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D-29
"영혼이 축 늘어질 때, 바다에 나가는 게 내 권총과 탄환 대신이다." — 허먼 멜빌, 《모비딕》 황석영 작가가 인생 책으로 꼽은 소설. 중도 포기자가 가장 많은 소설. 그러나 완독한 사람이 가장 강하게 권하는 소설. 고래잡이 이야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고래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는.. 같이 읽어요. 중간에 쉬어도 됩니다. 이어서 가면 되니까요. 바로 시작합니다!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내뿜는다.
모비 딕 - 상 - 존 밀턴, '실낙원' 중에서 -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그의 천재성을 존경하는 마음의 징표로 이 책을 너대니얼 호손에게 헌정한다
모비 딕 - 상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은 미국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단편 작가입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1850)입니다. 그는 1850년에 호손을 처음 만났고, 그의 단편집 《이끼 낀 구 목사관 이야기(Mosses from an Old Manse)》를 읽고 매료되어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까지 칭송하였죠. 두 사람은 매사추세츠주 버크셔 지역에서 이웃이었고 친구를 넘어서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자 정신적 스승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죠. 헌정사에는 "In token of my admiration for his genius"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 페이지입니다. 본편 시작 전에 멜빌은 성경, 셰익스피어, 밀턴, 실제 항해기까지 — 인류가 고래를 어떻게 기록해 왔는지를 켜켜이 쌓아 올려요. 그 중에 이런 구절들이 나와요. 야훼가 큰 물고기를 지어 내셨다 — 창세기 야훼께서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 요나서 레비아단을 쫓아가 그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이시리라 — 이사야 인용만이 아닌 멜빌이 독자한테 미리 이 구도를 심어둡니다. 신(야훼)이 괴물(레비아단)을 만들었고, 인간(요나)은 그 앞에서 무력했다. 요나는 결국 신 앞에 굴복하고 살아남았죠.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에이해브 선장은 다릅니다. 그는 신이 만든 자연의 괴물, 흰 고래 모비딕에 끝까지 저항하고 멜빌이 이 책 전체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신 앞에, 자연 앞에, 운명 앞에 — 인간은 굴복해야 하는가, 저항해야 하는가?"
내면의 상처에는 경뇌유가 지상 최고의 약이다.
모비 딕 - 상 — 셰익스피어 《헨리 4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경뇌유는 향유고래 머리에서 나오는 기름, 실제로 상처에 바르는 약이었어요. 그런데 멜빌이 이 구절을 여기 넣은 데는 훨씬 깊은 의미가 있어요. "내면의 상처, 즉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고래(바다, 항해)가 최고의 약이다." 1장에서 이슈마엘이 "입꼬리가 처지고 영혼이 축 늘어질 때, 권총과 탄환 대신 나는 바다에 나간다" 그 정서랑 정확하게 연결돼요. 즉 멜빌은 이 인용 하나로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는 거예요. 하나는 고래가 실제로 인간에게 유용한 자원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바다와 고래라는 존재 자체가 상처받은 인간 영혼의 치유제라는 것. 이슈마엘이 바다로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쫓는 이유이기도 해요 — 물론 에이해브의 경우는 치유가 아니라 복수로 뒤틀려 버리지만요.
어떤 의술도 그를 살리기에는 소용없으니, 오직 그 상처를 일으킨 자에게 복수하는 길뿐. 상처 입은 고래가 해안으로 질주하듯이."
모비 딕 - 상 — 에드먼드 스펜서 《페어리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에이해브의 본질을 가장 짧고 강렬하게 설명해주거든요. 에이해브가 왜 미쳐가는지, 왜 모비딕을 포기 못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페어리퀸 은 스펜서가 쓴 16세기 영국 서사시예요. 기사들의 모험과 덕목을 다룬 작품인데, 여기서 이 구절은 원래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묘사한 거예요. 상처를 입힌 자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내용이죠.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는 너무 명확해요. 이게 바로 에이해브의 이야기거든요. 에이해브는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었어요. 그 상처는 어떤 의술로도 낫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상처를 입힌 자, 즉 모비딕을 직접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어요. 그게 그의 집착이고 광기의 근원이에요. 멜빌은 본편에서 에이해브가 등장하기도 전에, 발췌 섹션에서 이 구절로 에이해브의 운명을 이미 예고해 놓은 거예요. 멜빌의 발췌 섹션이 단순한 인용 모음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전체 소설의 복선을 인류의 문헌 속에 숨겨 놓은 거예요. 정말 정교한 작가예요.
그 커다란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잔잔하던 바다를 어지럽혀 들끓게 만들 수 있는, 고래처럼 어마어마한.
모비 딕 - 상 윌리엄 대버넌트 경의 곤디버트 서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포인트는 "존재 자체가 주변을 뒤흔든다"는 거예요. 고래가 헤엄치는 것만으로 잔잔한 바다가 출렁이잖아요. 이게 모비딕의 본질이에요. 모비딕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피쿼드호 전체를, 에이해브를, 선원 모두를 뒤흔들어 놓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 대버넌트의 《곤디버트》가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해요. 멜빌이 굳이 미완성 서사시의 서문에서 인용한 건, 어쩌면 인간이 거대한 것에 도전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는 운명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어요. 에이해브처럼요.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멜빌이라면 충분히 의도했을 것 같아요 😊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
모비 딕 - 상 토머스 브라운 경, 경뇌유와 향유고래에 대하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경뇌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할 텐데, 학문에 밝은 호프만누스도 30년에 걸친 노작에서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라고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절묘해요. "나도 모른다 (Nescio quid sit)" — 이게 핵심이에요. 인류가 수천 년간 고래를 잡고, 고래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경뇌유로 약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30년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도 "모른다"고 했고요. 이게 모비딕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해부하고 연구하지만, 고래의 본질은 끝내 알 수 없어요. 멜빌은 소설 안에서도 고래의 눈, 고래의 머리, 고래의 꼬리를 챕터마다 분석하지만 결론은 항상 "알 수 없다"예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모비딕 전체의 철학적 테마를 라틴어 다섯 글자로 압축해 놓은 거예요. "Nescio quid sit — 나도 모른다." 신이 만든 것, 자연이 만든 것, 그 본질은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다는 것.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죽여도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신식 도리깨로 무장한 탤러스처럼, 육중한 꼬리로 파멸을 위협한다 . . . 옆구리에는 사람들이 던진 창들이 꽂혀 있고, 등에는 작살이 숲을 이룬 듯하다
모비 딕 - 상 — 월러, 《서머 제도의 전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모비딕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파괴자와 수난자 모비 딕은 이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존재입니다. 탤러스는 스펜서의 《페어리퀸》에 나오는 철로 만든 인간이에요. 도리깨를 무기로 쓰는 무자비한 집행자인데,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존재예요. 월러가 고래의 꼬리를 탤러스의 도리깨에 비유한 거예요. 고래 꼬리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파괴적인지를 표현한 거죠.
공화국, 또는 국가(라틴어로는 키비타스)라 일컫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엄청나게 큰 괴물 리바이어던은 인공적인 인간에 다름 아니다."
모비 딕 - 상 — 홉스, 《리바이어던》 첫 문장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은 정치철학의 고전이에요. 홉스는 국가 권력을 성경의 괴물 레비아단에 비유했어요. 국가란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만들어낸 거대한 인공 괴물이라는 거죠. 멜빌이 이걸 넣은 건 여러 층위가 있어요. 첫째로 고래 = 레비아단 = 국가 권력의 등식이에요. 고래가 자연의 괴물이라면, 국가는 인간이 만든 괴물이에요. 둘 다 개인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이라는 점에서 같아요. 둘째로 에이해브와 권력의 문제예요. 에이해브는 피쿼드호라는 작은 국가의 절대 권력자예요. 선원들을 자신의 복수에 복종시키죠. 홉스의 국가론으로 읽으면 에이해브는 괴물 같은 권력자이고, 피쿼드호는 그가 만든 리바이어던이에요. 토론 주제 : "에이해브는 괴물인가, 아니면 괴물 같은 운명에 맞선 인간인가?" 둘 다 맞는다는 것이 비극의 핵심. 에이해브는 분명히 괴물적인 면이 있어요. 선원 수십 명의 목숨을 자신의 복수심 하나에 걸어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요. 이건 폭군이고 괴물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보면 — 신이 만든 자연의 괴물에게 다리를 잃고, 그 고통이 치유되지 않아서, 유일한 출구로 복수를 선택한 인간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반응이기도 해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에 맞서겠다"는 의지. 제가 생각하는 멜빌의 답— 인간이 괴물에 맞서려 할 때, 그 인간 자신이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게 비극이 아니라 숭고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에이해브가 파멸하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은 무섭기도 하지만 어딘가 장엄하거든요. 이 질문 던지면 사람마다 답이 완전히 다르다는게 이 소설의 힘.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증정-선착순 10명] 청선고로 모여라!『열여덟의 페이스오프』작가와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커리어와 나 사이 중심잡기 [김영사] 북클럽
[김영사/책증정]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는 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구글은 어떻게 월드 클래스 조직을 만들었는가? <모닥불 타임> [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
[여성]을 다양하게 말하기
[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책증정]『빈틈없이 자연스럽게』 반비 막내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클래식 2025] 9월, 제 2의 성 [도서 증정]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 함께 읽기[도서 증정]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번역가와 함께 읽기
그믐의 대표 작가, 조영주
[책 증정] <탐정 소크라테스> 조영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증정] 작가와 작가가 함께 등판하는 조영주 신작 <마지막 방화> 리디셀렉트로 함께 읽기[장맥주북클럽] 1. 『크로노토피아』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9. 카페 조영주로 오세요
책도 주고 연극 티켓도 주고
[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짧은 역사, 천천히 길게 읽고 있습니다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 그림책 좋아하세요?
벽돌책 사이, 그림책 한 칸 (부제: 내가 아는 29가지 기쁨의 이름들)[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진짜 현장 속으로!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중독되는 논픽션–현직 기자가 쓴 <뽕의계보>읽으며 '체험이 스토리가 되는 법' 생각해요[도서 증정] 논픽션 <두려움이란 말 따위>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동아시아)[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체호프에서 입센으로, 낭독은 계속된다
[그믐밤] 47. 달밤에 낭독, 입센 1탄 <인형의 집>[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
봄에는 봄동!
단 한 번의 삶방랑자들여자에 관하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편견을 넘어 진실로: 흑인문화 깊이 읽기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5.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루시우 데 소우사
비문학을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 <한옥 적응기>독서기록용 <가난의 명세서>[독서 기록용]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