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산촌이었던 장승리에 대한 문학의 기억은 신은숙의 시 <장승리>로 남았다. 양양 장승리 출신의 시인은 폐광 후 고요해진 마을을 "철 든 동네였지만 철 없어진 지 오래된 장승리"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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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는 기차가 다녔던 그 당시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기차역이 있었던 자리는 나이 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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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창씨개명만 한 게 아니라 창지개명도 했다. 지역의 많은 이름을 음이 같은 다른 한자로 바꾸거나 아예 다른 이름으로 변경했다. 지역을 통합하여 정체성을 없애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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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업소와 여성 일자리를 연결 짓기는 어려웠다. 거기에서 젊은 여자가 뭘 하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거기 맨 젊은 여자지"라고 대꾸했다. 쇳돌 고르는 여자는 거의 여자들의 일이었다. 바로 선광부다. 광부의 부가 '사내 부'라면 선광부의 부는 '부녀 부'다. 광산의 돌 무더기 주변에 모여 앉아 있는 여자들이 찍힌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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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1부 철광산을 중심으로 살펴본 어느 가정의 노동이동사 1장 광산촌,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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