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D-29
"경뇌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할 텐데, 학문에 밝은 호프만누스도 30년에 걸친 노작에서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라고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절묘해요. "나도 모른다 (Nescio quid sit)" — 이게 핵심이에요. 인류가 수천 년간 고래를 잡고, 고래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경뇌유로 약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30년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도 "모른다"고 했고요. 이게 모비딕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해부하고 연구하지만, 고래의 본질은 끝내 알 수 없어요. 멜빌은 소설 안에서도 고래의 눈, 고래의 머리, 고래의 꼬리를 챕터마다 분석하지만 결론은 항상 "알 수 없다"예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모비딕 전체의 철학적 테마를 라틴어 다섯 글자로 압축해 놓은 거예요. "Nescio quid sit — 나도 모른다." 신이 만든 것, 자연이 만든 것, 그 본질은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다는 것.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죽여도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신식 도리깨로 무장한 탤러스처럼, 육중한 꼬리로 파멸을 위협한다 . . . 옆구리에는 사람들이 던진 창들이 꽂혀 있고, 등에는 작살이 숲을 이룬 듯하다
모비 딕 - 상 — 월러, 《서머 제도의 전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모비딕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파괴자와 수난자 모비 딕은 이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존재입니다. 탤러스는 스펜서의 《페어리퀸》에 나오는 철로 만든 인간이에요. 도리깨를 무기로 쓰는 무자비한 집행자인데,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존재예요. 월러가 고래의 꼬리를 탤러스의 도리깨에 비유한 거예요. 고래 꼬리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파괴적인지를 표현한 거죠.
공화국, 또는 국가(라틴어로는 키비타스)라 일컫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엄청나게 큰 괴물 리바이어던은 인공적인 인간에 다름 아니다."
모비 딕 - 상 — 홉스, 《리바이어던》 첫 문장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은 정치철학의 고전이에요. 홉스는 국가 권력을 성경의 괴물 레비아단에 비유했어요. 국가란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만들어낸 거대한 인공 괴물이라는 거죠. 멜빌이 이걸 넣은 건 여러 층위가 있어요. 첫째로 고래 = 레비아단 = 국가 권력의 등식이에요. 고래가 자연의 괴물이라면, 국가는 인간이 만든 괴물이에요. 둘 다 개인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이라는 점에서 같아요. 둘째로 에이해브와 권력의 문제예요. 에이해브는 피쿼드호라는 작은 국가의 절대 권력자예요. 선원들을 자신의 복수에 복종시키죠. 홉스의 국가론으로 읽으면 에이해브는 괴물 같은 권력자이고, 피쿼드호는 그가 만든 리바이어던이에요. 토론 주제 : "에이해브는 괴물인가, 아니면 괴물 같은 운명에 맞선 인간인가?" 둘 다 맞는다는 것이 비극의 핵심. 에이해브는 분명히 괴물적인 면이 있어요. 선원 수십 명의 목숨을 자신의 복수심 하나에 걸어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요. 이건 폭군이고 괴물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보면 — 신이 만든 자연의 괴물에게 다리를 잃고, 그 고통이 치유되지 않아서, 유일한 출구로 복수를 선택한 인간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반응이기도 해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에 맞서겠다"는 의지. 제가 생각하는 멜빌의 답— 인간이 괴물에 맞서려 할 때, 그 인간 자신이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게 비극이 아니라 숭고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에이해브가 파멸하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은 무섭기도 하지만 어딘가 장엄하거든요. 이 질문 던지면 사람마다 답이 완전히 다르다는게 이 소설의 힘.
어리석은 맨소울은 그것이 마치 고래 아가리 속 청어 한 마리인 양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켰다.
모비 딕 - 상 거룩한 전쟁 The Holy War, 존 버니언 John Bun,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버니언(John Bunyan)의 작품이에요. 버니언은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작가죠. 《거룩한 전쟁》은 "맨소울(Mansoul)"이라는 영혼을 가진 도시를 둘러싼 선과 악의 전쟁을 알레고리로 쓴 작품이에요. 여기서 "맨소울"은 말 그대로 인간의 영혼을 의미해요. 그 영혼이 뭔가를 고래 뱃속 청어처럼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켰다는 거예요 — 즉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죠.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흥미로워요. 고래 뱃속 청어 — 이 이미지가 요나와 정확히 겹쳐요. 요나가 고래에게 삼켜진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무언가에 통째로 삼켜질 수 있다는 거예요. 에이해브의 경우는 복수심에 영혼이 통째로 삼켜진 인물. 그리고 버니언이 《천로역정》의 작가라는 점도 의미심장해요. 《천로역정》이 구원을 향한 여정이라면, 모비딕은 파멸을 향한 여정이거든요. 멜빌이 버니언을 인용한 건 그 대비를 노린 것일 수 있어요.
만물의 신이 지으신 중에 가장 커다란 저 바다의 금수 바다 괴물이 대양의 해류를 헤엄친다.
모비 딕 - 상 실낙원, 밀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내뿜는다.
모비 딕 - 상 실낙원, 밀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첫번째, "만물의 신이 지으신 중에 가장 커다란 저 바다의 금수 바다 괴물이 대양의 해류를 헤엄친다." 이건 《실낙원》 7권에서 신이 창조의 6일째에 바다 생물을 만드는 장면이에요. 고래를 신의 피조물 중 가장 크고 경이로운 존재로 묘사한 거죠. 야훼가 레비아단을 만들었다는 성경 구절과 정확히 연결돼요. 고래는 신이 만든 것,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 밀턴이 웅장하게 표현. 두 번째,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내뿜는다." 이건 《실낙원》 1권에서 사탄이 지옥에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인데, 거기서 고래에 비유한 거예요. 사탄이 너무 거대해서 움직이는 섬처럼 보인다는 묘사죠. 고래가 사탄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순간이에요. 이 두 인용이 나란히 있는 게 핵심이에요. 첫 번째에서 고래는 신의 가장 경이로운 창조물이고, 두 번째에서 고래는 사탄에 비유되는 존재예요. 같은 고래가 신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거예요. 멜빌이 모비딕을 단순한 거대한 고래가 아니라 신성하면서도 악마적인, 선악을 초월한 존재로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 두 구절이 그 이중성의 문학적 뿌리예요. 이건 모비딕의 본질을 가장 깊이 건드리는 인용.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비 딕, 서두의 수많은 작품의 발췌를 보며 든 의문! 인용문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와 구조의 윤곽을 짐작케 되는 건 — 멜빌이 설계한 독서 경험 안에 있는걸까요?
멜빌이 왜 이걸 앞에 다 배치했는가. 이게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제 생각은 이래요. 멜빌은 독자가 미리 알기를 원했어요. 의도적이에요. 왜냐면 그는 이 소설을 단순한 이야기로 쓴 게 아니라 우주적 질문을 담은 철학적 텍스트로 썼어요. 그에게 중요한 건 "에이해브가 죽는가 사는가"가 아니라 "왜 인간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저항하는가, 그리고 그게 숭고한가 어리석은가"였어요. 그 질문을 독자가 처음부터 의식하면서 읽기를 바랐던 거예요. 그래서 발췌 섹션에 야훼, 레비아단, 요나, 복수,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미리 다 깔아놓은 거예요. 독자가 본편을 읽으면서 "아, 이게 그거구나" 하고 발견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구도 안에서 읽게 만든 거죠. 쉽게 말하면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라 철학자처럼 썼어요. 결론을 숨기지 않고, 그 결론이 왜 불가피한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커다란 고래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그 몸속에서는 기름의 바다가 출렁인다.
모비 딕 - 상 — 풀러, 《세속 국가와 신성 국가》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토머스 풀러는 17세기 영국 성직자이자 작가. 이 문장은 사실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데, 멜빌이 넣은 이유가 있어요. 고래의 몸 안에 바다가 있다 — 이미지. 고래가 바다를 헤엄치는 게 아니라, 고래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다는 거예요. 거대함 안에 또 다른 거대함. 모비딕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큰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는 암시.
몇몇 곶에서는 커다란 바다 괴물들이 바짝 붙어 먹이를 기다리다가 활짝 벌린 그 아가리를 물길로 착각한 치어들을 뒤쫓을 일도 없이 그대로 삼킨다.
모비 딕 - 상 — 드라이든, 《경이로운 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존 드라이든은 17세기 영국의 대표 시인이에요. 《경이로운 해》는 1666년 영국-네덜란드 해전을 다룬 서사시예요. 이 구절의 핵심은 "뒤쫓을 일도 없이"예요. 고래가 능동적으로 사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입 벌리고 있으면 먹이가 알아서 들어온다는 거죠. 이게 모비딕의 공포예요. 에이해브는 필사적으로 쫓아가는데, 모비딕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압도적이에요. 압도적인 자연의 무심함이에요.
고래를 배의 고물로 들어 올려 머리를 잘라 낸 후 보트로 끌고 가까운 해안으로 가지만, 수심이 3~4미터만 되어도 좌초하고 말 것이다.
모비 딕 - 상 — 토머스 에지, 《스피츠베르겐을 향한 열 번의 항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토머스 에지는 17세기 실제 포경선 선장이에요. 이건 순수하게 포경 기술을 기록한 실용적인 항해기예요. 멜빌이 이런 실용적인 기록을 섞어 넣은 이유 — 성경, 철학, 서사시와 나란히 실제 포경 현장 기록을 놓음으로써 고래는 신화 속 존재인 동시에 실제로 인간이 잡아야 했던 물질적 대상이라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예요. 숭고함과 산업 현실의 충돌이죠.
안녕하세요, 저도 조인하고 싶어요. 열심히 한번 읽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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