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사북항쟁을 배경으로 한 이옥수의 소설 <내 사랑, 사북>에는 연좌제 때문에 직업을 찾기 어려워 광산에 들어온 인물이 짧게 언급된다 (略)......
다만 순태 아빠는 서울 법대를 나온 천재지만 내 아버지는 전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연좌제 피해자의 박탈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식이 '원래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 이렇게 굴러떨어졌다'로 서술되는 점은 광산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연좌제는 비시민화시키기이다. 국가와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국민을 꾸준히 발명해낸다.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위치는 가장 안정적인 시민이다. 한편 노동계층과 여성은 원래 비시민이기에 이들의 시민되기 탈락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 농부가 농부로 살아가고, 노동계층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탈락된 자들은 원래 자리가 없었기에 그들의 고통과 상실은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부 지식인 남성의 서사가 역사를 과잉 점유한다. 지식인 남성은 그 위치 때문에 희생자 서사를 가지기도 쉽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중산층이 되지 못한 지식인 남성' 서사로 급격히 좁아진다. 이들은 문학으로 울분을 표출하며 사회에서 지적으로 망명한 지식인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위치는 저항하는 위치보다 안전하다. 좌익 2세 작가들의 문학적 전성기는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그러나 전두환 독재정권이 자리 잡은 1980년대였다. 공식적으로는 연좌제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독재정권하에 있을 때,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억압받는 지식인의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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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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