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님의 대화: 벽돌 책 모임하면서 향팔님과 우리네(?) 오빠들 이야기를 종종 나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 일화를 읽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닮은 듯 다른 여동생들의 처지가 공감돼서요. 저는 외할머니가 손자들과 손녀들을 지독하게 차별하셔서 울분에 찼던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그걸 두둔해서 더 화가 났더랬죠. 셋 다 여자인데, 서로가 서로를 더 괴롭히는 느낌이 마치, '나도 그렇게 컸어,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같았죠(이 대물림은 제가 끝내버리려고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제 방이 있어서 오히려 외로웠어요. 혼자 잠들기 무서운데, 부모님은 다 컸다며(8살인디요) 엄살 부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빠 방에 자주 놀러갔어요. 어린 향팔님처럼 오빠 방에서 책도 읽고,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속 안나가 언니 엘사의 방 문고리 두드리는 장면처럼 말이죠. 나랑 눈사람 만들러가지 않... (아, 이거 아니구나) 아무튼 오빠를 요리조리 쫓아다니는 여동생이었습니다.
맛난 반찬과 등짝 스매싱에 또 쓴 미소가... 저는 명절에 가면 부엌 한편에서 엄마랑 여자 어른들과 찌그러져 밥을 먹었다지요(헤헤). 머리가 자라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래서 저도 밖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올라갔다며 당당하게 외치고 다녀도, 명절만 되면 제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이곳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이미 고착화 된 가족 서사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요.
술에 취하면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향팔님 오라버님의 마음도 왠지 찡하게 닿습니다. 제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흠) 어른들의 차별은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가 좋은데(아 물론 좋은 거랑 귀찮은 건 좀 다른 맥락으로다가) 유일한 남매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조카는 역시 사랑입니다. 하...
오, 음악 감사해요. 어린 연해님이 오빠 방문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해봤는데 이미지가 왠지 찰떡으로 어울립니다(귀여워요)ㅎㅎ 제 오빠가 조카들에게 매일 불러주던 곡이에요. 저는 오빠가 남자니까 혹시 울 아버지를 닮지 않을까(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심 우려했는데 웬걸? 오히려 아버지를 닮은 건 오빠가 아니라 저인 것 같아요. 하하하!
제 고모들의 회상에 따르면, 할머니도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변하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외아들인 아버지만 교육을 시키고 고모들은 국민학교(초등학교)에도 안 보냈던 할머니가, 손녀 손목을 잡고 가서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시다니,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라고요. 저도 할머니와 같이 오래 살다보니 좋은 기억도 많고, 무엇보다 저희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늘 감사하고 죄송하죠.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게 가슴 아프고요. 최근들어 오빠가 전에는 안 하던 말들을 해요. 어렸을 때 고모부가 오빠에게 사주신 나이키 에어 조던 운동화를 할머니가 깨끗이 빨아서 문밖 골목에 널어 두었는데, 어떤 놈이 홀랑 집어가 버렸다고. 그때 오빠가 할머니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그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오빠는 본인이 겪은 일들을 자식들은 절대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흙수저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라, 연민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쇳돌> 서문에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생명"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그 문장이 가슴에 새겨지며 오빠 생각이 나더라고요.
밖에서는 여성 인권을 이야기해도 집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말씀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냥 혼자 입을 닫고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먼 곳의 일을 판단하고 이야기하긴 쉬워도, 막상 내 울타리 안의 사정을 바꾸기가 가장 어려운 건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