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밑줄, 메모

D-29
[ 등단한 뒤 열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원고료는 매당 만 원이 안 되었고 책은 1쇄도 다 팔리지 않았다. 창작지원금을 합쳐 3천만 원 남짓한 돈이 내가 5년 동안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의 전부였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가난해졌다. 애초에 직업이 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여겼는지도 몰랐다. 월세부터 생활비까지 거의 모든 돈을 동생에게 의존했다. 나의 글은 가족을 착취한 결과였다. ]
[ 언제부터인가 동생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의 집이나 상황을 농담거리로 삼지도 않았다. 밤늦게 퇴근하면 동생은 피곤한 얼굴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일 안 좋지, 뭐.” 한밤중에 주방이나 화장실에 가다가 방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나는 대부분 그 소리를 못 들은 체했지만 가끔은 머뭇거리다 문을 열고 물었다. “괜찮아?” 동생의 모습 대신 침대 위에 동굴처럼 솟아 있는 이불이 보였다. 이불 속에서 동생이 베개로 얼굴을 틀어막은 채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을 켜거나 이불을 젖히지 못했다. ]
[ 동생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내가 전등도 켜지 않은 방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밤중에 주방이나 화장실에 갈 때면 불 꺼진 내 방에선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빛이 새어 나왔고, 나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모니터 속의 백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게 자신이 기억하는 그 집에서의 언니 모습이라고. ]
[ “따로 살자.”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왜?” “이제 나도 서른이니까.” ]
[ 동생의 책상 위에는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 놓여 있었다. 나는 동생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왜 그런지 동생의 회사에 찾아간 날이 떠올랐다. 나는 로비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인테리어도,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근사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동생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슬립 드레스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동생이 그 장소에 잘 어울려 보이는 데 안도하면서도 그 아이가 매일 느낄 괴리감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사람들로 가득한 건물을 빠져나와, 만원 전철을 타고, 어둡고 가파른 골목을 걸어올 때의 기분을. 그동안 동생은 누구에게도 우리의 남루함을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가 문지 시인선의 열린 미래를 향해 새로운 모색과 도전을 시작한다. 그 첫 기획으로,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여성 시인의 시집과 지금 가장 개성적이고 주목받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여성 북디자이너가 만나 문지 시인선의 특별한 얼굴을 선보인다.
[ 우리는 이 집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을 지나오며 농담을 할 수도, 위로를 건넬 수도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동생과 헤어지면 MDF 가구와 중고 매트리스와 낡은 지갑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숨기고 감추려는 노력도 그만두고 싶었다. 시를 읽고 소설을 써도, 그림과 사진으로 싸구려 벽지를 감춰도, 나는 나의 현실을 잊은 적 없었다.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쓰이지 않은 소설,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
내리막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염치를 놓게 된다. 절박한 심정일 때 우아하게 행동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초라하다 느낄 때는 자존심을 지키려 위악을 부리거나 되려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한다. 요즘 곳곳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작가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들에 대해 쓴 이 유려한 에세이를, 나는 궁핍에 맞서 품위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인데, 일단 품위 자체가 저렴하지 않은 재화다. 그리고 궁핍한 상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품위를 중시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 조롱거리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공간과 서사를 만들며 품위를 지키려 한다. 나의 방, 집, 이야기는 어떻게 꾸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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