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

D-29
연해님의 대화: 여행 이야기하시니까 저의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부모님이 두 분이서만 종종 여행을 다녀오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오빠 밥을 챙기라고 하셨던... (허허) 제가 더 어린데도, 제 밥걱정은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심지어 오빠가 늦게 일어나서 학교 지각이라도 하면 안 되니까 제가 잘 챙기라고(아니, 제가 동생이라고요). 근데 저는 또 군말없이 이행(?)했더랬죠. 오빠는 사지가 멀쩡(?)하고, 심지어 학업성적도 지나칠 정도로 우수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쩝
연해님은 학생 때라도 2000년대 아닌가요? 럴수럴수 이럴 수가...2000년대에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글을 읽으니 저도 어린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시절 오빠를 둔 여동생의 애환 ㅎㅎ 저희 집엔 방이 두 개였는데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기타 방문인들과 한 방을 쓰고 나머지 방 한 개는 당연히 오빠에게 배정되는 게 불만이었어요. (그러나 한번도 대놓고 따지진 못했음 ㅎㅎ) ‘오빠는 집구석에도 잘 안 있고 공부도 내가 오빠보다 더 잘하능데’ 속으로만 꿍얼거렸죠. 그래도 오빠가 없을 때는 오빠방에 쪼르르 들어가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오빠의 비밀 연애 편지도 훔쳐보고 그랬답니다. 할머니는 가끔 맛난 반찬이 생기면 귀한 손자에게만 먹이려 하시고 제가 젓가락을 갖다대면 등짝 스매싱을… 심부름도 전부 제 차지. 오빠가 대학에 갈 때는 고모들이 돈을 모아 등록금을 내 주셨는데, 중딩이었던 전 그즈음 일찌감치 상황 파악이 되더라고요. 아! 난 대학에 갈 수 없겠구나, 깨달았어요. 지금도 오빠는 술 취하면 가끔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요. ‘나 때문에 니가…’ 어쩌구 하면서요(절대 맨정신엔 안함). 하지만 그때의 오빠가 저 이상의 고충을 겪었다는 걸 알기에, 전우애로 버텨왔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그저 웃지요.
벽돌 책 모임하면서 향팔님과 우리네(?) 오빠들 이야기를 종종 나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 일화를 읽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닮은 듯 다른 여동생들의 처지가 공감돼서요. 저는 외할머니가 손자들과 손녀들을 지독하게 차별하셔서 울분에 찼던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그걸 두둔해서 더 화가 났더랬죠. 셋 다 여자인데, 서로가 서로를 더 괴롭히는 느낌이 마치, '나도 그렇게 컸어,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같았죠(이 대물림은 제가 끝내버리려고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제 방이 있어서 오히려 외로웠어요. 혼자 잠들기 무서운데, 부모님은 다 컸다며(8살인디요) 엄살 부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빠 방에 자주 놀러갔어요. 어린 향팔님처럼 오빠 방에서 책도 읽고,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속 안나가 언니 엘사의 방 문고리 두드리는 장면처럼 말이죠. 나랑 눈사람 만들러가지 않... (아, 이거 아니구나) 아무튼 오빠를 요리조리 쫓아다니는 여동생이었습니다. 맛난 반찬과 등짝 스매싱에 또 쓴 미소가... 저는 명절에 가면 부엌 한편에서 엄마랑 여자 어른들과 찌그러져 밥을 먹었다지요(헤헤). 머리가 자라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래서 저도 밖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올라갔다며 당당하게 외치고 다녀도, 명절만 되면 제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이곳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이미 고착화 된 가족 서사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요. 술에 취하면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향팔님 오라버님의 마음도 왠지 찡하게 닿습니다. 제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흠) 어른들의 차별은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가 좋은데(아 물론 좋은 거랑 귀찮은 건 좀 다른 맥락으로다가) 유일한 남매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조카는 역시 사랑입니다. 하...
연해님의 대화: 벽돌 책 모임하면서 향팔님과 우리네(?) 오빠들 이야기를 종종 나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 일화를 읽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닮은 듯 다른 여동생들의 처지가 공감돼서요. 저는 외할머니가 손자들과 손녀들을 지독하게 차별하셔서 울분에 찼던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그걸 두둔해서 더 화가 났더랬죠. 셋 다 여자인데, 서로가 서로를 더 괴롭히는 느낌이 마치, '나도 그렇게 컸어,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같았죠(이 대물림은 제가 끝내버리려고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제 방이 있어서 오히려 외로웠어요. 혼자 잠들기 무서운데, 부모님은 다 컸다며(8살인디요) 엄살 부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빠 방에 자주 놀러갔어요. 어린 향팔님처럼 오빠 방에서 책도 읽고,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속 안나가 언니 엘사의 방 문고리 두드리는 장면처럼 말이죠. 나랑 눈사람 만들러가지 않... (아, 이거 아니구나) 아무튼 오빠를 요리조리 쫓아다니는 여동생이었습니다. 맛난 반찬과 등짝 스매싱에 또 쓴 미소가... 저는 명절에 가면 부엌 한편에서 엄마랑 여자 어른들과 찌그러져 밥을 먹었다지요(헤헤). 머리가 자라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래서 저도 밖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올라갔다며 당당하게 외치고 다녀도, 명절만 되면 제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이곳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이미 고착화 된 가족 서사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요. 술에 취하면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향팔님 오라버님의 마음도 왠지 찡하게 닿습니다. 제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흠) 어른들의 차별은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가 좋은데(아 물론 좋은 거랑 귀찮은 건 좀 다른 맥락으로다가) 유일한 남매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조카는 역시 사랑입니다. 하...
연해님의 대화: 벽돌 책 모임하면서 향팔님과 우리네(?) 오빠들 이야기를 종종 나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 일화를 읽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닮은 듯 다른 여동생들의 처지가 공감돼서요. 저는 외할머니가 손자들과 손녀들을 지독하게 차별하셔서 울분에 찼던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그걸 두둔해서 더 화가 났더랬죠. 셋 다 여자인데, 서로가 서로를 더 괴롭히는 느낌이 마치, '나도 그렇게 컸어,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같았죠(이 대물림은 제가 끝내버리려고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제 방이 있어서 오히려 외로웠어요. 혼자 잠들기 무서운데, 부모님은 다 컸다며(8살인디요) 엄살 부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빠 방에 자주 놀러갔어요. 어린 향팔님처럼 오빠 방에서 책도 읽고,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속 안나가 언니 엘사의 방 문고리 두드리는 장면처럼 말이죠. 나랑 눈사람 만들러가지 않... (아, 이거 아니구나) 아무튼 오빠를 요리조리 쫓아다니는 여동생이었습니다. 맛난 반찬과 등짝 스매싱에 또 쓴 미소가... 저는 명절에 가면 부엌 한편에서 엄마랑 여자 어른들과 찌그러져 밥을 먹었다지요(헤헤). 머리가 자라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래서 저도 밖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올라갔다며 당당하게 외치고 다녀도, 명절만 되면 제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이곳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이미 고착화 된 가족 서사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요. 술에 취하면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향팔님 오라버님의 마음도 왠지 찡하게 닿습니다. 제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흠) 어른들의 차별은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가 좋은데(아 물론 좋은 거랑 귀찮은 건 좀 다른 맥락으로다가) 유일한 남매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조카는 역시 사랑입니다. 하...
오, 음악 감사해요. 어린 연해님이 오빠 방문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해봤는데 이미지가 왠지 찰떡으로 어울립니다(귀여워요)ㅎㅎ 제 오빠가 조카들에게 매일 불러주던 곡이에요. 저는 오빠가 남자니까 혹시 울 아버지를 닮지 않을까(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심 우려했는데 웬걸? 오히려 아버지를 닮은 건 오빠가 아니라 저인 것 같아요. 하하하! 제 고모들의 회상에 따르면, 할머니도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변하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외아들인 아버지만 교육을 시키고 고모들은 국민학교(초등학교)에도 안 보냈던 할머니가, 손녀 손목을 잡고 가서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시다니,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라고요. 저도 할머니와 같이 오래 살다보니 좋은 기억도 많고, 무엇보다 저희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늘 감사하고 죄송하죠.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게 가슴 아프고요. 최근들어 오빠가 전에는 안 하던 말들을 해요. 어렸을 때 고모부가 오빠에게 사주신 나이키 에어 조던 운동화를 할머니가 깨끗이 빨아서 문밖 골목에 널어 두었는데, 어떤 놈이 홀랑 집어가 버렸다고. 그때 오빠가 할머니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그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오빠는 본인이 겪은 일들을 자식들은 절대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흙수저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라, 연민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쇳돌> 서문에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생명"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그 문장이 가슴에 새겨지며 오빠 생각이 나더라고요. 밖에서는 여성 인권을 이야기해도 집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말씀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냥 혼자 입을 닫고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먼 곳의 일을 판단하고 이야기하긴 쉬워도, 막상 내 울타리 안의 사정을 바꾸기가 가장 어려운 건가 봅니다.
stella15님의 대화: 와, 정말 서러웠겠어요. 그래도 맨 정신이든 아니든 오빠가 착하시네요. 몇번 얘기했지만 우리 집 오빠는 일체 그런 것도 없습니다. 집에서는 벽창호였고, 바깥에 나가선 세상 순해 빠져가지고 이용이나 당하고. 집안 재산 말아먹고. 그냥 제 복이 거기까지려니 합니다. ㅠ
헉, 정말 집집마다 품어둔 사연이 한보따리씩인 것 같아요. 각자 밤을 새워도 모자랄 이야기들이 있겠지요. 짧은 생각으로는 늘 우리집만 제일 힘든 것 같아도...
꽃의요정님의 대화: 와~ 30년 후에는 지금이 야만의 시대라고 하겠지만, 30년 전쯤에 저런 소리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거 같긴 해요. 나름 누구도 따라하지 않겠다! 나의 삶을 살겠다!는 X세대가 등장한 1990년대였는데 말이쥬! 근데 뉴스 보면 다치고 죽는 게 모두 공장이나 건설 현장이라 그거 보면 내 아이에게 육체노동을 하라고 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사무직하다 갑자기 죽는 경우는 뉴스에서 본 적이 없잖아요 ㅜ.ㅜ 뭐 과로사가 있긴 하지만... 모두가 다치지 않게 마련된 안전장치를 잘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맞아요. 산업재해에 더욱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선진국이라면서 산재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너무 소홀해요. 비정규직, 하청 문제와도 깊이 연결돼 있고...
향팔님의 대화: 오, 음악 감사해요. 어린 연해님이 오빠 방문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해봤는데 이미지가 왠지 찰떡으로 어울립니다(귀여워요)ㅎㅎ 제 오빠가 조카들에게 매일 불러주던 곡이에요. 저는 오빠가 남자니까 혹시 울 아버지를 닮지 않을까(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심 우려했는데 웬걸? 오히려 아버지를 닮은 건 오빠가 아니라 저인 것 같아요. 하하하! 제 고모들의 회상에 따르면, 할머니도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변하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외아들인 아버지만 교육을 시키고 고모들은 국민학교(초등학교)에도 안 보냈던 할머니가, 손녀 손목을 잡고 가서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시다니,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라고요. 저도 할머니와 같이 오래 살다보니 좋은 기억도 많고, 무엇보다 저희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늘 감사하고 죄송하죠.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게 가슴 아프고요. 최근들어 오빠가 전에는 안 하던 말들을 해요. 어렸을 때 고모부가 오빠에게 사주신 나이키 에어 조던 운동화를 할머니가 깨끗이 빨아서 문밖 골목에 널어 두었는데, 어떤 놈이 홀랑 집어가 버렸다고. 그때 오빠가 할머니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그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오빠는 본인이 겪은 일들을 자식들은 절대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흙수저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라, 연민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쇳돌> 서문에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생명"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그 문장이 가슴에 새겨지며 오빠 생각이 나더라고요. 밖에서는 여성 인권을 이야기해도 집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말씀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냥 혼자 입을 닫고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먼 곳의 일을 판단하고 이야기하긴 쉬워도, 막상 내 울타리 안의 사정을 바꾸기가 가장 어려운 건가 봅니다.
"누나, 잘 가!"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다. 아버지에게는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생명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39쪽, 이라영 지음
1988년 초에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신문을 만든다며 아버지는 주주 모집에 관심을 보였다. 집에는 《동아일보》가 배달되었는데 아버지는 《한겨레》가 창간하자마자 함께 구독하기 시작했다. 신문 두 개가 배달되었다. 나는 한자가 없고 가로쓰기인 《한겨레》를 보기 시작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201쪽,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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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많은 여성들도 제사 공장이나 고무 공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여성들이 광산노동자로 일했다. 1943년 조선의 광산노동자는 18만 3,000명으로 이 중 8퍼센트가 '부인'이다. 57쪽 광석을 고르는 업무는 광산의 굵직한 일 중 하나다. 분진 속에서 하는 일이라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지상의 막장'이라고도 불렸다. 60쪽 선광은 대체로 여자가 했다. 돌을 섬세하게 고르는 일은 여성에게 맡겼다. 기계화가 되면서 '여자 광부'라 불리던 선광부는 차츰 줄어들었다. 62쪽 힘든 일이지만 광산은 남성만이 아니라 지역의 여성들에게도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고 제 집에서 출퇴근하며 월급 받을 수 있는 일자리였다. 65쪽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멋 부리기를 '보호색'으로만 본다면 그 또한 차별적 시선이다. 그들은 경제활동으로 눈치보지 않고, 가족 부양이 아닌 오직 자신을 꾸미는 데 돈을 쓰며 최신 유행에 합류하는 기쁨도 누렸다. 69쪽 노동계층 여성의 멋내기는 왜 유난스럽게 언급될까. 중산층 기혼 여성의 멋 부리기와 달리 노동계층 여성에게는 이중적 시선이 존재한다. 그들의 멋 부리기는 돈을 쓸 수 있는 경제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에 부러움을 사는 동시에 그것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점잖지 않은 젊은 여자'가 된다. 70쪽 지극히 규범적인 사람인 어머니는 차마 가출은 생각도 못 했기에 농담처럼 말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어머니가 떠올리는 방식이 '가출'이었다는 게 시대상을 반영한다. 76쪽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부2장 선광부, 이라영 지음
향팔님의 문장 수집: "1988년 초에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신문을 만든다며 아버지는 주주 모집에 관심을 보였다. 집에는 《동아일보》가 배달되었는데 아버지는 《한겨레》가 창간하자마자 함께 구독하기 시작했다. 신문 두 개가 배달되었다. 나는 한자가 없고 가로쓰기인 《한겨레》를 보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읽으니 한겨레, 조선일보 아저씨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중학교 때 한겨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배달하던 신문이 조선일보였는데, 친구랑 저는 우리가 배달하던 조선일보를 싫어했어요. 너무 무거웠거든요. 일단 발행면수가 많아 아마 당시 신문들 중에 제일 두꺼웠고, 거기다가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칼라풀한 광고 속지가 들어갔는데 이게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이걸 빼면 신문의 전체 부피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정도였으니까요. 새벽마다 신문 보급소에 가면 아저씨들이 그 광고지들을 신문지 속에다 일일이 끼워넣고 있었죠. 그 화려한 손놀림과 빛의 속도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에 소장 아저씨가 끓여주시던 대추차 맛은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이제껏 살면서 마셔본 중에 가장 맛있는 대추차...) 오토바이를 탄 한겨레 배달 아저씨는 제가 구루마(?)를 끌며 조선일보를 배달하는 구역에서 가끔 마주치는 분이었어요. 엄청 친절하셨죠. 가끔 신문을 한 부씩 주시기도 했는데, 받아보니 무지 얇고 가볍고 광고지도 없는 거예요. (돈이 없는 신문사라 볼게 별로 없었음 ㅎㅎ) '와! 이건 신문 배달계의 신세계다, 나도 한겨레를 배달하고 싶다'는 강려크한 꿈을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겨레는 조선일보에 비해 구독자 수가 형편없어서 우리같은 도보배달 찌끄레기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죠. 수집한 문장에서처럼 한겨레신문은 한자가 없고 가로쓰기여서 중딩이 봐도 어렵지 않았어요. 초록색 제호도 특유의 글씨체도 참 예쁘다고 느꼈답니다. 제 '꼬꼬마 보물 상자' 속 그때 쓴 일기장을 보면 한겨레에서 오려내 붙인 만평들이 있어요. '박시백의 한겨레그림판' 같은 것들... 제게 한겨레를 전도(?)해주신 아저씨랑, 그 동네 보급소 아저씨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지, 가끔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한자를 빨리 익혔다. 형제도 없고 다른 놀거리도 없는 터라 집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여섯 살 손위 누나가 가끔 사주는 책을 주로 읽었다. 77쪽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64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광업소를 찾았다. 열일곱 살에 처음 광산노동자로 돈을 벌었다. 열일곱 살 청소년은 폐석장에서 쇳돌 찾는 일을 했다. 선광장에서 철광석과 폐석을 고르면 다시 그 폐석 중에서도 철분 함량이 높은 쇳돌을 찾았다. 아버지는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서랍 두 개가 있는 책상과 영어 사전을 샀다. 이 영어 사전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78쪽 광업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구술에서는 과거에 임시부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곧잘 등장한다. 80쪽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설움도 많았지만 '빽이 있어야' 상시직이 될 수 있었다. 인권의식도 부족하고 노조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1960년대 광산 폐석장에서 방학 때 임시로 일하는 '잡부' 청소년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81쪽 196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아버지는 광산에 잡역부로 들어갔다. 대입에 실패하자 "그런 거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 일자리에 제 발로 다시 잦아갔다. 이때도 임시직이었고 그마저도 광산에 할머니와 고모를 통해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때는 아는 사람 소개로 광산에 취직하는 사람이 많았다. 82쪽 과거의 광산촌이었던 마을에서 비슷한 길을 발견한다. 자원의 이동을 위해 만들어졌던 길은 자원의 이동이 멈추면 사라진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동원되었다. 85쪽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부3장 잡역부, 이라영 지음
문학에서 1920년대부터 광산노동자가 간접적으로라도 등장하는 것에 비하면 미술에서 광산노동자는 훨씬 뒤에 나타난다. 1982년부터 3년간 직접 태백에서 채탄노동자로 일했던 황재형은 1980년대 중반부터 광산노동자와 광산촌의 모습을 꾸준하게 재현했고 이를 전시를 통해 소개했다. 눈병이 심해져서 더 이상 광산노동자로 살기 어려워져 광산 일을 그만뒀지만 그는 태백을 비롯한 광산촌의 실상을 화가의 눈으로 관찰했다. 1988년 그가 그린 높이 360센티미터의 커다란 걸개그림은 그해 분신한 노동자 성완희를 추모한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두 달 전이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206쪽,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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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대화: 이 대목을 읽으니 한겨레, 조선일보 아저씨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중학교 때 한겨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배달하던 신문이 조선일보였는데, 친구랑 저는 우리가 배달하던 조선일보를 싫어했어요. 너무 무거웠거든요. 일단 발행면수가 많아 아마 당시 신문들 중에 제일 두꺼웠고, 거기다가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칼라풀한 광고 속지가 들어갔는데 이게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이걸 빼면 신문의 전체 부피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정도였으니까요. 새벽마다 신문 보급소에 가면 아저씨들이 그 광고지들을 신문지 속에다 일일이 끼워넣고 있었죠. 그 화려한 손놀림과 빛의 속도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에 소장 아저씨가 끓여주시던 대추차 맛은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이제껏 살면서 마셔본 중에 가장 맛있는 대추차...) 오토바이를 탄 한겨레 배달 아저씨는 제가 구루마(?)를 끌며 조선일보를 배달하는 구역에서 가끔 마주치는 분이었어요. 엄청 친절하셨죠. 가끔 신문을 한 부씩 주시기도 했는데, 받아보니 무지 얇고 가볍고 광고지도 없는 거예요. (돈이 없는 신문사라 볼게 별로 없었음 ㅎㅎ) '와! 이건 신문 배달계의 신세계다, 나도 한겨레를 배달하고 싶다'는 강려크한 꿈을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겨레는 조선일보에 비해 구독자 수가 형편없어서 우리같은 도보배달 찌끄레기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죠. 수집한 문장에서처럼 한겨레신문은 한자가 없고 가로쓰기여서 중딩이 봐도 어렵지 않았어요. 초록색 제호도 특유의 글씨체도 참 예쁘다고 느꼈답니다. 제 '꼬꼬마 보물 상자' 속 그때 쓴 일기장을 보면 한겨레에서 오려내 붙인 만평들이 있어요. '박시백의 한겨레그림판' 같은 것들... 제게 한겨레를 전도(?)해주신 아저씨랑, 그 동네 보급소 아저씨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지, 가끔 생각납니다.
신문배달은 소년들이 많이 하는 줄 아는데 소녀도 있었네요.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작고하신 아버지가 보수시라 줄 곧 조선일보만 구독해 왔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 넘어서도 구독했는데 엄마가 쓰레기만 만든다고 구독을 끊어버렸죠. 그러고도 집요하게 더 구독하라고해서 끊는데 애먹었습니다. 저는 뭐 봐봤자 문화란과 TV 방송프로 밖엔 안 보지만 진짜 조선일보는 신문 하나는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토요판인가는 넘 좋아서 한동안 그것만 편의점에서 따로 사 본 적도 있습니다. 향팔님 미워하는 짓만 제가 골라했네요. 하하
향팔님의 문장 수집: "문학에서 1920년대부터 광산노동자가 간접적으로라도 등장하는 것에 비하면 미술에서 광산노동자는 훨씬 뒤에 나타난다. 1982년부터 3년간 직접 태백에서 채탄노동자로 일했던 황재형은 1980년대 중반부터 광산노동자와 광산촌의 모습을 꾸준하게 재현했고 이를 전시를 통해 소개했다. 눈병이 심해져서 더 이상 광산노동자로 살기 어려워져 광산 일을 그만뒀지만 그는 태백을 비롯한 광산촌의 실상을 화가의 눈으로 관찰했다. 1988년 그가 그린 높이 360센티미터의 커다란 걸개그림은 그해 분신한 노동자 성완희를 추모한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두 달 전이다."
책에 나온 걸개그림이 궁금해서 주석의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PRINT/916912.html 뜯겨지고 압수당하던 시절…80년대 민중미술과의 재회, <한겨레>, 2019년 11월 13일.
stella15님의 대화: 신문배달은 소년들이 많이 하는 줄 아는데 소녀도 있었네요.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작고하신 아버지가 보수시라 줄 곧 조선일보만 구독해 왔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 넘어서도 구독했는데 엄마가 쓰레기만 만든다고 구독을 끊어버렸죠. 그러고도 집요하게 더 구독하라고해서 끊는데 애먹었습니다. 저는 뭐 봐봤자 문화란과 TV 방송프로 밖엔 안 보지만 진짜 조선일보는 신문 하나는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토요판인가는 넘 좋아서 한동안 그것만 편의점에서 따로 사 본 적도 있습니다. 향팔님 미워하는 짓만 제가 골라했네요. 하하
맞아요, 아마 볼 게 제일 많은 신문이었을 거예요. 조선일보에 배달로 복무했던 제가 20대에는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쿨럭 모르긴 해도 신문 소녀도 꽤 있지 않았을까요? <달려라 하니>도 있잖아요 왜 흐흐. (하긴, 그 보급소에도 소녀라곤 저랑 친구뿐이었네요. 90년대 후반에 신문배달하는 청소년 자체도 별로 없었고...) 저희는 자전거를 못 타는 바람에 구루마를 끄느라 100부밖에 못 돌려서(배달 부수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것이라...) 몸만 힘들고 돈도 못벌고 그랬죠. 하하!
탱구밤이엄마님의 문장 수집: "인간들 사이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돌무더기 속에서 일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 이 문장 무척 공감되네요.
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의 편견도 발견했다. 대학생도 아니며, 공장노동자도 아니며, 노동 현장에 있지만 사무직인 소수의 젊은 여성들이 1980년대 민주화 흐름 속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간과했다. 정작 내가 생각한 그 '아저씨들'은 "R이 좋은 일 많이 했지", "걔가 우리 편이었어", "걔가 입이 무거워. 말은 안 하지만 다 보고 있었지", "말은 안 하는데 판단을 하는 애였어"라며 동료의식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있지만 말 없이, 조용하게 참여했던 여성들이 직장을 떠난 후에도 자신이 했던 일을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말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1988년에 노조에 복귀한 뒤 조용히 중요한 활동을 했던 몇몇 경리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찾아갔으나 일부는 이미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건너 건너서 '어디로 시집 갔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224쪽, 이라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6월 11일 목요일은 13장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 대투쟁', 14장 '언니들', 15장 '밥상의 민주화'를 읽습니다. 1987~1988년 사이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을 무대로 광산의 민주 노조 운동(13장), 또 그 노동운동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가 했던 역할(14장) 그리고 실제로 민주 노조 운동의 성과로 '노동자의 밥'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피고 있어요(15장). 오늘 함께 읽을 대목 역시 저자의 남다른 문제 의식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14장과 15장이요. (오늘 아침부터 바쁜 하루여서 이제야 일정 체크합니다!)
향팔님의 대화: 이 대목을 읽으니 한겨레, 조선일보 아저씨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중학교 때 한겨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배달하던 신문이 조선일보였는데, 친구랑 저는 우리가 배달하던 조선일보를 싫어했어요. 너무 무거웠거든요. 일단 발행면수가 많아 아마 당시 신문들 중에 제일 두꺼웠고, 거기다가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칼라풀한 광고 속지가 들어갔는데 이게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이걸 빼면 신문의 전체 부피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정도였으니까요. 새벽마다 신문 보급소에 가면 아저씨들이 그 광고지들을 신문지 속에다 일일이 끼워넣고 있었죠. 그 화려한 손놀림과 빛의 속도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에 소장 아저씨가 끓여주시던 대추차 맛은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이제껏 살면서 마셔본 중에 가장 맛있는 대추차...) 오토바이를 탄 한겨레 배달 아저씨는 제가 구루마(?)를 끌며 조선일보를 배달하는 구역에서 가끔 마주치는 분이었어요. 엄청 친절하셨죠. 가끔 신문을 한 부씩 주시기도 했는데, 받아보니 무지 얇고 가볍고 광고지도 없는 거예요. (돈이 없는 신문사라 볼게 별로 없었음 ㅎㅎ) '와! 이건 신문 배달계의 신세계다, 나도 한겨레를 배달하고 싶다'는 강려크한 꿈을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겨레는 조선일보에 비해 구독자 수가 형편없어서 우리같은 도보배달 찌끄레기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죠. 수집한 문장에서처럼 한겨레신문은 한자가 없고 가로쓰기여서 중딩이 봐도 어렵지 않았어요. 초록색 제호도 특유의 글씨체도 참 예쁘다고 느꼈답니다. 제 '꼬꼬마 보물 상자' 속 그때 쓴 일기장을 보면 한겨레에서 오려내 붙인 만평들이 있어요. '박시백의 한겨레그림판' 같은 것들... 제게 한겨레를 전도(?)해주신 아저씨랑, 그 동네 보급소 아저씨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지, 가끔 생각납니다.
@향팔 님, 책 쓰셔야겠는데요. :) 향팔 님 성장 서사도 잘 엮어 보면 웬만한 소설만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책 사서 읽습니다. :)
@연해 @향팔 제가 바로 그렇게 혜택 받았던 큰아들 또 오빠라서 왠지 두 분 글을 읽기가 민망합니다. 그래도 저는 제 방을 이제 막 10대가 된 여동생에게 물려주고 집을 떠나서 다행이었습니다. (곧 여동생 생일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조금 올려서 용돈(?)을 보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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