 때문이 아니라, 서로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누군가 느끼는 고통이 단지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현상이라 해도, 그것은 나한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내 고통을 존중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고통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렉 이건의 단편집을 읽으며 생각의 틀이 흔들리고 멍해지는 기분을 많이 느꼈다. 이래서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렉 이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나 홀로 독서 모임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바란다.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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