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

D-29
자본의 기준에서 이윤이 나지 않는 동네가 되면 자본은 미련없이 그 장소를 버린다. 그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는 그렇게 붕괴된다. 모범산업전사 표창, 대통령 표창장, 대통령 하사품 등으로 추켜세우는 듯 했지만 사람은 끝내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의 위치는 바뀌건만 노동자들은 그저 대체될 뿐이다. 쓰고 버려지고 쓰고 버려지면서 다른 산업에서 같은 문제에 놓인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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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님의 문장 수집: "자본의 기준에서 이윤이 나지 않는 동네가 되면 자본은 미련없이 그 장소를 버린다. 그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는 그렇게 붕괴된다. 모범산업전사 표창, 대통령 표창장, 대통령 하사품 등으로 추켜세우는 듯 했지만 사람은 끝내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의 위치는 바뀌건만 노동자들은 그저 대체될 뿐이다. 쓰고 버려지고 쓰고 버려지면서 다른 산업에서 같은 문제에 놓인다."
저는 이 문장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노동자들은 진동벨이 되고, 키오스크가 되고, 계산기가 되고, 서빙 로봇이 되었다. 어떤 직군은 마땅히 기술로 대체되고 그 직종이 사라지는 것을 기술과 사회의 발전이자 역사적 진보로 받아들인다. 머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손과 발이 대체될 때는 발전이라 여긴다. 머리가 없는 존재이기에 이때 사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게 소거당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 안의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 문제다. 사양산업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외면해왔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자원이 되어버린 인간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다만 소모될 뿐이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광산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을 뜻하는 ‘막장’이라는 말이 최근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석탄공사 사장으로서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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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님의 문장 수집: "광산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을 뜻하는 ‘막장’이라는 말이 최근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석탄공사 사장으로서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농담처럼 쓰던 이 단어가 여기서 유래됐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막장 드라마’, ‘막장 정치’ 등 막장은 ‘막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익숙하게 쓰인다. 막장은 비하의 언어다. 인생 막장이라고 할 때 막장은 마지막까지 간, 인생을 막 살아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의미다.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필수 광물을 생산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사회에서 배제된 기분을 느낀다. 열심히 일하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환경을 망치는 주범처럼 여겨질 때, 자신들의 노동이 낮은 윤리적 평가를 받을 때 버려졌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이때 경제적 불평등은 곧 도덕적 불평등이 된다. 노동의 장소가 윤리적 비난의 장소가 되는 것, 막장의 의미는 그렇게 탄생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연해님의 대화: 농담처럼 쓰던 이 단어가 여기서 유래됐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몰랐다가 남편이 가르쳐줬어요. 안그래도 광부들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까 '너 막장이 어디서 나온 말인줄 알아?'하고 꺼드럭..;;; 정말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것으로 모자라 이렇게 언어문화적으로도 배제되다니.. 참 잔인하네요.
30년 전 아버지의 모습과 정확히 겹쳤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그저 '전사'에서 '폐기물'로 이행할 뿐이었다. 사회가 발전한다고 하는데 어째서 노동자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요구를 하는 것일까.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광산은 닫혀도 삶은 지속된다. 보이지 않는 직업, 더욱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이들은 원래 보이지 않았기에 이들이 일하던 장소의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다. 광산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들에게 광산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런 상실도 안기지 않는다. 단지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무관심 속에서 직장을 잃을 뿐이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죽고 다치며 일했던 일터의 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던 이들은 끝내는 일터의 사라짐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상황에 놓인다. 투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터를 떠났어도 일의 흔적은 몸에 남았다. 훗날 일부 노동자들은 재해 보상을 위해서도 싸워야 했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직업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 안의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 문제다. 사양산업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외면해 왔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산업구조의 전환 과정에서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소외되고 지역의 상공인, 시민 등의 삶에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오늘날 탄소중립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누군가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방향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개인이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누고 고민해야 한다. 가능한 모두에게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이얼 플레스는 사회에 필요한 필수노동이지만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취급하여 보이지 않게 숨기는 노동을 '더티 워크'라 정의했다. 그가 언급한 더티 워크를 수행하는 이들은 교도관, 전쟁에서 드론 조종사, 도살장 노동자, 석유 시추선 노종자이다. 사회 곳곳에 이런 노동이 숨어 있다. 내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 싫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싶지 않으나 반드시 필요한 노동일 경우 이 노동의 세계를 모르려고 한다. 빌딩마다 투명하게 존재하는 청소노동자, 도로 위를 질주하는 배달노동자도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6월 23일 화요일은 5부를 시작합니다. 1장 '노동 이동'과 2장 '어차피 없어질 직업'을 읽습니다. @FiveJ @이기린 님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재미있고 의미있게 읽었다 하시니 함께 읽자고 제안드린 저도 기쁩니다. :)
<기획회의> 658호(2026년 6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 * ‘쇳돌’로 쓴 어느 가족의 이력서 미국 작가 애니 프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이름만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라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가 주연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원작 작가로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미국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사이에서는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소설집(Close Range: Wyoming Stories)만큼이나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핑 뉴스』도 유명하죠.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 동명의 단편이 포함된 『브로크백 마운틴』이 2006년 번역되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배치된 「어느 가족의 이력서」였어요. (2017년에 새로 나온 한국어판은 「경력」으로 번역했습니다.) 1947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단편입니다. 마지막에 리가 50대에 뜻밖에도 요리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테이크 집을 여는 일로 끝나죠. 안타깝게도 그 스테이크 집도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난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니까요. 마지막 문장 “아무도 뉴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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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님의 대화: <기획회의> 658호(2026년 6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 * ‘쇳돌’로 쓴 어느 가족의 이력서 미국 작가 애니 프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이름만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라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가 주연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원작 작가로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미국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사이에서는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소설집(Close Range: Wyoming Stories)만큼이나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핑 뉴스』도 유명하죠.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 동명의 단편이 포함된 『브로크백 마운틴』이 2006년 번역되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배치된 「어느 가족의 이력서」였어요. (2017년에 새로 나온 한국어판은 「경력」으로 번역했습니다.) 1947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단편입니다. 마지막에 리가 50대에 뜻밖에도 요리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테이크 집을 여는 일로 끝나죠. 안타깝게도 그 스테이크 집도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난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니까요. 마지막 문장 “아무도 뉴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이죠.
1995년, 한 광산이 닫혔다 애니 프루와 국내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단편을 소환한 까닭은 이라영의 문제작 『쇳돌』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가 ‘올해의 책’으로 꼽을 『쇳돌』의 서문에 바로 프루의 단편 「경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5부를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줄거리도 자세하게 소개하죠. 제가 이 책에 끌렸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어느 가족의 이력서」의 한국판이 『쇳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책은 1995년 폐광한 강원도 양양 철광산을 중심에 놓고서 3대에 걸친 저자의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철광산이 중심에 있습니다만, 해방 후 80년간 현대사와 부대끼며 또 그 역사를 만든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저자 가족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던 저자의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됩니다. 그 뒤로 저자의 가족 뒤에는 연좌제 꼬리표가 따라다니죠. 쫓기듯이 돈이 도는 양양 철광산까지 흘러들어온 아버지는 광산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연좌제의 굴레 탓에 결국 주저앉고 맙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그 한을 철광산 민주 노동조합 운동으로 풀고자 합니다. 1980년과 1987년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성취와 좌절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서사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995년 더는 채산성이 없던 양양 철광산이 폐광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수도권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직업을 찾습니다. 프루의 소설 주인공과 다시 겹치죠.
YG님의 대화: <기획회의> 658호(2026년 6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 * ‘쇳돌’로 쓴 어느 가족의 이력서 미국 작가 애니 프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이름만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라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가 주연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원작 작가로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미국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사이에서는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소설집(Close Range: Wyoming Stories)만큼이나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핑 뉴스』도 유명하죠.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 동명의 단편이 포함된 『브로크백 마운틴』이 2006년 번역되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배치된 「어느 가족의 이력서」였어요. (2017년에 새로 나온 한국어판은 「경력」으로 번역했습니다.) 1947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단편입니다. 마지막에 리가 50대에 뜻밖에도 요리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테이크 집을 여는 일로 끝나죠. 안타깝게도 그 스테이크 집도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난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니까요. 마지막 문장 “아무도 뉴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이죠.
철광산의 빛나는 여성 서사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선, 저자는 철광산과 노동운동 서사에서 자칫하면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는 할머니, 고모, 어머니 또 광부 아내와 같은 여성의 이야기를 아버지와 그 남성 동료 서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큰 비중으로 배치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광산 현장에는 남성 노동자만큼이나 할머니나 고모 같은 여성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민주 노조 운동이 성공하는 데에는 앞장섰던 남성 노동자만큼이나 뒤에서 묵묵히 그 성공을 뒷받침했던 회계 담당 여성 노동자도 한몫했습니다. 광산촌의 광부 아내 역시 민주 노조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중요합니다. 노동조합에 ‘미쳐서’ 월급도 제대로 갖다주지 않았던 남편(아버지)을 대신해서 사실상 온갖 수단(구멍가게부터 하숙집까지)을 동원해서 생계를 꾸린 이는 저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저자는 이런 여성 서사를 촘촘히 엮어서 자칫 남성 중심으로 기울 수 있는 가족, 산업, 지역 이야기의 균형을 잡습니다.
YG님의 대화: <기획회의> 658호(2026년 6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 * ‘쇳돌’로 쓴 어느 가족의 이력서 미국 작가 애니 프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이름만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라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가 주연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원작 작가로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미국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사이에서는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소설집(Close Range: Wyoming Stories)만큼이나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핑 뉴스』도 유명하죠.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 동명의 단편이 포함된 『브로크백 마운틴』이 2006년 번역되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배치된 「어느 가족의 이력서」였어요. (2017년에 새로 나온 한국어판은 「경력」으로 번역했습니다.) 1947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단편입니다. 마지막에 리가 50대에 뜻밖에도 요리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테이크 집을 여는 일로 끝나죠. 안타깝게도 그 스테이크 집도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난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니까요. 마지막 문장 “아무도 뉴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이죠.
38선과 폐광이 만든 이주의 지도 양양 철광산이 이 책의 핵심이다 보니 두 가지 키워드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양양’과 ‘철광산’입니다. 독특한 지역사와 산업사, 이 책을 읽은 세 번째 이유입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양양은 사실 아픈 기억이 있는 지역입니다. 양양은 38도선 이북이라서 한국 전쟁 전까지는 북한 땅이었고, 전쟁 통에도 북쪽과 남쪽이 번갈아 점령했던 곳입니다. 왜 그에 따른 고난과 슬픔이 없었겠습니까. 더구나 철광산으로 북적대다가, 지금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양과 강원도 곳곳의 광산에서 일하던 많은 노동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사실상 강제 이주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야 경기도 안산에 강원도 출신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주했던 수도권 지역이 바로 안산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이 양양 지역사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철광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산 하면 탄광과 삼척, 정선, 태백 같은 곳만 떠올리던 저 같은 독자라면 철광산 이야기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양양 철광산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뒷부분에서는 철광산과 마찬가지로 쇠락한 탄광에 더해서 현재까지 운영 중인 석회석 광산 현장까지 보여줍니다.
YG님의 대화: <기획회의> 658호(2026년 6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 * ‘쇳돌’로 쓴 어느 가족의 이력서 미국 작가 애니 프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이름만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라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가 주연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원작 작가로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미국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사이에서는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소설집(Close Range: Wyoming Stories)만큼이나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핑 뉴스』도 유명하죠.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 동명의 단편이 포함된 『브로크백 마운틴』이 2006년 번역되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세 번째로 배치된 「어느 가족의 이력서」였어요. (2017년에 새로 나온 한국어판은 「경력」으로 번역했습니다.) 1947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단편입니다. 마지막에 리가 50대에 뜻밖에도 요리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테이크 집을 여는 일로 끝나죠. 안타깝게도 그 스테이크 집도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난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니까요. 마지막 문장 “아무도 뉴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이죠.
서사 뒤에 숨은 저자,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 물론 한 가지 불만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저자 ‘이라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고모, 아버지, 어머니에 이은 저자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감춰져 있습니다. 가족 서사의 배경으로 흐릿하게 존재하거나, 아버지의 과거와 다른 행보를 슬쩍 비판하는 모습으로만 자기를 드러낼 뿐입니다. 사회학자 노명우가 저자와 비슷하게 경기도 파주에서 주한 미군을 상대로 클럽을 운영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추적한 책 『인생극장』에서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을 간 자기 이야기를 가족 서사의 한 축으로 배치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저자도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디디에 에리봉과 아니 에르노가 자기를 전면에 드러낸 것과도 다르고요. 노명우, 에리봉, 에르노와 겹칠 만한 경험을 한 저자가 지역의 노동 계급 출신으로서 소수자를 옹호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난 자신의 이야기를 가족 서사에 겹쳤다면 이 책이 훨씬 더 확장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대목이죠. 저자가 에리봉이나 에르노를 “망설임 없이 옹호하지 못한다”(442쪽)고 그 한계를 지적했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저자가 뒤에 길게 붙여 놓은 「이 책을 쓰기까지」의 행간에서 읽히는 아쉬움과 망설임을 읽고 나서는 이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 저자는 이 책과는 아예 다른 기획으로 “양양으로 돌아가다” 같은 제목의 후속 작업을 해야겠구나!’ 여러분도 이 책을 덮고 나면, 분명히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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