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몹시 궁금한 사람들: [고통받는 몸] - 2부 '창조하기' 완독 모임

D-29
안녕하세요? '몸이 몹시 궁금한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얼마 전 그믐에서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 읽기를 진행했던 유월의 숨입니다. 드디어 2부 '창조하기 Making'를 읽을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읽고싶어서 1부가 그렇게 읽기 쉽지 않았음에도 버텼던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으면서 그믐에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생각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 환영합니다.
『고통받는 몸』을 마무리하며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인간의 모든 예술과 재생산이 모두 ‘죽음이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도서로 이 책 『고통받는 몸』을 만나게 되었고, 저자가 어떻게 고통과 몸과 창조, 해체를 연결시켰을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책을 구매한 후에야 이 책의 두께를 알게 되었고 약간 당황했지만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초 단위의 쇼츠와 분 단위의 먹방이 주는 작은 느낌표(예쁘다! 귀여워! 맛있겠다!)로 가득 찬 이 시대에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 과장해서 ‘행위 예술가’가 되는 기분마저 안겨주더군요. 정확히 651페이지라는 시간 동안 일레인 스캐리라는 학자의 새로운 철학적 개념과 독창적인 논리 전개 속에서 묵직한 느낌표를 만날 수 있는 저서였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고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창조(making)’하고, 때로는 어떻게 이 창조 능력을 전유하고 뒤틀어 타인의 세계를 ‘해체(unmaking)’하는 방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실체화하려고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창조의 구조를 밝혀내는 사유의 과정이 정교하게 전개된 책입니다. 저자는 영문학자로서 많은 문학 작품을 예시로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성서’와 ‘자본론’이라고 하는 서구 문화의 중요한 두 개의 텍스트를 비교하며 독창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인류가 피와 살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실체성을 보이지 않는 관념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보여주는 동서양의 예시는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여기서 우리는 또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혹은 만들어지기 위해—어떤 몸과 어떤 사물을 동원하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보게 됩니다. 몇몇 예시들은 저자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금 왜곡돼서 사용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논리적 비약이 있어 보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다소 인간중심적인 서술도 보여 아쉽게 느껴지긴 하지만, 수십 년 전에 집필된 저서임을 감안하고 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미 잘 알고 다 수긍할 수 있어서 쉽게 읽히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는 그런 책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여러 각도에서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양서라고 봅니다.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위, 즉 고통을 더는 행위인 창조에 대한 저자의 믿음이나 일종의 기대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서 나 자신과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그리고 그 작업이 무엇이 되었든 그가 의도한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벽돌책 완독은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입니다. 700쪽 이상인 책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이후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 장강명,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2026, 글항아리 너무 오랜만에 ‘힘든’ 벽돌책을 읽으면서 ‘정말 더 이상은 힘들다(!)’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함께 공부해 주신 분들 덕분에 1회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난해한 책을 유려한 한국어로 번역해 준 역자분께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꼼꼼히 읽지 못한 건진 모르겠지만 오타나 오류를 한번도 보지 못해서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성 어린 만듦(making)’의 결과물을 접하는 것도 독자로서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제가 많은 시간을 준 만큼 지식도 얻었을 테지만, 함께 한 시간이 긴 만큼 저자의 담대하고도 독창적인 사유가 저라는 텍스트를 만나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고 느낍니다. 일종의 체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은 안 되더라도 1년에 한두 권 정도는 이렇게 긴 호흡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책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1년에 한두 번은 단기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살기, 100일 살기’를 하면 내 사유가 갈 수 있는 곳이 훨씬 넓어지겠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이 책은 다시 한번 꼼꼼히 볼 생각입니다. 더불어 저자의 다른 저서인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도 저의 ‘읽을 책’ 목록에 올렸습니다. 올해 안에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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