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이고, 사람의 가치는 무엇인가

D-29
저는 이 책을 통해 정언명령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요. 이기적 목적에서 내 행동을 자기합리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매력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저도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라, 요즘은 (필요하다면) 거짓말 대신 진실을 호도하는 방식으로 말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자주 생각하게 됐고요. ...그러나 제 개인의 감상과 무관하게, 그것을 공동체 문제의 해결에 결부시키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은 더 구체적이고 복잡해서요. 정말 정언명령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역으로 정언명령에 모순되게 행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상황입니다. 아주 명백하다고 가정하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생각할 때 정언명령을 따르는 것이 보편적 관점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라고 판단한 겁니다. 보편화되면, 정언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은 죽어도 된다고 보는 거 아닌가요? 이게 바로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칸트의 논의 자체를 비판한다기보다는, 그것만을 공동체의 문제 해결의 중심축으로 삼긴 어렵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모두가 정언명령대로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네 정언명령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단순한 명제보단 사람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고, 타인에게 적용하는 보편적 준칙을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란 거라, 화이트 거짓말, 자신의 욕구나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성이 옳다고 믿어 한다면 정언명령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것같아요
@참미르 님과 @그믐달빛 님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을 결성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협력적 성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든, 반대로 타인을 배척하는 방식으로든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람의 가치는 - 각 개인이 - 본인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가를 기준으로 - 구체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단절함으로써 내가 얻게 될 실익을 계산함으로써 결정된다고 해도 될까요? 불편하긴 하지만, 경험상 피부에 잘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공통된 기준을 꼭 가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생존의 모습이 항상 같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대동소이한 부분을 불완전한 기준으로 삼을 순 있겠습니다.
뒷담화나, 타인에 대한 평가 습관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단 얘기라, 정의나 정치철학을 논할때의 인간의 가치라는 개념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출발이 생존의 유리함에 있었다 하더라도, 인류는 그런 생물학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와 학문을 쌓아올렸잖아요
글쎄요 자기에게 이익이 되냐 아니냐로 사람을 가치 매긴다면, 그건 공리주의에도 못 미치는 정의의 수준이 아닐까요? 아예 공동체 개념이 없으니, 정의를 논할 수도 없을 듯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불편하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다뤄봤으면 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가치 매김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치 매김'은 아닐지언정 한정된 자원과 명예를 배분하는 데 있어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배분에 있어)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사회의 발전(을 통한 개인의 더 나은 생존)이라는 명목 하에, '도덕을 논할 때 언급되는 사람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가치 매김하는 중인 건 아닌가?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적 이념이, 제도와 교육과 문화를 통해 그것을 '좋은 삶'이라고 지칭해오는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당연히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렇게 쓴 이유는, 이전에 그믐 모임에서 읽었던 책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못된(?)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대상을 낯설게 봐야 더 제대로 사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더 올려봤습니다. === “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폭력이나 억압으로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권력의 얼굴은 더 세련되어진다.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가치와 규범을 ‘좋은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하면 통치 권력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권력은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든다. 푸코는 이를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고 불렀다.[ 21 ] 통치성은 개개인의 인식과 행동을 통솔하는 힘이다. 겉으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같지만, 실은 사회가 바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네,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질 자격이 있는가는 정의의 두 가지 주제 가운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책에선 원칙적으로 가치와 자격을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제님께서 사람의 가치와 자격을 혼동하시는이유가 있다고 보여져요. 가치를 매길 수 있는가?란 질문을 '왜 우리는 가치 매기려하는가?',혹은 '가치는 매겨서 어디에 쓰나'란 질문으로 바꿔 보면 결국 가치를 매긴 뒤, 가치가 높은 사람에게 자원을 더 분배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라는 대답이 따라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용하신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적용해 보면, 지금 이 사회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굴러가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우리 안에 그런 가치관이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만약 재산(능력)이나 임금, 연봉, 점수같은 수치가 사람의 가치와 동일시되는 걸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가치매겨짐, 또는 매김에 동의하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만약 임금 연봉 점수가 사람의 가치와 동일시된다면, 그건 가치를 매기는 주체가 기업이고 자본이고 대학이니, 자신과 타인, 즉 인간이 주체가 아닌 객체나...극단적으론 상품으로 살아가는 걸 받아들인 상태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싶기도 합니다. 인용하신 푸코의 통치성처럼, 우리 내면의 사고의 틀이 (무의식 비의도적으로)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5장에서 샌델은 롤스의 자유론을 소개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롤스를 처음 접하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롤스의 탄탄한 논리가 매우 설득력있어서 보통 롤스까지와서 멈추는 분들도 많은 듯해요 뒤에 가면 샌델은 롤스도 비판하는데 말이죠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에 본능이나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기에 존엄하다고 했습니다. 칸트 철학에서 민주정치의 바탕인 이성적 개인, 인권을 가진 개인이 출발했다고 할 수 있죠. 롤스는 그러한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구성할때 그들이 만드는 규칙은 어떤것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롤스는 가난 때문에 기본적 욕구도 채울 수 없는 상태라면, 칸트가 말한 이성과 자유의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기에, 그 해결책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롤스는 유명한 무지의 베일(무지의 장막) 실험을 합니다. 즉, 모든이가 자신이 어떤 집에서 태어날지, 어떤 재능을 타고날지를 장막으로 가려 놓은채(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 자기가 속할 사회의 규칙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가장 가난한 집에 태어나거나, 아무런 재능없는 무능한존재로 태어날 경우를 상정해서 규칙을 정할 거라는 겁니다. 여기서 복지 사회 개념이 나옵니다. 개인의 능력차에 따른 보상의 차이는 그나마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능력이 각광받는 사회에서 태어났기에 보상을 받는 것이기에 , 그만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단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동시대 사회구성원들의 존재의 덕을 보았단 거죠 그래서 많은 보상을 받은 사람은 그 만큼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누진세 개념, 롤스로부터 왔다고도 할 수 있죠 롤스 역시 칸트처럼 사람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이성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보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평등지향적이라고 얘기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은 합의에 의해 모든 구성원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발휘될 만한 조건을 만들 거라는 거죠 칸트와 롤스 철학에선 사람에 대한 가치 매김 자체가 부정됩니다. 이게 우리가 헌법으로 만든 공화국의 정신이죠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역시 정의의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공리주의나 자유지상주의보단 칸트나 롤스에 이르게 되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돌고돌아보니, 저는 결국 '사람의 가치'와 '배분의 자격', '존중해야 할 덕목'의 의미로 '가치'라는 단어를 혼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가 먼저 어떤 맥락에서 '사람의 가치'를 논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눠주시는 말씀들 덕에 생각이 더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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