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밑줄, 메모

D-29
[ 건너편 주택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싸움을 하는 부부가 살았다. 남자와 여자의 욕설이 번갈아 들리고 나면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에는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은 경찰이 출동했다. ]
[ 비닐봉지에 대충 쓰레기를 욱여넣어 남의 집 앞에 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틀린 맞춤법으로 쓴 경고문이 있었다(“이곳에 또 쓰래기를 버리면 고발하겠읍니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사람, 눈이 마주쳤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 건드리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위층에 사는 선생님이시지요?” 며칠 뒤 건물 입구에서 마주친 1층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로 이사 오신 선생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호칭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가끔은 어이, 형씨 등으로 불렀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존칭하는 사람은 내가 만난 동네 주민 가운데 그가 유일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바깥이 소란스러웠던 어느 저녁, 창밖을 내다보니 두 남자가 집 앞에서 다투고 있었다. 주차든 쓰레기든 자주 싸움이 일어나는 동네라 웬만한 일에는 심드렁했지만 그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둘 중 한 사람이 ‘1층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는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라거나 “조금만 진정하시죠” 같은 말을 했다. 무엇보다 그 와중에도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남자가 누구 하나 후려칠 기세로 날뛰기 시작하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선생님 제발, 선생님 제발”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잠시 후 남자는 싸움을 말리러 나온 1층 선생님의 부인과 딸을 향해, 차마 옮겨 쓸 수 없는 성적 모욕의 뉘앙스가 강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 순간 1층 선생님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더 이상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욕설이라기보다는 울부짖음처럼 느껴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고 싶어졌다. ]
[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동네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대접하는 사람, 나의 상처가 아픈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나는 매사에 ‘내 돈을 써야 하는 일인가’만 생각하는 사람, 폭력적인 시선으로 남을 쳐다보는 사람, 남의 차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 욕설을 퍼붓고 악을 쓰는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 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
[ 등단한 뒤 열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원고료는 매당 만 원이 안 되었고 책은 1쇄도 다 팔리지 않았다. 창작지원금을 합쳐 3천만 원 남짓한 돈이 내가 5년 동안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의 전부였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가난해졌다. 애초에 직업이 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여겼는지도 몰랐다. 월세부터 생활비까지 거의 모든 돈을 동생에게 의존했다. 나의 글은 가족을 착취한 결과였다. ]
[ 언제부터인가 동생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의 집이나 상황을 농담거리로 삼지도 않았다. 밤늦게 퇴근하면 동생은 피곤한 얼굴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일 안 좋지, 뭐.” 한밤중에 주방이나 화장실에 가다가 방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나는 대부분 그 소리를 못 들은 체했지만 가끔은 머뭇거리다 문을 열고 물었다. “괜찮아?” 동생의 모습 대신 침대 위에 동굴처럼 솟아 있는 이불이 보였다. 이불 속에서 동생이 베개로 얼굴을 틀어막은 채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을 켜거나 이불을 젖히지 못했다. ]
[ 동생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내가 전등도 켜지 않은 방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밤중에 주방이나 화장실에 갈 때면 불 꺼진 내 방에선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빛이 새어 나왔고, 나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모니터 속의 백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게 자신이 기억하는 그 집에서의 언니 모습이라고. ]
[ “따로 살자.”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왜?” “이제 나도 서른이니까.” ]
[ 동생의 책상 위에는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 놓여 있었다. 나는 동생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왜 그런지 동생의 회사에 찾아간 날이 떠올랐다. 나는 로비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인테리어도,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근사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동생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슬립 드레스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동생이 그 장소에 잘 어울려 보이는 데 안도하면서도 그 아이가 매일 느낄 괴리감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사람들로 가득한 건물을 빠져나와, 만원 전철을 타고, 어둡고 가파른 골목을 걸어올 때의 기분을. 그동안 동생은 누구에게도 우리의 남루함을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가 문지 시인선의 열린 미래를 향해 새로운 모색과 도전을 시작한다. 그 첫 기획으로,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여성 시인의 시집과 지금 가장 개성적이고 주목받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여성 북디자이너가 만나 문지 시인선의 특별한 얼굴을 선보인다.
[ 우리는 이 집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을 지나오며 농담을 할 수도, 위로를 건넬 수도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동생과 헤어지면 MDF 가구와 중고 매트리스와 낡은 지갑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숨기고 감추려는 노력도 그만두고 싶었다. 시를 읽고 소설을 써도, 그림과 사진으로 싸구려 벽지를 감춰도, 나는 나의 현실을 잊은 적 없었다.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쓰이지 않은 소설,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
내리막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염치를 놓게 된다. 절박한 심정일 때 우아하게 행동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초라하다 느낄 때는 자존심을 지키려 위악을 부리거나 되려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한다. 요즘 곳곳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작가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들에 대해 쓴 이 유려한 에세이를, 나는 궁핍에 맞서 품위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인데, 일단 품위 자체가 저렴하지 않은 재화다. 그리고 궁핍한 상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품위를 중시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 조롱거리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공간과 서사를 만들며 품위를 지키려 한다. 나의 방, 집, 이야기는 어떻게 꾸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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