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카히라 단장은 회담에서 한·일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 실시되었고 그 이후 한반도에는 주권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빨치산은 독립 무대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동북인민혁명군의 한 부대로 동북 지방에서 활동한 데 불가하다고 주장하였고 IAEA 사찰 수용의 조건으로 미국의 핵 불사용 보증을 요구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팀스피리트 실시를 이유로 남북 총리회담을 중단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북조선 측은 이러한 주장에 반발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2차 교섭에서 기본적인 문제점이 다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1965년의 한·일조약에서는 합방조약은 합의에 기초해 체결되어 유효하며 식민지 지배는 조약에 기초한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일본 측 주장과, 합방조약은 강제된 것으로 원천적으로 효력이 없는 불법적인 것이었다는 한국 측 주장이 대립한 결과, "are already null and void"라는 제2조의 영문을 쌍방이 제각각 자신에게 유리하게 번역, 해석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일본은 어떠한 보상이나 배상도 지불할 수 없으며 한국 측이 청구권에 기초한 요구를 취하하는 대신에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정치가는 사죄하였고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나 외무관료의 논리는 1965년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이 난항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북조선이 조·일 교섭을 교전국 간의 평화조약으로 끌어올리려 한 것은 무리가 있었다. 김일성 부대가 일본군과 교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교전국 간의 전쟁으로 볼 수는 없다.
”
『북조선 -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184-185, 와다 하루끼 지음, 서동만.남기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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