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별85님의 대화: 어제 창덕궁 옆 수북강녕 책방에서 <안톤 체호프의 세계를 이야기하다: 연극과 희곡의 이해>란 행사가 열었다. 원래는 그믐의 온라인과 수북강녕의 오프라인 모임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김새섬 대표님께서 수술 후 회복기간 중이어서 오프라인 모임만 열였다. @김새섬 대표님 빨리 회복하셔서 돌아오시길...
요즘 6월의 풍경들이 선물처럼 아름다운데 특히 수북강녕책방을 가는 길은 곳곳이 눈을 뗄수 없을만큼 예쁜 곳들이 많아 계속 발길을 붙잡는다. 그럼에도 직장 끝나고 가는 길이라 늦어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도착하니 이미 시작 중이었고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영상으로 관람 중 이었다. 이미 책방 안은 참석자들로 가득했다. 늦게 왔는데도 @수북강녕 님께서<잉여인간 이바노프> 희곡집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그리고 잠봉 샌드위치와 책갈피까지 알차게 챙겨주셨다.
영상이 끝나고 김세환 연출가님과 정연주 배우님의 연극세계에 대한 짧은 강연과 질의응답이 있었다.
난 올해 안똔체홉 극장에서 <세자매>와 <벚꽃동산>을 관람해서 정연주 배우님을 실물을 영접하니 좀 떨렸다. 신기한 점은 배우님들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아우라가 있으신 거 같았다. 그러다 김세환 연출자님께서 안톤 체홉의 연극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데 깜짝 놀랐다.
처음에 가만히 앉아 계실 때는 그냥 참석자인가 했는데 강연을 시작하니 매력적이지만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안톤 체홉의 작품세계를 선명하고 알기 쉽게 그의 작품들에 빠져 들게 하나하나 설명하셨다. 난 북토크나 강연등을 좋아해서 일이 끝나고 종종 참석하는 편인데 근래에 김세환 연출가님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묶어둘만큼 흡입력있게 말씀하는 분은 본적이 없는 거 같았다. ^^(공연 연출자여서인지 발음과 발성도 정확하고 힘이 있으셨다. )
안톤체홉의 단편선들 중 <적들>을 소개하셨는데 죽어가는 가족을 살리려는 여성과 5분전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겪은 의사 사이의 이야기이다. 체홉의 작품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인간이기에 너무나 나약하고 나약해서 서로에게 적들이 될 수 밖에 없는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선악이나 흑백처럼 우리의 삶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좋으련만 우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자신들만이 삶에 매몰되어 상대방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하고 상대에게 상처주며 자신이 이해받지 못함을 고통스러워한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먼지깨비 깨비님의 <갈매기>작품 속 아르카디나의 공감할 수 없는 어머니상에 대해 질문하셨고 연출가님은 우리는 이런 처절하고 절망적인 상황들을 현실이 아닌 문학에서 작품 속에서 치열하게 느끼고 고민해야 일상적이고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삶을 더 단단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borumis 님은 매소드 연기에 관한 질문을 하셨는데 매소드 연기는 자신의 감정을 진실되게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작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연기여야 해서 오히려 자신의 진심 가득 담아 연기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다(처음 듣는 이야기라 신선했다.) 그리고 그 비유를 취중진담으로 들었는데 자신의 가장 깊숙이 있는 진심을 술에 취해 상대에게 전달했을 때 전달자의 진심과 상대에 대한 전달력 중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것이다. 와!! 예시와 설명이 귀에 쏙쏙 박혔다.
그리고 나도 질문을 했는데 안톤 체홉의 4대 장막<세자매><벚꽃동산><바냐 아저씨><갈매기> 등을 읽는 내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물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계속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를 외치는데 마치 ‘노동요’같다고 왜인지를 질문했다. 연출가님은 안톤 체홉은 ‘절망의 작가’이자 ‘희망의 작가’로 언급되는데 이것이 내가 질문한 내용 때문이라고 하셨다. 체홉의 작품 속 인물들은 비극적인 상황들을 마주하지만 그 안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필요를 이어나가는 모습으로 그 비극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우리 모습도 동일한데 진정한 절망은 자신이 처한 비극적 상황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는 것,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한 비극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벚꽃동산>에 80세가 넘은 늙은 하인 피르스를 예로 들었는데, 피르스도 자신의 고용주 라네프스카야와 가예프의 코트나 신발을 계속 챙겨주며 자신의 필요를 계속 어필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피르스가 어디에 있듯 또는 벚꽃동산이 개발되면서 그 집을 떠나는 와중에도 늙은 피르스를 챙기지 않을만큼 그의 쓸모는 다했음을 극은 보여준다. 마지막에 모두가 떠난 집에서 늙은 하인 피르스는 자신의 쓸모가 다하자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달밤의 낭독’에서 ‘피르스’역을 장강명 작가님이 하셨는데 마지막 피르스의 쓸쓸한 대사를 장작가님이 힘없이 읊조리던 생각이 났다^^)
다음은 정연주 배우님의 <굴> 낭독이었다. 8세 아이와 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끼니를 잇지 못하던 중 길에서 굴을 먹게 되는데 이는 행복한 상황이 아니었다. 배고픔에 고통받던 이들은 빵 한조각은 얻지 못하지만 어린 아이가 굴이라도 먹겠다는 말에 사람들은 구경꾼처럼 몰려와서 비싼 굴값을 치르며 굴을 먹게 한다. 처음 접하는 음식에 아이는 공포에 질려 굴의 딱딱한 껍질까지 먹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를 구경거리로 재미있어 한다. 작품을 읽는 정연주 배우님의 목소리는 공간을 가득 채웠고 몇몇 참가자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작품내용이 지금의 현실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탁은 듣지 않고 자신들만의 재미를 위해서는 돈을 서슴없이 지불하니까 말이다.
정연주 배우님께서도 <굴> 낭독을 위해 집에서 읽고 연습하는데 펑펑 우셨다고 하셨다. 한동안 굴 먹을 때 배고픔에 울던 8살 아이와 그 아이를 구경거리 삼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식인데 아쉽다^^;;
너무 재미있어 시간은 금세 흘러가서 원래 행사가 끝나는 9시가 되었다. 그런데 김세환 연출가님께서 낭독화술 프로그램도 알차게 시간을 더 내어 지도해주셨다. 2가지 포인트는 조사와 같은 소리글자를 문장을 읽을 때 최대한 소리가 약하게 읽고 낭독을 할 때는 최대한 끊어 읽지 말고 의미단위로 연결해서 읽는 것이었다. ‘읽기’ ‘말하기’‘낭독’의 차이를 설명해 주셨는데 듣고 보니 <달밤의 낭독>에서 우리가 한 것은 ‘읽기’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끼리 너무 즐겁고 감동했으니 이미 충분하다!!
나는 알차게 정규 모임 후 2차로 이어지는 정연주 배우님과 김세환 연출가님과의 시간을 보내었다. @수북강녕 님과 @흰구름님이 과일과 베이커리와 약간의 알콜을 준비해 주셨다.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잘 챙겨주시구요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내가 질문했던 좋은 공연을 찾는 방법이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공연을 중 좋은 공연을 찾는 방법은 오랫동안 공연을 하는 곳을 찾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수많은 책들 중 고전이 인정받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문학과 공연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뛰어난 작품들로 인정받나 보다^^
어제 수북강녕에서 있었던 안톤체홉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아직도 꿈만 같다.
매번 창의적인 기획력과 실행력으로 좋은 시간을 준비해주시는 @수북강녕님과 어제 놀랍도록 멋있으셨던 정연주 배우님과 김세환 연출가님과 함께 해서 감사했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공연을 꾸준히 올리는 곳, 안똔체홉극장이 바로 그런 곳이죠!
어제 함께 해주셨던 금석 배우님의 '순우 삼촌' 먼저 보고, 이어서 극단어느날의 '호밀밭의 파수꾼'도 함께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