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쟁 4일째 저녁부터 도청 광장은 되찾은 주권의 상징이었고 광주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그때의 '도청'은 건물 하나가 아니라 분수대 광장을 둘러싼 동심원의 심장이었다. 전남도청, 전남경찰청, 상무관, YMCA, YWCA 같은 공기관과 시설들이 모여 있었다. 해방광주 5일 동안 시민들은 자연스레 역할을 나누고 이 건물들을 자치장소로 썼다. 장례(상무관), 시민군 교육(YMCA), 홍보(YWCA)가 나뉘고, 이 모든 활동을 지휘하고 조율하는 수습위원회와 시민군이 도청에 머물렀다. 위계질서에 따른 역할 분담이 아니었다. 누구나 원하는 곳에 찾아가 손을 보탰고 모두가 대등했다. 수많은 시민이 매일 도청 광장 분수대 주변으로 모여들어 궐기대회를 열고 계엄군의 만행을 규탄했다. 말 그대로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의 공간이었다. 상상 못할 비극을 함께 헤쳐 나왔다는 끈끈한 유대를 공유했다. ”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1980년 5월의 절대공동체, 이혜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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