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

D-29
백인들이 찾아왔어. 고통이 찾아와 문을 두드릴 때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고통은 자기가 앉을 의자를 가져왔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말할 걸세. 백인들이 바로 그렇다네. 이 자리에 모인 자네들이 다리 사이를 천으로 묶을 나이가 되기도 전에 나는 내 두 눈으로 백인이 아바메에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았다네. 그때 나는 피할 길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았지. 새벽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백인들은 우리의 모든 관습을 없앨 걸세.
신의 화살 155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맞아, 우리는 지금 백인의 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야. 하지만 지붕과 벽이 무너져 내리는데 천장이 그대로 서 있지는 못하잖아. 백인, 새로운 종교, 군인들, 신도로, 이게 모두 다 같은 거란 말이야. 백인한테는 총, 칼, 활이 있고 입에는 불을 넣고 다니지. 그들은 한 가지 무기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야.
신의 화살 155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뭔가 읽으면서 옛날 국사 과목 시간에 개화기 시기의 유학자들이 생각나는 대목이었어요. 서구의 병기와 문물만을 받아들이자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시도들이 제대로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형식은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존재하고, 내용은 형식에 의해 펼쳐진다는 말이 있죠. 문명의 이기利器는 단지 몇 가지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만을 가져온다고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루는 정신과 사상도 이해해야 하니까요. 결국 나중에 일본과 서구로 유학을 가고 그들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이 생겨났듯이, 이 대사에서도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와 다른 대륙을 지배할 수 있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고 있네요.
저는 여기서 '입에 불을 넣고 다니지'가 어떤 비유인지 궁금했어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생각해봤는데 여러 의미가 있을 듯해요. 제가 어릴 때 본 만화책에서 인간이 담배를 피우는 걸 처음 본 도깨비 어린이가 “사람은 불을 먹어!” 하면서 무서워하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마찬가지로 백인이 담배 피우는 걸 가지고 입에 불을 넣고 다닌다고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백인들이 입으로 전파하는 “새로운 종교”의 힘을 은유한 것 같기도 하고, 압도적인 화력/무력 행사를 명령할 수 있는 힘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바로 뒤에 나오는 말에서 “그들은 한 가지 무기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 하여튼 복합적일 것 같아요.
역시! 향팔님! 설명해 주신 대로 생각하며 읽어 볼게요. 저도 좀 더 생각해 보고요.
의심할 여지없이 윈터바텀 대위의 마음속에서 족장 이케디는 여전히 부패했고 고압적인 인물이었다. 다만 예전보다 더 교활해졌을 뿐이다. 그가 최근에 마을 사람들에게 행한 짓거리는 자신을 오비 또는 왕으로 추대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그는 옥페리의 왕 이케디 1세로 불리고 있었다. 왕을 혐오하던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영국 정부가 이보족들 가운데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전에는 하나도 없던 왕이 갑자기 버섯처럼 십여 명씩이나 튀어나온 것이다.
신의 화살 p.110,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상황적으로 좀 웃기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는데요. 영국이 의회와 헌법에 기반한 입헌군주국이긴 했어도 대영제국의 이름으로 왕을 모시던 나라였죠. 그런데 이제 옥페리에 왕이 생기는 현실을 보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개탄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스웠습니다. 왕이 없던 이보족이 과연 누구를 보고 그런 생각을 고안했을까요? 제가 보기엔 옥페리와 영국의 차이는 단지, 영국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료제의 형태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는 것 뿐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가 어른의 행동을 보고 하나하나 배우고 따라하듯, 이보족에게는 영국의 왕이 지배하는 행태를 따라했을 뿐이라고 생각되네요.
심지어 애초에 그 ‘임명 족장’이라는 것도 ‘간접 통치’를 한답시고 다름아닌 영국인들이 세워서 앉혀놓은 거잖아요. 교육받은 ‘지성인’으로 골라서요. 식민권력을 등에 업은 현지 지배층의 부패와 군림을 영국인들이 부추긴 셈이죠. (우리나라가 겪었던 일들도 연상되네요.) 그래서 인용해주신 문장 중에 이 부분이 와닿았어요. “영국 정부가 이보족들 가운데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전에는 하나도 없던 왕이 갑자기 버섯처럼 십여 명씩이나 튀어나온 것이다.”
그 친구는 우리가 족장으로 삼을 때까지 철저하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네.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족장이었던 것처럼 처신한다니까. 그건 법원 서기나 심지어 전령들도 마찬가지일세. 그들 모두가 본의 아니게 자신의 동족 위에 군림하는 작은 폭군들로 변신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게 깜둥이들의 속성인 것 같더군.
신의 화살 193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윈터바텀이 승진을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기 보상의 성격으로,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공정한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자신보다 상급자와 상위기관의 불합리함에 대해 불평하고 또 한편으로는 흑인들을 무지하다고 은연중에 깔보는 태도가 보입니다. 마치 자기만 잘못 없으며 옳은 사람이라는 듯 행동하죠. 그런데 이런 태도가 에제울루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적어주신 수집문장(168p)을 보며 윈터바텀이 왜 에제울루를 은근히 눈여겨보고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오, 에제울루와 윈터바텀의 태도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은 못 했었는데 은화님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사건이 벌어진 날 밤에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우무아로의 관습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데밀리의 사제가 일부러 그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만일 비단뱀을 무심코 죽였다면 사람의 장례식만큼이나 정성 들여 뱀의 장례식을 거행해 이데밀리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무아로의 아이들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뱀을 상자에 집어넣은 사람에 대한 규칙은 우무아로의 관습에 전혀 없었다. 에제울루는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밀리의 사제가 그에게 모욕적인 전갈을 보낼 만큼 심각한 사안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개인적인 신 사이에서 바로잡아야 할 위반 행위였다.
신의 화살 p.11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백인의 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남들 앞에서 백인과 말을 주고받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달랐다.
신의 화살 p.14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하지만 우리를 바보로 생각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그가 알고 있는 걸 우리도 알고 있지만 다만 평화를 위해 바보처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는 걸 이따금씩 상기시켜 주는 것도 좋을 거야.
신의 화살 p.15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이 문장도 와닿네요. 내가 훨씬 약한 쪽이라는 게 사실이더라도 상대에게 한없이 만만히 보이면 안된다는 건 우리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이치인 듯해요.
하지만 에제울루는 이제 새로운 종교가 마치 나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점차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병 환자에게 악수를 허용하면 그는 포옹을 원한다.
신의 화살 83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이와 같은 불행이 이따금씩 발생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로군. 그래야 친구나 이웃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있거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닭 똥구멍을 볼 수가 없잖아.
신의 화살 112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책에 끊임없이 나오는 이런 속담 표현들이 다 새로우면서도 인상적이고 상황에 맞아서 공감이 됩니다.
치누아 아체베 작가님 덕분에 아프리카 속담을 많이 알게 됐어요. 외우지는 못하지만요. 그리고 약간 다른 문화적 차이점도 느껴지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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