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삶을 은유 속에 가둘 수 없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이동과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 사회를 지탱해온 어떤 존재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추적하기로 한다. 한 사람의 노동이동에는 한 시대와 장소의 변화가 담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숨어 있다. 노동자의 입과 노동자의 발을 따라갔다.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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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멋 부리기를 ‘보호색’으로만 본다면 그 또한 차별적 시선이다. 그들은 경제활동으로 눈치보지 않고, 가족 부양이 아닌 오직 자신을 꾸미는 데 돈을 쓰며 최신 유행에 합류하는 기쁨도 누렸다. 어머니는 “양양 시내에 양장점은 아마 그 사람들이 다 팔아줬을 거야. 부츠를 맞추고 그랬다니까”라면서 광산 다니던 여자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음을 강조했고, 아버지는 “그때 광산 다니는 여자들은 대단했지. 얼마나 멋을 부렸다고”라면서 “그때 광업소는 최고였거든”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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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노동계층 여성의 멋내기는 왜 유난스럽게 언급될까. 중산층 기혼 여성의 멋 부리기와 달리 노동계층 여성에게는 이중적 시선이 존재한다. 그들의 멋 부리기는 돈을 쓸 수 있는 경제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에 부러움을 사는 동시에 그것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점잖지 않은 젊은 여자’가 된다.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가 공장에 다니면서 유행을 따라하고 “활기차고 당찬 여공”으로 살아갈 때 “마을에서는 어머니를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봤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이런 차별적 문화 때문에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대부분은 ‘평범한 주부’가 되려고 했다.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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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개인적인 의지로 ‘몸을 팔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만 순수한 구조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편 혜정/미영과 같은 여성은 아무리 똑똑하고 투쟁 의지가 넘쳐도 남성의 사적 영역을 돌보는 여성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 인물들은 이 모든 역할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여성이 ‘정조를 보물과 같이’ 아끼며 그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방식을 그리는 데서는 변화한 세월을 느끼기 어렵다. 여전히 여성의 노동과 투쟁보다 자궁 단속에 더 관심이 많다.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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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그때는 군인이 최고”라는 말은 “그때는 광업소가 최고”라는 말로 바뀌었다. 먹고살 데가 없는데 지역에 광산이 있어 먹고살았다. 전직 광산노동자와 광산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한때는 밥이 되어준 탄광 막장에서”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힘든 일을 하러 온다. 인생이 추락한 지점으로 은유되는 막장이지만 실제로 노동자들에게는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
향팔님의 문장 수집: "그래서 나는 고모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 총명한 고모와 헛소리를 하는 고모 중 어떤 모습이 고모의 진짜 모습일까. 모두 고모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저에게도 ‘젊을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이상해졌다’는 가족이 있어서(원인이 정말로 그것 때문인지 확실치 않은 것도 똑같고요.) 이 책에 나오는 가족사가 낯설지 않네요.
어릴 때 저도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신 적이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병원에 실려갔어도 저는 상태가 그나마 괜찮았는지 집에서 그냥 두통에 어지럼증, 구토 몇번 하고 치료약으로 동치미 국물 마시면서 나아진 기억이 남아 있네요.
향팔
aida님의 문장 수집: "서울이 육군에게 수복된 후 다시 북으로 쫓겨가던 인민군은 수많은 남한 사람을 끌고 갔고 할아버지도 그 때 끌려갔다. 많은 사람이 미아리고개에서 인민군에게 처형되거나 북으로 납북되었다 (…)
갑작스럽게 할아버지와 생이별한 할머니는 미아리고개에서 수많은 시신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1956년 발표된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담은 노래다."
6장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네요.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어릴 때 <삼태기 메들리>를 듣다가 알게 된 곡인데 가사가 너무 슬퍼서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향팔
“ 김원일과 이문열 외에도 1941년생 이문구, 1947년생 김성동 등이 연좌제로 좌절된 현실의 통로를 문학에서 찾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학이 탈출구였다고 말한다. 문학이 탈출구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 순태 아빠처럼 연좌제 피해자라서 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해 광산에 왔듯이,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순태 아빠는 '서울 법대를 나온 천재'지만 내 아버지는 전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연좌제 피해자의 박탈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식이 '원래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 이렇게 굴러떨어졌다'로 서술되는 점은 광산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
“ 연좌제는 비시민화시키기이다. 국가와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국민을 꾸준히 발명해낸다.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위치는 가장 안정적인 시민이다. 한편 노동계층과 여성은 원래 비시민이기에 이들의 시민되기 탈락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 농부가 농부로 살아가고, 노동계층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탈락된 자들은 원래 자리가 없었기에 그들의 고통과 상실은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부 지식인 남성의 서사가 역사를 과잉 점유한다. 지식인 남성은 그 위치 때문에 희생자 서사를 가지기도 쉽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중산층이 되지 못한 지식인 남성' 서사로 급격히 좁아진다. 이들은 문학으로 울분을 표출하며 사회에서 지적으로 망명한 지식인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
향팔님의 대화: 6장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네요.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어릴 때 <삼태기 메들리>를 듣다가 알게 된 곡인데 가사가 너무 슬퍼서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저는 이곡이 그냥 <미아리고개>인줄만 알았어요.. 가사와 곡조가 너무 애달프게 슬퍼서 '단장',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듯 하죠.. 이런 배경인줄은 사실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래서 <단장의 미아리고개>인가 싶어요 ㅜㅜ
향팔
aida님의 대화: 저는 이곡이 그냥 <미아리고개>인줄만 알았어요.. 가사와 곡조가 너무 애달프게 슬퍼서 '단장',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듯 하죠.. 이런 배경인줄은 사실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래서 <단장의 미아리고개>인가 싶어요 ㅜㅜ
네, 곡에 아무 사연 없는 제가 들어도 코끝이 찡한데 정말 그 시절 그 이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들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지… 그래서 그 노래가 그렇게 유명해지고 인기가 많았나봐요.
흥남 철수의 이별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도 슬프더라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다들 재미있게 읽고 계시죠? 6월 4~5일 주말에는 4장 '채광과 궤도부'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까지 읽습니다.
한반도에서 20세기 중후반을 살아내는 일은 평범한 시민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 같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영암과 목포가 생활권이었는데, 저자의 가족사와는 상반된 상황이 있었어요. 그 얘기를 잠깐 할아버지 서사 중심으로 잠깐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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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다들 재미있게 읽고 계시죠? 6월 4~5일 주말에는 4장 '채광과 궤도부'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까지 읽습니다.
한반도에서 20세기 중후반을 살아내는 일은 평범한 시민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 같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영암과 목포가 생활권이었는데, 저자의 가족사와는 상반된 상황이 있었어요. 그 얘기를 잠깐 할아버지 서사 중심으로 잠깐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기획회의>에 짧게 썼던 글의 한 대목입니다.
*
1920년에 태어난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고 나니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삶의 전반을 육성으로 기록해 두는 일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몇 년간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결국 3년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탓이 컸다. 그 전이라도 좀 더 부지런히 찾아뵈었더라면 분명 기회가 있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할아버지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1920년)에 태어나, 패배주의가 짙게 깔렸던 일제 강점기를 20대 중반까지 통과했다. 가세가 기울어 집안 생계를 일찌감치 책임져야 했기에, 10대 후반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함경남도 흥남까지 올라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 말 전쟁통에 모은 돈은 해방 후 삶의 종잣돈이 되었다.
해방 후에는 발 빠르게 고향의 땅과 산을 사고, 행정 공백기에 지역 사회의 지도자(Leader)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졌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반동분자’로 몰려 목포 교도소에서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나중에는 산으로 끌려가 빨치산의 짐꾼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평생 말을 아끼셨던 삶의 비극적인 한 대목이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1988년 출간되어 50만 부 이상 팔린 이태의 논픽션 『남부군』을 할아버지께서 탐독하시다가, 옆에 있던 나에게 슬쩍 말씀하셨다. “과장이 많다.” 나중에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접하고서야, 그가 그토록 단호하게 평할 자격이 있는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한국 전쟁 이후 험난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겪어 온 우여곡절. 대하소설에 필적할 서사들이 할아버지의 별세와 함께, 그리고 게으른 손자의 무심함 속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뿐이겠는가. 일제 강점기, 전쟁, 독재와 산업화의 시기를 살아낸 수많은 ‘살아있는 책’들이 이 순간에도 한 명씩 역사 속으로 소멸하고 있다.
YG
YG님의 대화: <기획회의>에 짧게 썼던 글의 한 대목입니다.
*
1920년에 태어난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고 나니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삶의 전반을 육성으로 기록해 두는 일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몇 년간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결국 3년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탓이 컸다. 그 전이라도 좀 더 부지런히 찾아뵈었더라면 분명 기회가 있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할아버지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1920년)에 태어나, 패배주의가 짙게 깔렸던 일제 강점기를 20대 중반까지 통과했다. 가세가 기울어 집안 생계를 일찌감치 책임져야 했기에, 10대 후반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함경남도 흥남까지 올라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 말 전쟁통에 모은 돈은 해방 후 삶의 종잣돈이 되었다.
해방 후에는 발 빠르게 고향의 땅과 산을 사고, 행정 공백기에 지역 사회의 지도자(Leader)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졌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반동분자’로 몰려 목포 교도소에서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나중에는 산으로 끌려가 빨치산의 짐꾼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평생 말을 아끼셨던 삶의 비극적인 한 대목이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1988년 출간되어 50만 부 이상 팔린 이태의 논픽션 『남부군』을 할아버지께서 탐독하시다가, 옆에 있던 나에게 슬쩍 말씀하셨다. “과장이 많다.” 나중에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접하고서야, 그가 그토록 단호하게 평할 자격이 있는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한국 전쟁 이후 험난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겪어 온 우여곡절. 대하소설에 필적할 서사들이 할아버지의 별세와 함께, 그리고 게으른 손자의 무심함 속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뿐이겠는가. 일제 강점기, 전쟁, 독재와 산업화의 시기를 살아낸 수많은 ‘살아있는 책’들이 이 순간에도 한 명씩 역사 속으로 소멸하고 있다.
뒷얘기를 추가하자면, 목포 교도소에서 총살 직전에 "강 아무개 동지 아닌가?" 하면서 누군가가 반갑게 일으켜 세우더래요. 알고 봤더니, 흥남비료공장 노동조합위원장.
흥남비료공장에서는 노동조합 친화적인 열심히 일하는 10대 청년으로 각인되었었나 봅니다. 그 노동조합위원장이 당 간부로 목포까지 내려왔다가 할아버지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이죠! (정말 영화 같은 장면이죠? 이런 일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희극적, 비극적으로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stella15
향팔님의 대화: 저에게도 ‘젊을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이상해졌다’는 가족이 있어서(원인이 정말로 그것 때문인지 확실치 않은 것도 똑같고요.) 이 책에 나오는 가족사가 낯설지 않네요.
어릴 때 저도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신 적이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병원에 실려갔어도 저는 상태가 그나마 괜찮았는지 집에서 그냥 두통에 어지럼증, 구토 몇번 하고 치료약으로 동치미 국물 마시면서 나아진 기억이 남아 있네요.
향팔님도 그런 일을 겪었군요. 예전엔 주연료가 연탄이고 보면 그런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죠. 신문에 연탄가스 사망 사고 보도도 많았고. 이 일산화탄소란게 냄새가 없어서. 저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 일하던 언니가 겨울 낮에 춥다고 부엌문을 꼭 닫고 일하다 갑자기 조용해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1, 2분전만 하더라도 쫑알쫑알 떠들었는데 말입니다. 보니까 바닥에 쓰러져 있더군요. 엄마가 재빨리 안방에 눕히고 김치국물 퍼먹이고 낮이라 다행이지 정말 아찔했죠. 근데 정말 김치국물이나 동치미가 일산화 중독에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물론 병원에선 큰일 날 것처럼 말하는데 민간에선 흔히 쓰는 방법이었잖아요.
암튼 큰일 날뻔했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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