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축 늘어질 때, 바다에 나가는 게 내 권총과 탄환 대신이다."
— 허먼 멜빌, 《모비딕》
황석영 작가가 인생 책으로 꼽은 소설.
중도 포기자가 가장 많은 소설.
그러나 완독한 사람이 가장 강하게 권하는 소설.
고래잡이 이야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고래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는..
같이 읽어요. 중간에 쉬어도 됩니다. 이어서 가면 되니까요.
바로 시작합니다!
모비 딕
D-29

kontentree모임지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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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 멍으로 내뿜는다.
”
『모비 딕 - 상』 - 존 밀턴, '실낙원' 중에서 -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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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낙원(Paradise Lost)』(1667)은 창세기의 인간 타락을 주제로 한 영문학 최대의 서사시입니다. 사탄의 반란,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의 추방을 다루며, 사탄을 단순한 악당이 아닌 비극적 영웅으로 묘사해 이후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밀턴의 고래 묘사는 『모비 딕』의 직접적 원형입니다. "움직 이는 땅처럼 보이는" 거대함,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뿜어내는" 역동성—이것이 멜빌이 그리는 향유고래의 이미지입니다. 또한 에이해브와 밀턴의 사탄 사이의 유사성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습니다. 신에게 반항하는 숭고한 악당, 패배를 알면서도 돌진하는 비극적 의지—에이해브는 19세기 미국판 밀턴적 사탄입니다. 멜빌이 밀턴에서 두 구절이나 인용한 것은 이 연결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서설
만물의 신이 지으신 중에 가장 커다란 저 바다의 금수 바다 괴물이 대양의 해류를 헤엄친다.
『모비 딕 - 상』 실락원, 밀턴,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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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천재성을 존경하는 마음의 징표로
이 책을 너대니얼 호손에게 헌정한다
『모비 딕 - 상』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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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은 미국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단편 작가입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1850)입니다.
그는 1850년에 호손을 처음 만났고, 그의 단편집 《이끼 낀 구 목사관 이야기(Mosses from an Old Manse)》를 읽고 매료되어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까지 칭송하였죠. 두 사람은 매사추세츠주 버크셔 지역에서 이웃이었고 친구를 넘어서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자 정신적 스승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죠.
헌정사에는 "In token of my admiration for his genius"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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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입니다.
본편 시작 전에 멜빌은 성경, 셰익스피어, 밀턴, 실제 항해기까지 — 인류가 고래를 어떻게 기록해 왔는지를 켜켜이 쌓아 올려요. 그 중에 이런 구절들이 나와요.
야훼가 큰 물고기를 지어 내셨다 — 창세기
야훼께서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 요나서
레비아단을 쫓아가 그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이시리라 — 이사야
인용만이 아닌 멜빌이 독자한테 미리 이 구도를 심어둡니다.
신(야훼)이 괴물(레비아단)을 만들었고, 인간(요나)은 그 앞에서 무력했다.
요나는 결국 신 앞에 굴복하고 살아남았죠.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에이해브 선장은 다릅니다. 그는 신이 만든 자연의 괴물, 흰 고래 모비딕에 끝까지 저항하고
멜빌이 이 책 전체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신 앞에, 자연 앞에, 운명 앞에 — 인간은 굴복해야 하는가, 저항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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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상처에는 경뇌유가 지상 최고의 약이다.
『모비 딕 - 상』 — 셰익스피어 《헨리 4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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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뇌유는 향유고래 머리에서 나오는 기름, 실제로 상처에 바르는 약이었어요.
그런데 멜빌이 이 구절을 여기 넣은 데는 훨씬 깊은 의미가 있어요.
"내면의 상처, 즉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고래(바다, 항해)가 최고의 약이다."
1장에서 이슈마엘이 "입꼬리가 처지고 영혼이 축 늘어질 때, 권총과 탄환 대신 나는 바다에 나간다"
그 정서랑 정확하게 연결돼요.
즉 멜빌은 이 인용 하나로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는 거예요.
하나는 고래가 실제로 인간에게 유용한 자원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바다와 고래라는 존재 자체가 상처받은 인간 영혼의 치유제라는 것.
이슈마엘이 바다로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쫓는 이유이기도 해요 — 물론 에이해브의 경우는 치유가 아니라 복수로 뒤틀려 버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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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술도 그를 살리기에는 소용없으니, 오직 그 상처를 일으킨 자에게 복수하는 길뿐. 상처 입은 고래가 해안으로 질주하듯이."
『모비 딕 - 상』 — 에드먼드 스펜서 《페어리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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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해브의 본질을 가장 짧고 강렬하게 설명해주거든요. 에이해브가 왜 미쳐가는지, 왜 모비딕을 포기 못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페어리퀸 은 스펜서가 쓴 16세기 영국 서사시예요. 기사들의 모험과 덕목을 다룬 작품인데, 여기서 이 구절은 원래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묘사한 거예요. 상처를 입힌 자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내용이죠.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는 너무 명확해요.
이게 바로 에이해브의 이야기거든요.
에이해브는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었어요. 그 상처는 어떤 의술로도 낫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상처를 입힌 자, 즉 모비딕을 직접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어요. 그게 그의 집착이고 광기의 근원이에요.
멜빌은 본편에서 에이해브가 등장하기도 전에, 발췌 섹션에서 이 구절로 에이해브의 운명을 이미 예고해 놓은 거예요.
멜빌의 발췌 섹션이 단순한 인용 모음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전체 소설의 복선을 인류의 문헌 속에 숨겨 놓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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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커다란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잔잔하던 바다를 어지럽혀 들끓게 만들 수 있는, 고래처럼 어마어마한.
『모비 딕 - 상』 윌리엄 대버넌트 경의 곤디버트 서문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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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는 "존재 자체가 주변을 뒤흔든다"는 거예요.
고래가 헤엄치는 것만으로 잔잔한 바 다가 출렁이잖아요.
이게 모비딕의 본질이에요. 모비딕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피쿼드호 전체를, 에이해브를, 선원 모두를 뒤흔들어 놓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 대버넌트의 《곤디버트》가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해요. 멜빌이 굳이 미완성 서사시의 서문에서 인용한 건, 어쩌면 인간이 거대한 것에 도전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는 운명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어요. 에이해브처럼요.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멜빌이라면 충분히 의도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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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
『모비 딕 - 상』 토머스 브라운 경, 경뇌유와 향유고래에 대하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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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뇌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할 텐데, 학문에 밝은 호프만누스도 30년에 걸친 노작에서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라고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절묘해요.
"나도 모른다 (Nescio quid sit)" — 이게 핵심이에요.
인류가 수천 년간 고래를 잡고, 고래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경뇌유로 약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30년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도 "모른다"고 했고요.
이게 모비딕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해부하고 연구하지만, 고래의 본질은 끝내 알 수 없어요. 멜빌은 소설 안에서도 고래의 눈, 고래의 머리, 고래의 꼬리를 챕터마다 분석하지만 결론은 항상 "알 수 없다"예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모비딕 전체의 철학적 테마를 라틴어 다섯 글자로 압축해 놓은 거예요.
"Nescio quid sit — 나도 모른다."
신이 만든 것, 자연이 만든 것, 그 본질은 인간이 끝내 알 수 없다는 것.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죽여도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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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 도리깨로 무장한 탤러스처럼, 육중한 꼬리로 파멸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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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에는 사람들이 던진 창들이 꽂혀 있고, 등에는 작살이 숲을 이룬 듯하다
『모비 딕 - 상』 — 월러, 《서머 제도의 전투》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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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파괴자와 수난자
모비 딕은 이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존재입니다.
탤러스는 스펜서의 《페어리퀸》에 나오는 철로 만든 인간이에요. 도리깨를 무기로 쓰는 무자비한 집행자인데,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존재예요.
월러가 고래의 꼬리를 탤러스의 도리깨에 비유한 거예요. 고래 꼬리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파괴적인지를 표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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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맨소울은 그것이 마치 고래 아가리 속 청어 한 마리인 양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켰다.
『모비 딕 - 상』 거룩한 전쟁 The Holy War, 존 버니언 John Bun,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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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 작가 존 버니언(John Bunyan)의 작품이에요. 버니언은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작가죠. 《거룩한 전쟁》은 "맨소울(Mansoul)"이라는 영혼을 가진 도시를 둘러싼 선과 악의 전쟁을 알레고리로 쓴 작품이에요.
여기서 "맨소울"은 말 그대로 인간의 영혼을 의미해요. 그 영혼이 뭔가를 고래 뱃속 청어처럼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켰다는 거예요 — 즉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죠.
멜빌이 이걸 넣은 이유가 흥미로워요.
고래 뱃속 청어 — 이 이미지가 요나와 정확히 겹쳐요. 요나가 고래에게 삼켜진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무언가에 통째로 삼켜질 수 있다는 거예요. 에이해브의 경우는 복수심에 영혼이 통째로 삼켜진 인물.
그리고 버니언이 《천로역정》의 작가라는 점도 의미심장해요. 《천로역정》이 구원을 향한 여정이라면, 모비딕은 파멸을 향한 여정이거든요. 멜빌이 버니언을 인용한 건 그 대비를 노린 것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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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신이 지으신 중에 가장 커다란 저 바다의 금수 바다 괴물이 대양의 해류를 헤엄친다.
『모비 딕 - 상』 실낙원, 밀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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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내뿜는다. ”
『모비 딕 - 상』 실낙원, 밀턴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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