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D-29
7장에서는 기독교의 부활 교리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작가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불신앙'이란, 시신없는 비문들을 보며 느끼는' 죽음은 끝이다' 라는 솔직한 절망같은 것. 이슈마엘이 갑자기 명랑해진 것은 단순한 희망이 아닙니다. 죽음이 압도적이란것, 그러니 벌벌 떠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꺠달음-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대한 반항으로서의 웃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야말로 굴조개가 된 느낌이에요. 꽉 다문 자신의 껍데기 위에는 다시 두텁고 탁한 바닷물이라니.. 하지만 마음만은 명랑하게! 8장은 마지막 문장이 전부인것 같습니다. "그렇다 세계는 항해에 나선 한 척의 배이며, 우리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슈마엘은 이제 허무를 응시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명랑함을 안고 바다로 향합니다.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투텁고 탁한 물을 더없이 얇고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모비 딕 - 상 7장 예배당,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신앙은 자칼처럼 무덤들 사이에서 먹이를 찾고, 이런 맥빠지는 의욕 속에서도 가장 생기 넘치는 희망을 끌어 모은다
모비 딕 - 상 7장 예배당,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신앙은 자칼처럼 무덤 속에서 먹이를 찾는 지경에 생기를 가지라. 신앙은 죽음이라는 비극을 먹고 사는 기묘한 존재! 부활 같은 거창한 위로보다 허무를 직시하라는 멜빌의 독설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굴조개 비유가 현실적이라 느꼈어요. 태양(영적인 것)을 물 속에서 보며 바닷물 깊이에 가린 것을 보지 못하고, 얄팍한 공기 인줄로만 아는 우리의 인식의 한계.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에서 식인종들이 뼈를 들고 다닌다는 묘사에 깜짝 놀라지 않으셨나요? 사실 원문을 보면 그건 손에 든 뼈가 아니라, 그들의 '몸'을 의미하는 비유인데요. 6장 '거리' 에서 영문원본 일부입니다. "... many of whom yet carry on their bones unholy flesh." 그들 몸 위에 여전히 야만적인 살점을 두르고 있다 는 뜻으로 아직 문명화(기독교화) 되지않은 날것 그대로의 야만인의 상태를 문학적으로 묘사한거죠. 그런데 강수정번역의 열린책들에서 뉴베드퍼드에는 진짜 식인종들이 길모퉁이에서 수다를 떤다. '누가 보기에도 분명한 야만인들이 고약스러운 살점이 그대로 붙은 뼈를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오역을 했네요. 번역에 따라 식인종이 순식간에 호러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네요. 우리가 어떤 번역본으로 보느냐에 따라 참 다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제7장 '예배당(The Chapel)'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 담긴 핵심적인 장. 이슈마엘이 뉴베드퍼드의 고래잡이 예배당에서 비문들을 보며 겪는 심경의 변화와 그 속에 담긴 멜빌의 의도. 1. 논리의 전개: 절망에서 초월로 ① 죽음의 허무와 불신앙 (비리얼리즘적 현실) 이슈마엘은 예배당 벽에 걸린 추도비들을 봅니다. 이 비석들의 특징은 '시신이 없는 무덤'이라는 점입니다. 고래에게 끌려가거나 파도에 휩쓸려 육신조차 찾지 못한 자들의 이름만 적혀 있죠. 부활을 거부하는 허무: 기독교적 전통에서 부활은 '육신의 회복'을 전제로 하지만, 바다에 뿌려진 이들에게는 그 약속이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멜빌은 이를 "의도하지 않은 불신앙"이라 표현합니다. 엘레판타 동굴: 인도의 거대한 석굴 사원처럼 압도적이고 이교도적인 고립감을 비유합니다. 죽음이 안식처가 아닌, 거대하고 낯선 심연으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② 인간의 모순과 '자칼' 같은 신앙 아담은 골동품: 인류의 조상 아담조차 수천 년째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는 표현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인류의 오랜 확신이 사실은 증명되지 않은 막연한 기다림일 수 있다는 냉소적 질문입니다. 자칼 같은 신앙: 매우 날카로운 비유입니다. 자칼이 무덤을 파헤쳐 먹이를 찾듯, 인간의 신앙은 역설적으로 '죽음'과 '공포'라는 먹잇감이 있어야만 '희망'이라는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통찰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신앙도 굶주릴 것이라는 뜻이죠. ③ 급작스러운 명랑함과 영혼의 독립 여기서 이슈마엘의 태도가 급변합니다. 그는 갑자기 "웬일인지 다시 명랑해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허무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얻는 해탈에 가깝습니다. 그림자와 실체: 우리가 사는 이승의 삶(육체)이 실은 '그림자'이고, 죽음 너머의 영적인 상태가 진짜 '실체'라는 플라톤적 인식이 등장합니다. 굴조개의 비유: 굴조개가 탁한 물을 공기라고 착각하며 살듯, 인간도 육체라는 좁은 감옥 안에서 이 불완전한 세상을 진리라고 믿고 산다는 것입니다. 제우스도 뚫을 수 없는 영혼: 내 육체(배)에 구멍이 뚫려 죽더라도, 나의 본질인 '영혼'은 신(제우스)조차 파괴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2. 멜빌이 이 대목을 쓴 의도 멜빌이 이 복잡하고도 강렬한 문장들을 배치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슈마엘'이라는 캐릭터의 무장 이슈마엘은 이제 곧 죽음이 일상인 포경선을 타야 합니다. 멜빌은 주인공이 죽음의 공포를 단순히 '용기'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는 내가 아니다"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통해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야만 광기 어린 에이허브 선장의 항해 속에서도 관찰자로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19세기 근대적 신앙에 대한 질문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하던 낙관적이고 형식적인 기독교관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멜빌은 거친 바다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시신도 없는 죽음 앞에서도 당신들의 신앙이 유효한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외부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불멸하는 영혼을 깨달음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셋째, 비극적 숭고함(Sublime)의 구축 《모비딕》은 거대한 자연(고래)과 인간의 대결을 다룹니다. 이 대결이 단순한 사냥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 역시 신에 필적하는 '파괴 불가능한 영혼'을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제우스도 내 영혼은 뚫을 수 없다"는 선언은 인간을 신화적 수준으로 격상시켜, 앞으로 펼쳐질 비극을 더욱 웅장하게 만듭니다. 요약하자면: 멜빌은 죽음의 허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뒤, 오히려 그 허무를 발판 삼아 육체의 필멸성을 비웃고 영혼의 자유를 선포하는 이슈마엘의 정신적 승리를 그려낸 것입니다. 이 장을 이해하고 나면, 이후 고래와의 사투에서 이슈마엘이 보여주는 기묘한 침착함과 관조적인 태도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항해에 나선 한 척의 배이며, 설교단은 그 배의 뱃머리다
모비 딕 - 상 8장 설교단,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7장에서 이슈마엘이 죽음 앞에서 허무를 느꼈다면, 8장의 설교단은 그 거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들에게 방향타를 제시합니다. 설교단이 뱃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종교나 철학이 단순히 위로를 주는 곳이 아니라 폭풍우(고난)를 가장 먼저 맞으며 길을 밝히는 '선봉'이어야 함을 의미 매플 목사는 과거에 작살잡이였던 인물로, 신앙과 거친 현장을 모두 아는 '실천적 선지자'로 묘사됩니다. 고립된 요새의 파수꾼이죠 넬슨 제독과 빅토리호의 은판: 희망의 빛 그림의 내용: 사나운 폭풍 속에서 난파 위기에 처한 배가 있고, 그 위 구름 사이로 천사의 얼굴과 한 줄기 햇살이 비치고 있습니다. 은판(Silver Plate) 비유: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 넬슨 제독이 전사한 빅토리호의 갑판 자리에는 그를 기리는 은판이 박혀 있습니다. 멜빌은 그림 속 천사가 비추는 햇빛이 배의 갑판을 밝히는 모습이 마치 그 '영광스러운 은판'처럼 빛났다고 묘사합니다. 비극 속의 영광: 넬슨은 승리의 순간에 죽었습니다. 바다에서의 죽음이 7장에서는 '비참한 허무'였다면, 이 비유를 통해 '숭고한 희망'으로 치환됩니다. 구원의 확신: 아무리 참혹한 폭풍(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빛(진리/구원)이 비치고 있다면, 그 항해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줍니다. 대조: 7장의 어두운 대리석 추도비(절망)와 8장의 빛나는 은판(희망)을 대조시켜, 이슈마엘이 다시 명랑해질 수 있는 영적 근거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왜 멜빌은 이 장면을 썼는가? 멜빌은 이슈마엘(인간)이 광활한 바다로 나가기 전, 정신적인 무장을 시켜줍니다. 7장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면, 8장에서는 "그 죽음과 고난이 가득한 항해를 이끄는 것은 결국 숭고한 영혼의 외침(설교단)"임을 강조합니다. 매플 목사가 사다리를 치우고 뱃머리 모양의 설교단에 서는 행위는, 앞으로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 어린 항해 속에서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적인 중심'이 무엇인지 예고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8장의 핵심 요소인 매플 목사의 줄사다리와 넬슨 제독의 은판 비유가 자아내는 대조의 묘미도 즐겨보죠. 두 장치는 결국 "폭풍 같은 삶(바다)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 세상과 단절하여 영적 고결함을 지키려는 목사의 사다리와,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숭고한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 넬슨의 은판은 이 항해를 단순한 고래잡이가 아닌 정신적 구도의 여정으로 만듭니다.
제9장 '설교(The Sermon)'에서는 드디어 매플 목사가 단상에 올라 그 유명한 '요나의 이야기'를 포효하듯 쏟아냅니다. 설교의 전개와 매플 목사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요나의 죄와 참회의 본질입니다. 먼저, 매플 목사가 요나의 죄를 언급하며 "아미때의 아들 요나(Jonah, the son of Amittai)"라고 부른 대목을 보고 생소하겠지만 멜빌이 이를 언급한 배경에는 흥미로운 문학적·성경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이름의 어원과 상징: "진리의 아들" '아미때(Amittai, 히브리어: אֲמִתַּי)'는 히브리어로 '진리' 또는 '진실함'을 뜻하는 '에메트(Emet)'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즉, 이름 자체의 뜻이 "나의 진리" 혹은 "진실한 자"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요나를 "아미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학적으로 거대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요나의 모순: 요나는 '진리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내린 진리(사명)를 저버리고 거짓과 도망의 길을 택했습니다. 매플 목사의 의도: 매플 목사가 설교에서 굳이 이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른 이유는, "진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조차 얼마나 쉽게 진리를 배반하고 도망치는가"를 폭로하기 위함입니다. 2. '진리'를 향한 멜빌의 집착 《모비딕》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진리(Truth)의 추구'입니다. 매플 목사는 설교 후반부에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거짓됨이 구원일지라도 진실되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 화 있을지니!" "거짓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라!" 멜빌은 요나의 아버지 이름인 '아미때(진리)'를 통해, 우리 인간이 아무리 두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세상의 편안한 거짓(타르시스로 도망치는 배) 대신 불편하고 거친 진리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가 진리를 피해 도망쳤다가 고래 배 속이라는 참혹한 심연을 거쳐 다시 '진리의 대변자'로 거듭났듯, 이 배를 탄 이슈마엘과 에이허브 역시 피할 수 없는 진리와 마주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인 셈입니다. 그럼, 1. 요나가 저버린 '하느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거짓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라!" 원래의 사명: 하느님은 요나에게 당장 니네베(Nineveh)로 가서 그들의 죄악을 꾸짖고 회개를 촉구하는 "진실을 외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요나가 저버린 것: 니네베는 이스라엘의 원수이자 매우 잔인하고 간교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요나는 그곳에 혼자 가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진실을 외쳤을 때 마주할 적대감과 박해에 겁을 먹었습니다. 도망과 불복종: 그래서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사명)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반대 방향인 다르싯(스페인 카디스, 당시 기준 세상의 끝)으로 가는 밀수선에 몸을 싣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즉, '진실을 말해야 하는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저버린 것입니다. 2. 요나는 무엇을 '자백'했는가? 풍랑 속에서 선원들이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자"며 제비를 뽑았고,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선원들이 떼로 몰려들어 "네 직업이 뭐냐, 어디서 왔냐"고 추궁할 때, 요나는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 ① 자신의 정체성과 불신앙의 자백 "나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바다와 마른 땅을 지으신 우리 주 하느님을 경외합니다!" 요나는 단순히 고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치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묻지 않은 죄상까지 스스로 털어놓은 것입니다. ② 자신의 죄에 대한 처벌을 자백(수용)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요나가 한 가장 위대한 자백은 바로 "이 폭풍은 나 때문에 온 것이니, 나를 바다에 던져 희생시켜라"고 말한 대목입니다. 비겁하게 도망쳤던 그가 죽음(바다)을 대면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죄를 온전히 인정하고, 남을 탓하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채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자백한 것입니다. 3. 멜빌이 이 대목을 통해 하고 싶은 말 매플 목사는 요나의 이 '자백'을 "진실하고 거짓 없는 참회"의 표본으로 제시합니다. "요란스럽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처벌을 달게 받는 태도."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 때문에 진실(사명)을 저버리고 도망치는 '요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자연의 폭풍(신의 손길)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정직하게 자백하고 그 대가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고래 배 속(심연)에서 구원받아 마른 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요나의 이야기는 앞으로 광기 어린 에이허브 선장을 따라 파멸의 항해를 떠날 이슈마엘에게 "인간이 신의 뜻을 거스르고 도망치려 할 때 어떤 폭풍을 맞이하게 되는가"를 경고하는역할을 합니다. 매플 목사의 설교 마지막 대목인 *"이 확고부동한 만세의 용골에서 흔들어 떨어뜨릴 수 없는 자에게 기쁨 있을지니"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모비딕》 속 문학적 의미입니다. 1. 사전적·기술적 정의: 배의 '척추' 용골(龍骨)은 한자 뜻 그대로 '용의 뼈'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선박의 기초 뼈대: 배의 맨 밑바닥 중앙을 이물(선두)에서 고물(선미)까지 꿰뚫고 있는 거대한 세로 방향의 뼈대입니다. 건물의 '주춧돌'과 '들보':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듯, 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바닥에 까는 것이 바로 이 용골입니다. 이 용골을 중심으로 갈빗대 모양의 늑골들이 좌우로 붙어 배의 형체를 완성하게 됩니다. 역할: 배가 파도의 압력을 견디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배가 좌우로 흔들릴 때 뒤집히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아래로 잡아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2. 《모비딕》 제9장에서의 문학적·철학적 의미 멜빌은 이 기술적인 단어를 매플 목사의 입을 통해 인간 영혼의 가장 깊고 단단한 중심을 상징하는 비유로 승화시켰습니다. 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 "소란스러운 폭도가 사나운 파도처럼 밀려들어도 이 확고부동한 만세의 용골에서 흔들어 떨어뜨릴 수 없는 자에게 기쁨 있을지니." 세상의 비난, 유혹, 혹은 광기(사나운 파도)가 아무리 배를 흔들어 대더라도, 영혼의 밑바닥에 신념이라는 '확고부동한 용골'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중심을 잃거나 뒤집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② 겉치레와 본질의 대조 배의 돛대나 갑판은 눈에 잘 보이고 화려하지만, 폭풍이 불면 가장 먼저 부러지거나 휩쓸려 갑니다. 반면 용골은 바다 밑바닥 어둠 속에 잠겨 있어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배의 생사를 결정짓습니다. 목사는 세속의 평판이나 눈에 보이는 영광(돛대)에 연연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영혼의 가장 단단한 뼈대(용골)인 '진실함'을 지켜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물리적인 배에서 용골이 배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척추인 것처럼,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용골은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고결한 신념과 주체성을 의미합니다. 이슈마엘이 신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요나와 같다면, 대체 이슈마엘은 무슨 신의 뜻을 거슬렀는가? 아니면 그게 에이허브를 말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둘 다 요나의 성격을 나누어 가졌지만, 그 양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멜빌은 요나라는 인물을 반으로 쪼개어 에이허브에게는 '불복종과 파멸'을, 이슈마엘에게는 '도망과 참회(구원)'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요나와 닮아 있고, 또 어떻게 다를까요. 1. 에이허브: 끝내 회개하지 않고 신과 맞서는 '창조적 요나' 에이허브는 요나가 가졌던 "신의 명령에 대한 근본적인 불복종과 반발"을 극대화한 인물입니다. 신의 질서에 대한 거부: 요나가 니네베로 가라는 신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도망쳤듯, 에이허브는 모비딕(대자연과 신의 섭리)이 자신에게 가한 고통(다리를 앗아간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망 대신 '전쟁'을 선포: 요나는 두려워서 도망쳤지만, 에이허브는 도망치는 대신 신의 피조물인 모비딕을 죽이겠다며 정면으로 전쟁을 선포합니다. 매플 목사가 경고한 "지상의 선장들에 맞서 굽히지 않는 자아"를 넘어, 에이허브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Hubris)을 부립니다. 참회의 거부: 요나는 폭풍 속에서 "나를 바다에 던지라"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징벌을 달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에이허브는 항해 내내 찾아오는 경고(폭풍, 나침반의 고장, 다른 배들의 조언)를 모두 무시하고 끝내 자백하거나 참회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고래 배 속에서 살아 돌아온 요나와 달리, 고래에게 끌려 심연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는 파멸을 맞이합니다. 2. 이슈마엘: 현실로부터 도망쳤으나, 결국 '참회'로 구원받는 요나 "왜 이슈마엘이 신의 뜻을 거스르고 도망친다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이슈마엘이 포경선을 타게 된 본질적인 이유와 닿아 있습니다. 삶으로부터의 도망(방랑): 1장 '희미한 시작'에서 이슈마엘은 자신이 바다로 가는 이유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입가가 험악하게 굳어질 때, 내 영혼에 가랑비 내리는 11월처럼 쓸쓸함이 찾아올 때... 권총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서둘러 바다로 간다.” 즉, 이슈마엘은 지상에서의 고통, 우울, 삶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바다(피난처)를 택했습니다. 이는 신이 허락한 지상의 삶이라는 소명을 버리고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요나의 심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방관자라는 죄: 이슈마엘은 에이허브의 광기 어린 복수극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습니다. 매플 목사는 설교에서 "거짓됨이 구원일지라도 진실되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 화 있을지니" 라고 외쳤습니다. 에이허브의 광기(거짓된 구원)에 침묵하고 방관한 것 자체가 이슈마엘이 저지른 '진실을 외쳐야 하는 인간의 사명'을 저버린 죄입니다. 처벌의 수용과 참회: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듯, 피쿼드호가 침몰할 때 이슈마엘도 바다 한가운데 홀로 던져집니다. 그 절대적인 고독과 죽음의 심연 속에서 이슈마엘은 비로소 자신의 오만과 방관을 뉘우치고, 신의 섭리(생명)를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이교도 친구 퀴퀘그의 관(棺)을 붙잡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자백하는 예언자(기록자)"로서 세상에 이 진실을 알리는 진짜 요나가 됩니다. 결국 멜빌은 요나의 비극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거나(이슈마엘) 분노하며 반역하는(에이허브) '요나'가 된다. 하지만 그 폭풍 속에서 자기 내면의 영혼의 용골(신념과 겸손)을 붙잡고 참회하는 자(이슈마엘)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끝까지 스스로를 신이라 믿으며 오만을 부리는 자(에이허브)는 파멸할 것이다. 이 설교가 끝난 뒤, 이슈마엘은 10장에서 이교도인 퀴퀘그와 온 마음으로 우정을 나누며 기독교적 오만을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이미 이슈마엘의 내면에서는 '참회와 열린 마음'이라는 구원의 용골이 싹트고 있었던 셈이지요.
제10장 '소중한 친구(Bosom Friend)'이슈마엘의 인생과 작품 전체의 철학에서 엄청난 전환점이 되는 장입니다. 1. 가장 중요한 핵심 문장 (기독교적 오만의 극복) "하지만 섬긴다는 건 무엇인가? 신의 뜻대로 하는 것, 그것이 섬김이지. 그리고 신의 뜻이란 무엇인가? 이웃이 내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행하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이다. 그런데 퀴퀘그는 내 이웃이다." 💡 왜 가장 중요할까? 이슈마엘은 엄격한 장로교 집안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런 그가 이교도인 퀴퀘그가 나무 조각(우상)에 예배를 드릴 때, 함께 절을 하고 건빵을 바치며 우상 숭배에 동참하기 직전에 던지는 철학적 자문자답입니다. 문명인이 야만인을 일방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웃 사랑(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이교도의 의식에 기꺼이 동참하는 장면입니다. 편협한 종교적 교리를 넘어서서 '인간 대 인간'으로 결합하는 우주의 법칙을 깨닫는 선언이기에 이 장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문장입니다. 2. 마음의 빗장을 열어준 구원의 문장 "안에서 뭔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산산이 갈라진 가슴과 성난 손이 더는 늑대 같은 세상에 저항하지 않았다.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 주는 저 야만인이 세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 왜 중요할까? 1장에서 이슈마엘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우울(늑대 같은 세상) 때문에 권총을 만지작거리다 바다로 도망쳐 왔습니다. 하지만 문명사회는 그에게 치유를 주지 못했죠. 역설적이게도 사회에서 '식인종', '야만인'이라 부르며 배척하는 퀴퀘그의 침착하고 가식 없는 모습을 보며, 이슈마엘은 상처받았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세상과의 화해를 경험합니다. 퀴퀘그야말로 이슈마엘에게 구원자가 된 순간을 묘사합니다. 3. 참된 철학자에 대한 통찰 "하지만 진정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살거나 살려고 애쓰는 것에 대해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 왜 중요할까? 이슈마엘은 문명을 배우지 못한 퀴퀘그가 그 어떤 백인 철학자보다 완벽한 평온함과 영혼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스스로 철학자라 자처하는 문명인들의 위선을 꼬집으며, 아무런 의식 없이 삶 그 자체로 진리를 살아내는 야만인의 고결함을 예찬하는 문장입니다. 4. 소중한 친구(혼인)의 선언 "그는 이마를 맞대고 내 허리를 끌어안은 채 이제부터 우리는 혼인한 거라고 말했다. 퀴퀘그의 고향에서는 그게 소중한 친구라는 뜻이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다." 💡 왜 중요할까? 서로 파이프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두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하나로 묶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혼인(Marriage)'은 세속적인 제도를 넘어,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영적 공동체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우정은 훗날 피쿼드호가 침몰할 때 퀴퀘그의 관(棺)이 이슈마엘을 살려내는 기적의 복선이 됩니다. 📌 요약하자면 제10장 '소중한 친구'는 "편견과 문명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인간애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얻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장을 기점으로 이슈마엘은 단순히 '도망치던 자'에서, 이교도 친구마저 온전히 품을 수 있는 '넓고 단단한 용골을 가진 자'로 완전히 재탄생하게 됩니다.
몸의 온기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어느 한 부분은 차가워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특징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비 딕 - 상 11장 잠옷 (nightgown),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눈을 감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우리 몸에는 빛이 더 적합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인 것 같다.
모비 딕 - 상 11장 잠옷 중 '기분 좋은 어둠'에 대하여,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제11장 '잠옷(Nightgown)'은 10장에서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이 침대라는 사적이고 평화로운 공간 속에서 어떻게 깊어지는지, 그 안에서 어떤 철학적 통찰이 빛나는지 보여주는 장입니다. 이 장에서 멜빌의 천재적인 비유와 사색이 돋보이는 핵심 문장 세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대조'를 통해 깨닫는 행복의 본질 "몸의 온기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어느 한 부분은 차가워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특징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왜 중요할까? 이슈마엘은 " 침대에서 담요만으로 '코끝이나 정수리가 조금 춥다면' 그때야말로 전반적인 의식 속에서 가장 기껍고 확실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침실에서 절대 난로를 두어서는 안된다" 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는 비교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는 거대한 철학적 진리를 이끌어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고, 추위가 있어야 온기가 소중하듯, 우리 삶의 고통과 시련 역시 행복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필수적인 대조 장치라는 통찰을 주는 문장입니다. 2. 인간의 내면(본질)과 '어둠'의 관계 "눈을 감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우리 몸에는 빛이 더 적합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인 것 같다." 💡 왜 중요할까? 우리는 흔히 '빛'을 선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어둠'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슈마엘은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스스로 만들어 낸 '기분 좋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적인 문명의 빛(위선과 소음)을 끄고, 고요한 어둠 속으로 침잠할 때 비로소 인간의 영혼이 정화되고 본질과 마주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입니다. 3. 편견을 녹이는 사랑과 우정의 힘 "간밤에 그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질색한 걸 생각하면, 아무리 완고한 편견이라도 사랑으로 구부리자고 들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 왜 중요할까? 처음에 이슈마엘은 퀴퀘그가 침대에서 담배(손도끼 파이프)를 피우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퀴퀘그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그 편견은 사라지고, 오히려 함께 담배 연기를 나누는 행위 속에서 평온함과 아늑함을 느낍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단단한 문명인의 편견과 규칙도 부드럽게 휠 수 있다는 우정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 요약하자면 인생은 대조를 통해 완성되며, 진정한 평온은 외부의 빛이 아닌 내면의 어둠(성찰) 속에서, 그리고 타인을 향한 편견 없는 사랑을 통해 얻어집니다.
그 섬은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진실한 고장들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모비 딕 - 상 12. 간략한 생애 (Biographical),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제12장 '간략한 생애 ( Biographical )'는 퀴퀘그가 고향 섬을 떠나 문명세계로 나오게 된, 단순히 한 인물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문명과 야만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멜빌의 날카로운 문명 비판. 1. 진실한 가치에 대한 위트 있는 선언 "그 섬은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진실한 고장들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 왜 중요할까? 퀴퀘그의 고향인 '코코보코' 섬을 소개하는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문명인들은 지도에 그려진 선과 영토만을 '실재하는 세계'라고 믿지만, 멜빌은 오히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곳(진리)은 인간의 지도(문명의 가치관으로) 따위에 기록될 수 없다(재단하거나 가둘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명사회의 오만함을 특유의 위트와 철학적 위트로 꼬집음. 2. 퀴퀘그의 고결한 야망과 희생정신 "그러나 타국의 조선소에서 기꺼이 노동을 했던 표트르 대제처럼, 퀴퀘그 역시 못 배운 동포들을 계몽할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 왜 중요할까? 왕족의 신분임에도 백인들의 포경선 맨 밑바닥에서 온갖 차별을 견딘 이유를 러시아의 황제에 비유한 대목입니다. 퀴퀘그의 여정이 단순한 방랑이 아니라, "선진 기술을 배워 동포들을 더 행복하고 월등하게 만들겠다"는 숭고한 사명감. 겉모습만 보고 야만인이라 비웃는 백인들보다 그의 영혼이 훨씬 고결함을 보여줍니다. 3. 문명사회의 위선과 타락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 "고래잡이 일을 하고 보니 기독교인들도 불행하고 사악할 수 있으며, 아버지가 다스리는 미개인들 못지않고 오히려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 왜 중요할까? 기독교 문명국가인 미국(새그 항, 낸터컷)에 도착한 퀴퀘그가 마주한 현실. 스스로를 '구원받은 문명인'이라 칭하는 백인들이 오히려 미개인보다 더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결국 그는 "어딜 가나 전부 사악한 세상이므로, 차라리 순수한 이교도로 살다 죽겠다"고 결심합니다. 19세기 기독교 중심주의와 제국주의적 우월감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이 장에서 가장 중추적인 메세지. 📌 요약하자면 12장은 퀴퀘그가 고향의 순수함을 뒤로하고 '문명의 기술'을 배우러 왔다가, 오히려 문명의 타락을 목격하고 스스로의 순수한 영혼(이교도 신앙)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역설적인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깨달음이 있었기에 퀴퀘그는 백인들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단단한 중심을 지킬 수 있었으며, 이슈마엘 역시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제12장 '간략한 생애(Biographical)' 본문 속 표트르 대제 "그러나 타국의 조선소에서 기꺼이 노동을 했던 표트르 대제처럼, 퀴퀘그 역시 못 배운 동포들을 계몽할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족의 피가 흐르는 퀴퀘그가 고향 섬의 왕위 계승권자라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백인들의 포경선에서 가장 밑바닥 일인 일반 선원(고래잡이)으로 차별과 치욕을 견뎌낸 모습을 표트르 대제의 역사적 일화에 비유한 것. 표트르 대제는 실제로 어땠는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황제)였던 표트르 1세(1672~1725)는 낙후된 러시아를 근대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완전히 낮춘 '위장 유학'으로 유명합니다. 신분을 숨긴 하급 선원 노동: 1697년,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대사절단을 꾸렸습니다. 이때 황제인 자신도 '표트르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을 쓰고 하급 부사관으로 신분을 숨긴 채 동행했습니다. 조선소에서의 육체노동: 특히 네덜란드 잔담(Zaandam)과 영국의 조선소에서 직접 도끼를 들고 나무를 깎으며 일반 목수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일하며 배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황제의 체면이나 눈에 보이는 치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국가를 강하게 만들 기술을 배웠습니다. 멜빌이 이 비유를 쓴 의도: "위대한 야만인" 문명과 야만의 역전: 흔히 백인들은 퀴퀘그를 문명화되지 않은 '식인종', '야만인'이라 부르며 무시하지만, 그의 내면에 깃든 정신은 러시아를 근대화한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의 서사만큼이나 고귀하고 숭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12장에서 드러나는 퀴퀘그의 과거는, 그가 겉모습만 야만인일 뿐 실제로는 누구보다 위대한 영혼을 지닌 "바다의 웨일스 공(황태자)"임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장치입니다.
매플 목사의 설교와 퀴퀘그와의 침대 속 대화가 참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사는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높이 서서 '신앙과 진리'를 외치는데, 막상 이슈마엘은 그가 야만인이라 부르던 퀴퀘그와 한 침대에 누워 살을 맞대면서 진짜 구원과 평온을 얻잖아요. 이 대비, 가장 문명화된 곳(교회)에서는 죽음의 공포와 종교적 의무를 말하는데, 가장 야만적인 존재(퀴퀘그) 옆에서는 오히려 상처받았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역설까지요.
토르킬 하케(Thorkill-Hake)는 멜빌이 북유럽 신화와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16장' 배'에서는 펠레그 영감이 피쿼드호 구석구석에 새겨놓은 해괴하고 기괴한 문양들을 묘사하며 "그 기괴함에 견줄 만한 것은 토르킬 하케의 둥근 방패나 침대 조각 정도였다"라고 비유하고 있지요. 이 '토르킬 하케'가 누구이며, 멜빌이 왜 그의 가구와 방패를 피쿼드호에 빗대었을지 궁금합니다. 토르킬 하케(Thorkill-Hake)는 누구인가? 토르킬 하케는 11세기 아이슬란드 사가(Saga, 중세 북유럽의 영웅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바이킹 영웅이자 무사입니다. 이름의 의미: '하케(Hake)'는 고대 노르드어로 '갈고리 같은 코' 혹은 '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별칭이었습니다. 바이킹 특유의 거칠고 개성 넘치는 외모를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지요. 그의 특징: 그는 평생 바다를 누비며 온갖 괴수들과 싸우고 이국땅을 모험한 백전노장이었습니다. 북유럽 전설에 따르면, 그는 자기가 겪은 파란만장한 모험담과 괴물들과의 전투 장면을 자신의 방패(buckler)와 침대 머리판(bedstead)에 빈틈없이 조각(Carving)해 두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멜빌이 왜 하필 '토르킬 하케의 가구'를 언급했을까? 피쿼드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트로피로 장식된 야만적인 배", 즉 자신이 무찌른 적들의 흔적으로 온몸을 휘감은 배입니다. 기괴하고 집요한 조각의 대명사: 펠레그 영감은 일등 항해사 시절부터 뼈와 상아를 깎아 피쿼드호의 뱃전과 조타 장치를 기괴하게 장식했습니다. 멜빌은 이 집요하고 광기 어린 수공예 장식을 보며, 자신의 온 삶(모험과 전투)을 방패와 침대에 빼곡히 조각해 넣었던 바이킹 전사 토르킬 하케의 가구를 떠올린 것입니다. 바이킹 전설과 포경선의 연결고리: 바이킹은 인류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거친 바다의 약탈자이자 사냥꾼들이었습니다. 멜빌은 피쿼드호를 단순한 19세기 포경선이 아니라, 고대 북유럽 바이킹의 후예들이 탈 법한 '신화적이고 야만적인 전함'의 아우라로 격상시키기 위해 이 비유를 끌어다 쓴 것입니다.
가장 거대하고 불길한 복선 중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철천지 원수'는 바로 이 소설의 최종 보스이자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앗아간 하얀 고래, '모비 딕(향유고래)'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원수의 아래턱뼈를 깎아 만든 '손잡이'는 다름 아닌 배를 조종하는 '키 손잡이(Tiller)'입니다. 이 기괴한 장치에 담긴 뜻. 1. 텍스트 속 '손잡이'의 정체: 키잡이의 손잡이(Tiller) 오늘날의 배들은 둥근 운전대 모양의 '타륜(Wheel)'을 돌려 배를 조종하지만, 피쿼드호는 아주 구식인 데다가 뼈와 상아로 온통 기괴하게 장식된 배입니다. 그래서 둥근 타륜을 쓰는 대신, 방향타와 바로 연결된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Tiller)를 좌우로 직접 밀고 당겨서 배를 조종합니다. 그런데 이 길쭉한 조타 손잡이를 나무가 아니라 향유고래의 길고 좁은 '아래턱뼈'를 통째로 가져와 그럴듯하게 깎아서 만든 것입니다. 2. 왜 하필 '철천지 원수의 아래턱'인가? 향유고래의 신체적 특징: 향유고래(모비 딕)는 위턱에는 이빨이 없고, 길고 좁은 아래턱에만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박혀 있습니다.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물어뜯어 삼킨 것도 바로 이 아래턱입니다. 적의 뼈로 만든 배: 피쿼드호는 자신들이 사냥해 죽인 고래의 뼈와 이빨로 온통 장식된 '식인종 같은 배'입니다. 그중에서도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조타 장치에 자신들의 영원한 적(고래)의 아래턱뼈를 박아 넣은 것입니다. 3. "타타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의 의미 이어서 나오는 문장인 *"폭풍우 속에서 그걸 조종하는 키잡이는 사나운 말의 턱을 움켜쥐고 제압하는 타타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는 묘사도 기가 막힙니다. 타타르인(Mongol-Tatar): 역사상 가장 사납고 용맹하게 거친 야생마를 길들여 대륙을 누볐던 유목민 전사들입니다. 거친 적을 길들이는 정복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이 고래 턱뼈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배를 모는 키잡이는, 마치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괴수(원수 고래)의 턱가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사납게 길들이며 정복하는 듯한 광기 어린 희열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 요약하자면 펠레그 영감은 피쿼드호의 키 손잡이를 평범한 나무로 만들지 않고, 자신들의 주적이자 사냥감인 향유고래의 이빨이 박힌 아래턱뼈를 깎아 만들었습니다. 이는 피쿼드호가 "자신들의 원수(고래)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그 원수의 뼈를 쥐고 운명의 방향을 트는 광기 어린 배"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상징입니다. 결국 이 원수의 턱뼈를 쥐고 키를 돌려 그들이 찾아가게 될 종착지가 어디일지, 멜빌은 배의 조타 장치에서부터 경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16장 문학적 상징: 피쿼드호의 '야만적 정체성' 강화 왜 하필 인디언 부족 중에서도 '포토와토미(Potawatomi)'족의 추장(Sachem)이었을까요? 뼈로 만든 천막 꼭대기에서 깃털처럼 흩날리는 검은 고래수염의 비주얼 사라져가는 인디언에 대한 노스탤지어: 멜빌이 이 책을 쓰던 19세기 중반은 미국 정부의 인디언 이주 정책으로 인해 포토와토미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고 사라져가던 비극적인 시기였습니다. 앞서 배 이름의 유래가 된 '피쿼트 부족'처럼 말이죠. 배 자체가 거대한 '인디언 천막(Wigwam)': 멜빌은 피쿼드호라는 배 자체가 문명 세계(미국)의 산물이 아니라, 대자연과 싸우는 고대 야만인들의 거대한 움직이는 영토처럼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백인 선장인 펠레그가 머무는 임시 집마저도 인디언 추장의 오두막(Wigwam)처럼 묘사함으로써, 이 배가 품은 원시적이고 불길한 야만성을 한층 더 극대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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