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앨라배마 아이'는 피쿼드호에 탑승한 흑인 소년 '핍(Pip)'.
비극적 사건
소설 속에서 핍은 바다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는데, 배가 고래를 쫓느라 너무 바빠서 그를 제때 구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광활한 바다에 홀로 남겨집니다. 이 공포스러운 고독과 자연의 거대함을 직면한 이후, 핍은 정신이 나가고 맙니다(흔히 말하는 '미친 상태').
"탬버린을 치는 그"가 의미하는 것
순수함의 상실과 광기: 사고 이전의 핍이 즐겁게 탬버린을 치던 소년이었다면, 사고 이후의 핍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광인'이 됩니다.
멜빌은 핍이 현실(피쿼드호)에서는 '겁쟁이'라고 무시당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신의 눈(천상의 대갑판)에서 보면 그는 진실을 말하는 가장 고귀한 영웅이라고 평가합니다. 그가 탬버린을 치는 모습은 이제 세속적인 재롱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연주하는 성스러운 행위로 변모한 것입니다.
왜 멜빌은 그를 '가여운 앨라배마 아이'라고 부르나?
소외된 자에 대한 애정: 멜빌은 앞서 언급한 '아나카르시스 클로츠 대표단'처럼,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존재(흑인 노예 출신 혹은 가난한 소년)를 인류의 고통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
희생의 상징
"가여운 앨라배마 아이, 탬버린을 치는 그"는 세상의 광기에 희생되어 정신을 잃었지만, 그 대가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영적인 눈을 갖게 된 핍의 비극적이고도 성스러운 모습을 나타냅니다.
누가 진정으로 미친 것인가? 세상을 즐겁게 하려던 소년인가, 아니면 복수를 위해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선장인가?
모비 딕
D-29
잔해
여섯모서리
“ 그는 화형대에 묶여 불길이 팔다리를 휘감았지만 몸이 타버리지도 않고 여러 해 동안 사지에 다져 넣은 강건함도 전혀 잃지 않은 채 줄을 끊고 도망친 사람 같았다. 크고 다부진 체구는 '첼리니'가 만든 페르세우스 동상처럼 불변의 거푸집에 넣어 틀을 잡은 청동상 같았다. 회색 머리에서부터 황갈색으로 그을린 얼굴을 거쳐 목덜미를 따라 옷 속으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막대 같은 흉터가 보였는데, 희끄무레한 납빛 흉터는 윗부분에 떨어진 벼락이 맹렬하게 아래로 관통하면서도 나뭇가지 하나 떨어뜨리지 않은 채 우듬지부터 밑동까지 나무껍질을 벗겨 홈을 새기며 땅으로 흘러 들어가,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살아 있지만 벼락의 낙인이 찍힌, 그런 아름드리나무의 곧고 고결한 줄기에 새겨지곤 하는 수직 솔기와 비슷했다. ”
『모비 딕 - 상』 28. 에이해브,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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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페르세우스 동상'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가 1545년에서 1554년 사이에 제작한 청동 조각상입니다. 정식 명칭은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입니다.
이 작품이 왜 유명하고 중요한지 주요 특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내용
신화적 배경: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고르곤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를 퇴치하고, 잘린 메두사의 머리를 높이 들어 올려 승리를 과시하는 순간을 묘사했습니다.
시각적 특징: 페르세우스의 발밑에는 죽은 메두사의 몸통이 쓰러져 있고, 그 위로 페르세우스가 당당하게 서서 잘린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조각의 정교함과 매너리즘 양식의 긴장감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2. 역사적·예술적 의의
피렌체의 상징: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 있는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위치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과 마주 보는 자리로, 당시 피렌체 공국을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의 권력을 상징하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작 기술: 이 작품은 단 한 번에 청동을 부어 주조해낸(원형 주조) 매우 기술적으로 고난도인 작품입니다. 첼리니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겪었던 엄청난 고생과 기술적 도전을 생생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술가의 서명: 첼리니는 페르세우스의 헬멧 뒤쪽에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 넣었으며, 페르세우스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등 예술가로서의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3. 《모비딕》에서의 맥락
질문하신 《모비딕》 본문에서 에이해브 선장을 "첼리니가 만든 페르세우스 동상처럼 불변의 거푸집에 넣어 틀을 잡은 청동상 같았다"고 비유한 것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불변성과 강인함: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처럼 에이해브의 모습이 벼락의 낙인(흉터)이 새겨져 있으면서도, 마치 쇠나 청동으로 빚어낸 것처럼 굽히지 않는 강인하고 단단한 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비유입니다.
즉, 멜빌은 에이해브라는 인물을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빚어진, 그러나 그 자체로 고정되어 절대 변하지 않는 운명의 형상'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kontentree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
즉 스타벅의 '미신(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멜빌이 묘사한 '아나카르시스 클로츠 대표단(인류의 위엄)'을 하나로 연결하면,
《모비딕》이라는 작품이 지향하는 깊고 따뜻한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이 둘을 연결하는 핵심 키워드는 '나약한 인간에 대한 작가의 연민'입니다.
1. 연결의 고리: '나약함'이 곧 '인간의 위엄'이다
멜빌은 스타벅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성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음과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결국 '미신(신비와 경외)'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아나카르시스 클로츠 대표단'이라는 역사적 비유를 통해, 그렇게 고통받고 방황하는 비루한 선원들(핍, 이교도, 빈자들)이야말로 사실은 인류의 고난을 짊어진 고귀한 대표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스타벅의 미신: 개별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끼는 실존적 두려움과 겸손함
아나카르시스 클로츠 대표단: 그런 인간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가 짊어진 보편적인 비극과 운명
2. 왜 멜빌은 이 둘을 같이 배치했을까?
멜빌은 독자들에게 "이 평범하고 때로는 미신에 빠지거나 광기에 희생되는 선원들을 결코 하찮게 보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스타벅처럼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도 바다에서는 미신을 믿는 나약한 인간이 됩니다.
핍처럼 '가여운 아이'는 광기에 희생되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멜빌은 그들이 가진 그 '결핍'과 '나약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인류의 대표단'으로 격상시키며,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그 고통과 비극 자체가 바로 우리 인간의 가장 찬란한 위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결론: 멜빌의 인간론
결국 이 연결을 통해 우리는 멜빌이 추구한 '민주적 위엄'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위엄은 왕관이나 높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과 알 수 없는 운명 앞에 서서 두려워하고, 때로는 미신에 기대고, 때로는 광기에 희생당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려 애쓰는 그 '비극적인 삶의 태도' 자체에서 나온다."
스타벅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미신을 믿으며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것처럼, 멜빌은 피쿼드호의 모든 비천한 선원들을 '아나카르시스 클로츠 대표단'으로 칭하며 그들의 고통과 나약함을 '인간애라는 망토'로 덮어주려 한 것입니다.
멜빌은 우리 모두가 피쿼드호에 탄 선원들처럼 불완전하고 가여운 존재들이지만,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가 고귀한 인류의 대표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 연결을 통해, 이제 모비딕이라는 작품이 단순한 고래 사냥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이야기로 느껴지시나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섯모서리
왜 벼락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했나? (그 의미)
멜빌이 에이해브의 흉터를 묘사하며 벼락과 나무의 비유를 길게 사용한 데에는 매우 중요한 의도.
① '파괴되었으나 살아남은' 존재
벼락을 맞은 나무는 겉껍질이 벗겨지고 홈이 패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르게 살아,"
에이해브가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벼락)을 겪었음에도, 죽지 않고 오히려 그 흉터를 내면의 강인한 에너지로 삼아 복수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암시. 그는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고통 속에서 기괴하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존재.
cf)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줄기'를 뜻하는 순우리말, 맨 꼭대기.
우듬지부터 밑동까지-나무의 가장 높은 곳을 타격, 뿌리까지 수직 관통.
② '하늘의 낙인'과 초월성
벼락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자연의 힘.
에이해브의 흉터를 벼락의 낙인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는 '인간의 운명을 넘어선 무언가(운명, 신, 혹은 저주)에 의해 선택되거나 타격받은 존재'라는 신화적 의미를 부여. 그는 단순히 다리를 잃은 선장이 아니라, 신과 겨루기 위해 운명적으로 낙인찍힌 '영웅적 비극 인물'로 격상.
③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연결
앞선 '페르세우스 동상'처럼, 이 벼락의 흉터는 에이해브를 '고통이라는 거푸집 속에서 만들어진 단단한 존재'로 고정.
벼락이 나무를 관통하며 새긴 그 영구적인 흔적처럼, 에이해브 역시 그 벼락(사건) 이후로 자신의 성격과 목표가 절대 변하지 않는 '청동상'처럼 굳어버렸음.
요약하자면
멜빌이 벼락 묘사를 상세히 한 이유는 에이해브라는 인물이 겪은 비극의 깊이를 시각화하기 위해서, 그는 벼락(운명의 타격)을 맞고도 꺾이지 않은, 그러나 그 대가로 흉터(광기)를 평생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살아있는 비극의 상징'.
이 흉터가 에이해브가 왜 그렇게 모비딕에게 집착하는지(복수심의 근원)를 설명하는 하나의 열쇠라고 생각하시나요?

서설
그는 일본 앞바다에서 돛대를 잃었단 말이거든.
돛대를 잃은 그의 배처럼 그도 항구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돛대를 단 거야.
그런 건 잔뜩 가지고 있었으니까.
『모비 딕 - 상』 28. 에이브해 선장 중 늙은 게이 곶 인디언의 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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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돛대 따위(혹은 다리 따위)는 언제든 갈아 끼우면 그만"이라는 비인간적인 뉘앙스.
비극적인 괴물이죠. 에이해브의 내면이 얼마나 망가졌는지(인간성을 상실했는지) 나타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kontentree
서설님이 올려 주신 문장이 나의 이야기로 치환되네요.
질문 1: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돛대)를 잃었을 때, 항구로 돌아오는 대신, 에이해브처럼 다른 돛대를 달고 계속 나아가나요?"
질문 2: "에이해브가 다시 단 그 '다른 돛대'는 과연 그를 구원하는 장치일까요, 아니면 파멸을 앞당기는 부속품일까요?"
질문 3: "여러분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돛대'가 부러졌을 때,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대체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모비딕 상,하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이어서 뵙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https://www.gmeum.com/meet/3582
잔해
“ 그가 서 있는 독특한 자세도 놀라웠다. 피쿼드호의 뒤쪽 갑판 양쪽에는 뒤 돛대 밧줄 근처의 널빤지에 1센티미터 남짓한 송곳 구멍이 있었다. 에 이해브 선장은 고래 뼈로 만든 다리를 그 구멍에 꽂고, 한 팔을 들어 밧줄을 움켜쥔 채 똑바로 서서 끊임없이 들썩이는 뱃머리 너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뚫어지게 앞만 응시하는, 두려움 없는 그 시선에는 한없이 강인한 의연함, 굽힐 줄 모르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
『모비 딕 - 상』 28. 에이브해,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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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에이해브가 자신의 다리를 송곳 구멍에 고정하며 서 있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가두는 어떤 '습관'이나 '강박'과 닮아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에이해브처럼 무언가에 강하게 고정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그 1센티미터의 구멍이 사실은 에이해브를 세상에서 가장 좁은 감옥에 가두고 있네요.
여섯모서리
'나는 무엇에 고정되어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잔해
고정된 운명'과 '비인간적인 강박'을 상징.
운명의 닻을 내리고 오직 한 방향(모비딕이 있을 곳)만을 응시하기 위해서요.
그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수라는 저주받은 운명에 스스로를 묶어버린 '살아있는 석상'과 같은 상태 같아요.
그 1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구멍은, '반복과 강박'의 시각화로
멜빌은 에이해브를 묘사할 때 자주 그를 '배의 부속품'에 비유했더랬죠.
"예비 돛대를 달았다"는 말처럼, 송곳 구멍 역시 피쿼드호라는 거대한 복수의 도구에 최적화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한 즉,
송곳 구멍에 갇힌 에이해브는 배와 함께 움직이고 배와 함께 파멸할 수밖에 없는 '배의 노예' 가 되었네요.
잔해
31장 꿈의 요정에서 스터브가 꾸는 기묘한 꿈
에이해브 선장의 '비인간적인 권위'와 그에 굴복해가는 선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복선.
꿈의 의미를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
1. 에이해브의 다리: '모욕'과 '권력'의 상징
꿈속에서 스티브는 에이해브의 의족(고래 뼈 다리)에 차이고, 그것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달램.
에이해브의 다리는 단순한 신체 보조물이 아니라, 그가 휘두르는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권력' 그 자체. 스티브가 "진짜 다리가 아니라 의족일 뿐이니 모욕이 아니다"라고 합리화, 선원들이 에이해브의 광기 어린 명령을 따르면서 느끼는 인지부조화(불합리한 상황을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심리).
2. 밧줄 송곳이 꽂힌 도깨비: '운명의 덫'
꿈에 등장하는 곱사등이 도깨비는 등에 밧줄 송곳이 거꾸로 꽂혀 있음.
이 도깨비는 에이해브의 복수극에 휘말린 선원들의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 밧줄 송곳은 고래를 잡을 때 쓰는 도구. 즉, 그 도깨비는 고래잡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선원들의 모습을 반영. "현명한 스터브"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길(에이해브의 파멸적인 명령을 따르는 길)을 걷고 있음을 비꼬는 냉소.
3. '현명함'의 역설
꿈속에서 도깨비는 스티브에게 "걷어차여도 영광인 줄 알라"고 강요합니다.
이는 에이해브가 선원들에게 주입하는 맹목적인 복종을 의미. 권력자에게 짓밟히면서도 그것을 '영광'이나 '훈장'으로 포장하는 것은 노예 근성을 정당화하는 논리. 스티브가 꿈에서 깨어나 "덕분에 나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에이해브의 광기를 거부하기보다 순응하는 길을 택했다는 파멸의 전조.
이 꿈은 '광기에 동화되어가는 평범한 인간'의 초상을 보여주는 대목.
이 꿈은 스터브가 에이해브의 광기에 어떻게 길들여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꿈에서 스티브는 에이해브에게 걷어차이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리화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당한 권위나 상황 앞에 서 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현실을 왜곡하거나 합리화하고 있을까요?
여섯모서리
"당황스러울 정도로 상반되는 생각" 의 의미
이렇게 직접 언급하는 부분은 이 꿈의 핵심입니다.
스터브 본인 도 이 두 생각이 너무나 모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황스럽다'는 말은, 그가 자신의 비겁함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분명히 모욕을 당했고 화도 나지만, 그 감정을 그대로 품고 살아가면 피쿼드호에서의 항해가 지옥 같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억지로 '상반되는 생각'을 만들어내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스터브라는 인물이 단순히 순응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복합적이고 가여운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이 꿈이 단순한 개꿈이 아니라 선원들의 '비극적인 생존 전략' 입니다.
계속해서 읽어나가시면서, 스터브가 이렇게 스스로를 왜곡한 대가로 나중에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그의 말대로 정말 현명하게 처신하는지, 아니면 결국 광기에 먹히는지) 살펴보시면 흥미로운 읽기가 될 것 같아요.
잔해
“ 산 다리에 차이는 것과 죽은 다리에 차이는 건 엄청나게 다르니까. 손으로 때리는 게 지팡이로 때리는 것보다 쉰 배는 더 야만스러운 이유도 그 때문이지. 살아 있는 팔다리, 바로 그게 살아 있는 모욕이 되니까. ...
”
『모비 딕 - 상』 31. 꿈의 요정,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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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순응의 의미 (심리적 관점)
스터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 승리'이자 '순응의 논리'.
에이해브에게 당한 물리적 폭력을 '모욕'이라는 인간적인 감정 에서 사물로 밀어냄으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 자체 부정.
권위에 대한 방어기제로 "어차피 저 미친 영 감(에이해브)을 내가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저건 나를 모욕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몽둥이질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게 배 위에서 생활.
이 대목이 섬뜩한 이유는, 스터브가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깎아내리면서까지 '현명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현실에 타협.
스터브는 이 꿈을 통해 에이해브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쳤고, 그 결과 그는 '현명한 스터브'가 됨.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포기하고 '굴종의 시작'.
이 꿈 이후로 스터브가 에이해브를 대하는 태도가 더 기계적으로 변했는가 지켜보자구요, 이후 '순응'의 의미가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여섯모서리
스터브는 자신의 분노와 합리화를 동시에 느끼며 '당황스러울 정도로 상반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혹시 직장이나 조직 생활에서 부당함을 느낄 때,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스터브처럼 '상반되는 생각'을 만들어내어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지는 않나요?"
여섯모서리
스터브의 꿈속에 등장하는 도깨비의 등에 '바깥을 향해 거꾸로 꽂힌 밧줄 송곳'
고래잡이들이 처한 비극적이고도 역설적인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
'사냥 도구'가 '자신을 찌르는 가시'로 변함
원래의 기능: 밧줄 송곳은 고래를 잡기 위해 고래의 살을 뚫고 박히는 '공격용' 도구입니다.
거꾸로 꽂힌 의미: 도깨비의 등에 거꾸로(뾰족한 쪽이 바깥을 향해) 꽂혀 있다는 것은, 사냥꾼(선원)이 사냥을 위해 준비한 도구가 사실은 자기 자신을 찌르고 상처 입히는 흉기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선원들은 에이해브의 복수극(모비딕 사냥)이라는 거대한 포식 작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 작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자기 자신들입니다. 사냥을 하면 할수록, 그 사냥 도구가 선원들의 영혼과 삶을 갉아먹고 찌르고 있는 셈입니다.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선원들의 처지
보통 송곳이 정상적으로 꽂혀 있다면 대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거꾸로 꽂혀 있다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선원들이 도깨비를 향해 발길질하려 할 때, 도깨비가 등을 돌려 이 송곳을 보여주는 행동은 "함부로 공격하려 들지 마라, 너희도 똑같이 이 사냥의 저주에 찔려 있다"고 경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터브가 곧바로 "안 차는 게 좋을 것 같군"이라며 물러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등에 보이지 않는 똑같은 '저주(송곳)'가 꽂혀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입니다.
고통을 감수하는 '현명함'의 비극
도깨비가 스터브를 향해 끊임없이 "현명한 스터브"라고 부르는 점을 주목하세요. 이 현명함은 에이해브의 광기에 맞서지 않고, 그저 순응하며 자기 합리화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굴종의 지혜입니다.
등에 송곳이 꽂힌 채로도 꿋꿋이 서서 그 비극을 정당화하는 도깨비의 모습은, 고통스러운 복수의 항해를 이어가면서도 그것을 '영광'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선원들.
요약하자면
거꾸로 꽂힌 밧줄 송곳은 "사냥을 하러 떠났으나, 사실은 사냥의 도구에 찔려 파멸해가는 선원들의 운명"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도깨비는 스터브에게 그 뾰족한 진실을 보여주며, 그가 아무리 '현명하게' 순응하며 자신을 달래려 해도 결국 이 사냥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내 등을 찌르는 줄도 모르고 붙잡고 있는 도구(신념, 직업, 고집)'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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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을 이슈마엘이라 불러다오
Call me Ishmael"
확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답'을 찾지 못해 끊임없이 바다를 표류하는 방랑자, 저, 서설님, 잔해님, 여섯 모소리님 !
책을 펼치자마자 멜빌은 우리의 눈을 보며 말을 걸어 왔죠.
이 짧고 강렬한 요구에 방랑자의 여행에 동행했어요.
"지금부터 영원히 헤맬 인간의 실존적 방랑에 대해 들려주겠다"
는 멜빌을 따라 계속 모비딕 상,하 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이만 이곳 모비딕 상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 덕분에 많이 배웠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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