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해브의 본질을 가장 짧고 강렬하게 설명해주거든요. 에이해브가 왜 미쳐가는지, 왜 모비딕을 포기 못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페어리퀸 은 스펜서가 쓴 16세기 영국 서사시예요. 기사들의 모험과 덕목을 다룬 작품인데, 여기서 이 구절은 원래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묘사한 거예요. 상처를 입힌 자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내용이죠.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는 너무 명확해요.
이게 바로 에이해브의 이야기거든요.
에이해브는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었어요. 그 상처는 어떤 의술로도 낫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상처를 입힌 자, 즉 모비딕을 직접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어요. 그게 그의 집착이고 광기의 근원이에요.
멜빌은 본편에서 에이해브가 등장하기도 전에, 발췌 섹션에서 이 구절로 에이해브의 운명을 이미 예고해 놓은 거예요.
멜빌의 발췌 섹션이 단순한 인용 모음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전체 소설의 복선을 인류의 문헌 속에 숨겨 놓은 거예요.
모비 딕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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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커다란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잔잔하던 바다를 어지럽혀 들끓게 만들 수 있는, 고래처럼 어마어마한.
『모비 딕 - 상』 윌리엄 대버넌트 경의 곤디버트 서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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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는 "존재 자체가 주변을 뒤흔든다"는 거예요.
고래가 헤엄치는 것만으로 잔잔한 바다가 출렁이잖아요.
이게 모비딕의 본질이에요. 모비딕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피쿼드호 전체를, 에이해브를, 선원 모두를 뒤흔들어 놓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 대버넌트의 《곤디버트》가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해요. 멜빌이 굳이 미완성 서사시의 서문에서 인용한 건, 어쩌면 인간이 거대한 것에 도전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는 운명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어요. 에이해브처럼요.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멜빌이라면 충분히 의도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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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
『모비 딕 - 상』 토머스 브라운 경, 경뇌유와 향유고래에 대하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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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뇌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할 텐데, 학문에 밝은 호프만누스도 30년에 걸친 노작에서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라고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절묘해요.
"나도 모른다 (Nescio quid sit)" — 이게 핵심이에요.
인류가 수천 년간 고래를 잡고, 고래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경뇌유로 약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30년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도 "모른다"고 했고요.
이게 모비딕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해부하고 연구하지만, 고래의 본질은 끝내 알 수 없어요. 멜빌은 소설 안에서도 고래의 눈, 고래의 머리, 고래의 꼬리를 챕터마다 분석하지 만 결론은 항상 "알 수 없다"예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모비딕 전체의 철학적 테마를 라틴어 다섯 글자로 압축해 놓은 거예요.
"Nescio quid sit — 나도 모른다."
신이 만든 것, 자연이 만든 것, 그 본질은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다는 것.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죽여도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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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 도리깨로 무장한 탤러스처럼, 육중한 꼬리로 파멸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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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에는 사람들이 던진 창들이 꽂혀 있고, 등에는 작살이 숲을 이룬 듯하다
『모비 딕 - 상』 — 월러, 《서머 제도의 전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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