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

D-29
YG님의 대화: @오구오구 네, 결이 참 다른 작가이죠. 일단 두 작가는 출생 연도와 집안 배경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1943년생으로 초등학교 때 한국 전쟁을, 10대 때 전후의 혼란기를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1962년 고등학교를 자퇴한 해 11월, 단편 「입석 부근」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했죠. 이후 1966년부터 1969년까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문열 작가는 1948년생이라 한국 전쟁과 전후의 혼란기를 영유아기로 보냈습니다. (참고로 스티븐 킹이 1947년생, 무라카미 하루키가 1949년 1월생이니 이들과 동년배 작가인 셈입니다.) 이문열 작가 역시 1966년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년 남짓 부산에서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19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역시 끝내 중퇴하게 되는데, 월북한 아버지를 둔 탓에 ‘연좌제’에 묶여 어차피 출세할 수 없는 삶이라는 좌절감이 컸을 겁니다. 그러다 1979년(만 31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며 중앙 문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0대에 '소년 급제'한 황석영 작가와 비교하면 데뷔가 꽤 늦은 편이었죠. 하지만 같은 해 곧바로 『사람의 아들』(1979)을 발표하며 문단과 대중의 주목을 동시에 받는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 황석영 작가는 이미 이 시점에 대체 불가능한 스타였습니다. 특히 「객지」(1971), 「삼포 가는 길」(1973) 같은 리얼리즘 중단편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지요. 저 역시 황석영 작가가 1970년대에 발표한 중단편들은 지금도 가끔 찾아 읽을 정도로 애정합니다. 이 단편들에는 그가 20대 시절 일용직 노동 등을 전전하며 몸으로 체화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반면 이문열 작가는 대중적인 ‘관념 소설’ 혹은 ‘사변 소설’, 그리고 ‘지식인 소설’이 장기였습니다. 『사람의 아들』만 해도 인간 존재의 근원, 신의 존재 이유, 절대적 자유와 고통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정면으로 건드렸으니까요. 이후 주목받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역시 권력과 대중의 속성을 성장 소설의 틀을 빌려 쓴 작품이고요. 여기에 더해 이문열 작가는 월북한 아버지와 연좌제라는 굴레, 그 안에서 방황하는 아들의 정체성을 ‘지식인 소설’의 형식으로 집요하게 변주해 왔습니다. 대하소설 『영웅시대』(1984)와 『변경』(전 12권)이 대표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웅시대』는 흥미롭게 읽었지만, 『변경』은 읽다가 중도 하차했던 기억이 나네요.) * 황석영 작가는 1989년 평양 방문 이후 옥고를 치르고 나와 발표한 『오래된 정원』(2000) 『손님』(2001)부터 최근의 『철도원 삼대』(2020)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이후에는 주로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궤적을 배경에 깔고서 (세계 무대 쉽게 말하면 노벨 문학상을 염두에 둔) 다양한 형식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문열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보수 이데올로그의 대표 작가로 각인되면서 발표하는 작품도 시원치 않아졌고, 좋은 작품을 쓰더라도 독자와 만나는 접점이 좁아진 듯해요. 저는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1998) 같은 단편은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2000년대 이후에는 이문열 작가의 소설을 따로 챙겨 읽지 않았네요.) *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에 황석영 작가가 발표한 단편을 좋아합니다. 2000년대 이후의 장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문학적 감각과는 조금 거리가 생기는 듯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젠 그만 노벨 문학상 집착을 내려놓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문열 작가의 작품 중에는 몇 편의 중단편, 그리고 무엇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전에 읽었던 『젊은 날의 초상』(1981)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고서 챙겨 온 청춘 소설입니다.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 세 편의 중편을 묶어서 펴낸 책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 쓴 소설이죠. 오래전에 읽고서 다시 펼쳐보진 않았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했던 감정이 각인돼 있어서 계속 소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음사 판으로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출판사를 옮겨 나오는 것 같더군요. 다시 읽어도 그때만큼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역시! 👍 저는 황석영 작가는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 분이 우리나라 문단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죠. 근데 그분도 노벨문학상에 연연하셨나요? 고은 시인이 그렇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습니다만. 근데 이제 내려놓지 않으셨나요? 그 영광이 까마득한 후배에게로 돌아갔으니. ㅋ 그 보다는 이문열 작가가 좀 충격적이긴 했죠? 2천년들어와선가? 그의 책이 불태워지는 사건 있었잖아요. 그 사건 이후 절필을 선언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본인으로선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무섭긴하죠? 그분이 세운 문학촌은 지금도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YG님께서 책도 시간의 산물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한때 기라성 같은 작가의 세상에 없을 작품도 지나놓고나면 큰 맘 먹지않으면 여간해서 읽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독서에 대한 열의가 예전 같지가 않아서리. ㅠ
borumis님의 문장 수집: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디론가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만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삶이 아니라 '견디는'삶은 이름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실제로는 거의 마주하지 않지만 은유 속에서는 풍성하게 존재하는 광산, 광부, 막장 등에 대한 실제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작업이다. 누군가의 삶을 은유 속에 가둘 수 없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이동과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 사회를 지탱해온 어떤 존재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추적하기로 한다. 한 사람의 노동이동에는 한 시대와 장소의 변화가 담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숨어 있다. 노동자의 입과 노동자의 발을 따라갔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참미르님의 문장 수집: "실제로는 거의 마주하지 않지만 은유 속에서는 풍성하게 존재하는 광산, 광부, 막장 등에 대한 실제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작업이다. 누군가의 삶을 은유 속에 가둘 수 없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이동과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 사회를 지탱해온 어떤 존재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추적하기로 한다. 한 사람의 노동이동에는 한 시대와 장소의 변화가 담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숨어 있다. 노동자의 입과 노동자의 발을 따라갔다."
뒤늦게 참여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의 삶을 은유속에 가둘 수는 없다... 와닿네요. 더구나 개인적 경험이 아닌 근대사의 중요한 순간의 집단적 경험이니까 말입니다.
50 쪽에서 현재 한국광산은 석회석이나 백운석 등 비금속 광산이라는 언급이 있어서 알아보았습니다. 삼척, 영월, 단양, 제천 등에 있는 노천광이고 이주노동자가 다수이며, 내국인 노동자는 60~70대가 주를 이룬다 하네요. 하청구조 문제도 있고, 분진 소음 등 노동환경 열악하고, 그골격계 부담 문제가 크다는군요. 석회석, 백운석은 주요 건축자재이자 마감제로 쓰인다고 합니다. 광산노동자 구성이 건설노동자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건설은 노조의 오랜 노력으로 내국인 젊은이들도 조금씩은 유입되고 있는듯 합니다.
연해님의 대화: 여담이지만, 저는 토요일에, 지난달 벽돌 책 모임에서 @YG 님이 극찬(더 정확히는 YG님의 작은 동거인분이 극찬)하신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왔답니다. 이제 거의 막차 분위기라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거의 없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찾아서 다녀왔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원작을 읽지 않고 봐서 그런지, 주인공들이 죽으면 어쩌나 싶어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요. 웃다가 울다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광활한 우주의 모습도 경이롭고 아름다웠어요. 심지어 OST도! (주말내내 듣고, 오늘 출근길에도 들었다지요) 참, @향팔 님이 말씀해주셨던 <쇼생크 탈출>도 드디어! 봤답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극찬하셨던 분들도 많았는데, 이제서야 봤네요. 제목에서 오는 느와르적(?)인 느낌과 달리, 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지하고 철학적인 영화였어요.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믿음과 사랑, 우정과 관계 등에 대해서도 천천히 생각해보게 됐고요. 주인공의 운명이 안타깝고, 절절했지만 결말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근데 이 사람 정말 영리하지 않나요? 보는 내내 감탄...).
쇼생크탈출은 책으로 함 읽어보고 싶은데 여간해서 짬이 안 나네요. 킹 아저씨의 책은 <유혹하는 글쓰기>가 유일! 영화는 몇편 봤는데. ㅠ
1935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여성의 광산 지하노동금지에 관한 협약(1935. 6. 21.)'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여성은 광산의 갱 안에서 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72조에 명시된 금지사항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부터 여성과 18세 미만인 미 성년자에게 갱 안에서의 노동을 금지했다. 여기에는 굴, 터널 등을만들기 위해 지하 갱도에서 발파, 굴착, 굴진 등을 하는 노동이 포함된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 저는 이 구절 보며 삐딱한 생각 해봅니다.여성을 '자녀를 낳고 기르는 존재'로 규정하고, 갱도의 열악한 환경이 모성(자궁)을 해친다는 논리를 앞세워 여성을 노동자가 아닌 '국가의 미래 인구 공급원'으로 보는 근대부르주아적 가족주의가 짙게 배인 조항이란... 당시 지배층(부르주아)에게 이상적인 가정은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고, 여성은 가정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형태였기에, 여성 광부의 존재는 이런 질서를 위협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간주되었을 거고. ​ 그리고 당시 남성 중심의 노동조합도 여성의 지하 노동 금지를 적극 지지했는데, 보호라는 명분 아래 여성이 저임금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방어하려는 계산도 반영되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광산은 전통적으로 '남성적 근력'이 강조되는 장소였고,여성 노동자의 배제는 남성 노동자들의 지위와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거고요. ​어쩌면 이 협약은 여성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여성을 숙련 노동의 장에서 쫓아내는 결과'를 초래했을 듯합니다. ​당시 여성 광부들은 지상에서의 저임금 가사 노동이나 소규모 수공업으로 밀려나야 했을 테고요. 여성이 원해서 광산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그 일자리를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권은 무시되었고요. 1935년이라면 이런 해석 더 맞지 않을까 싶네요 영국에서 여성이 참정권(투표권)을 획득한 게 1928년이고, 프랑스는 무려 1944년이니까요
참미르님의 문장 수집: "1935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여성의 광산 지하노동금지에 관한 협약(1935. 6. 21.)'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여성은 광산의 갱 안에서 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72조에 명시된 금지사항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부터 여성과 18세 미만인 미 성년자에게 갱 안에서의 노동을 금지했다. 여기에는 굴, 터널 등을만들기 위해 지하 갱도에서 발파, 굴착, 굴진 등을 하는 노동이 포함된다."
​ ...위험한 노동현장을 개선한 게 아니라 성별논리로 배제한것,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7장에서 사북항쟁이 언급되네요. 이 사건의 전모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항상 궁금했어요. 세간에는 당시 항쟁의 와중에 사북 동원탄좌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위원장 이재기의 부인에게 행했던 폭력이 주로 알려졌던 것 같습니다. 영화 <1980 사북>을 꼭 봐야겠어요. 작년 개봉 후 최근에도 도서관 등에서 자주 상영하는 것 같던데요. (지난달에도 저희 지역구 도서관 두 곳에서 상영을 해줬는데 가보질 못했네요.)
1980 사북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에서는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감시와 착취에 시달리던 광부 3천여 명은 사북을 장악하고 공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계엄군이 투입되기 직전에 협상이 타결되어 사북은 유혈사태를 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stella15님의 대화: 역시! 👍 저는 황석영 작가는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 분이 우리나라 문단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죠. 근데 그분도 노벨문학상에 연연하셨나요? 고은 시인이 그렇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습니다만. 근데 이제 내려놓지 않으셨나요? 그 영광이 까마득한 후배에게로 돌아갔으니. ㅋ 그 보다는 이문열 작가가 좀 충격적이긴 했죠? 2천년들어와선가? 그의 책이 불태워지는 사건 있었잖아요. 그 사건 이후 절필을 선언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본인으로선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무섭긴하죠? 그분이 세운 문학촌은 지금도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YG님께서 책도 시간의 산물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한때 기라성 같은 작가의 세상에 없을 작품도 지나놓고나면 큰 맘 먹지않으면 여간해서 읽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독서에 대한 열의가 예전 같지가 않아서리. ㅠ
아 저는 황석영 작가님 책 개밥바라기 좋았어요~
"미쳤어, 미쳤어, 노조에 미쳤어. 매일 술 마시고, 내가 OO이 낳아서 산모인데, 산모가 있는 방에 새벽에 전부 노조 인간들이 우리 집에 몰려온 거야. 선거 때문에. 내가 완전 햇산모야. 1월에. 옛날에 방 하나에 살았잖아. 우리 집에 전화가 없으니까 인간들이 그냥 막 몰려온 거야. 옛날에는 그냥 그렇게 막 몰려왔다구."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29쪽, 이라영 지음
어릴 때 나에게 아버지란 '내 아버지'라기보다 '양양광업소 노조 사람'이었다. 노조 사람이 우리 집에 사는 것이다. 노조에 몰두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 지금도 아버지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때는 그래도 싸우면 오히려 힘이 나. 사장이랑 마주 앉으면 내가 동등해지거든." 오랜 시간 노조에서 싸우느라 늘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일상을 살아갔으면서도 아버지는 싸웠다는 사실에 자아존중감을 느꼈다. 마주 앉아 싸우는 관계, 정확히 말하면 '싸울 수 있는 관계'는 동등한 시민이라는 기분을 안겼다. 싸움의 결과와 무관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 그 자체,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삶의 감각을 느꼈다. 이러한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노조의 '노' 자도 듣기 싫다며 그 시절을 몸서리치게 기억한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31쪽, 이라영 지음
어머니는 어느 날 건강하게 살이 찐 막내아들을 만났다. 깨어나보니 꿈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아이가 없어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남은 자식'을 데리고 교회에 다녔다. 신경정신과 병원에도 갔다. 어머니는 종교와 의학 사이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종교도 의학도 어머니를 돕지는 못했다. 남편은 "노조에 미쳐서" 상실의 동반자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불안정한 상황과 가정사의 고통 속에서 더욱 노조 활동에 매진했다. 아버지는 가정을 온전히 어머니에게 맡겼다. 내게 1980년대는 노조에 미친 아버지와 자식 상실로 우울한 어머니가 서로의 울분을 뒤섞으며 위태로운 2인 3각을 하는 시기였다.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불만만큼이나 "왜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싫어해!" 라는 아버지의 신경질도 거셌다. 이들은 수시로 싸웠다. 고통 앞에서 종교도 의학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어머니는 "다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결국 모든 것은 개인 의지의 문제가 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노조에 미쳐서" 가정에 무신경했다고 아버지를 나무라는 어머니 목소리의 강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이 말을 듣고 있는 아버지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31-132쪽, 이라영 지음
참미르님의 대화: ​ ...위험한 노동현장을 개선한 게 아니라 성별논리로 배제한것,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역시 독서모임의 장점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쇳돌>에도 "광산은 남편이 없는 여성이나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의 일자리였다."라는 부분이 나오지요. 결혼하면 당연히 떠나야 하는 일자리였고, 광산에서 일하는 걸 결혼 때 숨기려고 했다는 부분도 나오구요. 여자가 결혼 전에 밖으로 나돌아 일했다는 게 "흉"이 되는 풍조도 말씀하신 성별논리에 따른 배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연좌제라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비시민되기를 강요받아온 아버지에게는 광산 노동조합에 들어가 싸우는 것이 시민되기의 방법이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어릴 때 나에게 아버지란 '내 아버지'라기보다 '양양광업소 노조 사람'이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오랜 시간 노조에서 싸우느라 늘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일상을 살아갔으면서도 아버지는 싸웠다는 사실에 자아존중감을 느꼈다. 마주 앉아 싸우는 관계, 정확히 말하면 '싸울 수 있는 관계'는 동등한 시민이라는 기분을 안겼다. 싸움의 결과와 무관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 그 자체,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삶의 감각을 느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7장에서는 아버지의 노조활동에 대한 회상이 이어지는 군요. 연좌제에 발목 잡혀 주저앉기보다, 주저앉은채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집에서도 과묵한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이라영 작가의 삶에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구요. 한편으론, 너무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한 탓에, 어머니의 삶은 고달팠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아마 8장에서 그 고달팠던 어머니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이혼안하고, 어머니가 미치지 않고서 (자식을 잃었으니까요) 살아낸 어머니가 대단하단 생각도 합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탱구밤이엄마님의 대화: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역시 독서모임의 장점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쇳돌>에도 "광산은 남편이 없는 여성이나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의 일자리였다."라는 부분이 나오지요. 결혼하면 당연히 떠나야 하는 일자리였고, 광산에서 일하는 걸 결혼 때 숨기려고 했다는 부분도 나오구요. 여자가 결혼 전에 밖으로 나돌아 일했다는 게 "흉"이 되는 풍조도 말씀하신 성별논리에 따른 배제라고 볼 수 있겠지요?!
네. 이 조항에서 여성과 18세 미만인 미성년자가 같이 다뤄진것도 눈에 띕니다. 시대적으로 여성을 미숙한 존재로 규정짓고, 정치와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하던 때였으니까요.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천천히 읽어요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추리로 양념 친 러브스토리 연작집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이토록 다양한 책들의 향연, 오늘 당신이 고를 이야기는?
[김영사/책증정]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기[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김영사/책증정]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우리의 노동 일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한국 희곡 낭독이 이렇게 재밌다니!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