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들 재미있게 읽고 계시죠? 6월 4~5일 주말에는 4장 '채광과 궤도부'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까지 읽습니다. 한반도에서 20세기 중후반을 살아내는 일은 평범한 시민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 같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영암과 목포가 생활권이었는데, 저자의 가족사와는 상반된 상황이 있었어요. 그 얘기를 잠깐 할아버지 서사 중심으로 잠깐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기획회의>에 짧게 썼던 글의 한 대목입니다. * 1920년에 태어난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고 나니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삶의 전반을 육성으로 기록해 두는 일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몇 년간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결국 3년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탓이 컸다. 그 전이라도 좀 더 부지런히 찾아뵈었더라면 분명 기회가 있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할아버지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1920년)에 태어나, 패배주의가 짙게 깔렸던 일제 강점기를 20대 중반까지 통과했다. 가세가 기울어 집안 생계를 일찌감치 책임져야 했기에, 10대 후반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함경남도 흥남까지 올라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 말 전쟁통에 모은 돈은 해방 후 삶의 종잣돈이 되었다. 해방 후에는 발 빠르게 고향의 땅과 산을 사고, 행정 공백기에 지역 사회의 지도자(Leader)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졌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반동분자’로 몰려 목포 교도소에서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나중에는 산으로 끌려가 빨치산의 짐꾼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평생 말을 아끼셨던 삶의 비극적인 한 대목이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1988년 출간되어 50만 부 이상 팔린 이태의 논픽션 『남부군』을 할아버지께서 탐독하시다가, 옆에 있던 나에게 슬쩍 말씀하셨다. “과장이 많다.” 나중에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접하고서야, 그가 그토록 단호하게 평할 자격이 있는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한국 전쟁 이후 험난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겪어 온 우여곡절. 대하소설에 필적할 서사들이 할아버지의 별세와 함께, 그리고 게으른 손자의 무심함 속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뿐이겠는가. 일제 강점기, 전쟁, 독재와 산업화의 시기를 살아낸 수많은 ‘살아있는 책’들이 이 순간에도 한 명씩 역사 속으로 소멸하고 있다.
뒷얘기를 추가하자면, 목포 교도소에서 총살 직전에 "강 아무개 동지 아닌가?" 하면서 누군가가 반갑게 일으켜 세우더래요. 알고 봤더니, 흥남비료공장 노동조합위원장. 흥남비료공장에서는 노동조합 친화적인 열심히 일하는 10대 청년으로 각인되었었나 봅니다. 그 노동조합위원장이 당 간부로 목포까지 내려왔다가 할아버지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이죠! (정말 영화 같은 장면이죠? 이런 일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희극적, 비극적으로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헉, 그 순간 그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으면… 생각하기도 무섭습니다 ㅠㅠ 할아버님의 삶이 정말 역사 그 자체네요.
와 영화같은 이야기네요. 저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베트남 참전과 관련된 영화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나는데. 언젠가 정리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가깝지 않아서 그닥 많은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데 80중반의 시어머니 (대둔산 밑자락)의 어린시절과 전후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개인의 한맺힌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95프로. 지겨울 때도 있지만 물어보고 기억해 놓는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이지 한 편의 영화같은 서사입니다..!
세상에.. 너무 놀랍습니다. 정말 영화가 따로 없네요. 할아버님 무사하셔서 다행이고요. 과장이 많다는 할아버지 말씀 의미심장하네요. 채록 못한 것 저까지 안타깝고요. 흥남비료공장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다닌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고, 문재인 대통령 아버님이 흥남시청 비료계장을 지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신파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국제시장은 여러 번 봤습니다. 그 시절 다들 어떻게 견디고 살아냈을까요..
헉;; 총살 직전에.. 이거 정말 무슨 영화같은 장면이네요.. 근데 소설이 과장이 심하다니.. 이거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데요..?
우와!! 이건 소설인가요??? 할아버지의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YG 님 말처럼 우리의 무심함 속에서 일제강점기, 전쟁, 독재와 산업화 시기를 살아낸 수많은 '살아있는 책'들이 한명씩 역사속으로 소멸하고 있는 중인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머니는 굽이 떨어지도록 강릉터미널과 교도소 사이의 비포장 길을 오갔고 아버지는 교도관 시험에 합격했다. 신문의 합격자 명단에서 분명히 확인했다. 아버지는 드디어 광산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교도관이 되어 광산을 벗어나면 그다음에는 법원 서기관에지원할 계획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는 나도 좀 희망이 있었지”라고 했다. 아버지가 교도관이 되면 어머니와 결혼도 하고 드디어 ‘광산 탈출’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1975년이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어머니는 아버지를 알기 전에는 몰랐던 연좌제를 알게 되었다. 잠시 가졌던 희망은 두려움과 억울함을 넘어 분노로 바뀌었다. “그때는 연좌제가 무서웠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네 아버지가 이제 연좌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때부터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고모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고모는 숨으려 했으나 흘러넘치는 분노의 말을 주체하지 못해 끝내 붕괴되고 미쳐버렸다. 어머니는 지금도 “옛날 이야기 하기 싫다”라며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이 장을 읽으면서는 연좌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나 고모님 주변분들보다 총명함에도 항상 감시당하고 배척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요 부당한 조건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모습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요즘은 연좌제란 개념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좌제로 대대손손 옥죄는 제도는 없지만 지금은 조부모때부터의 부와 명예를 쌓으신 분들과 정신없이 계주 달리기를 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느라 다들 좀 정신이 없긴 하네요^^;;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 시절 최루탄 가스를 마셔보지 않고 시대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대학가 시위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80년대 초중반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금요일 밤마다 교회를 갔는데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오도 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히게 됐죠. 대학생이 대학가에서만 시위하는 게 아니더라구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반 동네에서도 하더라구요. 길이 뚫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4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둘이 전혀 모르는 사인데도 너무 허심탄회하게 버스 바깥 상황을 보면서 대화를 주고 받더군요. 그때는 무조건 대학생들이 시위를 한다면 빨갱이 좌경화되서 저런다는 인식이 강했죠. 다행히 얼마 안 있다 길이 뚫리고 그들은 각자 갈 길을 가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그게 저에겐 좀 생경했습니다. 그날 버스 바깥에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전혀 모르고 갔을텐데 이렇게 금방 친하게 얘기를 하다니! 근데 나이 드니까 모르는 사람하고도 서로 이물없이 대화하긴 하더라구요. 어차피 한 번 얘기하고 말건데 그런 마음이랄까? ㅋ
어머낫! YG님한테 단 댓글이 왜 거북별님께 또 달렸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댓글 지울려고 해도 안 되고. ㅠ 변명을 하자면 YG님께 단 댓글을 수정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초과되서 그냥 다시 올렸더니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양해바랍니다.
ㅎㅎ 괜찮습니다 저도 그믐에서 댓글 달고 급하게 일이 있어 하다보면 종종 수정기회를 놓칠때가 많답니다^^
책표지의 질감 뿐 아니라 종이의 질감도 다르네요 부드러고 책장 넘기는 느낌이 실키 하달가요 고급 종이 같아요~
전자책으로 읽고 있어서 궁금해집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어요
조정래 “한강”에 연좌제로 삶의 길이 막히는 주인공 형제가 나오는데 오늘 분량 읽으니 이 소설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정말 지독하게도 인생길 막아놓던데, 실제 당사자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도 안되네요
그런데 “한강”에 나오는 연좌제로 삶이 막힌 주인공들도 이라영 작가의 지적대로 ‘중산층이 되지 못한 지식인 남성’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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