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손을 놔보면 기겁하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 깨달을 것이다.
그대는 데카르트가 말한 소용돌이 위에 맴돌고 있다.
『모비 딕 - 하』 35. 돛대 꼭대기,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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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이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영혼은 애초에 왔던 곳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 시공 속에 널리 퍼진다.
범신론자 크랜머의 유해가 온 세상에 흩어져 결국에는 모든 해변에 이르렀듯이.
『모비 딕 - 하』 35. 돛대 꼭대기,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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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크랜머는 화형당해 온 바다로 흩어진 종교개혁가라죠. 영혼의 썰물이 주는 달콤한 환상 뒤에, 데카르트의 소용돌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대비시키라는 메시지 같아요.
잔해
밭고랑처럼 주름진 이마를 눈여겨봤다면 거기에서는 더 이상한 발자국,
잠들지 못한 채 쉼 없이 거니는 상념의 발자국 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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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종이로 만든 가면에 불과해.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살아가는 행위라는 의심할 나위 없는 그런 행동일 경우에도,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뭔가가 허무맹랑한 가면 뒤에서
이목구비를 내미는 법이거든. ”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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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눈 앞의 물질 세계- 흰 고래 는 진짜 본질을 가린 가면, 그 뒤에 인간을 조롱하고 고통 주는 어떤 악의적인 본질이 존재한다는 에이해브의 세계관
잔해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을 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나한테는 이 흰 고래가 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이라네.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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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소설의 존재 이유이자, 에이해브라는 인물의 본질을 단 한 줄로 말해주네요.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은 무엇일까요.
서설
실존주의적 문장이네요.
잔해
흰 고래를 인간을 가로막는 운명, 벽으로요
여섯모서리
저기 터키 녀석들의 얼룩덜룩한 황갈색 뺨을 보란 말이야. 태양이 그린, 살아 숨 쉬는 그림이 아닌가.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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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 아, 훈계와 경고여!
어째서 너희들은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것인가?
그러나 그림자여,
너희는 경고라기보다 차라리 예언인 것을!
그것도 외부에서 전해 주는 예언이 아니라
앞질러 달려가는 내면의 확인인 것을.
외부에서 제약하는 것이 거의 없을 때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사린 내면의 요구가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이다. ”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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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주위의 만류나 불길한 경고를 들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길로 걸어 들어가 본 적 있었던 것 같아요.
온갖 불길한 징조들(그림자)이 왜 아무런 브레이크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아요. 예언일것을 예감하면서도.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건 나.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멈출 수 없는 요구가 문제네요.
잔해
저도 주위에서 말려도 내 똥고집대로 직진해 본 경험 있어요 ㅎㅎ
kontentree
그쵸, 고생길을 자처한 적 있죠. 정신 차리니 이미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바로 위였고, 주위의 경고와 충고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렸더라고요.
서설
그림자가 상징하는 것은 내 존재 깊은 곳에 도사린 '멈출 수 없는 요구'가 밖으로 배어 나와 눈앞에 드리운 운명의 실루엣 같은 것이에요.
외부에서 누가 주는 경고가 아닙니다. 내 영혼은 이미 알고 있기에(성격, 무의식), '앞질러 달려가서' 미리 땅에 드리워져 있는 미래의 자화상입니다.
그래서 불길한 징조(그림자)를 보았을 때, 인간은 깜짝 놀라 멈추는 게 아니라 "아, 결국 내가 저 길로 가겠구나" 하고 내면의 확인을 하며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라고 했는데, 멜빌의 "그림자는 앞질러 달려가는 내면의 확인"이라는 말과 참 깊게 통하네요.
잔해
위대한 교황이 삼중관을 물 단지 삼아 거지들의 발을 씻어 주는 건 뭐란 말인가?
아, 나의 사랑스러운 추기경들이여!
스스로 몸을 낮추면 저절로 하게 될 것이다.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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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내가 증오하는 건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그것이야. 나는 놈을 상대로 내 원한을 풀 거야. 나한테 신성 모독이라는 말은 하지 말게. 날 욕보인다면 난 태양한테라도 덤벼들 수 있어
『모비 딕 - 하』 36. 뒤쪽 갑판,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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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와, 감동이에요! 서설님 글을 읽으니 170년 전 소설이 심리분석서처럼 다가오네요. 단어 하나하나 품은 의미에 또 감탄하게 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kontentree
네 번째 항해,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5/23)은 모비 딕 상권의 네 번째 구간, 37장 ~ 48장을 함께 읽어봅니다.
그 유명한 '고래의 흰색'(42장)이라는 거대한 사유의 장도 만나게 됩니다.
▶ 오늘(5/23) 함께 읽을 구간: 37장 ~ 48장
37~40장은 멜빌이 잠시 소설의 형식을 바꿔 거의 희곡처럼 인물들의 독백과 합창을 펼치는 구간이에요. 에이해브·스타벅·스터브·플래스크가 각자 자기 내면을 무대 위에서 토로하듯 말하고, 한밤중 갑판 위에 모인 선원들의 떠들썩한 소란까지 이어집니다.
41~42장은 모비 딕이라는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본격적으로 사유하는 두 개의 큰 챕터예요.
▶ 37~48장 대략적인 줄거리
먼저 ‘저물녘'(37장)에서 선실에 홀로 앉은 에이해브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독백이 펼쳐져요.
이어 ‘황혼'(38장)에서는 스타벅이,
‘첫 번째 야간 당번'(39장)에서는 스터브가 각자 갑판 위에서 자기 마음을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한밤중, 앞 갑판'(40장)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선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떠들고 노래하고 다투는, 무대극 같은 합창 장면이 펼쳐져요.
그리고 마침내 '모비 딕'(41장) 이슈메일이 직접 흰 고래에 대해 알려진 모든 소문과 이야기를 풀어놓고, 에이해브의 집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요. 모비 딕이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포와 상상 속에서 얼마나 거대하게 부풀려진 존재인지가 드러납니다.
이어지는 '고래의 흰색'(42장)은 이 책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사유의 장이에요. 왜 하필 '흰' 고래인가? 흰색이라는 색이 왜 그토록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가? 이슈메일이 흰색의 양면성 — 순결과 공포, 신성과 허무 — 사이를 길게 오가며 사유를 펼쳐요.
‘쉿!’(43장)에서 갑판 아래에서 들리는 정체불명의 소리,
'해도'(44장)에서 선실에 홀로 앉아 해도를 펼쳐 든 에이해브의 모습이 그려져요.
'선서 진술서'(45장)는 짧은 사유챕터 입니다.
'추측'(46장)이 이어지고,
'거적 짜기'(47장)에서 이슈메일과 퀴퀘그가 갑판에 앉아 함께 일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첫번째 출격'(48장) 마침내 피쿼드호가 처음으로 고래를 쫓는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이때 그동안 선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갑자기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내, 선원들을 놀라게 해요. 누구인지는 본문에서 직접 만나보시는 게 좋겠죠.
오늘 구간은 내면의 독백 → 거대한 사유 → 다시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저주받은 이단아는 주변의 모든 풍경을 감싼 광대한 흰색 수의를 보다가 눈이 멀어 버린다.
그리고 백색증 고래는 이 모든 것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격렬한 추격을 어찌 의아하게 생각할 것인가?"
- 42장 고래의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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