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D-29
'바위섬'은 광주에서 어느 날 어쩌다 튀어나온 히트곡이 아니었다. 1970~80년대 광주 대중음악계는 훗날 '광주포크'라고 불릴 만큼 활발했다. 다양한 음악인들이 활발히 교류하고 어울렸다. 그런 분위기에서 광주만의 깊이 있는 노래들이 쏟아졌다. '바위섬'이 수록된 『예향의 젊은 선율』도 당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음반이었다. 광주 포크음악계는 고유함의 발신지였다. 1978년부터는 광주 전일방송 주최로 전일가요제가 열렸다. 서울이 아닌 지역이 주최하는 최초의 전국가요제였다. 군사정권의 언론사 통폐합 조치로 몇 년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 짧은 기간에 수준 높은 수상곡들이 쏟아졌다. 1회 대상곡 '모모'를 나는 지금도 흥얼거리곤 한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투사가 된 노래들, 이혜영 지음
모모 - 김만준 https://youtu.be/BaJHRoGPuU0?si=4u-cMj_rTt_rO2jM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자기 앞의 생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로 1975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문학동네에서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어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 로맹 가리의 유서라 할 수 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함께 실렸다.
1984년 가을, 시인 김남주는 징역을 살고 있었다. 교도소는 펜과 종이를 쓸 수 없게 했다. 그는 칫솔 손잡이 끝을 날카롭게 갈아 우유갑이나 담뱃갑 은박속지를 긁어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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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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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QxHB3UlICo?si=CX6t09sHamjRbDEk 노래(죽창가) - 안치환 https://omn.kr/20g7z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복원도 https://www.hani.co.kr/arti/PRINT/988871.html “박정희 등 ‘일제 빛낸 사람들’ 92명 수갑 채워 심판했죠”
조선대 미대생 이상호는 '죽창가'를 판화로 옮겼다. 1987년 6월항쟁의 한복판이었다. 그는 매일 광주 서현교회 앞에서 시작하는 중앙로 집회에 나갔고 깃발, 만장, 포스터 같은 것을 만들어 제공했다. 집회에 나간 조선대 학생들은 이상호와 전정호가 그린 조선대 깃발이 유독 멋스러워 어깨가 으쓱했다. 자부심은 전투의 연료가 됐다. 이상호는 시위대의 의욕을 북돋아줄 그림을 고민하다가 노래 '죽창가'를 떠올렸다. 그의 판화 '죽창가'는 대나무를 날카롭게 깎아 죽창을 만들고 있는 동학농민군의 모습을 담았다. 교도소에서 시를 쓰기 위해 칫솔대를 깎는 투사 김남주의 모습과 포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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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미대 4학년생 이상호와 전정호는 6월항쟁 직후인 1987년 9월 경찰에 연행돼 투옥됐다. 이들이 주도해 그린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라는 작품이 국가보안법 중 '고무찬양죄'와 '이적물표현죄'에 해당된다는 사유였다. 미술작품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걸고넘어진 국내 최초의 사건이었다. 시인 김남주는 시집이 나온 후에도 5년을 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수난받는 창작자들을 위로하듯이 '죽창가'는 전라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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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중예술은 예술과 운동의 균형이 돋보인다. 그 자체로 고유하고 정치적 긴장감도 느껴졌다. 특히 판화는 1980년대 시대상에 잘 어울리고 효과적이었다. 언론 통제와 작품 검열이 유난했던 그 시대, 굵고 간결한 선으로 강렬한 상징을 담아낸 판화는 수백 장, 수천 장을 찍어 널리 배포할 수 있었다. 판화 한 장은 작품인 동시에 투사였다. '오월광주' 연작을 완성한 홍성담의 판화가 대표적이다. '죽창가'는 저마다 걸출한 시, 곡, 판화가 한 세트를 이룬 드문 경우였다. 시는 선율을 자극하고, 선율은 그림을 끌어냈다. 창작자들이 미리 의도하거나 논의를 한 게 아니었다. 서로를 아낀 이심전심이 자연스럽게 탄생시킨 집체예술품이었다. 1980년대라는 특수한 공기 속에서 태어난 작품은 그 시대 분위기가 사라지면 존재감을 잃기 쉽다. '죽창가'는 여전히 선연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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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이 김남주에게 헌정한 6.5집의 첫 곡, <똥파리와 인간> https://youtu.be/wtzZ0QiHlXU?si=_-RPPhgRZQ5NV7GA "자리가 파할 무렵 두셋이 나직하게", "집회에서 돌아와 방에서 혼자 듣는 느낌의" <부용산>이나 <죽창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노랫말도 속 시원하다. 그래서 우리의 맥주쏭 플리에 언제나 들어가는 노래. 똥파리와 인간 - 김남주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을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은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금지곡 1호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태어났다. 정부가 수립된 지 겨우 1년이 지난 1949년 9월, 이승만 정권 때였다. 김초향 작사, 이봉룡 작곡의 '여수야화'(麗水夜話)는 당대의 최고 인기가수 남인수가 불렀다. 아세아레코드가 음반을 내놓자마자 이승만 정부는 화들짝 놀라 금지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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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 집 선돌 아범 어데로 갔나요 창 없는 빈집 속에 달빛이 새여 들면 철없는 새끼들은 웃고만 있네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바람아 북청 간 딸 소식을 전해 주려므나 에미는 이 모양이 되었다마는 우리 딸 살림살인 흐벅지더냐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오늘엔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 집 태운 사람 얼굴 좀 보자. 제목 그대로 여수의 밤에 나눈 이야기다. 여수는 전남 남동쪽의 항구도시다. 이 노래는 1948년 여수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이승만 정부는 노래에 실려 그 사건이 회자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정부의 '노력' 덕분인지 이제 '여수야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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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때 저는 도청과 가까운 장동 자췻집에 있었습니다. 마지막날 새벽 총소리를 들으며 소리도 못 내고 울었어요. 자책감을 노래로나마 덜 수 있을까 싶게, 작곡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오월 영령들이 불러준 멜로디를 받아 적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률) 노래극 녹음을 위해 황석영의 집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녹음 환경이 열악했지만 공안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주목을 피하다 보니 모임 시간도 밤으로 잡았다. 빛과 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창문마다 두꺼운 이불로 겹겹이 덮었다. 악기는 징과 꽹과리, 장구 등이었다. 조심스럽게 몇 번씩 함께 연주하며 합을 맞춘 후 '테이프'에 녹음했다. 장비가 조악해 멀리 밤기차 지나가는 소리, 옆집 개 짖는 소리도 끼어들었다. 5·18을 추모하며 집단창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연주자들의 마음은 뿌듯했다. 선배한테 갑자기 불려온 사람도 있었고,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이 작업의 의미를 잘 알았다. […] 이 노래가 광주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그것도 대규모 제창으로 불린 곳은 1982년 10월 전남대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자 들불 강학이었던 박관현이 죽음으로 돌아온 자리였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40여 일간의 단식농성 끝에 사망했다. 광주시민들이 장례식장에 끝없이 모여들었다. […] 대학생들은 관 사수 투쟁을 벌였다. 공안당국은 박관현의 죽음이 광주의 시위로 이어질까 봐 시신을 탈취하려고 기회를 노렸다. 망자까지 '압수'해 가려는, 참으로 치가 떨리는 시대였다. 대학생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열사의 관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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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소년 박철환은 5·18 때 시민군으로 활약한 형 박선재를 통해 시국에 눈을 떴다. 1985년 전남대 공대에 입학한 박철환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여러 민중가요를 들었다. 문득 자신도 기타와 노래가 취미였다는 생각에 겨울방학 때 노래를 만들어 '동지가'라 이름 짓고 집회에서 불렀다.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1986년 서울 학생들이 악보를 가져갔다. '동지가'는 전국 집회장으로 퍼져나가 단골로 불렸다. 그가 어느 지역 농민대회장에 갔다가 멋쩍게 "저 노래 제가 만들었어요" 했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박철환은 1987년 고향 나주에 정착하면서 형 박선재, 고향 형들, 누나들, 어르신들과 일을 벌였다. 나주 수세거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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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배운 노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한 건 꽃다지의 <반격>이다. 노래 자체보다도 그날 그 '몸짓', 각이 딱딱 잡히던 강렬한 몸짓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동지가>는 그 다음으로 좋았다. <불나비>는 그즈음 만나던 남자친구가 잘 부르던 곡. 반격 - 꽃다지 https://youtu.be/tc_Hzx5n9KI?si=wkwWP8OySF6sxZcw 불나비 - 류금신 https://youtu.be/Eko8Vcbxpzw?si=oCuKAX2IfcK8UsjS
우리가 외면하든 모르고 있든 여순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래 전 한국 남쪽 끝에서 일어나고 그친 게 아니다. 단추를 잘못 끼워 이상해진 옷차림새처럼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내면과 삶을 헝클어트리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궤도가 수정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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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로 들어가면서 광기는 더 활활 타올랐다. 전남 구례는 지리산 자락 동네다. 1949년 당시 시신을 묻은 생존자는 "한번에 20~30명씩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달달달 쏴서 죽였다. 2년 동안 서시천에서 계속 죽였다. 땅을 직선으로 파서 시신을 줄줄이 묻었다. 악취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간문천변에서는 주민 90명 이상을 모아놓고 쏴 죽였다. 지리산 서쪽 상관마을에는 남자들이 다 총 맞아 죽고 2명만 살아남아 '과부촌'이 됐고, 32가구가 살던 순천 낙안면 신전마을은 1949년 추석에 주민 22명이 총살돼 '추석이 없는 마을'이 됐다. 산골마을 주민들은 도대체 왜 죽었을까. 빨치산들 사이를 오가는 연락병 소년을 치료하거나 도와줬다는 혹은 도와줬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남자들은 빨치산과 내통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독 죽임을 많이 당했다. 구례 산동면에서는 아들이 집에 없자 대신 그 여동생을 죽였다. 19세 백순례가 끌려간 사연은 노래 '산동애가'에 담겼다. 어느 전북 경찰이 구례 '토벌'에 나섰다가 사연을 듣고 퇴직한 후 노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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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절어 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도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 만은 너 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 혼자 총소리에 이름 없이 스러졌네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7843 [고굉무의 음악이야기] '산동애가(山洞哀歌)'를 아시나요? https://youtu.be/7rO-ic6RWYM?si=xLVqYiH_Gdg0uvpX 아직도 못다 부른 노래 #2 산동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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