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D-29
멜빌이 이 소설을 호손에게 헌정하면서 호손의 작품에서 두 구절을 발췌 목록에 넣은 것은 단순한 경의가 아닙니다. 두 구절이 보여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 번째 구절에서 고래의 턱뼈는 집의 입구, 즉 삶의 문지방이 됩니다. 두 번째 구절에서 고래는 4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실의 원인입니다. 고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동시에 있습니다. 호손의 작품 속 뉴잉글랜드는 포경업으로 먹고사는 동네이고, 그 고래의 그림자는 낭만적인 오두막 입구에도, 늙은 과부의 비석 주문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멜빌은 고래잡이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임을 호손의 언어로 말하게 한 거라 생각해요
「고래가 우리 배에 구멍을 뚫었어요.」"
모비 딕 - 상 오언 체이스, 에식스호 『난파기』 (1821년)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1820년 11월, 미국 낸터컷 출항 포경선 에식스(Essex)호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습니다. 생존자들은 구명보트로 96일을 표류하며 극한의 생존 투쟁을 벌였습니다. 일등 항해사 오언 체이스(Owen Chase)가 이 경험을 직접 기록한 『에식스호 난파기』(1821)는 당시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멜빌은 젊은 시절 실제로 에식스호 선장 조지 폴라드를 직접 만났으며, 체이스의 아들에게 이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모비 딕』의 직접적 원형입니다. 고래가 먼저 배를 공격하고 침몰시켰다는 실화—멜빌은 이것을 소설의 결말로 사용했습니다. 단 한 문장 "고래가 우리 배에 구멍을 뚫었어요"를 발췌한 것은 소설 전체가 이 한 문장으로부터 출발했음을 고백해요
이 80여 개의 발췌문이 말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면 어떨까요? 고래는 인류가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성경에서 신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에서 낸터컷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인간의 상상력 바깥에 있었던 적이 없다. 멜빌은 이 목록으로 독자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부터 읽을 이 이야기는 나의 소설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이야기다" 라고.
오, 보기 드문 늙은 고래여, 폭풍과 돌풍 몰아치는 바다의 집에서 그대는 힘센 거인일지니, 그곳에서 힘은 곧 정의요, 그대, 무량한 바다의 왕일지어다."
모비 딕 - 상 『고래의 노래』 — 발췌 섹션의 마지막 구절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이 구절이 작가 미상이라는 사실 자체가 의미심장합니다. 발췌 목록의 거의 모든 것은 출처가 있습니다. 성경, 고대 철학자, 셰익스피어, 홉스, 과학자, 탐험가, 정치가… 그런데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노래는 누가 썼는지 모릅니다. 뱃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노래가 쌓이고 쌓여 익명의 집단 창작물이 된 것입니다. 발췌 목록은 창세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이 고래를 만들었다는 선언. 그리고 수천 년에 걸쳐 성경, 고대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계몽주의, 낭만주의, 과학혁명을 통과해서 마침내 이 익명의 노래로 끝납니다. 학식 있는 자들의 언어가 아닌, 실제로 고래와 맞붙어 살았던 이름 없는 뱃사람들의 목소리. "힘은 곧 정의요, 무량한 바다의 왕"—이 구절은 에이해브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노래 속 고래는 도덕이 없습니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이고, 바다에서 왕은 고래입니다. 에이해브는 그 질서에 맞서 "불의다, 복수하겠다"고 외치는 인간입니다. 익명의 뱃사람들은 그냥 노래했습니다. "저 고래는 왕이야." 에이해브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발췌 섹션 전체가 이 마지막 노래를 향해 흘러갑니다. 인류의 모든 지식과 언어로 고래를 둘러쌌을 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름 없는 자들의 경외심입니다. 멜빌은 그 경외심이 가장 정직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 이름은 이슈마엘.
모비 딕 - 상 1.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경 속 이슈마엘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이슈마엘은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정실 부인 사라가 아니라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가르에게서 난 아들입니다. 나중에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자 이슈마엘과 하가르는 광야로 쫓겨납니다. 물도 없는 사막에 버려져 죽음 직전에 이릅니다. 신이 나타나 물을 주고 살려주면서 말합니다.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며, 그는 모든 형제와 맞서 살 것이다." 쫓겨난 자, 아웃사이더, 세상과 불화하는 자. 이것이 이슈마엘의 운명입니다. 소설 속 이슈마엘 멜빌의 이슈마엘은 그 이름에 충실합니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족도, 직업도, 고향도 희미합니다. "수중에 돈도 거의 떨어지고 뭍에서는 이렇다 할 흥미로운 일도 없어서" 배에 오릅니다. 육지에서 쫓겨나듯 바다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이슈마엘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화자입니다. 그는 피쿼드호의 항해 전체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눈입니다. 에이해브의 광기, 모비 딕과의 싸움, 배의 침몰—이 모든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슈마엘이 소설 중반부터 거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에이해브와 고래 이야기가 커질수록 이슈마엘은 뒤로 물러납니다. 자기가 이야기 속에 있는 건지 그것을 바깥에서 보는 건지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둘째, 생존자입니다. 소설의 끝에서 피쿼드호가 침몰할 때 살아남는 사람은 이슈마엘 단 한 명입니다. 성경의 이슈마엘이 광야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그는 관棺 위에 떠서 구조됩니다. 에이해브가 신에게 맞서다 죽는다면, 이슈마엘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합니다. 멜빌의 의도 이슈마엘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하나는 세상과 맞지 않는 자입니다. 뭍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 어떤 공동체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 멜빌 자신이 그랬습니다. 포경선을 탔고, 문명을 떠났고, 돌아와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설을 썼습니다. 다른 하나는 목격자이자 증인입니다. 성경에서 이슈마엘은 버려졌지만 살아남아 큰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멜빌의 이슈마엘은 에이해브의 비극을 목격하고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합니다. 그가 살아남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첫 문장 "내 이름은 이슈마엘"은 그래서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나는 쫓겨난 자다, 나는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아 이것을 당신에게 전한다"는 선언입니다.
카토는 철학적인 미사여구를 들먹이며 제 칼에 몸을 던지만, 나는 조용히 배에 오른다.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바다에 대해 나와 거의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모비 딕 - 상 1.어렴풋이 드러나는 것,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이슈메일은 우울하거나 삶에 지쳤을 때, 총을 집어들거나 일부러 장례식을 따라다니는 대신 바다로 향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들도 자신과 똑같은 감정, 즉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바다에 대한 끌림, 막연한 우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감정은 스토아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신보다 거대한 것(바다, 자연, 운명)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동시에 이상하게 위로를 받거나 끌리는 감정을 느끼거든요. 흰 고래(모비딕)라는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운명 앞에서 굴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 스토아 철학과 맞닿아 있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거대한 것 앞에 작아지며 위로받는" 수용의 태도 다른 하나는 "거대한 운명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저항의 태도 어떻게 같은 철학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스토아 철학은 사실 이 둘을 단계적으로 봅니다. 먼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의 크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바다가 거대하다는 것, 죽음이 온다는 것,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태도, 즉 수용입니다. 그런데 그 수용이 굴복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거대함을 인정한 후에도, 그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태도는 내가 선택한다는 것이 스토아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태도, 즉 불굴입니다. 모비딕으로 비유하자면, 이슈메일과 에이헤브는 이 두 태도를 각각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슈메일은 바다의 거대함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받아들이고 위로를 얻는 인물이고, 에이헤브는 흰 고래라는 운명에 끝까지 맞서며 굴복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멜빌은 이 두 인물을 통해 스토아적 긴장감, 즉 수용과 저항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둘은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 안에서 서로를 완성시키는 두 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희안하기도 하다고 멜빌이 표현한 뭍사람은 과연 뭘까요? 일상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 사회의 규범과 틀 안에 머무는 존재. 이들을 비판하지는 않지만, 진짜 삶의 본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 묘사하는 뉘앙스가 있어요.
바다에 끌리고,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실제로 뛰어들지는 않죠. 삶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면서도, 편안함과 안전을 택하는 인간의 본능적 갈등을 상징한다 생각해요.
아무렴, 저들은 빠지지 않는 범위에서 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모비 딕 - 상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중 뭍사람,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모비딕 첫 장에서 나르키소스를 아주 중요하게 활용합니다. 사람들이 물을 바라보는 이유가 결국 물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 즉 삶의 신비와 자신의 본질을 보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다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인 셈이죠. 그래서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비극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진리와 자아를 탐구하는 보편적 욕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은둔자와 십자가라도 든 것처럼 하나같이 속이 빈 나무들이 서 있고, 여기서는 초원이 졸고 저기서는 소들이 졸며 저만치 오두막에선 나른한 연기가... 양치기의 시선이 눈앞의 마법 같은 개울을 향하지 않는다면 허사일 뿐이다. 유월의 초원에서 무릎까지 자란 참나리를 헤치며 거닐 때 한가지 아쉬운 매력이 뭘까? 물 , 그곳에 물이 단 한 방울도 없다는것! 페르시아인들은 왜 바다를 신성시하고, 그리스인들은 왜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따로 두고 제우스의 형제로 설정했을까? 이것에 의미가 없을 리 없다. 샘에 비친 나를 잡을 수 없어 괴로워하다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더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모든 강과 바다에서 이것들을 본다. 그건 결코 움켜잡을 수 없는 인생의 환영이며, 모든 것의 열쇠다.
모비 딕 - 상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눈가가 몽롱해지고 허파가 자꾸 의식되기 시작할 때마다 바다에 나가는 버릇이 있다고 하죠. 지갑이 없이요. 의미가 뭘까요.
삶의 의미를 잃거나 내면이 질식할 것 같을 때, 일상과 자아에서 벗어나 더 큰 무언가와 맞닥뜨리는 것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바다는 그 상징이겠죠.
피라미드라는 엄청나게 큰 화덕에서 따오기와 하마의 미라가 나오는 건, 옛날 이집트 사람들이 그 구운 요리를 우상 숭배 수준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모비 딕 - 상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신성한 종교 의식을 "엄청난 요리 사랑"으로 격하시켜버리는 멜빌식 유머.ㅋ 거대하고 신성한 피라미드를 그냥 "큰 화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요. 이게 앞 문장과 연결되는 이유는, 이슈메일이 "닭고기 굽는 건 안 좋아하지만 구운 닭고기에 대해선 경건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요리에 대한 태도를 과장되게 거룩하게 표현하는 흐름에서, 이집트인들도 결국 "구운 요리 광팬"이었다고 농담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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