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님의 대화: @도롱 @꽃의요정 @borumis @오구오구 아, 저도 요즘 계속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인데 뜻밖이네요. 왜냐하면, (제가 여성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죄책감을 가지실까 봐서) 자주 말하지는 않지만 (산모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전제에서) 자연 분만이나 (산모가 여건이 허락한다는 전제에서) 모유 수유는 정말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거든요.ㅠ.
『과학의 품격』(2019)에 썼던 글의 일부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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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가 아기의 몸에 좋은 건 모두 다 안다. 하지만 정작 왜 좋은지 물어보면 딱 부러지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모유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유 연구에 앞장서는 과학자 브루스 저먼(Bruce German)에 따르면, “모유에 관한 연구 논문 수가 혈액, 타액 심지어 소변보다도 적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저먼의 계속되는 독설에 따르면 “연구비를 지원하는 단체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 앓는 질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모유 연구를 “부질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영양학자는 “모유를 지방과 당분의 단순한 칵테일로 여겨, 쉽게 복제하거나 유동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독설은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어크로스, 2017년)에 나온다.)
하지만 모유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먹을거리다. 약 2억 년에 걸쳐서 진화를 거듭해 온 모유에는 젖당, 지방 그리고 다당류의 일종인 ‘올리고당’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과학자들은 모유 속에서 200가지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 모유 올리고당’을 찾아냈다. 한창 자랄 아기의 몸에 에너지원을 공급해야 할 모유의 구성으로는 최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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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전이 있다. 정작 아기는 모유 속에 세 번째로 많이 포함되어 있는 올리고당을 소화할 수 없다. 도대체 아기가 소화를 시키지도 못할 올리고당이 모유 속에는 왜 저렇게 많이 포함되어 있을까? 아기가 모유를 통해서 섭취한 올리고당은 소화가 안 된 채 대장까지 내려간다. 1950년대 중반에야 과학자들은 올리고당이 대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식량임을 알아챘다.
아기의 대장에서 모유에 담긴 올리고당을 먹어치우는 미생물은 왠지 귀에 익은 이름의 ‘비피더스균’이다. 저먼과 같은 과학자는 수많은 종류의 비피더스균 가운데 B. 인판티스(Bifidobacterium infantis)라는 특정한 세균이 올리고당의 포식자임을 알았다. 이 세균은 올리고당을 소화시키면서 단순한 형태의 지방산을 배출한다. 아기의 소화관 세포는 바로 이 지방산을 흡수한다.
그러니까 아기는 장내 세균(B. 인판티스)이 모유의 올리고당을 흡수하면서 배출한 지방산을 섭취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아기는 모유의 올리고당을 흡수할 때 장내 세균 단계를 한 단계 거치도록 진화했을까? 그냥 아기가 모유를 흡수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과정 아닌가?
이 대목에서 모유의 신비가 한 꺼풀 더 모습을 드러낸다. B. 인판티스는 모유의 올리고당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접착성 단백질과 항염증 물질의 생성을 돕는다. 접착성 단백질은 진흙처럼 소화관 세포 사이의 틈을 메워서 아기의 소화관을 강화한다. 항염증 물질은 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의 면역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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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이 착한 세균이 올리고당을 먹으면서 내놓는 또 다른 물질 시알산(Sialic Acid)은 뇌가 신속하게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물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려면 아기가 돌잔치 때까지 1년간 몸에 비해서 머리가 얼마나 빨리 크는지만 지켜보면 된다. 빨리 크는 머리와 덩달아서 커지는 뇌의 발달에 이처럼 모유와 착한 세균의 상호 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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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모유의 신비를 탐색하기로 했으니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살모넬라균(Salmonella), 콜레라균(Vibrio cholerae)처럼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병원균은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소화관에 자리를 잡는다. 그때 이 병원균이 달라붙는 곳이 바로 장 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한 모양의 당 분자(글리칸, glycan)다. 병원균 블록이 글리칸 블록과 만나서 결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리고당의 생김새가 바로 글리칸과 비슷하게 생겼다. 병원균 블록이 글리칸 블록 대신 올리고당 블록에 붙으면 세균 감염이 차단된다. 놀랍게도 올리고당은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바이러스(HIV)도 차단할 수 있다. HIV에 감염된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유를 몇 달이나 먹으면서도 안전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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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모유가 말 그대로 슈퍼 푸드임을 확실히 깨달았으리라. 이 때문에 WHO를 비롯한 각국 정부는 모든 아기에게 생후 6개월까지 모유만 먹이고, 그 이후에도 만 2세가 될 때까지 모유 수유를 지속할 것을 권장한다. (아기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동안 엄마는 자연 피임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엄마가 여러 사정 때문에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 생후 6개월 동안 모유만 먹이는 비중은 국제 평균이 38퍼센트 정도인 데 반해서, 국내 평균은 18.3퍼센트(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일터에서 일하는 ‘직장맘’이 어떻게 모유를 먹이냐고? 2016년 OECD 통계를 보면, 스웨덴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80.2퍼센트(한국은 58.4퍼센트)나 되지만 6개월 이후에도 모유를 수유하는 비중이 72퍼센트나 된다.
짐작하다시피, 한국은 일하는 여성이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근로 기준법은 생후 1년 미만의 아기를 가진 여성에게 하루 두 번씩 각각 30분 이상의 유급 수유 시간을 주도록 명시돼 있으나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못할 때 필요한 유축기, 모유 저장팩, 냉장고 등의 용품이 직장에 구비되어 있을 리도 없다.
반면에 스웨덴은 출산 후 16개월의 유급 휴직을 제공해 엄마와 아기가 같이 생활하며 모유 수유를 비롯한 보살핌을 받도록 뒷받침한다. 하루 1시간 이상의 단축 근무를 통해서 모유를 짜는 시간 등도 보장받는다. 한국에서는 꿈같은 얘기일까? 스웨덴도 1970년대는 모유를 먹이는 비중이 고작 30퍼센트 수준이었다. 스웨덴이 변했듯이 우리도 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