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용혜

D-29
서른다섯 살이 되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을 몰랐다.
전에 가난한 게 자랑으로 여길 정도였는데 지금은 안 그렇다. 그리고 직장에서 남 휴가 쓰는 게 안 부러웠는데 지금 애들은 안 그런 것 같다. 뭔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안 그렇다. 돌아가며 쉬면 되는 것이다.
왜 누군가를 먼저 좋아하게 된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걸까.
이성의 책을 접하자 나는 사회 주류에 반감 갖는 글을 쓰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기존에 가진 걸 현실에서 잘 활용하자는 주의라 남녀 차이를 잘 관찰하고 그걸 알며 서로 이해하자는 주의도 있다. 남자 사이엔 잘 알기 때문에 남자가 쓴 책을 통해 별로 배우는 것도 없다. 모르던 것을 처음으로 아는,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여자가 쓴 책을 통해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된다. 여자에게 신경 쓰이고 관심이 많은 것을, 남자는 별로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 것도 많을 것이다. 스포츠나 게임처럼 남자는 지대한 관심을 갖는데 또 여자는 아닌 경우가 많다. 서로를 알고 싶으면 동성 책이 아닌 이성 책을 접하는 게 유리할 것이다. 뭐든 결국 유리하게 써먹는 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현명한 길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물론 동성 책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아예 생각도 못한 것을 얻기는 이성의 책보단 덜하다.
술을 많이 먹어 간이 안 좋아져 쉽게 피로하구나.
이 출판사는 오자가 별로 없는데 오자를 발견했다. 희영이 사진을 찍어를 희영의 사진을 찍어로 바꿔야 할 것.
석중은 더 이상 재현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고 도망갈 작정이었다.
원래 하루에 감사의 절을 지금 읽는 이 책에 세 번씩 올리는데 23일날 술을 새벽까지 퍼마셔 안 한 것 같아 아홉 번을 올렸다. 여덟 번 올렸는지 아홉인지 헷갈려 한 번 더해 아마도 열 번을 지금 이 책에 감사의 절을 올렸다.
뒤치닥거리/뒤치다꺼리 ‘뒤치다꺼리’는 뒤+치다꺼리가 더해진 말이다. 치다꺼리는 다른 사람의 소소한 일을 도와주거나 그런 일을 뜻하여 ‘뒤치다꺼리’는 뒤에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치다꺼리’를 ‘치닥거리’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의 뒤치다꺼리는 하고 싶지 않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정신없이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은 고맙게도 그 뒤치다꺼리까지 도와주었다.
들어나다/드러나다 [드러나다]라고 발음되어 ‘드러나다’로 쓸지 ‘들어나다’로 쓸지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들어나다’라는 말은 없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말은 ‘드러나다’라고 써야 맞는 말이다. 웃을 때마다 유난히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그 수필에는 작가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인생에 대한 사색이라는 수필의 본질적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기슴엔 불가능한 꿈을 품고 살자.
자본주의의 실상(實像) 백화점을 보면 사용자 편의를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배치하지 않고 더 머무르게 하는 그런 게 있다. 서로 연결되게 안 하고 상행과 하행을 다른 장소에 두었다. 잘못 올라와 다시 내려가려면 빙빙 돌아 저쪽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화장실도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있다. 한번 들어가 지하철을 타려면 고생깨나 해야 한다. 친절하게 알려주면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버리니까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자꾸 삭신이 쑤셔 비라도 오나 밖을 보려는데 창이 없다. 오직 자기들이 진열한 상품만 보게 하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여기만 보란 것이다. 싼 맛에 자주 가는 다이소조차 오랜만에 가면 물건 배치를 자꾸 바꾼다. 저번에 산, 내가 사려는 물건은 오늘은 그곳엔 없다. 편의점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헤매게 하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라는 말이다. 즉 충동구매를 하라는 말이다. 소비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오직 물건을 팔려는 자기들의 의도를 고수할 뿐이다.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오직 오늘 내가 필요한 것만 기필코 찾아내 그것만 들고, 나오는 것이다. 또 현금 영수증은 반드시 챙기고. 요즘 식당은 조명이 너무 밝다. 어리석게도 불빛만 보고 저돌적으로 부나방처럼 불로 뛰어들어 타죽게 미끼 상품으로 유혹하는 그걸, 서슴지 않는 것이다. 밥 먹는 식당이 무슨 독서실도 아니고 그렇게 환할 필요가 있나. 사방에 왜 또 그렇게 거울은 많은지, 어디에 눈 둘 곳이 없다. 그저 고개 푹 숙이고, 밥이나 먹을 수밖에. 뭔가 느긋하게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얼른 먹고 나가게 된다. 그러면, 기꺼이 테이블 회전율에 기여하게 된다. ‘빚투’나 ‘열끌’ 같은 속성을 누구나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 너무 달다. 떡볶이가 왜 그렇게 다나? 시민 건강은 생각 안 하고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다.
그가 생각난다. 사랑했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건 내가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싫증나게 하는 게 유일한 답이다.
명작의 탄생 이상적인 이성(異性)이나 어떤 대상을 향한 게 있고 그게 지금 나와 함께 할 것 같은 가능성으로 설렘이 연속되면 작가는 그걸 향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것 같다. 뭔가 일상의 단조롭고 권태로운 상태보단 위기와 힘듦과 상상, 희망 상태에 있을 때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그가 곁에 있어 황홀경으로 사랑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때 나오는 글은 사랑으로 넘실거려 충만할 것이다. 이런 사랑의 숲에 있을 때는 사랑스러운 노래만 나온다. 온 세상이 온통 자기들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환희에 찬 글이다. 다른 사랑에 빠진 연인에겐 그게 더 깊이를 가져다준다. 자기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헤어져 슬프고, 그런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가망과 희망이 있어 상상의 나래를 펼 때, 더 역사적인 명작이 창출되는 것 같다. 슬픔과 희망이 있는 상태, 지금 누려 충족된 상태가 아닐 때가. 헤어짐으로 슬픔의 글이, 누림으로 환희의 글이, 설렘으로 희망을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작은 헤어짐과 희망에서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가지고 누리면서 충만하면 여유의 글은 탄생할지 몰라도 치열하고 맹목적이지 않아 명작이 덜 나온다고 본다. 왜냐하면 더 좋은 탄생은 에너지와 함수관계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설렘보단 헤어져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진정한 명작이 탄생하는 것 같다. 이때 표출되는 기운이 가장 세다. 하다못해 유행가조차 수작은 거의 헤어짐의 쓰라린 노래다. 내 말이 맞나, 바이걸의 <내 이름은 여자>와 지아의 <술 한잔 해요>와 이수영의 <Grace>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지금 들어보라. 아, 문희옥의 <성은 김이요>도 있다. 애절한 이별 유행가가 거의 다 그런 것 같다. 노랫말에서, 자긴 아니라고 이제 어느 정도 잊었다고-거기서 놓여났다고-하지만, 아직 사랑의 감정이 남아 이렇게 노래로라도 내 심정을 달래려는 것 아니겠나. 뭔가 기분 전환 삼아 한껏 우아하게(Gracefully) 꾸미고 외출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침, 봄놀이 나온 나들이객들의 깔깔 함박웃음처럼 세상은 내 슬픔과는 아랑곳없이 정해진 궤도를 돌뿐이다. 내 슬픔을 조금도 봐주지 않는다. 동참하지 않는다. 내 슬픔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커서 비수(匕首)가 되어 내 가슴을 후벼팔 뿐이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차라리 내가 그들에게 동조해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웃음을 짓지만, 가사(Lyrics)의 끝에 가면 진짜 속마음이 슬그머니 고스란히 등장한다. 이별 슬픔과 이런 이별을 표현한 글이 만나면 그 글이 명작이 안 될 수 없다. 나는 오롯이, 거기서 나와 같은 이별의 슬픔에 빠진 그를 본다. 아니, 나 자신을, 그 슬픔의 글에서 만나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거기에 울고 있는 내가 있다. 이 명작을 통해 나는 비로소 치유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다 성숙해져 어느 정도의 시간과 함께 이젠 한때 사랑했던 그를, 친구처럼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 자신도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에 대한 지식이 한층 느는 것이다.
숨은 끊어진 듯했다.
그를 죽여 열 명을 살릴 수 있어도 내가 그걸 하면 안 된다. 10명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운영인 것을.
부조리 사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고 벌을 줘서도 안 된다. 인간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 죽이고 싶으면 전쟁을 일으켜 많이 죽이면 된다. 안정적인 사회에서 어쩌다가 사람을 한 명 죽이면 살인이지만, 전쟁으로 많은 인간을 죽이면 그 나라에선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지금뿐 아니라 대대손손에 걸쳐서. 인간 사회는 이해가 안 가는 게 많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고, 어떤 기대도 없이 살아야 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원래 인간 사회는 말이 안 되는 게 많다. 모순과 부조리가 인간 사회의 특징이니까.
내 글은 사회 부조리 고발과 즉, 풍자와 사랑으로 향하고 있다.
타고난 것을 그런 감정이 왜 드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모든 게 자연의 조화인 것이다. 노력조차 실은 타고난 재능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이 가진 걸 써먹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이 세상에 나서 그걸 써먹고 가는 게 제일 낫다고 본다. 그나마 자신이 고유하게 가진 것을.
"전 제 방식으로 살아남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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