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의도적인 배치가 가지는 문학적 의미를 찾아봤어요.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구조화시키고 상징의 밑그림을 그려요. 성경의 요나 이야기, 고래에 대한 역사적 기록 등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모비 딕이라는 고래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 우주의 섭리, 혹은 신성의 차원으로 인식하게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말씀하신 대로 인간의 실존적 저항의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모비 딕 상·하
D-29

kontentree
잔해
Nescio quid sit (나도 모른다)
『모비 딕 - 하』 토마스 브라운 경, 경뇌우와 향유고래에 대하여,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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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버지니아 울프나 보르헤스에 영감을 준 학자도 30년 연구해도 모른다고 해요 ㅎㅎ
자연이 만든 모든 것, 그 본질은 우리가 끝내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인가요. 읽기가 벅차서 간신히 남겨요.
잔해
내 이름을 이슈마엘이라 불러다오
『모비 딕 - 하』 1.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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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문학사적으로 유명하다 해서요, 이게 왜 그럴까요.
불러다오가 진짜 이름을 숨겨서 확 호기심을 갖게하고 성경적으로 아브라함의 서자로 광야로 쫓겨난자고요. 짐작이 가죠. 우리한테 바로 실존적 방랑에 대해 들려주겠다.
여섯모서리
"만물의 신이 지으신 중에 가장 커다란 저 바다의 금수 바다 괴물이 대양의 해류를 헤엄친다."
이건 《실낙원》 7권에서 신이 창조의 6일째에 바다 생물을 만드는 장면이에요.
"저 바다 괴물, 살아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깊은 바다에서 몸을 곶처럼 늘인 채 자거나 헤엄치니 흡사 움직이는 땅처럼 보이며, 그 아가미로 바다를 삼켰다가 숨구멍으로 내뿜는다."
이건 《실낙원》 1권에서 사탄이 지옥에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인데,
이 두 인용이 나란히 있는 게 짱 같아요.
밀턴은 실락원에서 고래는 신의 가장 경이로운 창조물이고 동시에 사탄에 비유되는 존재로 봅니다. 신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이 두 구절을 보면 멜빌이 모비딕을 선악을 초월한 존재로 만드는 것 같아요.

kontentree
모비 딕의 본질을 가장 깊이 건드리는 인용같아요.
읽기들도 바쁘실텐데 좋은 글들 올려 주시네요. 진도가 벅차서 힘드실텐데 너무 부담들 갖지 마시고 읽기에만 충실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여섯모서리
작은 물고기들을 위한 우화를 쓴다면 그것들이 커다란 고래처럼 말하게 하면 됩니다.
『모비 딕 - 하』 골드 스미스가 존슨에게,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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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1728~1774)는 아일랜드 출신 영국 작가, 문학 비평가이자 사전 편찬자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좋아해서 또 올려요. 모비딕의 창작 구도 같아요. 멜빌은 평범한 뱃사람들(작은 물고기들)에게 철학자처럼 말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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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앙은 한 마리 자칼처럼 무덤 속에서 먹이를 찾고, 이런 죽음의 의구심에서조차 더없이 생기 넘치는 희망을 그러모은다.
『모비 딕 - 하』 7. 예배당,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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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에게 고래처럼 말하게 하라는 것은
우리 삶이 비루할지라도, 내면의 사유와 영혼의 크기만큼은 고래처럼 거대하게 유지하며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라는, 그의 응원을 받는 것 같아요.
모비 딕을 행간을 읽다보면 오글거리게 웅장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멜빌 식으로 적어보면,
지금 내 육체가 책상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시간을 죽이고 있을지라도, 고래를 사유하는 내 정신은 이미 저 광활한 대양을 유영하고 있으므로, 나는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현실의 초라함은 내 영혼의 거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배경일 뿐이다..
"자칼이 무덤을 파헤쳐 먹이를 찾듯, 인간의 신앙은 공포와 허무를 먹고 자란다"라고 본문에서 말하죠. 이 말은 제게 신앙의 결핍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키우는 근거로 다가와요.
책상에서 느끼는 권태,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실존적 불안은 우리 삶의 '무덤(허무)'과 같아도 오히려 그 권태와 허무라는 먹잇감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그것을 이겨내려는 우리 내면의 사유(신앙/의지)가 가장 날카롭게 깨어날 수 있다는 논리로요.

서설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탁한 물을 더없이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모비 딕 - 하』 7.예배당,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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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조개처럼 저도 갇혀 있지만 읽고 생각하고 적기도 하고..틀을 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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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양양한 신들과 지상의 선장들에 맞서 굽히지 않는 자아를 내세우는 자에게 기쁨, 높고 깊은 내면의 기쁨 있을지니.
『모비 딕 - 하』 8.설교단,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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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플 목사의 요나 설교, 꼭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하느님(혹은 내면의 양심)이 시키는 일은 늘 고통스럽지만, 요나는 결국 그 사명을 받아들이며 구원받아요.
매플 목사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자에게 화가 있을 거라고 해서 흠찟 했답니다.
여섯모서리
몸의 온기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어느 한 부분은 차가워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특징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비 딕 - 하』 11장 잠옷,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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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코끝이나 정수리가 조금 춥다면, 그때야말로 전반적인 의식 속에서 가장 기껍고 확실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침실에는 절대로 난로를 두어서는 안 된다.
『모비 딕 - 하』 11장 잠옷,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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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침대 속의 퀴퀘그와 이스마엘의 이야기라 요즘이면 오해 받았겠어요. 증거들 올립니다:) 10장 소중한 친구에서는 혼인, 사랑스러운 한쌍, 마음의 밀월 ㅎㅎ
원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워낙 요즘 세상이 좀 많이 달라졌쟎아요~
요즘이 아니라도 당시 19세기 문학에서도 남자 주인공들이 서로를 '혼인한 사이'라고 부르는 건 파격적입니다. 왜 굳이 '우정'이라는 단어 대신 '혼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생각해봐요.
여섯모서리
아무리 완고한 편견이라도 사랑으로 구부리자고 들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모비 딕 - 하』 11장 잠옷,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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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정말 왜 멜빌은 이토록 낯선 이방인과 주인공을 '결혼'이란 표현으로 강한 사회적 유대 관계에 묶었을까요?
사랑, 윗 문장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아래 여섯모서리님 답변 소름이 끼치네요. 멜빌이 정말 위대한 작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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