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D-29
어쩌면 6월광주는 축제였다. 두들겨 맞고 끌려가고 최루탄 연기에 눈물 콧물 흘리는 게 즐거울 수 있을까마는, 광주시민들에게는 달랐다. 5·18을 겪은 것도 원통한 마당에 줄곧 '폭도의 도시'라는 누명과 오명에 시달려왔다. 몸이 힘든 것보다 고립감이 더 힘들었다. 그런데 1987년 6월에는 전국 모두가 싸우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감은 시위를 한편으론 축제로 만들었다. - 이번에는 되겠다, 정말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공동으로 타종하고 공동으로 경적을 울리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10만 모였다, 20만 모였다, 이런 말 들으면 밥 안 먹어도 힘이 났어요. 아, 이제는 우리 고립되지 않겠구나 싶어서. (김영집)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6월항쟁, 이혜영 지음
"동아약국'은 목포 운동가들의 사랑방이었다. 목포 문화의 중심지인 '오거리'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는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운동가들은 약을 사는 척하면서 조용히 묻곤 했다. "뭐 소식 있나요?" "이거 읽어봐." 약사는 민주화투쟁 정보가 가득한 유인물을 슬쩍 건네곤 했다. 경찰들은 늘 동아약국을 주시했다. 운동가들은 굴하지 않고 동아약국에서 시국을 논하고 투쟁 방향을 정하고 조직을 만들었다. 약사 안철은 목포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었다. 안동해 목사의 아들이자 기독교 장로이기도 했던 안철은 1970년대 중반부터 동아약국을 경영하면서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1977년에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고, 1980년 5월에는 목포5·18 시민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항쟁을 이끌었다. 이후 체포된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수차례 옥살이를 하면서 얻은 병은 57세에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약사의 담대한 기질을 따라 동아약국은 곧잘 대담한 성토장으로 변신했다. 유인물 한 장만으로도 공권력은 국가보안법 위반을 걸어 징역 몇 년은 거뜬하게 때리던 시국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철은 약국 유리창에 '김대중 사면복권하라!'를 크게 써 붙였다. 개헌투쟁 때는 약국에 개헌 서명대를 설치했다. 돈을 벌면 운동 경비로 다 털어 넣었다. 거침없는 행동가였지만 심성이 여린 그는 강상철 열사의 추모행사가 저지된 후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약국에 분향소를 차렸다. 안철의 동아약국이 1987년 6월에 항쟁 지휘의 거점이 된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목포지부 사무실은 동아약국 건너편 건물 3층에 마련됐다. 안철을 포함한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국민회의, 목청련, 종교계 등 목포 민주화세력이 모두 결합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6월항쟁, 이혜영 지음
목포 민주화운동 주요 동선 목원동 정명여고 후문(박승희 열사 흉상) - 양동교회 - 목포청년회관 - 트윈스타(공설시장 터) - 목포역 광장 - 오거리문화센터(옛 동본원사, 옛 중앙교회) 1991년 분신한 전남대생 박승희 열사의 모교 후문에 흉상이 세워져 있다. 목원동 일대는 목포 도시 형성사에서 조선인 거류지이자 중심지였고, 근대 기독교 선교사들이 정착해 양동교회, 정명여학교, 영훈학교 등의 시설을 일군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곳을 근거지로 학생과 청년들, 기독교인들의 항일시위가 활발했다. 목포 청년회관은 항일민족운동 단체였던 신간회 목포지회의 거점이었다. 군사독재 시기에도 학생들과 시민들은 목원동에서 시위대열을 만들어 목포역 광장을 향해 나아갔다. 특히 공설시장은 학생들의 집회 거점이었고, 상인들도 많은 지원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중심지도 공설시장이었다. 현재 시장 터에는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트윈스타' 두 동이 들어서 있다. 목포 원도심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동본원사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일본식 절이며 나중에 중앙교회로 쓰였다. 5·18 때와 6월항쟁 때 민주화인사들이 모여 수시로 회의를 했다. 지금은 오거리문화센터가 입주했다. 동본원사가 있는 오거리 일대는 목포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6월항쟁, 이혜영 지음
1982년 봄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이다. 5·18의 원죄를 진 그는 국민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자구책 중 하나가 프로야구였다. 의도야 어땠든 프로야구는 기존 고교야구의 인기를 금세 덮어쓰기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설적인 강자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전남의 홈팀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무등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해태를 응원했다. 그 시간은 5·18의 후유증과 억울함을 푸는 시간이기도 했다. 5월에는 응원인지 시위인지 헷갈릴 정도로 절박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거목의 고향_김대중, 이혜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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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1982년 봄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이다. 5·18의 원죄를 진 그는 국민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자구책 중 하나가 프로야구였다. 의도야 어땠든 프로야구는 기존 고교야구의 인기를 금세 덮어쓰기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설적인 강자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전남의 홈팀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무등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해태를 응원했다. 그 시간은 5·18의 후유증과 억울함을 푸는 시간이기도 했다. 5월에는 응원인지 시위인지 헷갈릴 정도로 절박했다."
예전에는 프로야구 관람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저녁 야구 중계를 봤다. 응원팀은 그날 경기를 같이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바뀌었다. (친)오빠도 (전)남편도 두산 곰팀을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베어스를 응원했다가, 타이거즈를 좋아하는 학교 선배랑 볼 때는 나도 잠시 무등산호랑이팀 팬이었다가, 친한 입사 동기가 서울 쌍둥이를 좋아하면 또 그 팀도 응원했다가… (하지만 혼자 볼 때는 내게도 소신이 있었다. 20대 때는 류현진 선수가 좋아서 이글스를 응원했다. 히어로즈에 박병호 선수가 있을 때는 그 팀을 좋아했다.) 가을야구가 시작되면 언더독 심리가 발동했는지 항상 둘 중에 더 못 하는 팀이 우리 편이었다. 그 편이 더 재미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야구를 안 본 지 오래됐다. 가끔 WBC 같은 국제대회나 하면 몇 경기 볼까. 이유는 딱히 없고 그냥, 질렸나보다. 충성팀이 없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마침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는 야구를 안 좋아한다. 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이종범이 누군지 모르고(옛날사람 중에 이종범 모르는 아재는 처음 봄), 야구 얘기가 나오면 맨날 한다는 소리가, ‘전두환이 도입해서 첫 시구까지 했던 프로야구를 왜 보냐’, ‘대중을 우민화하는 3S 정책에 휘둘리면 안 된다’… (아니 님은 그냥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 안 보시는 거잖아요 ㅎㅎ) 차라리 크보 경기는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안 본다든지(근데 사실 고 맛에 보는 거긴 한데! 병맛 크보가 말아주는 도파민 중독에 빠지면 답도 없지요), 양아치들 승부조작이나 학폭 땜에 안 본다 하는 게 3S 타령보다 훨씬 나을 텐데ㅋ 야구 시청은 한때는 내 삶에서 뺄 수 없는 취미였지만, 한번 안 보기 시작하니 점점 멀어진다. 선수들 이름도 낯설어지고. 언젠가는 독서 취미도 그렇게 되려나? 뭐, 나야 워낙 변덕이 죽 끓듯 하니까. 언젠가는 다시 야구에 재미를 붙일지도 모르지.
한국 민주화의 큰 별이 진 저녁, 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그를 생각했다. 한편으로 궁금했다. 한국 사회는 왜 거인 김대중에게 유독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한국 프로야구라는 현상 하나에도 참 많은 것이 얽혀 있어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거목의 고향_김대중, 이혜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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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한국 민주화의 큰 별이 진 저녁, 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그를 생각했다. 한편으로 궁금했다. 한국 사회는 왜 거인 김대중에게 유독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한국 프로야구라는 현상 하나에도 참 많은 것이 얽혀 있어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학교 다닐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연을 온 적이 있다. 총학에서는 김대중 방문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정문에서부터 강연장까지 걸어두고 보이콧을 시도했다. 아마 ‘대통령 김대중 = 신자유주의의 첨병’, 뭐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 그렇긴 하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쭐래쭐래 가서 그의 강연을 들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열심히 들었다. (그날 저녁 TV뉴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학교 방문 소식이 한 꼭지 나왔는데 그걸 본 막내고모가 득달같이 전화하셨다. 방금 청중 학생들 속에 니 얼굴이 0.1초 나왔다고. 그걸 알아본 고모가 대단하다. 이런 못난 물건도 조카딸이라고. 내가 뒤늦게 대학이라는 곳에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정말 생각 잘 했다’며 기뻐하던 고모. 지금은 우리 막내고모도 김대중 선생님도 이 세상에 안 계신다.)
2009년 봄, 그는 고향 신안 하의도를 찾았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 축사를 하면서 자신의 85년 인생을 숫자로 요약했다. "저는 다섯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겼는데 한번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이 목포를 점령했을 때이고 나머지 네 번은 군사독재자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6년 반을 감옥살이를 했고, 20여 년을 연금과 감시 속에서 살았고, 3년 반의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거목의 고향_김대중, 이혜영 지음
김대중은 자신을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1980년 내란음모죄로 법정에서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재판장의 입 모양을 뚫어져라 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었고, 입술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징역이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 광주·전남 편 - 나를 만든 현대사, 그날의 함성 속으로 거목의 고향_김대중, 이혜영 지음
인간 김대중의 동지는 아내 이희호(1922~2019)였다. 이희호는 일찍부터 주목받는 사회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였다. 흔히 그녀를 우리나라 제1세대 여성운동가라고도 하는데, 여성운동은 방대한 활동의 일부분이었다. 20세만 넘어도 '노처녀'라는 소리를 듣던 당시, 이희호는 사회운동에 매진하며 40세를 넘겼다. 그러다가 김대중과 결혼했다. 그녀의 고등학교 스승의 회고다. "남자는 두 아이가 딸린 홀아비에 빈털터리였다. 남자의 전셋집에는 몸이 성치 않은 홀어머니가 있었고, 또 심장판막증으로 앓아 누운 여동생이 있었다.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와 여성계 지도자로 뻗어나가고 있는 이희호가 이런 궁색한 처지의 남자와 결혼한다니, 누구나 균형이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며 안 된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 동지였다. 김대중의 투쟁은 늘 두 사람의 투쟁이었다. […] 김대중은 "아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협박과 유혹을 뿌리쳤다"라며 "아내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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