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러분이 딱 좋아하실 만한 책을 최근에 읽어서 소개합니다. <기획회의>(2026년 5월 20일)에 쓴 큐레이션 글입니다. 반강제로 작은 동거인에게도 읽혔는데, 뜻밖에 아주 재미있게 읽고서 서로 의견도 주고받았어요. 함께 읽고 의견 나누기 좋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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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소중함’을 읽는 법]
요즘 가장 흔하게 소비되는 단어 가운데 ‘이타’와 ‘돌봄’이 있습니다. 평생 이타나 돌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게 빤한 이들이 얼굴 가득 선한 웃음을 띠고서 그런 단어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서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저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역질을 참아야 할 정도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타’나 ‘돌봄’이라는 단어를 고민 없이 너무 쉽게 사용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타’의 뜻을 “자기의 이익보다는 다른 이의 이익을 더 꾀함”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돌보다’는 그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로 간단히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타나 돌봄은 이보다는 훨씬 더 섬세하게 살펴야 할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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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화 생물학에서 ‘이타’는 “자신이 생존하고 증식할 기회를 팽개친 채 다른 개체의 생존과 증식 기회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애초 생존과 증식이 목표인 생명 활동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개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타적 행동은 인간이라는 종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종의 존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죠.
이타적 행동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은 21세기 진화 생물학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생존과 증식에 방점을 찍는 것만으로는 이타의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타와 돌봄의 의미를 제대로 숙고하기 위해서 일본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의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다다서재)를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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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우치 유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입니다. 일본에서는 2020년에 펴낸 첫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다다서재)가 독자의 호응을 얻으면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소개할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는 그가 2024년에 펴낸 두 번째 책입니다.
지카우치가 펴낸 두 책 모두 그의 전공인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핵심 개념 ‘언어 놀이’가 그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전혀 모르더라도 그의 책을 읽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책들을 통해서 덤으로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핵심을 어렴풋이 맛볼 수 있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책을 펼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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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우치는 책을 펼치자마자 이타와 돌봄의 개념부터 잡자고 독자에게 제안합니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제가 수많은 책에서 접했던 이타와 돌봄 개념의 핵심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고민까지 덧붙이는 제안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다음 설명을 들으면서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이타와 돌봄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타란 자신에게 소중한 것보다도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우선하는 것이다.”
“돌봄이란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함께 소중히 아끼는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
이 두 문장을 깊이 음미하면서, 지카우치의 설명을 좀 더 따라가 볼게요. 지카우치가 이타를 설명하면서 “소중한 것”을 전제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단지 생존과 증식만이 최선인 (인류가 오랫동안 진화해 온) 아프리카 사바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이 전제가 되는 시대이다 보니, 문화와 개인에 따라서 “소중한 것”이 저마다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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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지카우치는 깜짝 놀랄 통찰을 들려줍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심지어 찰스 다윈조차도 도덕의 토대로 지목했던 이타의 핵심 원리가 흔히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타인이 자신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타인을 대하라’입니다. 하지만 지카우치가 보기에 오늘날 현대인에게 황금률은 이타의 핵심 원리로는 역부족입니다.
“이 황금률은 상대방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훌륭하다고 보는지, 무엇을 추악하다 느끼는지, 무엇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 등을 공유하는 경우에만 이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황금률은 ‘당신과 나는 비슷한 존재다.’ ‘당신과 나는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라는 전제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죠.” (57쪽)
그러면서 지카우치는 현대 사회에서 황금률은 ‘타인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존중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이타를 “자신에게 소중한 것보다도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우선하는 것”으로 재정의한 까닭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설명까지 듣고 보면, 이타 그리고 그것과 뗄 수 없는 돌봄이 훨씬 무겁고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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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우치는 얼핏 추상적으로 보이는 논의를 구체적 사례로 독자에게 가닿게 합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조지 애컬로프 같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가르쳤던 일본의 전설적인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가 1974년에 펴낸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사월의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자기가 생각하는 이타의 원리를 소개하는 사례로 활용하죠.
이 두 책을 모두 읽은 저로서도 지카우치의 해석에 새삼 감동받았습니다. 그가 『침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볼까요. 『침묵』은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선교사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가 극심한 기독교 박해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잡힌 로드리게스는 결국 취조당하고 배교를 강요당합니다.
지카우치는 소설 속 로드리게스의 행적과 결단을 따라가면서 그의 행동이 왜 이타에 맞춤한지 설명합니다. 로드리게스는 신도를 구하고자 그가 평생 지키고자 노력했던(소중하게 여겼던) 가톨릭 교의와 사제의 의무를 저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우선합니다.
지카우치는 놀랍게도 이타에서 ‘자유’의 가능성으로 도약합니다. “자기에게 소중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기존에 자기를 구속하던 도덕과 상식의 틀에 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로드리게스처럼 그것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우선하려면 그는 기존의 도덕과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카우치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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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여기까지 읽고서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습니다.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파악하는 일, 즉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따르면 타인과 나는 전혀 다른 ‘언어 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언어 놀이’를 인류학이나 사회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맥락’이 있는 이야기로 이해해도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타적 행동을 하고 나아가 돌봄을 실천하려면 타인의 이야기(언어 놀이)를 대면하고 나아가 함께 새로운 이야기(언어 놀이)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카우치는 그런 언어 놀이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부터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일화까지 종횡무진 누비면서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는 압도적입니다. 지카우치의 사유가 한층 깊어졌습니다. 첫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가 이 저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면, 이번 책으로 그 만남이 우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타와 돌봄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지만, 그것의 인플레에 지친 여러분에게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 나를 되살리는 이타와 돌봄의 윤리학‘어째서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엇갈릴까?’ ‘왜 타인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헛돌고, 때로 상대방을 상처 입힐까?’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는 이런 물음의 답을 찾으며, 진정한 이타와 돌봄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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