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D-29
- 군 입대를 했습니다. 신병훈련 끝나고 300명을 절반으로 나누더니 한쪽은 전경, 한쪽은 일반부대로 보냈습니다. 나는 왜 전경으로 배치됐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그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자기들 맘대로 전경으로 보내놓고 죽도록 욕먹게 만들고…. (A씨. 1990년 광주 전경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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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동료들은 늘 출동 대기를 하느라 날마다 긴장이었다. 두툼한 전투복은 몸을 무겁게 만들었고 여름에는 쪄 죽을 지경이었다. 방패까지 들고 있으니 행동이 더욱 둔했다. 방독면은 대부분 물려받은 중고품이라 시야가 흐릿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사수대 학생들이 너무 무서웠다.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드는 그들이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진압이 끝나고 돌아가도 지옥이었다. 고참이나 상부관리자는 집회 해산을 제대로 못 시켰다고 쉼 없이 두들겨 팼다. '닭장차'(전투경찰 수송버스) 맨 뒤쪽에 매트리스가 덧대져 있었다. 고참이 앞쪽에서 발차기로 패대기를 치면 맨 뒤까지 나가 떨어져서 매트리스에 부딪혔다. 밤늦도록 얻어맞고 다음날 시위진압에 나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집회에서 독기가 생겼다. 옆의 동료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속이 뒤집혔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 잔해를 뒤집어써 얼굴이 쭈글쭈글해진 이도 있었다. 날아온 돌이 마스크에 부딪혀 깨지면서 돌가루가 눈으로 들어왔다. 불이 붙을 경우를 대비해 미니 소화기를 뒤에 차고 다녔다. 집회는 공포였다. '살기 위해' 쫓고 쫓기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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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몰리는 주간에는 전경들도 백골단 복장으로 나서기도 했다. 전경 복장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곤봉 하나만 들고 있으면 더욱 무서웠다. 전경과 백골의 처지는 많이 달랐다. 전경은 군에 입대했다가 배치받은 청년들이었고, 백골은 형사가 되기 전단계의 경찰청 소속 유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백골단의 폭력은 자발성이 컸다. 1991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운동권 학생들도 전경과 백골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백골 복장으로 거리에 서는 전경의 난감함과 공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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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청년들도 있다. 전남대 96학번 김인권은 의무경찰로 복무하다가 시위진압 중 부상을 입었다. 17년간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한 끝에 사망했다. 전남대는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상대편의 비보도 잇따랐다. 1997년 3월, 조선대 개강 집회 때 2학년생 류재을이 경찰이 던진 시커먼 물체에 맞아 사망했다. 1997년 9월에는 광주대 학생 김준배(한총련 투쟁국장)가 수배 중 검거 과정에서 추락했다. 경찰은 건물에서 떨어져 신음하고 있는 그에게 달려들어 구타를 가했다. 김준배는 추석날 새벽 눈을 감았다. 학생으로 위장한 경찰이나 첩자가 학교에 잠입해 정보를 캐는 활동을 하곤 했다. 운동권 학생들은 그런 '프락치'를 가려내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간혹 첩자로 의심되는 이를 붙잡으면 사수대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학생운동사에서 전국적으로 몇 건의 폭행치사 사건이 일어났다. 정권의 폭력에 맞서다가 폭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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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상에는 생애주기가 있다. 사수대는 군사정권 시기 대중적 학생운동이 폭발할 때 태어났고, 그 시대가 저물 때 쇠퇴했다. 김영삼 문민정부 4년째인 1996년은 사수대 문화가 크게 꺾인 시점이었다. 화염병이 날아오른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에는 학생집회 자체가 급격히 줄었다. 광주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오월대도 2000년대 들어 더 이상 신규 대원이 없어 사실상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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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방어와 대비에 투입해야 할 군인을 시위진압 인력으로 전환시킨 전투경찰 제도는 1971년 박정희가 만들었고, 2013년에 폐지됐다. 의무경찰이 단계적으로 전투경찰을 대체했다. [...] 쫓고 쫓기고 때리고 맞는 공포의 쳇바퀴는 사라졌다.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전경 복무를 한 D씨는 '나는 아직도 겁먹고 거리에 선 꿈을 꾸는데, 그 시대가 사라졌다. 혹시 나는 복무를 한 게 아니라 사실은 꿈을 꾼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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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polinlove2/223083651708 “이제는 안녕, 대한민국 의무경찰!”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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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된 목포 항도여중 졸업생들이 스승들을 기억해내고, 마침내 박기동 시인을 찾아냈다. 팔순의 그는 호주에 살고 있었다. 목포의 방송국 팀이 호주로 찾아가 그를 인터뷰하며 '부용산'의 재조명 열기를 전했다. 직접 불러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을 때 이 노신사는 침묵 끝에 엎드려 한참을 흐느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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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그는 교직을 떠나야 했다. '산사람들의 애창곡'을 쓴 사람이라는 이유로 공안당국으로부터 '불순분자'로 찍혔다. 상선회사 직원, 염전 현장감독 등 불안정한 임시직을 거치다가 번역과 교정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반공 군사독재 시대의 할큄은 매서웠지만 시인의 문학열은 뜨거웠다. 그는 틈틈이 시를 썼다. 형사들은 불시에 집에 쳐들어와 그간 써놓은 시들을 압수해가 버렸다. 그러기를 수차례, 박 시인은 시집을 낼 기회를 모두 날렸다. 가족들의 고초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그는 76세의 나이에 홀로 호주 이민을 떠났다. '내가 없으면 가족들이 더는 수모를 겪지 않겠지.'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옛것을 모두 허물고 내버릴 때 반공의 성채만은 음지에서 여전히 번창했다. 박기동 시인은 그 성벽에 깔려 신음하는 힘없는 개인이었다. 그는 시드니 근교 7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호주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았다. 그 사이 '부용산'이 널리 불리고 유래를 더듬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국의 유명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자기 음반에 실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고국의 분위기가 그리 많이 바뀌었는지 팔순 노인은 얼떨떨했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년 뒤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시집을 내고 싶다"던 소원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는 대신 '부용산'에 2절을 보태고 갔다. 2절을 짓는 것 역시 '밝아진 세상' 사람들의 제안이었다.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홀로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1절이 청년의 제망매가(祭亡妹歌)라면 2절은 시를 빼앗기고 평생을 표류한 시인의 자화상이다. 1절과 2절 사이에 한국 현대사의 검은 강이 흐른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투사가 된 노래들, 이혜영 지음
불온해서 쉬쉬했다던 노래를 이제는 이름난 가수들의 버전으로 마음껏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노래 한 곡이 쉽게 찾아오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투사가 된 노래들, 이혜영 지음
노래가 탄압을 받는다. 노래가 투쟁을 한다. 역사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 노래를 만들고, 함께 부르고, 격랑 속의 노래가 더불어 투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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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 하얀 눈 맞으며 아픈 맘 달래는 바윗돌 세상만사 야속타고 주저앉아 있을소냐 어이타고 이내 청춘 세월 속에 묻힐소냐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한 맺힌 내 가슴 부서지고 부서져도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보자 아아 바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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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차의 '바윗돌'은 대상을 수상한 지 한 달 만에 구르기를 딱 멈췄다. 그 무렵 TV 인터뷰 때문이었다. "제목 바윗돌이 무슨 의미인가요?" "광주에서 죽은 제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해요." 5·18이 진압된 지 1년이 지난 1981년 봄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권세와 독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 판국에 망월동 묘역에 묻힌 희생자를 기리는 노래가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무대에서 1등을 거머쥔 것이다. '맹랑한' 대학생 정오차는 광주 출신 청년이었다. 그날로 정오차의 '바윗돌'은 방송 금지가 됐다. 무려 대학가요제 대상곡이 '불온사상 내포'라는 사유로 금지곡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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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광주의 조선대학생 배창희는 전남 고흥 앞바다의 작은 섬 소록도에 갔다가 5·18 광주를 떠올렸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돼 살고 있는 사연 많은 섬이다. 그는 소록도처럼 고립됐던 광주를 노래로 만들었다. 김원중은 서울에 불려 다니느라 얼떨떨할 정도로 바빴다. 어느 날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진행자 이종환이 물었다. "바위섬 노랫말 분위기가 남다릅니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1980년 5월 광주를 바위섬에 비유한 겁니다." 담담한 그의 말은 공안당국의 매서운 귀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MBC의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는데도 운 좋게 살아남은 '바위섬'은 가요톱텐 2위, 라디오 차트 1위까지 기록했다.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신인가수 후보, 좋은 가사 후보에도 올랐다. 똑같은 이야기인데 1981년 바윗돌은 '불온사상'이 됐고, 1985년 바위섬은 '좋은 가사'가 됐다. 헛웃음이 나오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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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은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계엄군에 맞섰던 전남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 - 저에게 음악은 5·18의 의미를 풀고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사실 제 역사의식은 투철할 것도 없고 그저 상식적입니다. 위대한 시민들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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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은 꼬꼬마 때 나도 좋아하는 노래였다. 가사의 의미 같은 건 하나도 몰랐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외롭고 슬프고 그러면서도 신화처럼 신비롭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방학 중에 막내고모 댁에 가서 머물렀다. 사촌들과 수다떨고 노래도 하면서 우리는 그걸 장난삼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공테잎은 아니었을 테고 영어회화 따위의 학습테이프 윗구멍 두 개를 스카치테이프로 마감쳐서 위장(?) 공테잎을 만들어 녹음을 한 기억이다.) 막내고모부가 가까이 와서 우리가 녹음을 하고 있는 걸 보시더니 본인도 노래를 한 곡 뽑았는데 그게 김원중의 바위섬이었다. 그걸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고모부의 노래가 정말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내 귀에도 쩡쩡하게 울리며 와닿던 성량, 그리고 이상하게 따사롭던 노랫말. 나는 고모부가 성악가 같다고 생각했다. 그후로도 테이프를 돌려가며 고모부의 바위섬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 시절 늘어지게 듣던 수많은 테잎처럼 이제는 간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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