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미르님의 대화: 이한열이 사망했던 그해 8월,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어용노조가 아닌 민주노조 인정,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시위에 참가했던 스물 한살 이석규씨도 가슴에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죠.
당시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이석규의 시신을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하여 민주열사로 기리고자 했으나, 경찰은 그 영향력을 우려해서 운구를 가로막고 시신을 탈취하여 이석규의 고향인 남원으로 강제 이송해서 묻었습니다. 이 장례와 망월동 이송을 도왔던 변호사 노무현은 장례식 방해와 노동쟁의 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고...
해마다 6월이면 갓 스물을 넘긴 두 청년이 같은 해에 최루탄을 맞고 숨졌는데, 우리는 이한열은 기억하고 이석규는 잊어간다는...조선소 노동자 박보근씨의 칼럼을 읽었습니다.
<쇳돌> 9장 노동자신문 자료에도 이석규 열사의 이름이 보이네요.
“이번에 최루탄에 의해 죽어간 거제도 옥포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동지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정부는 대우조선노동자들과 재야인사들을 '과격' '불순' 이니하면서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마져 살인최루탄으로 억압하고는 언론으로 하여금 눈가리고 아웅하게 하였던 것이다.” (151쪽)
참미르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이 갑니다. 우리가 1987년 6월항쟁은 알아도, 이어진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잘 모르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