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우리 몸에는 빛이 더 적합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인 것 같다.
『모비 딕 - 상』 11장 잠옷 중 '기분 좋은 어둠'에 대하여,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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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제11장 '잠옷(Nightgown)'은
10장에서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이 침대라는 사적이고 평화로운 공간 속에서 어떻게 깊어지는지, 그 안에서 어떤 철학적 통찰이 빛나는지 보여주는 장입니다.
이 장에서 멜빌의 천재적인 비유와 사색이 돋보이는 핵심 문장 세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대조'를 통해 깨닫는 행복의 본질
"몸의 온기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어느 한 부분은 차가워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특징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왜 중요할까?
이슈마엘은 " 침대에서 담요만으로 '코끝이나 정수리가 조금 춥다면' 그때야말로 전반적인 의식 속에서 가장 기껍고 확실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침실에서 절대 난로를 두어서는 안된다" 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는 비교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는 거대한 철학적 진리를 이끌어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고, 추위가 있어야 온기가 소중하듯, 우리 삶의 고통과 시련 역시 행복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필수적인 대조 장치라는 통찰을 주는 문장입니다.
2. 인간의 내면(본질)과 '어둠'의 관계
"눈을 감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우리 몸에는 빛이 더 적합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인 것 같다."
💡 왜 중요할까?
우리는 흔히 '빛'을 선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어둠'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슈마엘은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스스로 만들어 낸 '기분 좋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적인 문명의 빛(위선과 소음)을 끄고, 고요한 어둠 속으로 침잠할 때 비로소 인간의 영혼이 정화되고 본질과 마주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입니다.
3. 편견을 녹이는 사랑과 우정의 힘
"간밤에 그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질색한 걸 생각하면, 아무리 완고한 편견이라도 사랑으로 구부리자고 들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 왜 중요할까?
처음에 이슈마엘은 퀴퀘그가 침대에서 담배(손도끼 파이프)를 피우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퀴퀘그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그 편견은 사라지고, 오히려 함께 담배 연기를 나누는 행위 속에서 평온함과 아늑함을 느낍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단단한 문명인의 편견과 규칙도 부드럽게 휠 수 있다는 우정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 요약하자면
인생은 대조를 통해 완성되며, 진정한 평온은 외부의 빛이 아닌 내면의 어둠(성찰) 속에서, 그리고 타인을 향한 편견 없는 사랑을 통해 얻어집니다.
제12장 '간략한 생애 ( Biographical )'는
퀴퀘그가 고향 섬을 떠나 문명세계로 나오게 된, 단순히 한 인물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문명과 야만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멜빌의 날카로운 문명 비판.
1. 진실한 가치에 대한 위트 있는 선언
"그 섬은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진실한 고장들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 왜 중요할까?
퀴퀘그의 고향인 '코코보코' 섬을 소개하는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문명인들은 지도에 그려진 선과 영토만을 '실재하는 세계'라고 믿지만, 멜빌은 오히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곳(진리)은 인간의 지도(문명의 가치관으로) 따위에 기록될 수 없다(재단하거나 가둘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명사회의 오만함을 특유의 위트와 철학적 위트로 꼬집음.
2. 퀴퀘그의 고결한 야망과 희생정신
"그러나 타국의 조선소에서 기꺼이 노동을 했던 표트르 대제처럼, 퀴퀘그 역시 못 배운 동포들을 계몽할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 왜 중요할까?
왕족의 신분임에도 백인들의 포경선 맨 밑바닥에서 온갖 차별을 견딘 이유를 러시아의 황제에 비유한 대목입니다. 퀴퀘그의 여정이 단순한 방랑이 아니라, "선진 기술을 배워 동포들을 더 행복하고 월등하게 만들겠다"는 숭고한 사명감. 겉모습만 보고 야만인이라 비웃는 백인들보다 그의 영혼이 훨씬 고결함을 보여줍니다.
3. 문명사회의 위선과 타락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
"고래잡이 일을 하고 보니 기독교인들도 불행하고 사악할 수 있으며, 아버지가 다스리는 미개인들 못지않고 오히려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 왜 중요할까?
기독교 문명국가인 미국(새그 항, 낸터컷)에 도착한 퀴퀘그가 마주한 현실. 스스로를 '구원받은 문명인'이라 칭하는 백인들이 오히려 미개인보다 더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결국 그는 "어딜 가나 전부 사악한 세상이므로, 차라리 순수한 이교도로 살다 죽겠다"고 결심합니다. 19세기 기독교 중심주의와 제국주의적 우월감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이 장에서 가장 중추적인 메세지.
📌 요약하자면
12장은 퀴퀘그가 고향의 순수함을 뒤로하고 '문명의 기술'을 배우러 왔다가, 오히려 문명의 타락을 목격하고 스스로의 순수한 영혼(이교도 신앙)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역설적인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깨달음이 있었기에 퀴퀘그는 백인들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단단한 중심을 지킬 수 있었으며, 이슈마엘 역시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kontentree
제12장 '간략한 생애(Biographical)'
본문 속 표트르 대제
"그러나 타국의 조선소에서 기꺼이 노동을 했던 표트르 대제처럼, 퀴퀘그 역시 못 배운 동포들을 계몽할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족의 피가 흐르는 퀴퀘그가 고향 섬의 왕위 계승권자라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백인들의 포경선에서 가장 밑바닥 일인 일반 선원(고래잡이)으로 차별과 치욕을 견뎌낸 모습을 표트르 대제의 역사적 일화에 비유한 것.
표트르 대제는 실제로 어땠는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황제)였던 표트르 1세(1672~1725)는 낙후된 러시아를 근대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완전히 낮춘 '위장 유학'으로 유명합니다.
신분을 숨긴 하급 선원 노동: 1697년,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대사절단을 꾸렸습니다. 이때 황제인 자신도 '표트르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을 쓰고 하급 부사관으로 신분을 숨긴 채 동행했습니다.
조선소에서의 육체노동: 특히 네덜란드 잔담(Zaandam)과 영국의 조선소에서 직접 도끼를 들고 나무를 깎으며 일반 목수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일하며 배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황제의 체면이나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국가를 강하게 만들 기술을 배웠습니다.
멜빌이 이 비유를 쓴 의도: "위대한 야만인"
문명과 야만의 역전: 흔히 백인들은 퀴퀘그를 문명화되지 않은 '식인종', '야만인'이라 부르며 무시하지만, 그의 내면에 깃든 정신은 러시아를 근대화한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의 서사만큼이나 고귀하고 숭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12장에서 드러나는 퀴퀘그의 과거는, 그가 겉모습만 야만인일 뿐 실제로는 누구보다 위대한 영혼을 지닌 "바다의 웨일스 공(황태자)"임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장치입니다.
서설
매플 목사의 설교와 퀴퀘그와의 침대 속 대화가 참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사는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높이 서서 '신앙과 진리'를 외치는데, 막상 이슈마엘은 그가 야만인이라 부르던 퀴퀘그와 한 침대에 누워 살을 맞대면서 진짜 구원과 평온을 얻잖아요.
이 대비, 가장 문명화된 곳(교회)에서는 죽음의 공포와 종교적 의무를 말하는데, 가장 야만적인 존재(퀴퀘그) 옆에서는 오히려 상처받았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역설까지요.
잔해
토르킬 하케(Thorkill-Hake)는 멜빌이 북유럽 신화와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16장' 배'에서는 펠레그 영감이 피쿼드호 구석구석에 새겨놓은 해괴하고 기괴한 문양들을 묘사하며 "그 기괴함에 견줄 만한 것은 토르킬 하케의 둥근 방패나 침대 조각 정도였다"라고 비유하고 있지요.
이 '토르킬 하케'가 누구이며, 멜빌이 왜 그의 가구와 방패를 피쿼드호에 빗대었을지 궁금합니다.
토르킬 하케(Thorkill-Hake)는 누구인가?
토르킬 하케는 11세기 아이슬란드 사가(Saga, 중세 북유럽의 영웅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바이킹 영웅이자 무사입니다.
이름의 의미: '하케(Hake)'는 고대 노르드어로 '갈고리 같은 코' 혹은 '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별칭이었습니다. 바이킹 특유의 거칠고 개성 넘치는 외모를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지요.
그의 특징: 그는 평생 바다를 누비며 온갖 괴수들과 싸우고 이국땅을 모험한 백전노장이었습니다. 북유럽 전설에 따르면, 그는 자기가 겪은 파란만장한 모험담과 괴물들과의 전투 장면을 자신의 방패(buckler)와 침대 머리판(bedstead)에 빈틈없이 조각(Carving)해 두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멜빌이 왜 하필 '토르킬 하케의 가구'를 언급했을까?
피쿼드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트로피로 장식된 야만적인 배", 즉 자신이 무찌른 적들의 흔적으로 온몸을 휘감은 배입니다.
기괴하고 집요한 조각의 대명사: 펠레그 영감은 일등 항해사 시절부터 뼈와 상아를 깎아 피쿼드호의 뱃전과 조타 장치를 기괴하게 장식했습니다. 멜빌은 이 집요하고 광기 어린 수공예 장식을 보며, 자신의 온 삶(모험과 전투)을 방패와 침대에 빼곡히 조각해 넣었던 바이킹 전사 토르킬 하케의 가구를 떠올린 것입니다.
바이킹 전설과 포경선의 연결고리: 바이킹은 인류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거친 바다의 약탈자이자 사냥꾼들이었습니다. 멜빌은 피쿼드호를 단순한 19세기 포경선이 아니라, 고대 북유럽 바이킹의 후예들이 탈 법한 '신화적이고 야만적인 전함'의 아우라로 격상시키기 위해 이 비유를 끌어다 쓴 것입니다.
잔해
가장 거대하고 불길한 복선 중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철천지 원수'는 바로 이 소설의 최종 보스이자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앗아간 하얀 고래, '모비 딕(향유고래)'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원수의 아래턱뼈를 깎아 만든 '손잡이'는 다름 아닌 배를 조종하는 '키 손잡이(Tiller)'입니다. 이 기괴한 장치에 담긴 뜻.
1. 텍스트 속 '손잡이'의 정체: 키잡이의 손잡이(Tiller)
오늘날의 배들은 둥근 운전대 모양의 '타륜(Wheel)'을 돌려 배를 조종하지만, 피쿼드호는 아주 구식인 데다가 뼈와 상아로 온통 기괴하게 장식된 배입니다.
그래서 둥근 타륜을 쓰는 대신, 방향타와 바로 연결된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Tiller)를 좌우로 직접 밀고 당겨서 배를 조종합니다.
그런데 이 길쭉한 조타 손잡이를 나무가 아니라 향유고래의 길고 좁은 '아래턱뼈'를 통째로 가져와 그럴듯하게 깎아서 만든 것입니다.
2. 왜 하필 '철천지 원수의 아래턱'인가?
향유고래의 신체적 특징: 향유고래(모비 딕)는 위턱에는 이빨이 없고, 길고 좁은 아래턱에만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박혀 있습니다.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물어뜯어 삼킨 것도 바로 이 아래턱입니다.
적의 뼈로 만든 배: 피쿼드호는 자신들이 사냥해 죽인 고래의 뼈와 이빨로 온통 장식된 '식인종 같은 배'입니다. 그중에서도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조타 장치에 자신들의 영원한 적(고래)의 아래턱뼈를 박아 넣은 것입니다.
3. "타타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의 의미
이어서 나오는 문장인 *"폭풍우 속에서 그걸 조종하는 키잡이는 사나운 말의 턱을 움켜쥐고 제압하는 타타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는 묘사도 기가 막힙니다.
타타르인(Mongol-Tatar): 역사상 가장 사납고 용맹하게 거친 야생마를 길들여 대륙을 누볐던 유목민 전사들입니다.
거친 적을 길들이는 정복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이 고래 턱뼈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배를 모는 키잡이는, 마치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괴수(원수 고래)의 턱가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사납게 길들이며 정복하는 듯한 광기 어린 희열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 요약하자면
펠레그 영감은 피쿼드호의 키 손잡이를 평범한 나무로 만들지 않고, 자신들의 주적이자 사냥감인 향유고래의 이빨이 박힌 아래턱뼈를 깎아 만들었습니다.
이는 피쿼드호가 "자신들의 원수(고래)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그 원수의 뼈를 쥐고 운명의 방향을 트는 광기 어린 배"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상징입니다. 결국 이 원수의 턱뼈를 쥐고 키를 돌려 그들이 찾아가게 될 종착지가 어디일지, 멜빌은 배의 조타 장치에서부터 경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잔해
16장
문학적 상징: 피쿼드호의 '야만적 정체성' 강화
왜 하필 인디언 부족 중에서도 '포토와토미(Potawatomi)'족의 추장(Sachem)이었을까요?
뼈로 만든 천막 꼭대기에서 깃털처럼 흩날리는 검은 고래수염의 비주얼
사라져가는 인디언에 대한 노스탤지어: 멜빌이 이 책을 쓰던 19세기 중반은 미국 정부의 인디언 이주 정책으로 인해 포토와토미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고 사라져가던 비극적인 시기였습니다. 앞서 배 이름의 유래가 된 '피쿼트 부족'처럼 말이죠.
배 자체가 거대한 '인디언 천막(Wigwam)': 멜빌은 피쿼드호라는 배 자체가 문명 세계(미국)의 산물이 아니라, 대자연과 싸우는 고대 야만인들의 거대한 움직이는 영토처럼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백인 선장인 펠레그가 머무는 임시 집마저도 인디언 추장의 오두막(Wigwam)처럼 묘사함으로써, 이 배가 품은 원시적이고 불길한 야만성을 한층 더 극대화한 것입니다.
kontentree
16장에서 이스마엘이 펠레그와 빌다드 선장을 만나면서 그들이 '퀘이커교도(Quakers)'라는 점이 중요하게 부각되죠.
평화주의와 청빈함을 상징하는 '퀘이커교도'가 어떻게 피비린내 나는 고래잡이 배의 선장이자 소유주가 되었을까요? 멜빌이 이들을 하필 퀘이커교도로 설정한 데에는 역사적 팩트와 문학적 상징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역사적 사실: 낸터컷을 지배한 '진짜' 퀘이커교도들
역사적으로 소설의 배경인 낸터컷(Nantucket) 섬은 퀘이커교도들의 본거지였습니다.
17~18세기 영국에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퀘이커교도들은 낸터컷에 정착해 고래잡이 산업을 개척했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미국의 전설적인 포경 가문들(Macy, Coffin, Starbuck 가문 등)은 모두 독실한 퀘이커교도였습니다. 즉, 당대 고래잡이 배의 선장이나 배 주인(선주)이 퀘이커교도인 것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입니다.
2. 문학적 상징: '모순과 광기'를 극대화하는 장치
멜빌은 이 역사적 사실을 가져와 소설 속에서 엄청난 아이러니와 모순을 만들어냅니다. 멜빌은 이들을 "복수심에 불타는 퀘이커교도(Quakers with a vengeance)" 혹은 "싸우는 퀘이커교도(Fighting Quakers)"라고 부릅니다.
① 평화주의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
퀘이커의 교리: 원래 퀘이커교는 전쟁을 반대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비폭력과 평화를 주장하는 엄격한 기독교 종파입니다.
실제 행동: 하지만 이들은 바다에 나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사나운 생명체(고래)를 무참히 찔러 죽여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기름을 짜내 돈을 버는 '가장 폭력적인 전사'로 돌변합니다. 육지에서의 평화주의가 바다에서는 철저한 파괴로 뒤바뀌는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죠.
② 청빈주의자들의 지독한 탐욕
퀘이커의 교리: 물질적 탐욕을 멀리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합니다.
실제 행동 (빌다드와 펠레그): 이 두 은퇴 선장은 성경 구절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초보자인 이스마엘의 노동력을 쥐어짜기 위해 임금(몫)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피도 눈물도 없이 협상합니다. "종교적 경건함"과 "자본주의적 탐욕"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위선을 폭로하는 장치입니다.
③ 문학적 대사(Diction)의 극대화
퀘이커교도들은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로 고어체인 "Thee(너를)", "Thou(너는)" 같은 독특한 말투를 사용합니다.
멜빌은 이 퀘이커 특유의 고풍스럽고 종교적인 말투를 활용해, 선원들의 대사를 마치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나 성경 속 예언자들처럼 장엄하고 비장하게 들리도록 연출했습니다. 에이해브 선장이나 일등항해사 스타벅(그 역시 퀘이커입니다)이 읊조리는 대사들이 장엄한 이유입니다.
한 줄 요약
낸터컷 고래잡이를 지배했던 실제 퀘이커교도들의 역사를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육지에서는 평화와 청빈을 외치면서, 바다에서는 피와 돈을 좇아 광포하게 폭주하는 인간의 이중성(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문학적 장치입니다.
경건한 척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스마엘의 돈을 후려치던 빌다드 선장의 이중적인 모습, 왜 '퀘이커'여야 했는지의 이유입니다.
여섯모서리
<에이해브, 빌다드, 펠레그의 구약성경적 유래>
세 선장의 이름 유래와 성경 속 의미
선장 이름
성경 속 유래와 인물상
소설 속 멜빌의 상징적 투영
.에이해브(Ahab, 아합)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가장 악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왕. 예언자 엘리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폭주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함.
.신(자연)에게 도전하고, 거대한 백색 고래를 향한 광기 어린 복수심으로 선원들을 파멸로 이끄는 독재자이자 '폭주하는 왕'.
.빌다드(Bildad)
.욥기(Job)에 나오는 욥의 세 친구 중 한 명. 고통받는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네가 고난을 받는 건 다 네 죄 때문이다"라며 율법적으로 정죄함.
.은퇴 후 성경만 읽으며 경건한 척하지만, 이스마엘의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율법주의적이고 지독한 위선자'.
.펠레그(Peleg)
.창세기(10장 25절)에 나오는 인물. 그 이름의 뜻은 "나누어짐(Division)"이며, 성경은 "그의 시대에 세상(땅)이 나뉘었다"고 기록함.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가 흩어진 시기)바다와 육지, 종교적 경건함과 자본주의적 세속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분열된 자아'. 고집스럽고 거칠지만 에이해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인물.
왜 "펠레그"라는 이름을 썼을까? (분열과 항해의 상징)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인 펠레그의 이름은 두 가지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인류의 분열(바벨탑): 펠레그가 살던 시대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의 언어가 나뉘고 세상이 갈라졌습니다. 피쿼드호는 백인, 인디언(타슈테고), 식인종(퀴퀘그), 흑인(핍) 등 온갖 언어와 인종이 뒤섞여 파멸로 가는 '바다 위의 작은 바벨탑'입니다. 멜빌은 이 배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소유주에게 '분열의 시대'를 뜻하는 펠레그의 이름을 준 것입니다.
.언어학적 유희 (항해): 흥미롭게도 히브리어에서 펠레그(Peleg)의 어원은 현대 히브리어에서 "항해하다(lehaflig)"라는 단어의 어근과 같습니다. 바다를 가르고 나아가는 선장에게 이보다 더 정교한 이름은 없겠지요.
셋 다 성경 이름인데, 왜 둘(빌다드·펠레그)과 하나(에이해브)로 나뉘는가?
방장님이 감각적으로 느끼신 묘한 이질감은 멜빌이 의도한 문학적 구도입니다. 비록 셋 다 성경 속 이름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명확하게 [육지의 듀오] vs [바다의 괴물]로 나뉩니다.
육지의 콤비: 빌다드와 펠레그 (위선적인 신앙의 양면성)
이 둘은 피쿼드호의 '공동 선주(주인)'이자 은퇴한 늙은 선장들입니다.
.한 명(빌다드)은 겉보기에 지독하게 경건하고, 다른 한 명(펠레그)은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세속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돈 앞에서는 똑같이 추악한 자본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습니다. 이들은 육지에 안전하게 남아서 남의 피(선원들)와 고래 기름으로 배를 불리는 '타락한 기독교 문명'을 대변합니다.
바다의 독재자: 에이해브 (신에게 도전하는 거인)반면, 에이해브는 육지의 얄팍한 돈 계산이나 위선적인 종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오직 거대한 악(모비딕)과 1대 1로 맞서 싸우겠다는 실존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멜빌의 진짜 의도
멜빌은 빌다드와 펠레그의 '가짜 경건함(위선)'을 먼저 보여준 뒤, 곧 등장할 에이해브의 '거대하고 웅장한 불신앙(광기)'을 대비시키려 한 것입니다.독자로 하여금 "차라리 저 위선적인 영감들(빌다드·펠레그)보다, 차라리 자기 파멸을 향해 정직하게 폭주하는 에이해브가 훨씬 더 신적이고 거대해 보인다"는 비극적 숭고함을 느끼게 만드는 정교한 장치인 셈입니다.
결론
결국 16장의 펠레그와 빌다드는 단순한 엑스트라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 속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이웃 사랑, 청빈)을 배신한 채,
에이해브라는 거대한 비극의 괴물이 날뛸 수 있는 무대(피쿼드호)를 돈을 받고 제공하는 조력자들입니다.
그 이질감은, 멜빌이 설계한 "육지의 얄팍한 종교인들"과 "바다의 압도적인 불신앙자(에이해브)" 사이의 거대한 균열을 정확히 읽어냈기 때문입니다.
서설
여섯모서리님, 에이해브는 과연 불신앙자일까요?
문학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답하자면, "에이해브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그 신에게 온몸으로 대적하고 반역하는 '적신론자(Antitheist)'이자 투쟁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단순히 신을 부정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가 왜 단순한 불신앙자가 아닌지, 그 광기 어린 신앙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봤습니다.
신의 존재를 누구보다 강렬하게 믿는 자
진정한 불신앙자(혹은 무신론자)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관심이 없습니다. "신은 없다"고 치부하고 자기 삶을 살 뿐이죠.
하지만 에이해브는 다릅니다. 그는 온 우주와 대자연, 그리고 백색 고래(모비 딕) 배후에 거대하고 사악하며 불공평한 '어떤 신성한 힘(지배자)'이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모비 딕을 단순한 고래가 아니라, 인간을 조롱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신의 잔인한 대리자로 봅니다. 따라서 그가 고래에게 복수하려는 것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우주의 창조주(신)의 뺨을 때리겠다는 극단적인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악마적인 의식과 피의 세례 (반역의 신앙)
소설이 진행되면서 에이해브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신앙이 없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정반대로 뒤집어엎은 '악마적 신앙'에 가깝습니다.
이교도 작살잡이들의 피로 세례를: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죽일 특별한 작살을 만들 때, 기독교식 축복을 거부하고 이교도인 퀴퀘그, 타슈테고, 다구의 피를 작살촉에 부으며 라틴어로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Ego non baptizo te in nomine patris, sed in nomine diaboli!"
(나는 성부의 이름이 아니라, 악마의 이름으로 너에게 세례를 주노라!)
번개(하늘의 힘)에 맞서다: 폭풍우 속에서 배의 돛대에 번개(세인트 엘모의 불꽃)가 내리쳐 불길이 솟구칠 때, 선원들은 두려워 떨며 기도하지만 에이해브는 그 불꽃을 똑바로 노려보며 "나는 너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끝까지 맞서겠다"며 하늘을 향해 분노를 터뜨립니다.
왜 멜빌은 그에게 '아합(Ahab)'이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앞서 말씀드렸듯, 성경 속 아합 왕은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뻔히 알면서도, 바알과 아스타롯 같은 이방 우상을 들여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했던 왕입니다.
멜빌이 에이해브 선장에게 이 이름을 붙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에이해브는 신을 모르는 '무지한 불신자'가 아닙니다.
그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한계(죽음, 고통, 다리를 잃은 절망)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왜 당신은 인간을 지배하고 고통을 주느냐"며 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물입니다.
에이해브는 단순히 "나는 신을 안 믿어"라고 말하는 냉소적인 불신앙자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신을 너무나 의식한 나머지, 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맞서 싸우다 죽으려 하는 '비극적 거인'에 가깝습니다. 멜빌은 육지에서 푼돈을 아끼며 경건한 척하는 빌다드와 펠레그의 ' 가짜 신앙'보다, 비록 악마적일지언정 신의 불공평함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에이해브의 '거대한 반역'을 통해 인간 존엄성의 극단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그가 믿는 신앙은 기독교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과 복수만을 믿는 '광기의 신앙'이었던 셈이지요. 에이해브라는 캐릭터가 왜 그토록 무섭고도 매력적인지, 종교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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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해브,
"신에게 반역하고, 스스로를 악마의 이름으로 세례하며, 결국 선원들을 파멸로 몰고 간 광기 어린 독재자"
어떻게 그에게서 '인간 존엄성의 극단'을 볼 수 있는가?
저는 이런 의문을 품어보고 싶었습니다.
언뜻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기서 멜빌이 보여주고자 한 문학적 진실은 도덕적인 '착함'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거대함'에 있습니다. 멜빌이 에이해브를 통해 그린 '인간 존엄성의 극단'이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비극적 숭고함에서 비롯됩니다.
운명(신)의 무자비함에 굴복하지 않는 유일한 인간
대다수의 인간은 거대한 운명의 장난이나 자연의 압도적인 힘(죽음, 질병, 재해 등)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게 신의 뜻인가 봐"라며 체념하고 타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입니다.
에이해브의 태도: 에이해브는 다리 한쪽을 잃은 절망 속에서 절규하며 무릎 꿇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긴 창조주(혹은 자연의 맹목적인 힘)를 향해 "네가 아무리 나를 짓밟아도, 나는 결코 너를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똑바로 서서 눈을 부릅뜹니다.
존엄의 이유: 비록 육체는 늙고 부서진 피조물에 불과할지라도, 정신만큼은 우주적 법칙(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적하겠다는 기개. 멜빌은 여기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오만하면서도 가장 웅장한 자아의 힘, 즉 '존엄성'을 보았습니다.
'가짜 경건'보다 위대한 '비극적 정직함'
방장님이 조금 전에 읽으신 빌다드와 펠레그 선장을 다시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육지에서 성경을 끼고 살며 도덕과 신앙을 말하지만, 바다에 나간 선원들의 고혈을 짜내고 고래를 난도질해 돈을 버는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온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얄팍하고 비겁합니다.
반면 에이해브는 지독하리만큼 정직합니다. 그는 자신이 악마와 손을 잡을지언정, 비겁하게 신의 뒤에 숨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멜빌은 얄팍한 도덕률 안에서 타협하며 사는 평범한 인간들보다, 차라리 자기 파멸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한계(인간의 운명)를 시험하기 위해 끝까지 질주하는 거인의 모습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엄청난 심연과 위대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주체성
그냥 평범한 고래잡이 선장들이라면 고래에게 다리를 잃었을 때 "재수가 없었다"며 은퇴하거나, 그저 먹고살기 위해 다시 배를 탈 것입니다. 고통을 그저 '우연한 사고'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하지만 에이해브는 자신의 고통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습니다. 그는 모비 딕이라는 하얀 고래에게 인간이 겪는 모든 보이지 않는 고통과 악의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내가 저놈을 침으로써, 인간을 영원히 가두고 괴롭히는 우주의 장벽을 부숴버리겠다."
비록 그 수단이 광기와 파멸일지라도, 자신의 고통에 스스로 거대한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과 맞장뜨겠다는 의지 자체가 인간을 단순한 '동물'이나 '희생양'이 아닌 '주체적인 투쟁가'로 격상시키는 순간입니다.
"비록 패배할지라도, 나는 나로서 싸우다 죽겠다."
에이해브는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할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타인까지 파멸로 이끄는 위험하고 독선적인 괴물입니다.
하지만 멜빌이 에이해브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 존엄성의 극단'은, 아무리 신이라 할지라도 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혼만큼은 절대 강제로 무릎 꿇릴 수 없다는 인간 정신의 절대적 불가침성입니다. 에이해브는 결국 고래에게 끌려가 바닷속으로 사라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채 당당히 소멸합니다.
왜 문학평론가들이 에이해브를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에게 불을 훔쳐다 주고 영원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는지, 이제 압니다.
잔해
노예의 발꿈치와 말굽에 잔뜩 파인 흔해 빠진 도로를, 길로 뒤덮인 땅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 흔적도 용납하지 않는 바다의 도량을 찬미했다.
『모비 딕 - 상』 13. 외바퀴 수레.,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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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마엘이 왜 그토록 바다를 갈망했는지, 그리고 멜빌이 생각하는 '바다'와 '육지'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가장 감각적이고 철학적으로 보여주는 문장
1. 문장의 의미 분석
① "노예의 발꿈치와 말굽에 잔뜩 파인 흔해 빠진 도로" (육지의 억압)
육지의 상징: 육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규격화된 사회입니다. '도로'는 이미 누군가 닦아놓은 길이며, 그 길 위를 걷는 존재들은 "노예"와 노동에 시달리는 "말(말굽)"로 비유됩니다.
즉, 육지는 사회적 계급, 구속, 의무, 억압, 그리고 쳇바퀴 도는 고단한 일상을 의미. 이슈마엘은 모든 사람이 정해진 궤도(도로)로만 움직여야 하는 문명사회의 획일성과 답답함을 극도로 경멸했던 것입니다.
② "어떤 흔적도 용납하지 않는 바다의 도량" (바다의 절대적 자유)
바다는 아무리 배가 지나가도 그 뒤에 영구적인 길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가 치고 나면 다시 완전한 무(無)의 상태, 즉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자 자유로 돌아갑니다.
바다는 사회적 지위나 과거의 흔적(상처, 낙인, 신분)을 모두 깨끗이 지워버리는 공간입니다. 백인이든 야만인이든, 왕자든 부랑자든 바다 앞에서는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이슈마엘은 이 모든 차별과 굴레를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바다의 위대하고 넓은 도량(자유)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2. 멜빌이 이 대목을 쓴 의도
첫째, '문명적 자아'의 완전한 탈피
이슈마엘은 지상에서 쌓인 우울함과 답답함을 떨쳐내기 위해 바다로 왔습니다. 정기선 모스호가 드넓은 바다로 미끄러져 나가는 순간, 그는 비로소 육지가 주던 정신적 감옥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로운 단독자'로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 퀴퀘그와의 수평적 연대의 배경
만약 이들이 육지의 도로 위에 있었다면, 기독교인 백인과 문신을 한 야만인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흔적(선입견)도 용납하지 않는 바다" 위로 나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문명의 편견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인간 대 인간으로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멜빌은 이 구절을 통해 "누군가 닦아놓은 억압적인 길(육지)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바다)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해방감"을 강렬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에서 이 문장을 마주하셨을 때 느껴진 그 가슴 벅찬 해방감이 바로 멜빌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날것의 공기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여섯모서리
진정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선 철학적으로 살거나 살려고 애쓰는 것에 대해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모비 딕 - 상』 10.소중한 친구,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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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아무리 완고한 편견이라도 사랑으로 구부리자고 들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모비 딕 - 상』 11. 잠옷,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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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위트와 풍자>
조지 워싱톤이 식인종으로 성장했으면 퀴퀘그가 되었을 것이다. - 10. 소중한 친구
향유 바른 머리를 이발사에게 가발걸이로 팔아 버린 후 - 13. 외바퀴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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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멜빌이 이 장을 쓴 작가의 메세지
첫째,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구도 전복
멜빌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누가 진짜 야만인인가?" 겉으로는 교양 있어 보이지만 탐욕스럽고 사악하게 살아가는 기독교 문명인들과, 문신을 새긴 식인종이지만 영혼만큼은 황제처럼 고결하고 이타적인 퀴퀘그를 대조시킵니다. 이를 통해 당시 서구 사회의 제국주의적 오만을 비판합니다.
둘째, 퀴퀘그라는 인물의 신화적 격상
퀴퀘그를 단순히 '이색적인 동반자'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표트르 대제에 비유하거나 "바다의 웨일스 공(황태자)"으로 묘사함으로써 그에게 신화적이고 범접할 수 없는 품격을 부여합니다.
셋째, 이슈마엘과의 영적 결속 강화
기독교 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어딜 가나 전부 사악한 세상이라고, 이교도로 살다 죽겠노라"고 다짐한 퀴퀘그의 상처를 이슈마엘이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공동 운명체로서 피쿼드호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12장은 퀴퀘그가 고향의 순수함을 잃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백인들의 종교를 거부하고 "스스로 순수한 이교도로 남겠다"고 선언하는 역설이 그려진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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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외바퀴 수레 (Wheelbarrow)
이슈마엘과 퀴퀘그가 뉴베드퍼드를 떠나 고래잡이의 본고장인 '낸터컷'으로 향하는 정기선(모스호) 안에서의 소동과 모험.
문명인들의 편협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인류애에 대한 묵직한 주제 의식
① 세상을 살아가는 고달픔에 대한 통찰
"원양을 누비던 길고 위험한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가 시작되고,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며, 그렇게 한없이 계속되는 법. 아무렴, 세상의 노고란 모두 그렇게 끝이 없고 고달픈 것이다."
항구에서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배들을 보며 이슈마엘이 던지는 독백. 끝없는 고래잡이 항해는 곧 '끝나지 않는 인간 삶의 굴레와 노동의 고단함'.
② 편견에 사로잡힌 문명인들을 향한 일침
"그들은 백인이 회칠을 한 검둥이보다 더 고상한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둘이 그렇게 사이좋게 어우러진 모습을 신신기한 듯 쳐다봤다."
피부색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믿는 문명인들의 얄팍하고 편협한 가시성을 폭로합니다.
③ 13장의 가장 위대한 깨달음 (인류 공동체 선언)
"세상은 공동 자본으로 세운 주식회사 같은 거야. 어딜 가나 마찬가지야. 우리 식인종은 이 기독교도들을 도와줘야 해."
자신을 놀리던 백인 풋내기가 물에 빠지자, 퀴퀘그는 주저 없이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그의 목숨을 구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파이프를 피우며 속으로 이 생각을 하죠. 이 문장은 "인류는 종교나 인종을 떠나 서로를 돕고 살아가야 하는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거대한 인류애를 식인종의 입을 통해 가장 순수하게 선포.
2. 작가의 메시지
첫째, '외바퀴 수레'와 '펀치 볼' 일화를 통한 문화적 상대성 풍자
퀴퀘그는 외바퀴 수레를 쓸 줄 몰라 어깨에 짊어지고 갔고, 백인 선장은 퀴퀘그 고향의 신성한 혼례용 펀치 볼(음료 항아리)을 손 씻는 '핑거볼'로 착각해 무례를 범했습니다.
멜빌은 이 두 가지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대조시키며, "낯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는 야만인이나 문명인이나 똑같다". 백인들이 야만인의 무지를 비웃을 자격이 없음을 풍자.
둘째, 진짜 '기독교적 정신'의 역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것은 기독교인 선원들이 아니라, 그들이 '식인종', '악마'라며 배척하던 야만인 퀴퀘그였습니다. 입으로만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외치는 문명인들보다, 묵묵히 행동으로 생명을 구하는 야만인이 훨씬 더 참된 기독교적 가치(이웃 사랑)를 실천하고 있다"는 메시지.
셋째, 이슈마엘의 완전한 정신적 귀속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도 어떠한 생색도 내지 않는 퀴퀘그를 보며 이슈마엘은
"그때부터 나는 따개비처럼 퀴퀘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고 말합니다.
이슈마엘은 이제 완전히 문명사회의 편견을 탈피했으며, 퀴퀘그라는 위대한 영혼과 영원한 동반자(공동 운명체)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순간입니다.
13장은 퀴퀘그의 압도적인 육체적·정신적 영웅성이 빛나는 장이며, 우리에게 "과연 교양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편견 없는 순수한 인류애가 인간을 구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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