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상·하

D-29
퀴퀘그의 고향에서는 그게 소중한 친구라는 뜻이었대요. 현실의 굴레(문명/기독교적 편견)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영혼끼리 맺은 계약으로 보여주는 멜빌의 휴머니즘의 표현 같아요.
가장 낯선 존재(이교도)와 맺는 가장 깊은 유대로 소설의 핵심 주제인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들어가는 문장 같죠. 이 둘의 관계를 보면서 나누신 글들 읽고 든 생각이에요.
그 섬은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진실한 고장들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모비 딕 - 하 12. 간략한 생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세상의 지도(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준, 책상의 비루함)에는 내 가치가 표시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죠. 진실한 고장은 원래 지도에 없으니까. 나의 영혼은 그 누구의 지도에도 없는, 오직 나만이 알고 유영할 수 있는 '코코보코' 에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두 번째 항해, 피쿼드호에 오릅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첫 닻을 올린 뒤 무사히 하루를 읽어 내셨어요. 오늘(5/21)은 모비 딕 상권의 두 번째 구간, 13장 ~ 24장을 함께 읽어봅니다. 어제까지가 육지에서의 파트였다면, 오늘은 드디어 이슈메일과 퀴퀘그가 피쿼드호에 승선해 바다로 나아가는, 본격적인 '항해 준비' 구간이에요. ▶ 오늘(5/21) 함께 읽을 구간: 13장 ~ 24장 낸터킷에서 두 사람이 배를 고르고 계약을 맺는 장면, 그리고 미스터리한 인물 일라이저의 불길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출항 이후에는 멜빌 특유의 사변적 에세이 챕터들 — 변론, 고래잡이 예찬같은 장 — 이 시작됩니다. ▶ 13~24장 대략적인 줄거리 낸터킷에 도착한 두 사람은 손수레에 짐을 싣고 항구로 향합니다. 퀴퀘그가 손수레를 처음 써 보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하던 일화,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고향 이야기가 정겹게 펼쳐져요(13장). 이슈메일은 낸터킷이라는 작은 모래섬이 어떻게 세계 포경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그 척박하지만 위대한 땅에 대한 헌사를 바칩니다(14장). 저녁 식사로 등장하는 진한 클램 차우더 장면(15장)을 지나, 이슈메일은 출항할 배를 직접 고르러 갑니다. 세 척의 배 중에서 그가 고른 것은 바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피쿼드호예요. 펠레그 선장과 빌대드 선장, 이 두 퀘이커 노선장의 거래 장면이 인상적입니다(16장). 이튿날 이슈메일은 퀴퀘그도 배에 등록시키려 데려가는데, 이교도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가 결국 그의 작살 실력을 보고 채용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사이에 퀴퀘그가 라마단(금식)을 행하느라 방 안에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이슈메일이 문을 부수다시피 들어가는 소동도 벌어지죠(17~18장). 이때 부두에서 누더기 차림의 수상한 사내 일라이저(Elijah)가 나타나, 에이해브 선장과 피쿼드호의 운명에 대해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집니다 구약의 예언자 이름을 그대로 가진 이 인물이 던지는 한마디가, 앞으로의 비극을 미리 암시하게 만들어요.(19장). 출항 준비를 마치고(20장), 마침내 두 사람은 어둑한 새벽 피쿼드호에 오릅니다. 정작 에이해브 선장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배는 크리스마스 날 닻을 올려 차가운 대서양으로 미끄러져 나가요(21~22장). 이후 이어지는 23~24장은 화자 이슈메일이 잠시 서사를 멈추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짧은 사변 챕터예요. '바람이 부는 쪽 해변'에서 친구 벌킹턴에게 바치는 짧고 아름다운 송가, 그리고 '변호'에서 포경업이라는 직업의 위엄과 정당성을 변호하는 목소리가 펼쳐집니다. 오늘 구간은 인물과 사건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도, 잠시 멈춰 사유하는 지점이에요. 진도는 가이드일뿐 나만의 속도로,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한 줄이라도 함께 나눠 주세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 바람이 아우성치는 무한한 바다에서 죽어 없어지는 편이 바람이 불어 가는 해안에 수치스럽게 내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 — 23. 바람이 부는 쪽 해변
세상은 공동 자본으로 세운 주식회사 같은 거야. 어딜 가나 마찬가지야
모비 딕 - 하 13. 외바퀴 수레,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13장은 첫 구절부터 ㅋ 향유 바른 사람 머리를 이발사에게 가발거리로 팔아버리다니요. "저 남자같은 작은 고기 (ㅋ 고기라고 하네요) 안 죽인다. 큰 고래 죽인다." 기독교도를 구한 식인종 퀴퀘그에게 화자는 따개비처럼 찰싹 달라 붙고, 위대한 영웅의 인류애를 전해요.
6장 거리에서 고약스런 야만인이 살점이 그대로 붙은 뼈를 들고 다니는게 많다고 해서 호러소설로 만들어 버린 오역이 있더니 (... many of whom yet carry on their bones unholy flesh. 자신의 몸에) 이건 오역은 아닌거죠. ㅎㅎ 19세기 소설이라 그런가요.
눈을 감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우리 몸에는 빛이 더 적합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인 것 같다.
모비 딕 - 하 11. 잠옷,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노예의 발꿈치와 말굽에 잔뜩 파인 흔해 빠진 도로를, 길로 뒤덮인 땅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 흔적도 용납하지 않는 바다의 도량을 찬미했다.
모비 딕 - 하 13. 외바퀴 수레,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이슈마엘이 왜 바다를 갈망했는지, 그리고 멜빌이 생각하는 '바다'와 '육지'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는 것 같아요. 도로는 이미 누군가 닦아놓은 길이며, 그 길 위를 걷는 존재들은 노동에 시달리는 말(말굽)로 비유해요. 모든 사람이 정해진 궤도(도로)로만 움직여야 하는 억압을 경멸한다고 하죠. 반면, 바다는 절대적 자유를 주는 곳. 바다는 아무리 배가 지나가도 그 뒤에 영구적인 길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가 치고 나면 다시 무로 돌아가요. 모든 차별과 굴레를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바다의 도량(자유)을 찬미하고 있어요. 만약 이들이 육지의 도로 위에 있었다면, 기독교인 백인과 문신을 한 야만인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와, 좋은 통찰을 꺼내주셨네요. 아뇨.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없었다고 봐요. 예를 들면 강번역자도 편견이 있어(식인종이니까) 그런 오역을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현대에서도 인식 못하는 편견이 많쟎아요. 누군가 닦아놓은 길(육지) 아닌,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무한한 자유(바다)로 나아가는 해방감이 느껴져요.
먼바다에 저녁이 내리면, 베개 밑으로 바다코끼리와 고래가 떼 지어 지나는 곳에 누워 잠을 청한다.
모비 딕 - 하 14.낸터컷 사람들,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15장 '차우더'는 그냥 지나가기엔,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들이 여인숙을 찾을 때 교수대처럼 생긴 돛대와 냄비를 보며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막상 차우더가 나오니 정신없이 먹어치우잖아요. 죽음의 그림자, 교수대 바로 아래에서 따뜻한 음식 차우더를 먹는 이 장면이요. 짠합니다.
야망에 부푼 젊은이들이여, 명심하라. 인간의 위대함이란 질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비 딕 - 하 16. 배,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위대함이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싶어하는 맘이 느껴져서 올립니다.
야망은 병들게 할 만큼 위험한 것임을 알고 감당할 준비를 하라는 것 같아요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고래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쟎아요. 이런 정상이 아닌 상태를 질병이라 하는데 선장은 이미 멜빌이 주는 여러 암시로 보면 고통을 잘 다스릴 것 같지는 않아요. 위대하기는 힘들 것 같지 않나요? 그럼에도 끊임없는 시도 자체가 위대함이라 보는 건지, 제 짧은 생각으론 헷깔립니다.
에이해브는 고통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결국 파멸하는데, 이걸 정말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위대함은 고통을 승화시키는 것 아닌가 라고 물으시는 것 같아요.
위대함이 성공이나 훌륭한 인격을 뜻한다면 에이해브는 위대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다스리지 못하고 파멸로 가는 것 같죠. 하지만 멜빌이 말하는 위대함은 한계에 스스로를 소진하는 시도 자체에 있는 것 같아요. 에이해브는 비극을 잘 통과한 사람이 아니라, 비극을 껴안고 침몰해버린 사람이죠. 그렇담 위대함은 '질병'아닐까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병이니까요.
에이해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기보다 고통, 질병을 복수로 키워내어, 모두 태워버리려 하죠. 멜빌은 비극이 없는 삶을 백지와 같다고 했는데, 그가 비극을 '잘' 통과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얼마나 처절하게 먹혔느냐, 즉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끝까지 갔느냐가 멜빌이 생각한 위대함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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