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용혜

D-29
원래 하루에 감사의 절을 지금 읽는 이 책에 세 번씩 올리는데 23일날 술을 새벽까지 퍼마셔 안 한 것 같아 아홉 번을 올렸다. 여덟 번 올렸는지 아홉인지 헷갈려 한 번 더해 아마도 열 번을 지금 이 책에 감사의 절을 올렸다.
뒤치닥거리/뒤치다꺼리 ‘뒤치다꺼리’는 뒤+치다꺼리가 더해진 말이다. 치다꺼리는 다른 사람의 소소한 일을 도와주거나 그런 일을 뜻하여 ‘뒤치다꺼리’는 뒤에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치다꺼리’를 ‘치닥거리’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의 뒤치다꺼리는 하고 싶지 않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정신없이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은 고맙게도 그 뒤치다꺼리까지 도와주었다.
들어나다/드러나다 [드러나다]라고 발음되어 ‘드러나다’로 쓸지 ‘들어나다’로 쓸지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들어나다’라는 말은 없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말은 ‘드러나다’라고 써야 맞는 말이다. 웃을 때마다 유난히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그 수필에는 작가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인생에 대한 사색이라는 수필의 본질적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기슴엔 불가능한 꿈을 품고 살자.
자본주의의 실상(實像) 백화점을 보면 사용자 편의를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배치하지 않고 더 머무르게 하는 그런 게 있다. 서로 연결되게 안 하고 상행과 하행을 다른 장소에 두었다. 잘못 올라와 다시 내려가려면 빙빙 돌아 저쪽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화장실도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있다. 한번 들어가 지하철을 타려면 고생깨나 해야 한다. 친절하게 알려주면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버리니까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자꾸 삭신이 쑤셔 비라도 오나 밖을 보려는데 창이 없다. 오직 자기들이 진열한 상품만 보게 하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여기만 보란 것이다. 싼 맛에 자주 가는 다이소조차 오랜만에 가면 물건 배치를 자꾸 바꾼다. 저번에 산, 내가 사려는 물건은 오늘은 그곳엔 없다. 편의점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헤매게 하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라는 말이다. 즉 충동구매를 하라는 말이다. 소비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오직 물건을 팔려는 자기들의 의도를 고수할 뿐이다.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오직 오늘 내가 필요한 것만 기필코 찾아내 그것만 들고, 나오는 것이다. 또 현금 영수증은 반드시 챙기고. 요즘 식당은 조명이 너무 밝다. 어리석게도 불빛만 보고 저돌적으로 부나방처럼 불로 뛰어들어 타죽게 미끼 상품으로 유혹하는 그걸, 서슴지 않는 것이다. 밥 먹는 식당이 무슨 독서실도 아니고 그렇게 환할 필요가 있나. 사방에 왜 또 그렇게 거울은 많은지, 어디에 눈 둘 곳이 없다. 그저 고개 푹 숙이고, 밥이나 먹을 수밖에. 뭔가 느긋하게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얼른 먹고 나가게 된다. 그러면, 기꺼이 테이블 회전율에 기여하게 된다. ‘빚투’나 ‘열끌’ 같은 속성을 누구나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 너무 달다. 떡볶이가 왜 그렇게 다나? 시민 건강은 생각 안 하고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다.
그가 생각난다. 사랑했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건 내가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싫증나게 하는 게 유일한 답이다.
명작의 탄생 이상적인 이성(異性)이나 어떤 대상을 향한 게 있고 그게 지금 나와 함께 할 것 같은 가능성으로 설렘이 연속되면 작가는 그걸 향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것 같다. 뭔가 일상의 단조롭고 권태로운 상태보단 위기와 힘듦과 상상, 희망 상태에 있을 때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그가 곁에 있어 황홀경으로 사랑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때 나오는 글은 사랑으로 넘실거려 충만할 것이다. 이런 사랑의 숲에 있을 때는 사랑스러운 노래만 나온다. 온 세상이 온통 자기들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환희에 찬 글이다. 다른 사랑에 빠진 연인에겐 그게 더 깊이를 가져다준다. 자기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헤어져 슬프고, 그런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가망과 희망이 있어 상상의 나래를 펼 때, 더 역사적인 명작이 창출되는 것 같다. 슬픔과 희망이 있는 상태, 지금 누려 충족된 상태가 아닐 때가. 헤어짐으로 슬픔의 글이, 누림으로 환희의 글이, 설렘으로 희망을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작은 헤어짐과 희망에서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가지고 누리면서 충만하면 여유의 글은 탄생할지 몰라도 치열하고 맹목적이지 않아 명작이 덜 나온다고 본다. 왜냐하면 더 좋은 탄생은 에너지와 함수관계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설렘보단 헤어져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진정한 명작이 탄생하는 것 같다. 이때 표출되는 기운이 가장 세다. 하다못해 유행가조차 수작은 거의 헤어짐의 쓰라린 노래다. 내 말이 맞나, 바이걸의 <내 이름은 여자>와 지아의 <술 한잔 해요>와 이수영의 <Grace>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지금 들어보라. 아, 문희옥의 <성은 김이요>도 있다. 애절한 이별 유행가가 거의 다 그런 것 같다. 노랫말에서, 자긴 아니라고 이제 어느 정도 잊었다고-거기서 놓여났다고-하지만, 아직 사랑의 감정이 남아 이렇게 노래로라도 내 심정을 달래려는 것 아니겠나. 뭔가 기분 전환 삼아 한껏 우아하게(Gracefully) 꾸미고 외출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침, 봄놀이 나온 나들이객들의 깔깔 함박웃음처럼 세상은 내 슬픔과는 아랑곳없이 정해진 궤도를 돌뿐이다. 내 슬픔을 조금도 봐주지 않는다. 동참하지 않는다. 내 슬픔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커서 비수(匕首)가 되어 내 가슴을 후벼팔 뿐이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차라리 내가 그들에게 동조해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웃음을 짓지만, 가사(Lyrics)의 끝에 가면 진짜 속마음이 슬그머니 고스란히 등장한다. 이별 슬픔과 이런 이별을 표현한 글이 만나면 그 글이 명작이 안 될 수 없다. 나는 오롯이, 거기서 나와 같은 이별의 슬픔에 빠진 그를 본다. 아니, 나 자신을, 그 슬픔의 글에서 만나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거기에 울고 있는 내가 있다. 이 명작을 통해 나는 비로소 치유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다 성숙해져 어느 정도의 시간과 함께 이젠 한때 사랑했던 그를, 친구처럼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 자신도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에 대한 지식이 한층 느는 것이다.
숨은 끊어진 듯했다.
그를 죽여 열 명을 살릴 수 있어도 내가 그걸 하면 안 된다. 10명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운영인 것을.
부조리 사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고 벌을 줘서도 안 된다. 인간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 죽이고 싶으면 전쟁을 일으켜 많이 죽이면 된다. 안정적인 사회에서 어쩌다가 사람을 한 명 죽이면 살인이지만, 전쟁으로 많은 인간을 죽이면 그 나라에선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지금뿐 아니라 대대손손에 걸쳐서. 인간 사회는 이해가 안 가는 게 많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고, 어떤 기대도 없이 살아야 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원래 인간 사회는 말이 안 되는 게 많다. 모순과 부조리가 인간 사회의 특징이니까.
내 글은 사회 부조리 고발과 즉, 풍자와 사랑으로 향하고 있다.
타고난 것을 그런 감정이 왜 드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모든 게 자연의 조화인 것이다. 노력조차 실은 타고난 재능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이 가진 걸 써먹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이 세상에 나서 그걸 써먹고 가는 게 제일 낫다고 본다. 그나마 자신이 고유하게 가진 것을.
"전 제 방식으로 살아남아야죠."
누구나 한번 무너지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조심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씩씩하고 똘똘하게 사는 사람도 늘 걱정이 태산 같은 것이다. 인간은 늘 불안 속에서 산다. 그게 사라지면 죽은 것이다.
작가도 석중을 가장 아껴 아까운 죽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술을 너무 자주 많이 마시면 뇌세포가 파괴되어 치매에 더 잘 걸린다. 그리고 남에게 뒤처진다.
붉은 반점이 있는 것처럼 사회엔 다른 인간들이 있는데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
결혼에 너무 기대를 걸어 실패가 많은 것이다. 뭔가 섹스도 맘대로 하고 환상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도 생활의 연장이다. 그리고 사랑은 잠시만 유효하다. 생활과 일상은 계속되지만 사랑은 너무 그 기간이 유한하다. 여자는 사랑을 부르짖지만 남자는 자기 할 일이 더 우선인 경우가 많다.
언어의 한계다.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고 못 보는 것은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하거나 보지 못할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 <모자무싸>에서 황진만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시인으로서 사상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가, 현실에 안 살아 순진할 것 같은 스님에게 인생 상담을 하듯이 드라마에선 그 시인을 사고(思考)의 중심에 세운 것이다. 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하며 지지고 볶으며 살아도 -결국 먹고살기 위해 생활을 해도-인생에 대해 뭔가 삶의 본질을 봐 통찰하고 순수할 것 같은 시인의 생각을 흔들리지 않는 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는 손가락만 보지만 그는 달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오글거려 직접적으로 드라마에선 표현하긴 뭣해도 가끔 시인의 글이나 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드라마 작가가 대사(臺詞)에 집어넣는다. 자기주장을 남의 입을 통해 전해야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는 칭찬은 그냥 아부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남에게 하는 내 칭찬은 진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칭찬 그대로일 수 있다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즉, 그래야만 그게 그저 사탕발림이 아니라 나도 그 칭찬에 부합(符合)하고, 그 칭찬을 하는 사람도 그 인격이 좀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했기 때문이다. 묵직하고 진지한 질문은 그 시인에게 한다. 자기 입으로 하면 낯간지러우므로 삶에서 좀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시인에게 묻는 것이다. 시인은 삶에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마냥 매몰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인도 물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징적, 은유적으로 표현하지만 말이다. 드라마 작가건 장르 작가건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건 자기는 현실에 얽매이지만 실은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자기 글을 쓰고 싶은, 그런 로망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 홀가분한 상태에서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직업으로 쓰는 글하고 자유롭게 어떤 것에도 얽매임 없이 무의식, 심연에서 나오는 글은 다르기 때문이다. 잘 썼든 못 썼든 자유롭게 쓴 글이 뭔가 흐뭇하고 자기를 치유하기도 한다. 가장 잘 쓴 글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긴 현실에서 용기나 조건이 안 되어 그렇게는 못 하지만 오직 시인으로서 글을 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그 시인을 등장시켜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게 둔다. 작가가 쓴 글엔 애정을 가지고 자기를 대변하는 인물을 둔다. 그들은 그를 존중하고 추앙한다. 그들에게 다시 없는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시인은 어쩌면 용감하게 생활전선에서 놓여나 오직 자기 글만 쓰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나 못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통이 아니면-이상(Weird)하지 않으면-현실을 벗어던지고 이상만 추구하는 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그 시인처럼 살고자 하나 현실을 벗어나기 힘들어 그라도 내세워 대리만족하며 그를 받든다. 나는 현실적인 이유로 못하지만, 그는 바로 현실에서 자기 뜻을 펴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인은 현실에서 자기가 되고 싶은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그 시인(詩人)은 시보단 용접이 좋고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시를 쓸 땐 좌절과 자괴감의 연속이었지만 용접은 난생처음 쉬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친딸의 사진을 보고는 강가에 가서 다시 시를 쓴다. 이처럼 인간은 모든 게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굽이굽이 돌면서 어지럽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인간은 또 타고난 것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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