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결말까지 다 읽었습니다. 열 쪽 정도만 남기고 있었는데 일부러 미뤄두다가 늦은 저녁에 읽었는데요. 어떤 책이든 결말은 다른 자극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읽고 싶어서 일부러 늦은 시간에 읽습니다. 이번 작품을 읽고 느낀 전반적인 감상을 먼저 남겨요.
앞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이 쉽게 읽히기는 하나 어떤 메세지가 담겨있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는데요. 등장인물들이 다양하게 나오지만 그들의 행동이나 의도는 극적인 요소 없이 현실적이죠. 인물들 간의 다툼은 있어도 강렬한 원한 관계나 사랑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각 주연과 조연들의 욕망과 한계는 시대나 문화의 차이와는 별개로 어디에선가 볼 수 있을 법한 모습들이고요. 권위적인 사람,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 방탕하게 사는 사람, 소극적인 사람, 책임감을 가진 사람 등 우리 주변에도 보이는 유형들이죠.
갈등이 없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의 사건사고들은 거품이 끓어올라 넘쳐 흐르기 전에 먼저 김이 다 새어 빠져나가는 느낌을 줍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신 차려 보면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갈등이 폭발하거나 해결된다기 보다는 그 다음의 갈등의 도입부로 연결되고요. 끊어질 것 같다가 계속 이어지는 강줄기를 보는 듯 해요.
책에서 자주 반복되는 메세지는 '겉으로 보이는 양상과 안에서 벌어지는 내막의 차이'로 생각되는데요. 작가는 어떤 인물의 정체성이나 사건의 진실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는 걸 반복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에제울루와 그의 집안을 보죠.
에제울루는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물입니다. 옥페리와 우무아로의 토지 소유를 둘러싼 싸움에서 우무아로의 명분이 억지이며 부당하다는 걸 지적하고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죠. 그 대가로 그는 미움받을 걸 알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또 윈터바텀이 보기에 유일하게 거짓말을 안 하는 흑인이라고 높게 평가받기도 했고요. 에제울루는 백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으로 굴어 굳이 갈등을 부추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백인이 원하는대로 순순이 끌려가지도 않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대합니다.
그런데 에제울루는 집 안에서는 상당히 다른 인물이 됩니다. 아들이나 아내들의 관계에 있어 일방적인 편애와 관심을 보이죠. 마테피라면 호통과 지적을 받았을 일을 우고예에게는 딱히 말하지 않고, 마테피의 식량이나 재산으로 가정을 운영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선택으로 인해 마테피는 우고예와 그녀의 아이들을 시기하고 남편에게 서운함을 갖죠. 이 감정의 골은 연쇄적으로 작용해 다시 우고예는 마테피에게 반항적인 인물이 되어 집안에 미묘한 불화의 여지를 계속 남깁니다.
자식들과 사제직을 정하는 데 있어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장자인 에도고가 있지만 에제울루는 에도고를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죠. 탈을 깎아 만들고, 농사도 짓고 공동체와 전통을 잇는 일을 하는데도 에도고는 존재감이 없습니다. 대신 에제울루는 오비카의 성격과 행동의 결함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눈감아 가며 봐주죠. 그러나 에제울루는 감정과는 별개로 중요한 일들은 우고예의 자식들에게 맡깁니다. 은와포를 자신의 뒤를 이을 사제 후보로 정해놓고, 오두체에게는 백인의 관습을 알아오라고 보내죠. 아마도 부인들에 대한 선호도가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작중에서 에제울루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요. 그의 내면과 생각이 직접 묘사되는 부분은 별로 없고 주로 주변인물들이 추측하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독자들에게 에제울루에 대한 판단을 맡기고 그에 따라 행동의 원인을 짐작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에제울루 본인이 자기 속내를 말하지 않고, 또 가족들도 에제울루에게 감정과 생각을 묻기 어려워 하는 분위기가 집안 내에서 계속 오해와 갈등을 키우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에제울루의 집에서 나와 우무아로로 눈을 돌려보면, 이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나비효과처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소문이나 오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46~59p에 걸쳐 옥페리 마을로 전령의 신분으로 갔던 아쿠아칼리는 '거세된 수소'라는 상대의 도발에 눈이 뒤집어져 달려들었다 죽는데요. 상대는 아쿠아칼리가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 걸 전혀 몰랐고 그럴 의도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말 한마디로 두 마을의 전쟁까지 이어지죠.
오두체가 상자에 비단뱀을 가둔 사건도 비슷해요. 오두체가 뱀을 죽여 용기를 증명해보라는 도발에 넘어갔으나 막상 뱀을 죽일 배짱은 없어 상자에 넣었던 게 들통나면서 마을에 소문이 쫙 퍼졌죠.
윈터바텀은 에제울루가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 그에게 직위를 부여하려고,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의도에서 불렀으나 에제울루는 전령의 태도와 더불어 자신에게 함부로 오라 가라 하는 백인에게 화가 났는지 관계가 악화되고요. 그러다 윈터바텀이 열병이 도졌을 뿐인데 마치 에제울루가 주술을 부려 힘을 보여준 줄 알고 사람들의 소문이 와전되는 과정도 유사합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의 배경과 겉으로 보이는 사건의 정도에 괴리감이 있죠. 그러나 진실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되고, 점점 우무아로에 불리한 방향으로 사건들이 조금씩 조금씩 전개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치누아 아체베 작가는 서구권의 침투나 개입 또는 토착세력의 몰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적이거나 격변의 연속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연속이 뒤엉켜 인과 관계를 알 수 없게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과거와 역사를 바라보면 주요 사건으로 흐름을 접하게 되죠. 경제사/문명사/전쟁사/인물사 등으로 굵직한 기둥들로 시간을 해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되면 모든 역사는 다 엄청난 사건 사고 그리고 역사적 거인들이 주도해온 것처럼 느끼게 되는 문제가 있죠. 사실 몇 천 년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그런 '핵심들'보다 별볼 일 없지만 꾸준히 살아온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 차지하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전통적 가치와 사고관, 이념, 문화가 스러져 간 과정을 서구권의 대대적인 침탈로만 이해하는 것도 서구권 중심의 일방적이고 일차원적인 관점이라고 지적하려는 것 같습니다.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
D-29

은화

향팔
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게 되는 글이네요. 책 내용도 뒤적여보게 되고요. 언제나 좋은 분석을 써주셔서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치누아 아체베의 관점에 대해 얘기해주신 내용도 공감이 됩니다. 전작들도 그렇고 이 작품도 단순히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쳐들어와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했어요! 나쁜 놈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원주민 부족 내부가 지니고 있던 문제와 갈등, 얽힌 사정들을 같이 보고 생각하게 해줘서 좋더라고요. 저는 이제 마지막 한 챕터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끝이 과연 어떻게 될까 상상이 잘 안 되고 궁금합니다.

은화
그래서 전 이번 작품에서 메세지나 의도를 찾는 것 외에도, 인간극장을 보듯 당시의 아프리카의 군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읽었어요. 그 당시에 같은 공동체 내에서도 백인이나 전통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위치에 놓인 개인들이 있었음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고요.
아체베 작가의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겠죠. 어느 한 쪽을 선의의 피해자로만 쓰지 않고, 그들이 가졌던 한계와 문제도 가감없이 보여주니까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주인공 오콩코의 개성도 매우 강하고, 분량이 짧은 대신 사건의 전개가 빠르면서도 선이 굵은 작품인데 비해 <신의 화살>은 분량과 전개가 더 길게 늘어난만큼 갈등과 긴장도 희석된 느낌입니다. 더 느리고, 변화를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힘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거든요.
결말을 읽고 나면 '그런데 왜 이렇게 되버린거지?' 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기억을 역순으로 더듬어보면 분명 사건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도 그렇고 등장인물들도 그 당시에는 일이 이렇게 진행되리라고 예상을 못할 만큼 모든 것들이 아주 느슨하고도 천천히 벌어졌죠. 변화의 과정 속에 속해있을 때는 정작 변화를 알기 어렵고, 그래서 맞서 싸우거나 저항한다는 게 어려움을 말하는 것도 같고요.

은화
1,3) 에제울루가 재밌는 점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본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나가듯 언급되는 사소한 단역들도 이름이 언급되는데 에제울루는 그의 직함으로만 불릴 뿐 진짜 이름을 알 수 없는데요. 그의 알기 어려운 속내처럼 이름도 가려져 있습니다. 이 자체가 에제울루의 몇 가지 특성을 보여주는 장치 같은데요.
우선 그가 신에게 전념하고 헌신하는 위치임을 보여줍니다. 그도 분명 사제가 되기 전에는 이름이 있었겠지만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본인도, 그 누구도 이름으로 에제울루를 부르지 않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없거나 사라지고 신의 대리인임을 더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그토록 울루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친 그였기에 결말에 이르러 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신의 소통자라는 입장 때문인지 그는 사람들이나 주변인의 평판과 감정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 집안에서 일어나는 불화나 마을 사람들의 불만과 험담에도 아랑곳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실행하고 발언하죠. 그런데 바로 그 성격 때문에 갈등이 더 커지고 오해도 커집니다. 책 중간에 그의 어머니가 에제울루를 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남도 그렇게 여기고 따라야 한다는 태도'가 단점이라고 과거에 지적한 문장도 나오죠.
에제울루는 신의 기분과 생각에만 신경쓰고 정작 그 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마을사람들의 이해관계에는 무정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무아로의 마을 역사를 돌아보면 에제울루라는 직위는 머나먼 과거에 여섯 마을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가장 약한 마을에 제사장을 넘겨주기로 합의하고 배려하는 배경에서 생겨났죠.
사제의 권위는 어디에서 올까요?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이라는 배경 자체가 사제의 권위와 명성의 배경일까요, 아니면 신을 믿는 다수의 신자들과 사제를 인정하는 합의에서 나올까요. 에제울루는 이 균형을 잊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우무아로에 공개적으로 맞서게 되고, 그들의 신망을 잃으면서 동시에 울루 신의 위상도 추락하고요.
일희일비와 평판에 신경쓰지 않았던 그였지만 정작 그것들은 우무아로에 닥쳐오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고 신호였죠. 그러나 에제울루는 그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다 서구와 바뀐 우무아로의 사이에 껴버린 느낌입니다. 하지만 슬픈 점은, 에제울루 본인이 악의를 갖고 그런 것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양심에 따라 마을을 위해서 행동했으나 결과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갔다는 겁니다.
가령 우무아로와 옥페리의 영토 분쟁에서 에제울루는 옥페리 편을 드는 '양심의 선택'을 내리지만 인망을 잃죠. 윈터바텀의 호의는 얻었지만 정작 그 호의가 나중에 왕으로 앉히려는 제의로 이어지고, 그 제의를 거절함으로써 투옥되는 사건으로 흘러가는 건 에제울루가 의도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백인들과도 척을 지게 되죠. 에제울루는 매번 '자신에게' 옳은 선택을 내리지만 그게 우무아로에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거죠.
변화하는 거대한 시대의 앞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맞설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 당하는 운명임을 보여준달까요. 그래서 아쿠아부에는 마을사람들에게 맞설 수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과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이 항상 일치할 수 없는 리더의 딜레마가 인상 깊습니다.

꽃의요정
여기서는 우무아로라는 지역을 예로 에제울루의 파멸을 그렸지만, 어렸을 때부터 작은 교회에 다녔던(여러 교회) 저는 이런 목회자님들을 많이 봤습니다.
본인들은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린 저에게도 '그건 신의 뜻이 아니라 (오만한) 본인의 뜻'으로 보였습니다. 결국은 추종 주류세력이 떠나면서 교회가 없어지는 수순을 밟았고요.
몇 달 째 일드 '어떡할래 이에야스'를 보고 있는데, 예전엔 그냥 흘려 봤던 이에야스의 행동들이 나이 들고, 일본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서 보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영웅호걸들 틈에 껴서 '토끼같은' 성품으로 끝까지 살아 남은 이유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였습니다.
사랑했던 정실 아내가 노부나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마음을 닫았던 몇 년간은 중신들의 반발이 가장 심했던 시절이었고요.
결국 한 공동체를 망하게 하지 않는 건 인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존심은 상하겠지만 이길 수 없는 침입세력이 들어왔을 때는 무턱대고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인 것 같습니다.

은화
그래서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이 있다죠. 어렸을 때는 정의로운 유비를 좋아하고, 성장해서 한창 야망과 욕심과 꿈이 많을 나이에는 목표를 이룬 조조를 동경하게 되고, 중년이 되었을 때는 다시 유비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고 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유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는 말이 공감되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과 남들이 원하는 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실망하더라도 다시 기대하게끔 만드는 게 리더십, 지도력이겠죠. 말은 쉽지만 균형을 위해 줄타기를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한쪽을 선택하는 것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견디고 인내하는 성향이 필요한 것 같네요.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양한 치욕과 설움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나아가는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바를 얻으니까요.
공동체를 지키려던 시도가 오히려 공동체에게서 멀어지는 선택이 되고, 울루 신도 버림받은 신이 되는 과정을 보면 에제울루도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싶고요.

꽃의요정
저 요새 그믐의 삼국지 방에서 삼국지 읽기 시작했는데, 유비가 의외로 사람을 많이 죽이더라고요!!
그것도 활로 쏴서 머리를 콕
저에겐 나름 큰 반전이었습니다.
(안비밀인데, 영화 적벽대전을 개봉할 때 봤는데 양조위를 유비라고 생각하고 봤었습니다. 나중에 주유란 사실을 알고, 주유는 또 누구야? 하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어요. 무식해도 너무 무식해서요. ㅎㅎ)

향팔
“하늘은 주유를 두고… 어찌 공명을 내셨나이까!”

은화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삼국지 인물들의 이미지는 연의와 그에 기반한 매체들의 영향이 크다고 하죠. 그래서 정사에 기록된 행동과 연의에서 받은 인상이 다른 경우들도 있고요. 어릴 때 연의만 읽어봐서 정사나 신삼국지에서의 유비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본 '한중전투'를 앞두고 조조에게 건네는 유비의 대사가 인상깊더군요. 그저 사람 좋고 선하기만 한 유비가 아니라, 나름의 야심과 기개를 숨기고 지내왔던 모습이라 신선했어요.

은화
유: 조조, 네 놈은 멋대로 왕이라 칭하고 한나라를 찬탈하여 황제를 가두고 황후를 시해하여 충신들을 도륙했다. 한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든 널 씹어먹어도 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난 천자의 혈서를 받들어 네 놈을 죽여 은혜를 갚으려 한다.
조: 현덕, 내 뒤에는 40만의 병사가 있다. 항복하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유: 조맹덕, 오늘의 싸움을 18년 동안 기다려왔소. 내년 이 날에 그대 무덤에 찾아가서 성묘하리다.
- 신삼국지 한중전투 편 -

향팔
네, 제가 읽은 삼국지도 연의랍니다. (중드 신삼국지도 연의 기반~) 정사 삼국지는 읽어볼 마음이 별로 없어요(연의와는 몹시, 매우,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나관중 창작으로서의 연의가 넘 재밌어서 정사는 그닥 궁금하지 않더라고요 ㅎㅎ
맞아요. 유비가 은근 여우(?)같은 구석이 있더구만요.

향팔
삼국지를 두 번 읽고 중드 신삼국지를 꿀잼으로 본 저는 아직도 조조 캐릭터가 매력적이더라고요. (특히 이 드라마에서 조조 역을 맡은 배우 연기가 끝내줍니다. 사진 첨부함.) 저는 더이상 청년도 아니고, 꿈도 야망도 없고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없는 인간인데 말이죠. 싸이코패스 같기도 한 조조가 대단히 입체적이고 현대적인 캐릭터로 느껴졌어요. 좀더 나이를 먹으면 또 달라지려나요.


향팔
신삼국지 드라마에선 장비도 매력이 터집니다 ㅎㅎ
특히 마지막 사진.. 속터지는 소리 하는 유비를 꼬나보는 장비 ㅋ




꽃의요정
근데 왜 '신'삼국지인가요? 내용이 다른가요?

향팔
아, 같은 연의 기반이지만 중국에서 옛날에도 나왔었던 삼국지 드라마와 구분하는 차원에서 ‘신’삼국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조에게 주인공격으로 더욱 포커스를 맞추는 등 좀더 새롭고 현대적인 연출을 가미한 걸로 알아요.

꽃의요정
4대 AI에게 저희 아들이 물어봤는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전부 조조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남편 말로는 뭐 현대적인 캐릭터라고 하는데, 전 아직 2권 읽는 중이라 20대의 잘생겼지만 좀 비열한 조조밖에 못 봤네요.
근데 올려 주신 사진의 조조씨는 많이 축축하시네요 ㅎㅎ

향팔
맞아요, 책보다는 드라마에서 조조의 매력이 강했습니다(배우의 연기빨도 큰 역할을 한 듯해요). 사진의 장면은 조조가 유비를 추적하다가 강변에서 놓쳤었나? 제 기억에 아마 그랬을 거예요. 강물에 젖어서 저렇게 축축함 ㅎㅎ

은화
2) 책의 중간에 <신의 화살>이라는 제목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에제울루의 아들들 중 누가 사제가 될지는 결국 울루 신이 점지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신의 화살이 어디로 날라갈지는 때가 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신의 화살이라고 부를까요? 신은 보통 눈에 직접 보이지 않죠. 상징물이나 기적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지언정 실체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론 무시 당하거나 간과하기 쉽죠. 화살은 목표를 향해 날아가지만 화살은 활과 활시위에 속해있으며, 그것들을 당기는 누군가의 의지와 힘이 화살의 본질입니다. 화살은 겉으로 드러난 수단일 뿐이며, 화살의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있죠.
이 책에서 정말로 위협적인 건 겉으로 보이는 백인의 침입보다 우무아로 내부에 깃들어 있는 분열입니다. 에제울루의 권위는 과거와 같지 않으며 에지데밀리나 은와카는 공개적으로 도발을 합니다. 그리고 에제울루가 가진 모순은 집 안에서 되풀이 되어 가정에서도 불화의 씨앗이 자라나고요.
앞에서도 언급했듯 에제울루는 나름 통찰력도 있고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오두체를 윈터바텀에 보낸 것도, 만일 백인들이 지배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할 목적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나오죠. 하지만 에제울루는 그 변화의 때와 타이밍을 가늠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두체를 백인에게 보낸 걸 볼 때 자기 자녀 대에나 우무아로에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 모습입니다. 그 결과 정작 에제울루 본인의 주위에서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거기에 맞게 처신하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더 이상 우무아로의 여섯 마을이 과거처럼 하나로 단결되지 않으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데도 울루 신에 대한 믿음과 전통을 고수합니다. 이 문제가 극단으로 치달은 게 감옥에서 돌아온 뒤의 햇얌 축제 선포를 멈춘 사건이죠.
에제울루는 억류에서 풀려나 마을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마을에 복수와 응징을 다짐하는 모습이었는데요. 그러다 막상 마을 사람들의 안부와 인사를 받고, 한 명씩 만나면서 인간적인 감정이 되살아나 화가 풀어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나 에제울루의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그는 울루 신의 명령을 듣고는 방관하듯 손을 놓아 버립니다. 과연 여기서 어디까지가 에제울루 본인의 감정이고 어디까지가 사제로서의 공적인 판단인지 궁금해지는데요.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갈수록 해이해지고 신앙이 옅어지는 마을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사명감이나 의무감을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미 에제울루 본인의 내면도 분열되어 있는 상태인거죠. 한편으로는 인간적 본성으로서 마을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신에게 도전하고 전통에서 멀어지는 마을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는 거죠. 우무아로에서도, 가정에서도, 개인의 내면에서도 모두들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해체되는 모습입니다.
관계는 뭐든지 상호 쌍방향인데 마을사람들과 울루(에제울루)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실망시키고 멀어지면서 빠르게 회복불능의 단계로 악화됩니다. 그 결과 울루 신은 더 이상 자신을 공경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마을에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 화살을 쏩니다. 그런데 화살을 쏘는 사람은 목표를 맞추기 위해 화살을 쏠 수도 있지만 그냥 허공에 화살을 날릴 수도 있죠.
울루 신은 이제 사냥은 의미없다는 듯 에제울루라는 화살을 멀리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로 쏴버리고 주울 생각도 없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그와 그의 자녀들 중 누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의 사제가 될 필요가 없다는 듯 모두 내팽겨치고 갑니다.

향팔
은화님의 글 중에서 “에제울루 내면의 분열”이라는 표현을 보니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네요. 에제울루 어머니가 말년에 사로잡힌 광기, 초승달이 뜨는 밤 차꼬에 채워지던 어머니의 두 발과 에제울루의 두려움, 감옥에서 돌아온 뒤 마을 사람들과 화해하려던 순간 들려온 울루 신의 음성과 웃음 소리, 오비카가 죽던 날 밤 에제울루가 꾼 꿈, 결국 금이 가 버린 정신 등등을 연관지어 떠올리게 됩니다. 정말 어떻게 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착잡한 결말입니다.

은화
“ "사실은 중요하지." 윈터바텀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조사 위원단은 유용할 수도 있다네. 우리 행정부의 잘못은 그들이 항상 사람을 잘못 임명하고 이곳에서 수년 간 근무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한다는 거야." ”
『신의 화살』 p.19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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